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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한국 언론도 함께 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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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한국 언론도 함께 침몰했다

[편집국에서] 더 가벼워진 모바일 뉴스 편집, 이젠 빨간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던 16일 오후, ‘네이버(NAVER)’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제휴 언론사 전체에 보낸 메일이다.

'네이버'가 보낸 메일 "언론사, 자극적 편집 자제해 달라"

누리꾼들의 항의가 ‘네이버’로 쏟아진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진 내용. “국가적 재난사고에 대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편집에 대한 항의 및 피해 학생들과 가족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자극적인 편집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 다수이니, 운영에 참고 부탁드린다.”

기분이 복잡했다. 메일 내용은 정당하다. 이날 하루 내내, 눈 뜨고는 못 볼 보도가 이어졌다. 대표적인 게 ‘검색어 기사’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를 이용한 ‘클릭 유도용’ 기사다. 예컨대 사고 하루 전 102주년을 맞은 ‘타이타닉’ 사건이 검색어에 오르자, 언론은 ‘타이타닉’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를 쏟아냈다.

숱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검색어 기사’를 서로 베껴대는 언론의 행태는 참담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다른 생각도 들었다. ‘네이버’를 포함한 포털 업체의 책임은 전혀 없느냐는 게다. 과거에는 진지한 공론 영역에 오르지 않았던 연예 뉴스가 온 나라의 관심사가 된 건, 상당 부분 포털 때문이다. 포털 업체가 ‘클릭 유도’를 위해 연예 뉴스를 전면에 배치했다. 누구나 알 듯, ‘공항 패션’ 운운하는 이런 기사는 내용이 없다. 별 의미 없는 가십 기사가 굵직한 사회의제보다 더 주목받게 된 것도 어느 정도는 포털 때문이다.

'실시간 검색어' 목 매는 주류 언론

연예 기사, 가십 기사를 원하는 포털과 이를 공급한 언론 가운데 누가 더 나쁜지를 가리는 건 부질없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수준이다. 중요한 건, 우리 언론이 길들여진 방향이다. 비명이 터져 나오는 현장보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더 관심을 쏟는 언론이라면, 우리 사회가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검색어 기사’를 베껴대며 세월을 낭비하는 이들에게 다른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지적은 새롭지 않다. 과거 영향력이 있던 스포츠 신문이 위축된 자리를 메우며 들어선 온라인 연예 매체들이 주로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런 논의에는 함정이 있다. <조선>, <중앙>, <동아> 등 주류 언론은 책임이 없다는 투니까 말이다. 이들 주류 언론은 수십 명의 전담인력을 두고 ‘낚시기사’, ‘검색어 기사’를 대량 생산한다. 주류 언론사에서 이런 일만 하는 이들의 수가 어지간한 인터넷 언론사나 잡지사 기자보다 많다. 자사 홈페이지 한 귀퉁이에는 여성 연예인들의 노출 사진도 배치한다. 전언에 따르면, 종이 지면에서 중요한 자리에 배치됐던 기사보다 이런 사진을 클릭한 숫자가 훨씬 많다고 한다.

더 가벼워진 모바일 뉴스 편집…'불편한 진실' 캐는 기사, 어디서 봐야 하나

자칭 타칭 ‘1등 신문’이라는 <조선일보>조차 온라인 방문자 절반 이상이 ‘네이버 검색’을 통해 들어온다. 한 조사에 따르면, <조선일보> 온라인 판은 순방문자의 59%가 네이버 검색으로, 27%는 다음 검색으로 들어왔다. 외부 조사기관의 분석이라서 정확도에 한계는 있다. 그러나 대략적인 경향은 알 수 있다. <조선>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언론이 그렇다. ‘네이버 검색’이 다른 유입 경로보다 적은 경우는 <프레시안>, <한겨레>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검색을 통해 언론사를 찾은 경우가 모두 ‘검색어 기사’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다. 독자가 진짜 원하는 정보를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해당 언론사를 방문하게 된 비율도 꽤 있을 게다. 그러나 이런 점을 고려해도, 주류 언론사 홈페이지 방문자 가운데 압도적인 비율이 ‘네이버·다음 실시간 검색어’를 통해 들어온다는 점은 분명하다.

<조선>·<중앙>·<동아> 등 주류 언론사를 비난하려는 것도, <프레시안>·<한겨레> 등을 칭찬하려는 것도 아니다. <프레시안> 역시 ‘네이버’가 뉴스캐스트 정책을 쓰던 시절에는 ‘낚시 제목’을 종종 달았었다. 기사 내용과 관계가 적은, '클릭'을 의식한 제목이다.

언론계 종사자라면 대부분 아는 것처럼, 독자들이 모바일 기기를 통해 기사를 접하는 비율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런 추세까지 고려하면,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포털 모바일 앱의 뉴스 면은 연예 및 가십 기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웹 사이트보다 더 크다. 포털 업체의 뉴스 편집 정책은, 언론사가 의미 없는 기사를 베껴대도록 분명히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언론은 여기에 저항할 기미가 없다. 오히려 ‘검색어 기사’, ‘연예 및 가십 기사’ 생산에 더욱 열을 올리는 분위기다.

우리 삶을 실제로 짓누르는,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캐는 기사는 갈수록 줄어든다. ‘세월호’ 침몰 사건 관련 뉴스를 보며, 한국 언론의 거대한 침몰을 예감한 게 나만은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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