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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기자 해직, 박정희 정권 탓 아냐"… 법원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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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기자 해직, 박정희 정권 탓 아냐"… 법원 '고집'

"재판부, 여전히 충견… 책임 안 지려는 동아일보"

한국 언론 사상 최대 탄압 사건으로 꼽히는 '동아일보 기자 대량 해직 사태'가 박정희 정권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정부 탄압이라는 사건의 성격을 뒤집는 판결로 논란이 예견되는 상황. 해직 당사자들과 언론단체는 "동아투위 정신을 훼손한 법원의 반역사적 폭거"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는 "동아일보사가 정권의 요구대로 기자 등을 해임해 해직자들에게 사과하라고 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을 취소하라"며 동아일보사가 안전행정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지난 15일 밝혔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동아일보 해직 사태는 박정희 정권의 보도 통제에 항거한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 등을 발표한 데서 촉발됐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광고주들을 압박함으로써 동아일보는 광고 지면이 백지로 발행되는 사태를 겪었고, 이후 사측은 7차례에 걸쳐 49명을 해임하고 84명을 무기정직 처분했다. (관련기사 : "동아투위, 35년 싸움의 시작", "동아투위 30년, "후배들이여, 참 언론의 길을 두려워말라", "동아투위 국가에 104억 원 손해배상 소송 제기" )

진실화해위는 해직 기자들과 중정 관계자들을 조사한 끝에 지난 2008년 "동아일보 광고 탄압과 해직 사건에 당시 정권이 중정을 동원해 직접 개입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아울러 정부 압력에 굴복한 동아일보사 역시 책임이 있다며 사측에 해직자들에게 사과하고 명예회복 조처를 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해 당시 많은 언론이 "광고탄압과 해직 문제 모두 중앙정보부가 개입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동아>는 "광고 탄압에 중앙정보부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반쪽짜리 해석을 내놓았고, 곧이어 소송을 제기했다. 소 제기 근거로는 "언론인 해직은 광고 사태로 인한 경영상의 이유 때문"이라고 1979년 대법원 판시를 들었다.

2014년 재판부는 35년 전 판결을 그대로 따랐다. 해임 조치는 사측의 '경영상 판단'일 뿐, 정권의 압력 때문으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구체적 이유로 △국가기관이 기자들 해임을 요구했다는 객관적 자료가 없다는 점, △당시 '광고탄압 사건'으로 인한 경영상 위기로 비용 절감 필요성이 높았고 당시 해임된 기자들이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들만 있는 게 아닌 점, △경영진과 기자들이 대립하고 있어 정권의 요구 없이도 해임할 동기가 충분했다는 점 등을 제시했다.

<동아>는 판결 다음날인 지난 16일 "1970년대 동아일보 기자 해직사건 과거사委 2008년 결정은 잘못됐다"는 제목의 짤막한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의 마지막, 해직 사태를 설명하는 대목에선 "재정위기 때문에 100여 명의 기자를 해임 또는 무기 정직 시킬 수밖에 없었다"며 동아일보사가 정권에 굴복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진실화해위 보고서에 실린 '광고 탄압-인사 조치'의 흔적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통해 통해 동아일보 해직 사태가 기존에 알려진 것과 같은 정권의 언론 탄압 사건이 아님을 거듭 확인했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의 관계를 빼고선 이 사건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해직 당사자들과 현재 언론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특히나 광고 탄압과 기자 해직 문제는 결코 분리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과거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던 장행훈 언론광장 대표는 16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단지 경영이 어려워서 잘랐다고 할 게 아니라, 경영이 어려워지게 된 원인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회사 재정 위기를 부른 것은 언론 탄압이었고, 언론 탄압의 배경에는 반정부 보도가 있다는 것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8년에 낸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보고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여러 도식을 거치지 않더라도, 진실화해위가 발간한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보고서를 보면 광고 탄압과 인사 문제가 긴밀하게 연결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첫 해임 조치가 있었던 1975년 3월 8일 이후로 4달 뒤인 1975년 7월 11일, 중정 관계자는 동아일보 당시 김상만 사장을 만나 광고 탄압 조치를 풀기로 약속한다. 단, 조건이 있었다. '개전의 정(잘못을 뉘우치는 마음가짐. 편집자주)'을 표하는 사과 성명을 낼 것. 그리고 편집국장 등 주요 간부 인사는 사전에 중정과 반드시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협상에 나선 중정 양모 담당관이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직접 진술한 내용이다.

진실화해위는 이외에도 정부가 인사에 관여했을 여러 정황들을 보고서에서 밝혔다.

△해직 등 대규모 인사 조치가 당시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박준규 정책위의장이 "동아일보사는 발행인이나 편집인 지배하에 놓여야 한다"고 발언한 이후 취해졌다는 점, △인사 조치를 당한 언론인들의 항의 농성이 통행금지가 있던 새벽에 정부의 비호 아래 강제해산되었다는 점, △같은 시기에 조선일보사 기자들도 해임되고, 기자협회보도 폐간되었다는 점, △1980년 언론통폐합 당시 보안사 작성 문건에서 해임된 언론인들을 '위해요인자'로 분류해 지속적으로 관리해오고 재취업을 봉쇄한 사실이 드러난 점, △당시 이동욱 주필이 지난 2001년 문화방송(MBC) 인터뷰에서 해임의 원인은 광고탄압이라고 발언한 점 등이다.

진실화해위는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동아일보사는 언론자유 수호에 앞장선 언론인들을 위법한 공권력의 압력에 굴복해 정부의 요구에 따라 대량해임, 무기정직시킨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 유신독재 시절 충견 노릇하던 재판부와 다르지 않아"

언론단체들은 “대량 해직 사태를 한낱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축소한 ‘정치재판’”이라며 재판부를 비판하는 한편, 동아일보 측에 즉각적인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6일 성명을 내고 “독재정권의 탄압에 정면으로 맞서던 언론인들이 대량 해직된 사건에 정권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무지 이치에 닿지 않는다”며 “이번 판결은 지금의 재판부가 유신독재 시절 정권의 충견 노릇을 하던 재판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아일보에 대해 “대량 해직 사태를 책임질 생각은 없이 소송을 걸어 사과든 배상이든 무조건 피해가려고만 하는 동아일보사의 작태는 그야말로 추악하다”며 책임 수단을 강구할 것을 요구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이날 성명을 통해 “민주언론운동사에 대한 이해와 역사적 인식을 결여한 법원의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재판부의 판단은 ‘당시 언론인 해직은 경영상의 문제이며 유신정권의 탄압과 관련이 없다’는 동아일보의 변명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동아일보 해직 언론인 모임인 '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소속원들은 17일 정례 회의를 갖고, 언론노조 등 언론 단체와 연대해 조만간 소송 참가 신청을 하기로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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