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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를 사형시키면 끝날 문제일까?

[기자의 눈] 칠곡과 울산 아동학대 사건을 보며

천인공노할 일이다. 최근 여론을 뜨겁게 달궜던 경북 칠곡과 울산에서 아이가 계모에게 맞아 죽은 사건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아이를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 "(맞아서) 팔이 휘었는데 전혀 치료를 안 했다.", "(맞아서) 갈비뼈 16개가 부러졌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아이들인데, 보호 받고 사랑 받아야할 가정에서 수년간 폭력에 시달렸다니, 이 아이들의 고통은 어쩌면 영원히 치유되기 힘들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은 같은 날인 11일 1심 선고가 났다. 울산지법 제3형사부는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계모 박모(41) 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대구지법 제11형사부도 이날 열린 선고공판에서 계모 임모(36) 씨에게 상해치사죄로 징역 10년을, 불구속 기소된 친아버지(38)에 대해서는 아동학대(아동복지법 위반)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해 여론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들끓고 있다. 이날 재판이 진행된 울산지법과 대구지법 앞에서도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온라인 모임인 '하늘로 소풍간 아이들을 위한 모임' 회원들이 계모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아동학대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형량이 선고된다. 2013년 말 아동학대에 대해 무기징역까지 처벌을 강화하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까지 아동 학대에 대한 형량은 징역 5년 정도에 그쳤다. 미국, 영국 등 유럽 선진국들은 칠곡이나 울산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학대로 인해 아동이 숨졌을 경우, 살인죄를 적용한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아동학대 범죄를 예방하는데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아동학대 범죄를 줄이고 예방하는데 있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핵심은 아니다. 게다가 마치 우리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를 입증시켜주는 듯한 '나쁜 계모'에 대한 원초적인 분노와 그녀에 대한 응징으로 해결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계모나 계부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아동학대가 많을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아동학대의 80%가 친부모에 의해 저질러진다. 계부나 계모에 의한 학대 비율은 4% 정도다.

▲ 11일 칠곡 사건과 관련해 공판이 열린 대구지법 앞 풍경. ⓒ 연합뉴스


또 '가해자에 대한 응징'에 집중하다보면, 정작 피해 아동의 문제는 뒤에 놓여진다. 아동학대의 최우선은 예방이지만, 2012년 1만943건(보건복지부 통계)의 아동학대가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신고된 건수만 이 정도이니, 실제 발생한 아동학대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학대 당한 아동에 대한 보호 및 치료 시스템은 거의 없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보다 더 선진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열악한 게 피해 아동에 대한 보호 문제다. 학대 받은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기관은 전국에 고작 47개 뿐이다(새정치민주연합 남윤인순 의원실 자료).

특히 아동의 보호 및 인권에 관한 사항은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정상이지만, 아동학대예방 업무가 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다. 그러다보니 중앙정부의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2013년의 경우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운영지원 및 피해아동 그룹홈 지원을 위한 10억6700만 원에 불과했으며, 2014년 예산안에도 11억6200만 원을 편성한 데 그쳤다. 아동을 일시 보호하는 기관이 이 정도 수준이니, 학대 받은 아동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신적, 심리적 치료에 대한 지원은 꿈도 꾸기 어려운 실정이다.

분노의 초점을 '나쁜 계모'에서 가정과 국가에서 모두 보호 받지 못하는 아동들의 현실로 돌려야하지 않을까. 그러면 좀더 빨리 아이들이 가정에서 맞아 죽는 이 끔찍한 현실이 개선되지 않을까.

학대 가정의 44%는 한부모 가정이다. 아동학대의 상당 수는 폭력이 아닌 방임이나 유기다. 우리사회처럼 사회적 안전망이 극히 취약한 사회에서 빈곤은 학대로 쉽게 연결된다. '계모'가 아니라 가족간의 관계를 왜곡시킬 수 밖에 없는 가난이 문제다. 칠곡이나 울산 사건의 경우도 사실 빈곤 문제와 무관하다고 하기 힘들다. 결국 너무나도 폭력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아동 학대는 가해자에 대한 형벌 수위와는 별개의 변수로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당과 야당에서 아동학대를 줄이기 위한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라 여야간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정책 경쟁을 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좀더 넓혀, 특히 아동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보는 법과 제도들이 이번 기회에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 등 '4대 악을 근절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야말로 '공천' 문제와는 비교도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 중요한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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