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인기’ 공포가 한반도 상공을 강타하고 있다. 주요 언론은 이를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국민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려고 한다. 반면 일각에서는 ‘장난감’ 수준에 불과한 것을 두고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온다. 여기에 국방부의 설명마저 오락가락하면서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일부 언론이나 군과 정보 당국 입장에서는 북한 무인기 논란을 증폭시켜 상업적, 정치적 잇속을 채울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다. 북한이라는 ‘주적’과 무인기라는 ‘새로움’의 조합은 이를 위한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로운 기계가 곧 심각한 위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직면한 진짜 위협은 이미 익숙한 문제로부터 오고 있다. 20년째 그 뿌리를 뽑아내지 못하고 있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바로 그것이다. 새로움에 취해 익숙함에 둔감해지는 것이야말로 우리 안보의 최대 허점이다.
북한의 전략적 모호성?
북한이 무인기를 침투시킨 것이 사실이라면, 엄중 항의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증거 제시와 일관된 입장 표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군 당국은 파주에서 무인기가 발견되었을 때에는 “대공 용의점이 없다”고 했다가, 백령도에서 또다시 발견되자 ‘날자(날짜의 북한식 표현)’을 유력한 증거로 제시하면서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방향을 틀었다.
또한 파주 무인기가 찍은 사진을 두고도 처음에는 특정 지역을 집중 찍은 것이 없다고 했으나 조사 결과 청와대를 집중 촬영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아울러 공격용으로 이용되기에는 성능 미달로 얘기했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질책을 받고선 “무인기가 발전되면 테러용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의 입장도 주목된다. 북한은 무인기 논란과 관련해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7일에서야 입장을 내놨다. 3월 말에 실시된 남한군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강력 비난하면서 “그 무슨 무인기 소동을 벌리면서 주의를 딴 데로 돌아가게 해보려고 가소롭게 책동하고 있다”며, “그러한 상투적인 모략소동이 오늘과 같은 밝은 세상에서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소행을 부인하는 듯 암시하면서도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려되는 부분은 북한이 남한의 무인기 논란을 보면서 무인기의 전술적 가치에 주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3개의 원시적인 무인기로도 남한이 발칵 뒤집힌 것을 보고는 필요시 대남 교란용으로 무인기를 활용하려고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한 언론이 연일 ‘자폭 공격용’, ‘생화학무기’나 ‘핵탄두’ 장착 등 무시무시한 단어를 사용하면서 대북 공포심을 자극할수록, 북한으로서는 유력한 심리전 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북한의 강함이 아니라 약함을 방증
그러나 냉정하게 볼 때, 이번 무인기 논란은 북한의 강함보다는 약함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첨단 감시·정찰 장비를 보유한 한미동맹에 비해, 북한의 정찰 능력은 시각장애인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찍힌 사진들의 해상도도 구글어스보다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또한 북한이 무인기에 폭탄이나 생화화무기, 심지어 핵탄두를 장착해 남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무기를 장착하려면 기체가 커지고 그렇게 되면 한미연합군의 감시와 방공 능력을 뚫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반면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소형 무인기를 보내면 탑재 무장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특히 생화학무기는 다량이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될 때 무기로서의 효과를 지닐 수 있다. 일례로 화학무기가 광범위하게 사용된 1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자 당 사용된 화학무기가 1톤에 달한다. 이런 예도 있다. 일본의 옴진리교는 1995년 도쿄 지하철역에서 화학무기인 사린가스 살포 전에 수차례에 걸쳐 보틀린누스균과 탄저균을 건물 옥상에서 뿌린 바 있다. 그러나 인명피해는 전혀 없었다. 옴진리교가 사린가스를 들고 지하철역으로 간 까닭이기도 했다.
핵탄두 장착 소형 무인기는 더더욱 소설의 영역에 가깝다. 북한이 수 킬로그램에 불과한 초소형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리도 없지만, 전략 무기를 무인기에 장착할 군사적 이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폭탄의 무게는 500kg에서 1톤에 달한다. 반면 북한제로 추정되는 소형 무인기가 카메라 대신에 장착할 수 있는 무기는 1~2kg 정도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다량의 미사일을 보유한 북한이 ‘공격용’ 무인기의 매력을 느낄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공포 조성용 심리전의 일환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심리적 공포는 남한 언론을 통해 자체적으로 생산·유포되고 있다. 이러한 안보상업주의가 국가안보에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1차 걸프전 당시 이라크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30발 정도의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자 이들 미사일에 화학무기가 장착되어 있을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 결과 미사일 공격에 의한 직접 사망자는 3~4명이었으나, 심장마비와 방독면을 장시간 쓰고 있다가 질식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약 10명이었다.
진짜 위협에는 팔짱 끼고
더욱 심각한 문제는 무인기라는 유령의 위협에 치중하다가 실제 위협 대응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현재 우리 안보의 최대 숙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있다. 세 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수시로 이뤄지고 있는 미사일 시험발사를 고려할 때, 북한이 이미 핵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거나 그 문턱에 도달했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북한 스스로도 최근 로켓 시험발사 목적이 핵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더해 북한이 수년 내에 신형 방사포에 핵폭탄을 장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미 양국은 팔짱만 끼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화와 협상 재개를 위해 쓰여야 할 외교적 노력이 북한을 고립·압박·제재하려는 데에 소진되고 있다. 또한 한미동맹은 ‘맞춤형 억제’라는 이름 하에 군비 증강에 몰두하고 있다. 이러한 외교적·군사적 대응은 북한의 반발을 야기하면서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더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이번에 발견된 소형 무인기는 탐지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저고도 레이더 도입을 서두를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이게 실효적인 선택인지는 의문이다. 휴전선 일대에 촘촘한 저고도 방공망을 구축하려면 수백억 원의 무기 도입 비용과 이를 능가하는 운영유지비를 투입해야 한다. 산악 지형이 많은 지형적 특성을 고려할 때, 저고도 레이더가 제 성능을 발취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북한이 이를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니다. 비용 대비 효과를 볼 때, 이러한 형태의 군비경쟁에서 불리한 쪽은 단연 남한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 4월 8일 자에 기고한 칼럼을 대폭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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