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제2의 새마을운동'에 힘을 쏟고 있다. 그 목적으로 '함께 하는 우리 농어촌운동'을 열심히 벌이고 있다. 사업을 지원하려고 '농촌 마을 공동체 활성화 지원에 관한 법률안'까지 발의해놓았다. 지난해 8월, 농림수산식품부에서 법안을 만들어 여당 의원 입법 형식을 빌리고 있다.
이 법안은 "그동안 지자체·민간에서 산발적으로 전개되는 마을 만들기에 대해 일관된 원칙 및 방법 등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농정 책임자인 농식품부조차 "농어촌정비법 등 기존 법률은 사업 시행에 관한 절차·방식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중심의 마을 만들기 지원 내용은 미미했다"고 반성하고 있다. 또 "국내외 성공 모델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체계도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마을 만들기 적용이 일부 지자체장의 관심과 의지에만 의존하는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반성한다.
아울러 "지역 개발 사업의 효과성·형평성 증대를 위해서도 법제화는 필요하다"고 굳게 다짐한다. 한마디로 "도시보다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한 농촌에 적용할 수 있도록 농촌 마을 만들기 지원 체계를 구축한다"는 게 핵심 입법 취지이자 목적이다. 말은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마을 만들기' 판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불안하고 공허하다. 법이 만들어진다고 한국 농촌 마을 만들기의 고질적 난제들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법 이전에, 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의 문제, 조직의 문제가 더 본질적인 병인이라는 비판이다.
이는 곧 이른바 마을 만들기의 3대 주체인 '행정, 주민, 전문가'의 문제로 집약할 수 있다. 일단 행정은 농촌 마을 만들기 사업에 임하는 진정성과 지원 역량이 미흡하다. 주민은 농촌 마을 만들기 사업에 대한 이해도와 역량이 부족하다. 이런 행정과 주민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지원하는 역할의 전문가 집단마저 전문성부터 요구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사업체로서 수지타산을 맞춰야 하니 현장에서 성실성과 진정성을 놓치는 경우도 다반사다.심지어 농촌에 대한 지식도, 애정도 없는 비전문 업체들까지 전국 입찰판마다 기웃거리는 비정상적인 형국이다.
게다가 한국 농촌 마을 만들기의 문제는 정책 모델과 사업 구조에서 태생적인 한계도 안고 있다. '마을 만들기'를 '농촌 관광지화' 또는 '생태공원화'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짙다. 그 결과, 외부인(도시민 체험객, 선진 지역 견학단, 공무원 시찰단 등)의 구경거리나 체험거리에 불과한 관광지, 공원 등이 전국 곳곳에 양산됐다. 하드웨어 조성 위주의 토건 사업의 저열한 수준에 그치고 만 것이다. 본디 마을은 관광지나 공원이 아니다. 관광지나 공원이 되어서도 안 된다. 마을 주민들이 대대로 생활하고 생존해온 생활공간이다. 순정한 삶의 터전이다.
그래서 '마을 만들기'의 법과 제도를 거론하기 전에, 개념과 패러다임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토건적 마을 만들기'를 내부인(원주민, 귀농인, 출향인 등)의 생활과 생존을 보장하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사회·생태적 마을 살리기'로 패러다임과 방법론을 바꿔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마을기업 중심의 마을 살리기', '살림마을 목적 마을 살리기', '중간 지원 조직 기반 마을 살리기'가 합리적이고 실천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날 한국의 농촌 마을 만들기는 이미 피로 임계점을 넘어 위기의 막바지 국면에 도달했다. 새로운 기력과 활로를, '사회·생태적 농촌 마을 살리기 출구 전략'으로 회복해야 한다.
'한국적 농촌 마을 만들기' 파행과 왜곡의 근원, 새마을운동
한국의 농촌 마을 만들기는 1970년대 물리적 환경 개선 위주의 개발 지향적 새마을운동으로 본격화됐다. 오늘날 관과 외부 주도 토건 사업 위주의 파행적이고 왜곡된 '마을 만들기 방법론'의 원죄가 여기서 비롯됐다. 1980년대 들어 농촌 정주 생활권 개발, 농공단지 등의 농촌 공업화, 소도시 활성화 등 공업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었다. 1990년대는 농지 제도 폐지, 개발제한구역 해제 등으로 농촌 지역 난개발의 역사로 점철된다. 비로소 2000년대 들어 국토 균형 발전, 상향 공모식 농촌 지역 개발 사업 등 앞서가는 정책이 도입되었다.
그동안 농식품부를 비롯해 안전행정부, 문화부, 환경부 등에서 각종 농촌 지역 개발 관련 사업을 상품처럼 양산해 보급했다. 하지만 부처 간 헤게모니 다툼, 중앙과 지방의 불협화음, 행정과 주민의 갈등만 야기하며 파행과 시행착오의 사례가 난무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개발'이라는 교조적인 관성과 관행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농식품부는 2012년까지 읍 소재지는 84.4%, 면 소재지는 15.9%, 마을은 11.2%의 지역에서 각종 농촌 지역 개발 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해오고 있다. 2013년에도 117개 시·군에 대한 포괄 보조 사업으로 9182억 원의 지원 예산을 편성·집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농촌 마을 만들기의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전망도 불투명하다. 2010년 기준으로 20호 미만 과소화 마을은 전국적으로 총 3091개에 달한다. 전체 농촌 마을(3만6496개)의 8.5%를 차지한다. 곡물 자급률은 22.6%에 그친다. 주곡인 쌀을 제외하면 4%대로 급락한다. 이렇게 오늘날 한국의 농촌 마을은 뒤로는 '농정 실패', 앞으로는 '전망 부재'라는 이중의 장벽에 가로막힌 진퇴양난의 형국에 처해 있다.
우선 농촌 마을 만들기 문제의 가장 유력한 발원지는 단연 행정이다. 정책을 개발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권리와 책임이 온전히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등 중앙정부나 각급 지자체 등 행정은 농촌 마을 만들기의 본질적, 궁극적 목적과 목표가 공동체 활성화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방심하고 학습과 통찰을 게을리해 다소 간과했을 수도 있다. 이에 그동안 농촌 마을 만들기는 공동체 활성화보다 생활 기반 개선 사업 위주의 개별 단위 사업에 치중했다. 목적과 수단이 서로 괴리되거나 전도되어 있었던 셈이다. 수단은 왜곡되고 목적은 상실되었다. 물론 농촌 마을 현장에서 주민과 전문가의 역량과 방식도 비효과적이고 비효율적이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행정의 농촌 마을 만들기 정책의 방향과 좌표가 애초부터 잘못 설정돼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농촌 지역 개발을 주민 주도의 상향식 개발로 전환하는 등 행정이 자구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주민 주도가 아니라 공공 주도로 마을 사업 현장이 움직인 게 사실이다. 현장에서 주민의 참여와 역할이 행정에 밀려 제한적이거나 주변적일 수밖에 없는 이러한 여건에서 사업에 대한 마을 내 협의나 공감대 형성은 원만히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다. 결국 행정은 사업 추진과 사후 보고가 용이한 물리적 환경 개선 사업으로 흘러갔다. 이 와중에 시설 운영 등 사후 관리, 후속·연계 지원 사업을 따로 챙길 만한 여력과 창의력은 거의 없었다.
농촌 마을 만들기 사업이 2년 안팎의 단기 사업 위주로 설계되고 집행된 것도 문제다. 지자체장 교체 등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연속성이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사업 기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이 부재한 상태로 단위 사업 형태의 단기 사업이 되풀이되었다. 사업비를 대부분 중앙정부에 의존해 지역별로 독자적, 자율적인 사업을 계획하거나 추진할 수 없는 것도 한계였다. 지역 내부에서는 자율적, 창의적 사업을 추진하라는 포괄 보조 제도의 도입 취지에 무색하게 시·군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못했다. 그저 기존 사업이나 타 지역의 유사 사례를 모방하고 답습하는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사례가 만연했다.
중앙이나 지역이나 행정 하부에서는 건축, 농정, 도시, 주택 등 부서마다 사업이 분산 추진되었다. 행정 칸막이로 인한 비효율과 불통의 여지가 남아 있는 구조다. 농촌 마을 만들기 관련 사업의 총괄·기획 기능과 전담 부서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행정에서 위원장 등 일부 주민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는 경우도 많았다. 행정 편의를 우선하다 마을 주민 간 갈등과 공동체 붕괴 빌미까지 제공하기도 했다.
준비되지 않은 '마을 주민'과 역량과 책임감이 부족한 '전문가'
행정과 주민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대신 해결해야 할 전문가의 역할과 성과도 만족스럽지 않다. 행정과 주민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더욱이 2004년 최대 100억 원 규모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시행되면서 농촌 지역 개발 관련 전문기관들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해 전문가의 개념과 관련 컨설팅 시장이 교란되는 양상마저 지속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컨설팅 업체 등록제, 국가 공인 농어촌개발컨설턴트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도 없고 시장 진입 문턱도 여전히 낮다. 컨설팅 업체의 역량 강화 유도와 시장 공정질서 확립 효과는 미미하다.
심지어 업체 선정 과정에서 경쟁입찰 방식을 적용하다 보니 일을 잘할 수 있는 업체보다 입찰 경쟁에서 이기는 기술과 방법론이 뛰어난 업체들이 선정되는 경우도 피할 수 없다. 그저 제안서나 보고서를 기계적으로 찍어내 전국 입찰판마다 기웃거리는 자격 미달, 함량 미달, 도덕성 미달의 사이비 업체들마저 버젓이 횡행하는 지경이다. 이런 업체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전문성과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주로 홍보, 마케팅, 디자인, 정보화, 일반 산업, 중소기업 등 그동안 농업이나 농촌이라는 화두와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해오던 비전문적인 업체들이라는 점도 있다.
이른바 농촌 마을 만들기라는 일은 속성 자체가 근본적으로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의 삶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식과 이해를 갖추어야 수행할 수 있는 고난도 업무다. 생태, 환경, 조경, 관광, 건축, 도시 계획, 농학, 임학, 식품공학, 농경제학, 농업경영학, 농촌사회학 등의 지식과 역량이 통섭되어야 한다. 물론 학교의 학점과 학위보다는 학교 밖 현장 경력이 더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이전에 농업과 농촌, 무엇보다 농민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 전문가가 지녀야 할 자긍심과 소명의식이 없으면 능히 감당하기 어려운 직종이다. 법안으로 발의된 국가 공인 전문 자격증 제도 외에 기관 인증제, 인증기관 3진 아웃제 등을 도입해 농촌지역개발컨설팅 시장의 정도와 정의를 세울 필요가 있다.
'한국형 농촌 마을 만들기'의 선도지에서 엿보는 가능성
그나마 '한국형 농촌 마을 만들기'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선도 사례는 관과 민이 함께하는 민관 거버넌스형 지역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전북 지역이 활발하다. 비록 관 주도일망정 광역 지자체 차원의 전담 중간 지원 기구가 운영되고 있다. 전북의 기초지자체 중에서는 단연 진안군의 마을 만들기가 눈에 띈다. '내발적'이 화두다. 주민이 수립한 마을 발전 계획을 사업화하고 주민 역량에 맞춰 단계별로 사업을 지원한다. 행정은 주민들이 만든 계획서를 검토해 타당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군 자체 사업이나 정책 사업을 해당 마을에 유치하도록 지원한다. 특히 진안군 자체 예산으로 소규모 사업을 먼저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우수 마을로 평가받은 마을에는 중앙정부의 더 큰 규모의 사업을 연계 지원한다.
마을 간, 단체 간 네트워크 구축으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것도 특징이다. 개별 마을 단위 사업 추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을 만들기 지구협의회를 구성, 정보 교류, 지구별 공동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귀농인을 마을 간사로 활용한 것도 진안군 아이디어다. 이를 보고 중앙정부에서 마을 사무장 제도를 개발했다. 2007년 2월부터 행정 내부에 '마을 만들기 지원팀' 전담 조직을 두고, 2012년 말에는 '마을 만들기 지원 센터'라는 밀착 지원형 중간 지원 조직도 설치해 가동하고 있다. 책임자로는 외부 민간 전문가를 특채하고 있다.
완주군의 마을 만들기는 커뮤니티비즈니스(C.B.) 중심이다. 사업의 마스터플랜은 애초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끌던 희망제작소의 기획에서 비롯되었다. 완주지역경제순환센터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실행 주체들과 행정 주체, 지역사회 단체들을 지원하는 중간 지원 조직이다. 삼기초등학교 폐교를 7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리모델링했다. 마을회사육성센터,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로컬푸드센터, 도농순환센터, 공감문화센터 등 5개 지원 조직이 활동 중이다. 이곳에서 완주군의 정책을 현장에서 주민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활동을 추진하고 현장의 필요를 정책에 피드백한다. 중간 지원 조직 본연의 역할이다. 완주군은 농촌활력과를 신설하고 순환 보직제가 아닌 전담 공무원을 고정 배치해 정책과 예산 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지역 공동체 활성화 지원, 중간 지원 조직 설치·운영 등을 위한 지역공동체활성화사업(커뮤니티비즈니스) 육성에 관한 조례도 제정했다. 2007년 커뮤니티 비즈니스 활성화를 위해 희망제작소, 2012년에는 서울시와 우호교류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전북의 뒤를 충남이 가까운 거리에서 뒤쫓고 있다. 2011년부터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주도하는 3농 혁신 5대 핵심 과제의 하나로 '살기 좋은 희망 마을 만들기' 사업을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충남형 농촌 마을 만들기'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충남도의 행정 리 단위 전체 마을 4500여 곳이 대상이다. 마을을 개선하고 혁신하려는 지역 주민의 의지와 사업 추진 현황이 중요하다. 그에 따라 마을 공동체 사업 경험이 전무한 일반 마을부터 새싹마을, 꽃마을, 열매마을 등 4단계로 분류한다. 단계별, 맞춤형 마을 만들기 전략을 적용하는 것이다. 2014년까지 900개 마을을 대상으로 소득 증대와 경관 개선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시설 투자를 위주로 돈을 쓰는 여느 농촌 마을 만들기 사업과는 접근 방법부터 다르다. 직접적인 마을 만들기보다 '사람 만들기'에서 출발한다. 마을당 1200만 원의 사업비 중 500만 원은 주민 역량 강화 교육, 700만 원은 주민과 함께하는 마을 발전 계획 수립 등 마을 만들기 이해와 학습에 전적으로 선행 투자하는 방식이다. 결과 보고서를 평가해 준비된 마을, 잠재력과 가능성이 확인된 마을에 한해 선별적으로, 그러나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가급적 관의 간섭과 통제를 경계하는 순수 민간 주도형 사례도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홍성 홍동면의 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가 모범적이다. 홍성군의 마을 만들기는 뿌리가 깊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와 '문당리 마을 발전100년 계획'으로 대변된다. 1958년 개교한 국내 대안 학교의 효시, 풀무학교는 마을 공동체 정신을 창조하고 마을 공동체 사업의 일꾼을 생산한다. '문당리 100년 계획'은 2000년 풀무학교 출신 마을 지도자 주형로 정농회 회장의 노작이다. 문당리 마을 주민들과 뜻을 모아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용역을 발주해 수립한 일종의 '마을 만들기 설계도'다. 무엇보다 정부의 보조금이 아닌, 오리농법으로 생산한 친환경 쌀 판매 대금 일부를 모은 마을기금으로 용역비를 지급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풀무학교의 교훈처럼 '위대한 평민'들이 이룬 당당한 성과다.
현재 홍동면에는 농업 및 가공, 농촌 관광, 교육, 문화, 공동체, 에너지 등 50여 개의 마을·지역 공동체 사업 관련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문당리, 운월리를 중심으로 귀농인을 포함한 마을 주민들이 주도하는 이런 다양한 민간 조직이 홍동면 지역 공동체 활성화의 원동력이다. 이들이 자생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오늘날 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생태계) 모습으로 진화했다. 특히 2011년 4월에는 순수 민간 주도형 중간 지원 조직 '지역센터 마을활력소'도 자체적으로 설립했다. 홍동면 농촌 마을 만들기 일은 홍동면 주민의 머리와 손으로 자주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결기를 실행한 것이다. 홍성군에서는 2011년 10월 친환경농정기획단을 설치하고 농식품부 출신의 민간 전문가를 영입해 군 단위의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방문해 화제가 되었던 단양의 한드미 마을도 '교육 중심 복지 공동체'를 지속해서 실천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마을 지도자 또는 마을 경영자 정문찬 씨가 있다. 부산 지역에서 운수노조 활동가로 일하다 귀향해 농민운동가로 변신한 경우다. 모교인 대곡초등학교의 폐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농촌유학센터를 시작한 게 주효했다. 2012년 말 현재 초등 35명, 중등 10명의 아이들이 산골 마을에 유학 중이다. 마을 공동 식당 등 마을 공동체 사업의 운영 주체인 '한드미 유통영농조합법인'에는 초임 월 급여 170만 원 이상의 상근자가 15명 근무하고 있다. 마을 공동체 사업을 주도하고 책임지는 마을기업의 표본이다. 지금 한드미 마을이 준비하고 있는 다음 단계의 마을 공동 사업은 마을양로원이다. 농촌유학센터의 아이들과 마을양로원인 공동 생활 주택 호스피탈리티움의 노인들이 서로 보살피며 공동 생활하는 복지 농촌을 실천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적 농촌 마을 만들기'는 마을 살리기, 마을살이가 되어야
근본적으로 외부인을 위한 토건 사업 '마을 만들기'는 내부인을 위한 생활 문화 사업 '마을 살리기, 마을살이'가 바뀌어야 한다. 그러자면 법과 제도부터 정비해야 한다. '토건적 마을 만들기'의 대안이자 출구 전략으로 상정하고 있는 '사회·생태적 마을 살리기'의 실천을 법과 제도로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마을기업 중심 마을 살리기', '중간 지원 조직 기반 마을 살리기'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법제화는 필수적이다.
먼저 관련 정부 지원 사업 연구나 컨설팅을 수행할 전문 용역 업체를 선정할 때, 최적가 입찰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최저가 낙찰제를 고수하고 있다. 출혈 경쟁과 부실 용역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 마을기업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 사업이 추진되어야 한다. 기존의 의사 결정 구조에 불과한 위원회(추진 및 운영) 중심의 마을 사업 수행 방식엔 실행 주체 및 책임 주체가 불분명한 한계와 폐단이 있다. 마을 공동체 사업의 실행 조직의 실체를 확인하고 책임 소재를 법적으로 명확히 할 수 있도록 법인격을 갖춘 마을기업을 설립한 마을에 한해 정부의 지원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해야 한다.
만연하는 컨설팅 업계의 구조악도 근절되어야 한다. 오늘날 마을 만들기 컨설팅 시장은 오로지 사익을 추구하는 상업적 민간 사기업이 독과점하고 있다. 출혈 경쟁, 부실 시행 등이 난무하는 파행적인 컨설팅 시장의 공정한 질서 확립과 수행 역량 제고가 시급하다. 따라서 공익성과 공정성, 그리고 전문성과 성실성을 담보할 수 있는 지역별 중간 지원 조직이 컨설팅 업무를 전담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때 기존의 민간 컨설팅 기관이나 전문가들은 지역별 중간 지원 조직과 협업하는 조건에 한해 참여가 가능할 것이다. 현행 농촌지역개발컨설팅 등록제를 인증제로 강화하고, 인증 후 3진 아웃제 등 철저한 사후 관리도 필요하다.
수많은 농촌 지역 개발 사업의 성과물이 전국 곳곳에서 유휴 시설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도 심각하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농어촌공사는 2011년까지 준공된 89개 권역에 대해 전수 조사를 해 하드웨어 운영 실태를 정량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그 결과 50%에 달하는 시설물이 폐쇄 상태로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칭)농촌지역 유휴 공유자산 기반 도농상생 공동 경영제 시행’을 제안한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전국 농촌 마을 만들기 현장에 조성되었으나, 사실상 방치된 유휴 시설을 활용할 특단의 조치가 시급하다. 이렇게 농촌 지역 개발 사업으로 조성되었으나 활용·가동되지 않는 전국 유휴 시설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마을 주민의 노력이나 역량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사업 및 시설 경영 능력을 갖춘 귀농촌인 등 도시민들이 마을 원주민들과 유휴 시설을 기반으로 공동 경영하는 도농 상생형 마을 공동체 사업이 전향적 해법이 될 수 있다.
정책적 측면의 고민도 더 심화하고 구체화해야 한다. 우선 농민 생활 측면에서 농촌 지역의 생활 거점이 재설정되어야 한다. 오늘날 농촌 마을은 여전히 상하수도, 커뮤니티 시설 등 기초 생활 서비스의 정비와 보강이 절실한 상태다. 최근 농어촌 마을 리모델링 특별법에 근거해 시범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독거노인 공동 생활 주택 등의 사업을 전국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전향적으로 농촌 마을들의 근린생활 서비스 거점이자 경제적 지원 거점, 그리고 커뮤니티 활동 거점으로서 농촌 중심지(예: 읍·면 소재지)의 정비 또는 공간 재설계가 필요하다. 가령 농촌경제연구원은 "140개 농촌 시·군당 3~4개의 소생활권 테마로 규정하고 설정한 중심지 500개 육성" 등의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농촌 복지 측면에서는 사회복지 서비스 확산과 일자리 창출이 절실하다. 서비스 공급 주체를 지역사회에서 자생적으로, 자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조직화해야 한다. 이때 조직은 마을기업,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 지역 주민들의 협동과 연대를 통한 사회경제적 경영체가 지속 가능할 것이다. 이 같은 농촌 지역의 복지 서비스 확대,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에 농식품부, 복지부, 교육부, 문화부, 노동부, 기재부 등 관련 부처들의 다각적 연관 지원 정책이 개발, 집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농업 가치 측면에서는 중소농 중심의 협동조합형 6차 산업화 등 농촌형 산업을 개발하고 육성해야 한다. 오늘날 농촌은 농업의 비중이 감소하고 제조업, 사회서비스업이 확대되는 추세다. 농촌의 산업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특히 귀농인구 증가, ICT 산업 발달, 농촌 유·무형 자원 가치 재발견 등으로 인해 이른바 농촌형 산업, 농촌형 일자리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1차 생산, 2차 가공, 3차 서비스가 유기적이고 융·복합적으로 결합한 6차 산업이 농촌 마을 만들기 사업을 주도할 가능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때 중소농 중심의 협동조합형 6차 산업화 방식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기업 주도, 농협 주도의 농산업화 정책은 근본적으로 한계와 문제가 있다는 교훈은 이미 충분하다.
정책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도 주민이 참여하고 주도해야 한다. 마을 만들기 등 농촌 공동체 사업은 공동체의 구성원이자 주인인 마을 주민이 객체가 아닌 주체로 참여해야 마땅하다. 그러자면 마을 주민이 계획 수립 및 집행 과정부터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정책적 소통 창구가 마련되어야 한다. 민관 거버넌스형 중간 지원 조직을 활성화하는 게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진안, 완주, 홍성 등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정책 중심에는 사람이 먼저, 충분히, 다양하게 놓여야 한다. 농촌 마을에는 일단 일할 사람이 없다. 있어도 고령의 농사 기술자들 말고는 없다. 지역 내부의 인적자원만으로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역부족이다. 내부의 역량을 강화하는 주민 역량 강화 사업도 한계가 있다. 전문가, 귀농인 등이 외부에서 유기적이고 상시로 결합해야 한다. 부족한 내부 역량도 보완하고 새로운 인력도 지역으로 수혈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마을 만들기 핵심 주체인 지역 인재를 적극 발굴·육성하고 귀농촌인 등 지역의 새로운 구성원을 활용해야 한다. 또 외부의 전문가 및 조직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의 활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다만 내부의 역량 강화든, 외부의 지원이든 지속적이고 체계적일 필요가 있다. 진안군과 완주군의 사례와 같이 전담 부서와 중간 지원 조직 등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게 방법이다.
이른바 '마을 만들기' 등 마을 공동체 사업에서는 조직이 가장 중요하다. 혼자서는 결코 잘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한둘이 나서서 계량적 성과를 보이는 경우도 간혹 보고되는데 그건 개인 사업이지 공동체 사업이 아니다. 따라서 사업의 책임 주체로서 '지속 가능한 마을기업'이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이때 마을기업을 세우고 꾸릴 '훈련된 마을시민'이 함께 준비돼야 함은 물론이다. 거기에 마을기업의 창업과 경영을 지원하고 마을 시민들을 발굴하고 교육할 '체계적인 중간 지원 조직'도 지역마다 든든히 자리 잡아야 한다. 이렇게 마을 시민과 마을기업을 통해 일구는 마을은 '살림마을'의 모습을 띨 것이다. 한마디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사람으로서 능히 살아갈 만한 마을을 말한다. 그러자면 이제 '마을 만들기'라는 무모하고 공허한 구호부터 고치는 게 좋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동안의 마을 만들기는 농촌 관광 사업에 집중하면서 농촌을 관광지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들였다. 그리고 건축, 토목, 조경 같은 하드웨어 구축 기술을 통해 농촌을 공원화하는 데 집중했다. 마을을 체험거리나 구경거리로 만드는 마을 만들기로는 날로 붕괴하고 공동화되는 우리 마을을 활성화하거나 재생할 수 없다.
이제 기술적이고 행정적인 '토건적 마을 만들기' 방법론에서 벗어날 때다. 오히려 사회적이고, 문화적이고, 인문적인 방법론들을 정립해서 융·복합적으로 결합해 적용해볼 필요가 있다. 말 그대로 마을 사람이 잘 살아갈 수 있는 살림마을로서 사회·생태적 마을 살리기, 또는 마을살이로 바뀌어야 한다.
확신을 갖고 단언한다. 잘 훈련된 마을 시민과 잘 조직된 마을기업, 진정한 전문가 집단으로서 중간 지원 조직이 없이 살림마을 같은 진정한 농촌 마을 만들기는 가능하지 않다. 설사 요행히, 무모하게 시작한들 반드시 실패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마을 만들기 역사가 증명하고 남는다. 결국 마을 사람도, 마을도 크게 상처받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버티던 마을 공동체의 뿌리마저 송두리째 뽑히고 만다.
그래서 거듭 힘을 주어 말한다. 마을에는 당부하고 정부에는 제안한다. 학습된 마을 시민들과 훈련된 마을기업이 준비되지 않은 마을에는 아예 마을 만들기 같은 마을 공동체 사업을 지원해서는 안 된다. 그러자면 농민이나 원주민만으로는 안 된다. 도시민들이 함께 나서야 한다. 다양한 재주와 특기를 가진 귀농인들이 농촌으로 들어가 마을 시민으로 유기적으로, 화학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서로 이타적으로, 공동체적으로, 협동하고 연대해야 한다.
정부는 그런 물꼬와 시스템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늙은 농부들뿐인 마을도 비로소 미래 지향적인 마을 사업의 전망을 제대로 펼칠 수 있다. 정부나 각 지자체의 예산, 정책 의지, 실천 역량 등 정책적 지원이 집중돼야 하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사회·생태적 마을 살리기라야 한다. 학습된 마을 시민들이 훈련된 마을기업으로 함께 꾸리는 '사람 사는 살림마을'이라야 한다. 살기 좋은 나라는 결국 살기 좋은 마을들이 모여서 이룬다.
1. [농민] '귀농촌'의 협동연대 대안 - 도시난민에서 '마을시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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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농민] '공익농업'의 국가기간산업화 -공익농민에게 '월급 기본'을
5. [농민] '여성농민'의 가치 - 여성농민에게 '절반의 영농권 소득을
6. [농업] '6차농산업화'의 정도 - 중소농 중심 '협동화 6차산업'으로
7. [농업] '기업화 농산업'의 대안 - '마을·지역 공동농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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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농업] '농산물 유통'의 혁신 대안 - 도시민이 책임지는 '농민의 생활'
10. [농업] '친환경농업'의 실천 방안 - '잘 먹고, 잘 사는' 지름길
11. [농촌] '농촌교육공동체'의 전망 - 마을을 살리는 '학교'
12. [농촌] '협동조합'의 사회적 경제 - '을(乙) 중심'으로
13. [농촌] '농촌마을만들기'의 출구전략 - 사회생태적 '마을살리기'로
14. [농촌] '농정협치(거버넌스)'의 가능성 - '한국형 농업회의소'의 법제화를
15. [농촌] '에너지자립마을'의 전환 - '지역순환농업' 기반으로
16. [농정] '식량주권'의 정책목표 - '양적 식량자급'과 '질적 먹거리 안전'
17. [농정] '농정 재정'의 개선 방향 - 중앙집중에서 '지방분권'으로
18. [농정] '도시농업'의 역할 -'국민농업'의 학교이자 전진기지
19. [농정] '지역공동체'의 발전전략 -'지방재정'의 균형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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