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의료보험법이 제정된 시기는 지난 1963년으로,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박정희가 대통령에 출마하기 위한 업적으로 내세우려던 것이 그 숨은 계기였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사회적 비용을 충당할 수 없었기에 법은 만들었으나, 본격적인 도입은 1977년 유신폭압으로 사회의 민심이 냉랭해지던 시기까지 미루어졌다. 처음에는 500인 이상 대기업 직원만을 대상으로 하여 사회여론주도층을 다독이던 사업이었던 것이, 다시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심 완화책을 찾고 있던 제 5 공화국 하에서야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여, 결국 80년대 말 전국민 대상의 의료보험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다시 되돌아보면 1963년 법이 만들어지고 제도가 시작된 처음부터 지금까지 의료보험의 주된 작동원리는 민심 수습 그리고 그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 조달과 통제였다. 이렇게 처음부터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 건강의 영역과 방법을 체계적으로 고민하기 보다는, 가장 우선적인 고려가 민심 수습과 그에 따른 비용 조달/통제에만 주어졌기 때문에, 결국 제도의 구성과 운영은 파편적일 수밖에 없었다.
파편성을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예가 한국 의료보험의 근간을 이루는 행위별 수가제도이다. 이 제도는 국가가 부담하는 비용을 제어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비용을 부담하는 의료행위를 선정하고, 그 수가를 규제하는 것이 그 핵심으로서, 의료보험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위별 수가제도에서 벗어나 보험적용이 안되기 때문에 아픈 사람들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 자기부담금은 처음 시작부터 지금까지 계속 문제로 남아 있다. 다른 한편 이러한 제도의 적용을 받게 된 의료계는 의료행위의 횟수를 증가시키거나 보험수가가 적용되지 않는 비수가 항목들을 자꾸 개발함으로써, 국가가 민심 수습이라는 실리를 얻어내는 동안, 자신들은 원하는 수준의 의료비를 계속 거두어드릴 수 있었다. 그 결과 이와 같은 파편적인 제도가 만들어 낸 작품인 ‘3분 진료’라는 의료계의 현실은 지금까지 많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종국에는 의료보험수가에서 벗어나 있는 성형미인들로 대한민국이 넘쳐나는 시점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제 21세기에 들어와 의료행위의 횟수를 증가시키거나, 비수가 항목을 새로이 만들어내는 일들이 그 한계에 봉착하면서, 비용을 원하는 만큼 증가시키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자, 의료자본은 새로운 돌파구를 계속 모색하고 있다. 지난 간 정부들에서 의료와 관광, 의료와 숙박, 의료와 레저 등을 결합한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려는 시도들 계속하였으며, 이제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는 원격진료와 영리자회사를 그 돌파구로 내세우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갈 것은 이 같은 일들이 벌어지면서 생겨나고 있는 의료자본의 균열이다. 그 동안은 의사가 병원을 세워 잘 운영하면, 의료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 기회가 거의 소멸되면서, 새로이 배출되는 의사가 의료노동자가 아니라 의료자본가로 등장할 가능성이 앞으로는 거의 없어졌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3월 70%의 찬성률을 보인 의사파업 결의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전공의들과 새로 배출된 의사들 때문이었다. 원격진료와 영리자회사는 의료자본, 특히 대형병원자본에게 유리한 사업이며, 동네의사에게는 장비나 기술도입의 측면에서 결코 이득을 바라볼 수 없는 사업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자본가로서의 문화가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는 의료계에서 자신을 의료노동자로 생각하는 의사들이 조만간 많이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는 아직 성급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의료제도를 둘러싸고 정부, 대형 의료자본, 보건의료노동계가 각자의 속셈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정부의 속셈은 앞서 밝혔듯 최소한의 비용 조달과 통제를 통한 민심 수습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혼이 없는 정책으로 어떻게 민심을 수습할 수 있을 지에만 급급할 것이다. 한편 대형 의료자본은 돈을 빌려 몸집을 불리더라도 이를 메꾸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현재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와중에 보건의료노동계와 환자들의 목소리는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다.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의료제도를 정상화시키기 위해서 앞으로는 어떻게 환자들의 목소리를 묶어낼 수 있는지, 그리고 분열되는 의료자본의 분화를 이용하여 어떻게 의료자본 속에서 의료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가 그 주요 관건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