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수도계량기 교체원과 검침원의 임금을 중간에서 가로챈 5개 위탁 업체에 편취 임금 2억400만 원(일 인당 약 1300만 원) 전액을 지급하라고 3일 명령했다. 오는 30일까지 미이행하면 고발 및 수사 의뢰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지난 2월부터 상수도사업본부 산하 8개 수도사업소가 위탁한 수도계량기 교체업체 및 검침업체 총 16곳에 대한 '근로자 처우 특별조사'를 두 달간 실시한 후 이같이 조치했다고 밝혔다. 시의 이번 조사는 지난해 12월부터 <프레시안> 등 언론을 통해 수도 검침원과 교체원의 열악한 노동 조건이 알려지면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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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 업체, 32명 노동자를 상대로 임금 지급 실태와 불법 하도급 여부 등을 특별조사한 서울시는 "5개 계량기 교체 업체가 노동자 임금을 불법 편취하고 1개 업체가 불법 하도급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임금 편취 방법으로는 △급여통장 이중관리 △현금으로 일부 되돌려 받기 △현장 관리인 및 경리원 급여를 직접 노무비에 포함하기 등의 방식이 사용됐다. 2012년 6월부터 6개월간 약 2억400만 원 규모다. 이 업체들은 발주 기관에는 적정 임금을 지급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제출해왔다.
현장 관리자가 이중 통장을 관리하며 임금을 가로챈 업체는 3곳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들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노동자들에게 급여 통장 2개를 만들도록 하고, 통장 한 개와 통장 도장 및 비밀번호를 건네받았다.
업체가 현장 관리인이 보관하는 A 통장에 정상 입금을 하면 해당 관리인이 급여 일부를 편취한 후 이를 다시 업체에 돌려주고, 업체는 다른 B 통장에 실제 근로자 임금을 지급하는 방법이 쓰였다.
예컨대 ㄱ 업체 소속 노동자는 지난 한 해 동안 실제로는 1600만 원을 B 통장을 통해 받았지만, 업체는 2200만 원의 임금을 지급한 것처럼 A 통장을 꾸몄다. ㄱ 씨가 받았어야 했을 임금의 27%를 중간에서 가로챈 것이다.
이 외에도 또 다른 업체는 정상 임금을 통장으로 지급한 후 매달 50~70만 원을 현금으로 되돌려 받는 방식을 썼다. 서울시 조사 과정에서 계량기 교체원 ㄴ씨는 "회사에서 노임이 개인 계좌에 지급하면 현장 관리자가 개인별로 반납해야 할 금액을 알려줬다"고 진술했다.
ㄴ 업체는 수도 계량기 교체공사를 업체 소속 관리자가 아닌 타 도급업체 대표(○○건설)에게 맡겨 불법 하도급을 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여기서 ○○건설은 불법 하도급 처벌을 피하고자 소속 노동자들을 ㄴ 업체 소속으로 꾸며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고 고용 및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등의 치밀함을 보였다.
서울시는 앞선 보도에서 여러 차례 지적됐던 '부당 각서' 강요 사실도 적발했다. ㄷ 수도사업소 계량기 검침 용역 업체는 소속 노동자들에게 "노조 가입을 하지 않을 것"과 "시간 외 근무 등에 대한 의견 제시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은 부당 각서를 쓰도록 강제했으며, 이후 ㄷ 사업소에서 업체에 부당 서약서를 폐기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지난달 20일부터 전국 최초로 시행 중인 '근로자 권리보호 조례'에 따라 적발된 업체를 엄중히 처벌하고 근로자 처우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는 임금을 편취한 업체들에 오는 30일까지 미지급 임금 2억400만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하고 해당 업체가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공사 준공금액을 유보하거나 서울시 공사 입찰에 참가하지 못하게 차단하고, 원청인 해당 수도 사업소에서 직접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계량기 동파 사고가 많은 동절기를 제외한 때에는 평균 월급의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았던 불합리한 봉급 체계를 개선할 방침이라고도 했다. 현재로선 동절기를 제외한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기본급으로 지급하는 방법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해당 노동자들이 가입한 공공운수노조․연맹 서울경인지역서비스지부 김세현 조직차장은 "서울시가 이날 발표한 임금 편취 및 불법 하도급 상황은 노조 측이 그간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조사가 진행된 결과"라며 "해당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노조와 협의가 진행 중임에도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김 차장은 "시 조사 결과와는 달리, 편취 금액은 2억400만 원보다 훨씬 큰 규모이고 불법 하도급을 한 업체도 노조가 파악한 곳만 6곳에 이른다"며 "아울러 업체가 가로챈 임금을 미지급할 경우 사업소가 직접 지급하도록 하겠다지만, 이 방식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어 실제 이행될지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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