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국민TV에서 '을아차차'라는 프로그램에서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을'들이나 '을'들과 함께 하는 인사들과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3월 27일에는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의원과 대화를 나눴는데요, 너무나 찡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문제의식은 이런 것입니다. 누가 그 험난했던, 그 고통스럽던 시절의 경제발전과 가난 문제의 해결을 박정희의 공으로 돌리는 것이냐? 그때 60년대, 70년대 하루 17~18시간까지 노동했던 사람들의 피눈물과 피땀은 왜 이야기되지 않고 있느냐?
전순옥 의원은 본인이 직접 봉제노동자로, 시다로 밥 먹을 타이밍을 놓치고 잠을 애써 쫓고 일하다보면 온 몸이 하늘에 붕 뜬 느낌이 든다는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 사실상의 강제노동에 시달리다보니, 당시 10대 소녀 노동자들이 서서 소변을 보면서 (말도 못하면서) 일을 한 것이 바로 산업화이자 경제발전의 과정이었다고 담담하지만 힘주어 강조하였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서로 눈시울이 붉어졌지요.
마찬가지로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미국에서는 대형마트와 유통대기업이 자유 시장 체제에서 자유롭게 이윤을 추구한다는 한국의 일부 '신자유주의자'들이나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주장 역시 조작이고 허위이고 환상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요?
저는 대형마트와 SSM 저지 운동, 경제민주화 운동, 지역경제 및 중소상공인 살리기 운동을 10여 년간 전개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각종 소식과 정보를 통해서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나라들에서 유통 대기업의 탐욕과 폐해를 규제하고, 작은 경제 주체들의 생존을 위해 크고 작은 각종 사회적 규칙을 적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자리에서 소개할 <지역경제와 대형마트>(하라다 히데오 지음, 김영기·김승희·강성한 옮김, 한울 펴냄)를 통해 결정적으로 그런 점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대형마트가 국민들에게 여러 가지 사회적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면?
요즘 동네를 걷다 보면, 문구점, 꽃집, 서점, 공구상 등 동네에 꼭 필요한 가게들이 거의 없어졌거나 쇠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많던 가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동네 슈퍼마켓이나 전통시장이 아예 통째로 문을 닫은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 많던 가게들이 없어진 자리에는 어김없이 대형마트와 대기업 프랜차이즈들만 넘쳐나고 있는데, 이는 정말 좋은 일일까요? 그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일일까요?
한국만 유독 중소상공인 살리기니 지역경제 활성화니, 또 경제민주화니 운동을 하고 캠페인을 하고 '중소상공인 살려 달라'고 야단법석을 떠는 것일까요? 그런데 시장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하는 미국에서도 대형마트(big box)의 출점에 대한 다종다양한 사회적 논란과 적절한 규제와 노동계와 지역사회의 저항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지역경제와 대형마트>에서는 월마트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월마트의 폐해로 이야기되고 있는 것만 봐도 10가지가 넘습니다. 이것은 2004년 2월 당시 미국 하원의 교육노동위원회 소속인 조지 밀러(캘리포니아 주) 의원이 주도한 '밀러보고서'를 통해 공론화됐는데, 이 보고서의 제목이 "매일 낮은 임금, 우리는 숨겨진 가격을 월마트에 지불하고 있다”로 매우 인상적입니다. (95~96쪽)
이 보고서의 타이틀은 월마트의 캐치프레이즈인 "매일 낮은 가격"을 비꼰 것입니다. 즉, 매일 낮은 가격이라는 것의 실체는 매일 낮은 임금과 매일 낮은 세금으로 이어지고, 그를 통해 월마트가 국가와 지역사회에 막대한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밀러보고서는 구체적으로 종업원의 단결권, 저임금, 불평등한 임금과 처우, 시간외 노동, 아동노동 및 휴식과 관련된 위반행위, 종업원과는 거리가 먼 보건의료, 납세자에게는 높은 부담을 의미하는 저임금, 불법노동자의 사용, 노동의 해외 이전으로 인한 미국 내에서의 실업 발생, 장애인 차별, 종업원의 안정성을 문제점으로 뽑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당연히 미국의 정치권, 시민사회, 지역경제의 구성원들이 월마트와 대형마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저항과 규제를 시도하고 있는 상황을 이 책은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미국에서 대형마트의 개발과 개점 등이 매우 자유롭다는 해석은 완전히 잘못 알려진 것임을 강조합니다. 개발토지·이용규제제도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조닝(ZONING) 제도를 통해 영업시간 규제나 업종·업태 규제, 체인점 규제, 빈 점포 대책의 의무화 등 경제활동, 영업활동에 대한 규제를 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책 4장)
그래서 저자는 적어도 소매업에 관해 미국은 정부 개입이 없는 자유로운 시장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고 있고, 그런 잘못된 환상이 저자의 나라인 일본에서 널리 퍼져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청 등에서 일하는 이 책의 번역자들도 그것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가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책 당국이나 거짓을 일삼아온 신자유주의자들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봤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지역경제와 대형마트>에서 지적하는 대형마트들의 문제점들이 한국의 유통 재벌·대기업들의 폐해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대형마트의 문제점은 세계적인 차원의 이슈라는 사실을 또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다만 대형마트의 반노동, 저임금, 노동통제, 시간외노동, 지역경제 황폐화, 중소상공인 생존권 파괴, 다른 노동자들에 대한 악영향 등에 대한 비판은 거의 동일한데,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크게 비판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띕니다. 그것은 "납세자에게는 높은 부담을 의미하는 저임금", "매일 낮은 세금"이라는 미국사회의 지적입니다.
즉 미국에서도 매우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월마트 종업원들은, 미국 대기업의 평균 기업보험 가입률이 66%인 것에 비해 41~46%로 매우 낮은 가입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보험에 가입하고 있지 않아서 병에 걸릴 경우 종업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월마트 종업원이 생활하고 있는 지역 및 지자체에도 부담을 전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종업원이 병에 걸렸을 때 가장 많은 경우 공립병원의 응급실로 갑니다. 공립병원의 응급치료 시스템의 유지 및 운영비의 상당부분은 세금으로 충당됩니다. 그래서 기업보험 유지에 필요한 비용에서 월마트가 절감하고 있는 그 금액만큼을 세금에 의한 공적부담으로 전가시키고 있다는 것이죠. (127쪽)
그뿐만 아니라 월마트 자체가 각종 꼼수를 부려 세금을 덜 내고 있거나 덜 내려하고 있고, 미국이 정한 최저빈곤선과 비슷하거나 그것보다 못 받는 월마트 노동자들 역시 세금을 덜 낼 수밖에 없어서 결국 월마트의 낮은 가격은 다른 국민들의 높은 세금 부담으로 연결된다는 것도 대형마트의 엄청난 폐해라는 지적입니다.
예를 들어 펜실베니아 주 정부가 공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5년 7월부터 9월까지 주의 공적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에 가입한 사람의 총수 중 월마트 종업원이 무려 15.8%(7577명)을 차지해 가장 높았고, 그로 인한 주의 부담은 월마트 종업원만으로도 1년간 1500만 달러 이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129쪽)
또 이 책은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국인은 디스카운트(discount)해서 쇼핑을 하는 것이 자신들의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헤어 드라이기를 구입하는 데 7달러를 절약하는 것이 미국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틀린 것이다. (…) 어쩔 수 없이 폐점한 지역 경영자들은 지역의 경제적·사회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중류계급층이었다. 그들은 지역 여러 조직의 주역이었다. 그들은 병원이나 도서관의 이사를 역임하고 있었다. 어린이 야구단의 운영비를 부담하고 있었다."(267쪽)
참으로 탁월한 비평이라 할 것입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평론가로서 뉴어바니즘(New Urbanism) 주창자의 한 사람인 쿤스틀러의 말인데, 쿤스틀러는 이것을 "헤어 드라이기 7달러의 거짓말"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는 우리가 한국 여러 지역에서 확인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사회적·지역적 대책이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 "지역 점포의 존속은 커뮤니티의 성격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들이 쏟고 있는 개개인에 대한 주의와 관심은 질 높은 서비스뿐만 아니라 커뮤니티의 토대가 되는 사람과 사람과의 연결을 창출해내고 있다"(268쪽)는 이 책의 언급은 매우 설득력이 높습니다. 쉽게 말해서 동네가 동네답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역 중소상공인들의 생존과 유지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책을 읽고서도, 이런 문제의식과 지적을 접하고서도 계속 우리는 대형마트를 다녀야 할까요? 진지하게 여러분의 생각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장 시스템은 그것이 어느 정도 다양한 선택의 여지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의 여지에서 매우 중대한 것이 배제되거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들의 선택을 결정해버리기도 한다. 우리가 하는 선택은 결국 시장 시스템이 지배하는 가치관에 의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선택의 대부분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413쪽)라는 이 책의 말과, "우리들은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 경제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421쪽)라는 밥 오르테가의 말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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