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좌담회와는 확실히 달랐다. 듣기 좋은 덕담만 오가는 자리가 아니었다. '좌파'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빨갱이 아냐?"라는 의심의 눈길부터, 혹은 자주 "아, '입진보'세요?"라는 빈정거림을 직면하게 되는 한국 사회에서 '좌파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는 발상 자체가, 역사적․사회적 무게를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프레시안>과 사계절출판사, 인터넷서점알라딘이 공동기획한 <좌파로 살다>(뉴레프트리뷰․프랜시스 멀헌 엮음, 유강은 옮김, 사계절출판사 펴냄) 출간 기념 좌담회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뜨거웠고 격렬한 롤러코스터처럼 출렁거렸다.
물른 '그들'의 해방의 메시지가 '우리'의 그것으로 곧장 치환될 수는 없다. 하지만 죄르지 루카치, 에르네스트 만델, 데이비드 하비, 노엄 촘스키, 이르시 펠리칸, 조반니 아리기, 왕후이 등이 격월간 잡지 <뉴레프트리뷰>와 나눈 인터뷰를 엮은 <좌파로 살다>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주류 역사 담론과는 또 다른 각도를 펼쳐 보인다. 다른 것을 보고 선택하고 실천할 수 있는 어떤 자유의 가능성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대리체험할 수 있다.
과연 <좌파로 살다>를 21세기 한국에서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소화하며 하나의 지침서로 삼을 수 있을까? 사회를 맡은 <논객시대>(반비 펴냄) 저자 노정태, 패널로 참석한 노동당 부대표 장석준, 덕성여대 겸임교수이자 <단속시대>(창비 펴냄) 저자 엄기호, 여성학·평화학 연구자 정희진은 그야말로 '한국의 좌파'라는 주제를 종횡무진 질주했다.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한국 사회에서 '남성 지식인'의 한계, 좌파의 오류, 그리고 '예언자 카산드라' 같은 존재인 좌파 역할의 필요성이 격렬하게 맞부딪혔다.
우리는 결코 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보수 담론의 격랑 속에서 아무리 반대의 목소리를 내보았자 타인의 귀에 가닿지 않고, 결국엔 오직 말 통하는 사람들끼리만 마주보고 대화하는 건 아닌가 하는 무력감에 자주 사로잡힌다. 좌담에서 나온 표현대로라면 '계몽이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비애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좋은 삶,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할 수 없는 이들에게, <좌파로 살다> 좌담회에 나온 얘기들은 파국의 '쓰나미'를 멍하니 바라만 볼 게 아니라, 가장 먼저 달려가 종을 치고 모두에게 위험을 경고하며 움직이기를 촉구하는 역할을 어쨌든 수행해야만 한다는 결의에 더 가까웠다.
아래는 3월 19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렸던, 글자로 정리된 상태로는 그날의 열기를 절반도 채 전달하지 못하여 영 아쉬운, <좌파로 살다> 출간 기념 좌담 전문이다. <편집자>
노정태 : 오늘 <좌파로 살다>라는 책을 매개로, 모시기 어려운 분들을 한 자리에 초대했습니다. 노동당 부대표이신 장석준 선생님, 현재 덕성여대 겸임교수이신 인문학자 엄기호 선생님, 여성학·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선생님이십니다. 저는 사회를 맡은 노정태라고 합니다.
얼마 전 노동당 공동부대표였던 박은지 씨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영국 노동당을 이끌며 좌파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노동당 전 당수 토니 벤 역시 서거하셨고요. 물론 한국과 영국의 상황을 일대 일로 비교할 수 없지만, 두 분의 죽음 앞에서 구세대의 좌파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은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젊은 좌파들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채 표류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엔 이렇지 않았지요. 1980년대 대학가에서 폭넓게 연구되었던 사회과학의 성과가 1990년대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갔던, 황금기라 부를 수 있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운동권' 선배를 비교적 존중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시절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좌파라는 단어 자체가 여러 가지 맥락에서 좀 이상한 변형을 겪으며, '운동권'이라는 단어가 놀림감의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큰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부터 얘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합니다.
장석준 : 옛날이라고 운동권이 선망의 대상이었나, 돌이켜보면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패가망신에 멸문지화를 불러오기에 적절한 위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웃음) 현재 좌파가 불신의 시선을 받거나 혹은 사회적인 소수로 여겨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좀 더 미화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예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80년대 운동권도 넓은 의미에서 좌파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만 지금의 좌파의 맥락과 그때 맥락의 차이를 지적한다면, 당시 운동권은 민주주의를 위해 전두환 정권이라는 파시스트와 싸웠어요. 지금의 좌파는, 어쨌든 전두환 정권 같은 군사 정권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와 싸우고 있거든요.
그 지점에서 한국 좌파가 큰 벽에 부딪혔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위신이 추락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좌파가 기반을 둘 수 있는 일상적인 사회운동이 있어야 하는데, 과거에는 노동운동이 그 역할을 담당했지만 IMF 이후 그게 정체되어 버렸어요. 입으로는 지젝이나 바디우를 열심히 떠들지만 사회 현실과 괴리되었다는 게 너무 분명해지니까, '입진보'나 '입좌파'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게 되었습니다. 현실화시킬 수 있는 힘도 없으면서, 구상이나 의지도 뚜렷하게 없으면서 불만만 늘어놓는 사람이라는 대중적 이미지가 굳어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희진 : 전 사실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면 안 되는 사람인데, (웃음) 일단 출판사 분들이 이 자리를 준비하기 위해 야근을 하셨잖아요. 그게 마음에 걸렸어요. 두 번째는 번역자 유강은 선생님 때문입니다. 제가 책을 자주 읽는 편이 아닌데, 최근 본 책들은 희한하게 전부 유강은 선생님 번역작이었어요. 정말 박식하시고 번역을 잘 하는 분이라 부럽기도 하고 감탄했었거든요.
그래서 좌담에 참석하기로 결심했지만, 제가 어울리는 사람일지 계속 의문을 품었던 이유는, 일단 사전에 받은 질문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웃음) 좌파가 매력적이지 않게 되었다는데, 매력적이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친구한테 전화가 와서 넌 절대 그 자리에 가지 마라, 넌 좌파가 아니고 극좌파 아니냐, 거기선 매장될 거라면서 뜯어 말리더군요. (일동 폭소)
전 좌파로 산다는 것의 전체 프레임 자체에 약간 의문이 드는 게, 톨스토이의 제목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안드레아 드워킨의 소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한국에 이 책이 번역되었을 당시에는 '안드레아 도킨'으로 표기되었습니다.-편집자)를 읽어보시면 사실 이 자리가 별로 필요가 없어요. 60년대 시민운동과 반전운동이 한창이던 미국을 배경으로 좌파와 흑인과 여성, 이렇게 세 집단의 관계를 다룬 작품이에요. 거기서 백인좌파들이 저지르는 성폭력과 인종차별에 질려 버리게 되는데…제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람들이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좌파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제 입장에선 예전 얘기라는 뜻이에요.
이를테면 제가 어느 학회를 가든 일상적으로 겪는 고민은 이겁니다. 여성주의자들이 옛날 옛적에 이뤄놓은 업적을 최근의 남성 연구자들이 처음 발언하는 양 발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성이나 주변인들의 역사에 대해 너무 무지한 상태에서 토론을 진행하는 걸 보면서, 페미니즘이 얼마나 무시당하는 분야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를테면 70년대 페미니스트들은 이미 여성의 감정노동을 분석했어요. 하지만 에바 일루즈의 <감정 자본주의>(김정아 옮김, 돌베개 펴냄)가 새삼 화제를 모은 건 그 사람이 여성학자가 아니라 사회학자기 때문입니다. 정의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좌파다'라는 말을 하기 어려운 시대에 억압을 느낀다거나 문제의식을 가지기 이전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면서 말을 시작하는지를 생각해 보자는 거죠.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을 싫어하기 때문에 일단 '난 아니지만'이라고 밝히면서 의견을 제시한다는 점을요.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당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말 못하는 약자들이 수다하다는 것, 그 부분도 같이 생각하면서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게 제 의견이었습니다.
좀 전에 정희진 선생님 얘기를 들으면서 공감했습니다. 가끔 시간강사인 저를 앞에 두고 삶의 허망함을 한탄하는 교수님들 앞에선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어요. (웃음) 어딜 봐도 나보다 안정되게 잘 사는 친구들이 저한테 하소연하면, 그때도 대답할 말이 없어요. 예전에 국제단체에서 활동한 경험도 있어서 그런지, 전 사실 정당에서 일하는 이들보다 활동가들이 더 걱정되거든요. 한국 활동가들에게 우울증이나 울화병이 안 생기면 그게 더 신기할 지경이죠. 활동가들은 저보다도 훨씬 더 많은 남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정작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지 못합니다. 그것도 제대로 보수를 받지 못한 채 신념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데 점점 삶이 힘들어져요.
그런 악순환을 옆에서 가깝게 지켜보게 되는데, 그래서 저 역시 좌파로 '퉁치고' 가는 추상적 단어보다, 오히려 한국의 활동가들을 걱정하게 되고, 그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며 그들의 얘기를 어떻게 들어야 할까를 더 걱정하게 됩니다.
노정태 : 사실 사전 각본상으로는 좌파라는 단어로 '퉁치고', 일단 좌파로 산다는 명제에서 시작해 심층적인 논의로 들어가 보려는 전개를 계획했습니다. (웃음) 정리해 보자면 장석준 선생님은 과거의 운동권과 달리 현재 좌파가 파시스트가 아닌 자본주의와 싸우는 더 어려운 상황에서부터 문제 설정을 다시 해야 한다고, 또 정희진 선생님은 '좌파로 산다'는 명제가 얼마나 정당한지에 대해 문제 제기하면서 좌파라는 이름하에 자행되는 소수자들의 억압부터 이야기해야 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엄기호 선생님은 사회 전체가 병들고 시들어가는 상황에서 그 모든 피로를 받기만 해야 하는 위치의 활동가들이 경험하는 힘겨움에 대해서도 지적해 주셨고요. 사실 이런 지적들이 '급진적'이라기보다는 매우 중요한 문제 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사전 각본에 없는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 사회가 품고 있는 갈등, 부조리의 하중을 가장 크게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물어본다면 세 분의 입장을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괴롭고 돌아봐야 하는 사람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이 잊고 있는 사람들은 누굴까요.
정희진 : 제가 처음 했던 얘기 때문에 갑작스런 질문이 들어와 버린 것 같은데요? (웃음) 어쩌면 제가 좌담의 맥락과 전혀 다른 얘기를 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게는 좌파로 산다는 맥락과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맥락이 연결되어있지만, 이 부분을 설득하거나 설명하기가 쉽진 않을 것 같네요. 객관적으로 힘든 상황도 규정하기 까다롭지만, 사회적으로 재현하거나 가시화되기도 힘든 부분이 있다는 걸 생각해 보신다면, 좌파로 산다는 좌파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분들게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엄기호 : 좌파로 사는 게 왜 불행할까, 라는 질문과 비슷한 맥락에서 지금 청년들에 관해 비슷한 얘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똑똑한 청년들이 많습니다. 엄청난 독서량과 높은 문화적 수준을 갖췄어요. 하지만 실제 경제자본이라 해야 할까 사회자본이라 해야 할까, 그건 또 너무 낮습니다. 바디우나 지젝을 공부하면서 내 언어로는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데 내 처지는 너무 낮아요. 그 괴리감이 정말 큽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전 가장 불행한 사람은 '계몽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아 보이는 시대의 계몽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시간강사 5년째인데, 아직도 학교에서 강의하면서 무력감을 느낍니다. 두 시간을 못 채우면 어떡하나 겁나고 떨려요. 말에 대한 불신, 말의 힘에 대한 불신이 엄청 높은 시대에 내가 뭘 가르칠 수 있을지 두려워요. 좌파든 책 쓰는 분이든 모두 계몽주의자인데, 계몽의 무기라고 할 수 있을 말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끊임없이 느끼게 되거든요. 이런 부분에서 제가 고민하는 건, 계몽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계몽이 가능한가라는 지점입니다. 저는 이게 우리가 가진 문제점, 똑같은 무력감이 아닐까 싶어요.
장석준 : 지금 나오는 얘기들을 들으면서 여러 상념이 드는데 쉽게 머릿속으로 정리가 안 되네요. 전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다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좌파로 살다>가 영국에서 출간되었을 당시 제목은 'Lives on the Left' 인데, 이런 제목을 달면서 영국인들은 별 고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처럼 좌파가 대체 뭐냐, 좌파로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에 대해 모여서 좌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만큼 좌파 이념이 많은 이들의 일상에 스며들어있고, 금융위기 이후 시스템이 잘못되어간다고 느끼면 대학 나온 먹물들뿐 아니라 길거리 장삼이사가 자연스럽게 시위에 나서서 "나는 좌파"라고 목청 높이며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자산이 갖춰져 있어요.
한국 사람들은 모두 불행하다는 앞서 얘기의 맥락이 그겁니다. 부연하자면, 저를 포함해서 제가 본 본 한국 사람들은 다 실패했습니다. 제가 실패한 좌파라서 제 심정을 투사시키려는 게 아니라, 아주 기계적으로 보면 한국의 세 세대군을 봐도 그렇습니다.
먼저 산업화세대가 실패했습니다. 당시 산업역군으로서 열심히 일했던 분들은 지금 대통령에 의해 기초연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닥쳐오는 죽음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어요. 그 다음 민주화세대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커다란 성취를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대의로서의 민주주의와 삶의 민주주의를 연결시키는데 실패했어요. 민주주의를 신자유주의와 결합시킨 뒤 노무현 정권가 실패한 다음 정부가 더 보수적으로 회귀하는 걸 경험하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성취한 민주화가 고작 이런 거였을까, 하는 회한에 휩싸여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의 젊은 세대는 한반도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나 사회 진출을 했지만,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버티고 선 채 출구가 없다고 선언하는 상황과 맞닥뜨렸습니다.
여기 대해 저항하고 분노를 표출할 자산이 필요한데 대단히 제한되어 있죠. 이런 답답한 상황에 처해있으니 많은 이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까지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좌파들은 사실 그다지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이 자리에서 좌파들이 불쌍하다 어렵게 산다는 얘기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이들은 모두 행복한데 혼자 고난의 길을 자초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다들 불쌍하게 사는 와중에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일리아드> 등장 인물 중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를 아실 겁니다. 그녀는 예언자기 때문에 불길한 얘기만 늘어놓습니다. 다들 카산드라를 싫어했죠. 한국 사회의 좌파가 그런 존재 같습니다. 위기를 만들고 그 위기를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은 따로 있지만, 정작 우리가 들여다보고 극복해야 할 위기와 문제들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더 큰 미움의 대상이 되지요.
미움이라는 단어가 정확하지 않을 순 있는데, 뭐랄까, 한국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처한 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위기 담론만 말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에 대한 미움이 좌파라는 집단에게 그대로 옮겨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금 이 자리에서 들었습니다.
좌파로 산다는 말을 그런 쪽으로 이해하면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가 갈가리 찢겨 서로서로 잡아먹는 구조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운동권'이라 불렸던 역사적 좌파의 차원이 아니라, 조금 어폐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순수한 의미에서의 좌파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또 과연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다면 포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여기 대해선 엄기호 선생님부터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엄기호 : 지금 한국 사회가 갈가리 찢어졌다고 표현하셨는데, 그것과 조금 다른 차원에서 전 지금의 한국 사회를 사회라 지칭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사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감으로써 만들어지는 구성체잖아요. 좌파가 사회주의자라고 한다면, 사회가 없으니까 사회주의자가 되기 힘들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사회가 아닌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했을 때, 어찌 보면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게 곁을 만들어가는 작업이 아닐까 합니다.
편을 만드는 게 아니라 곁을 만드는 것이요. 장석준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좌파의 언어는 사실 곁을 만드는 언어가 아니라 편의 언어거든요. 옳다 그르다를 논리적으로 따지는 언어지요. 하지만 만약 제 생각처럼 사회가 없는 상태라고 한다면,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요? 노정태 씨도 좌파가 가난하고 힘든 이들의 곁에 선다는 언급을 했지만, 그 자리에 서서 곁이 되기 위해서는 곁으로 만드는 언어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그런 말이 좀처럼 없어요. 그 말이 없는 상황에서 들을 귀도 없고, 대신 그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언어만 넘쳐흐릅니다. 그래서 곁을 내줬던 이들도 그 계몽의 언어가 버거우니까 밀쳐내고 도망가 버립니다.
좌파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의 곁에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거기서부터 우리의 반성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고통은 말이 아니라 소리로 표현됩니다. 울고, 절규하고, 혹은 아예 고개를 떨군 채 침묵하게 됩니다. 그런 종류의 소리를 고통의 언어로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어야 해요. 사회적인 고통,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의 고통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능력이 너무 없는 상태에서 곁을 만들어가는 게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밀양부터 강정까지 여러 싸움의 현장에 서서 소리를 듣고 기록하고 그걸 말로 전환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습니다. 그 소리를 못 듣는 게 마치 새삼스러운 현상처럼 말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죠. 다만 과잉주체, 마치 역사의 유일한 주체인 양 여기면서 이런 소리를 잘 못 듣는 상황에 대해서는 짚고 싶었습니다.
노정태 : 좌파로 산다는 것의 감성적 측면, 이성의 반대말로서가 아니라 상황을 수용하는 능력으로서의 감성적 측면에 대해 이야기가 진행 중입니다. 그런 점에서 장석준 선생님께, 우리가 막연히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질문하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좌파의 삶이라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나온 얘기처럼 좌파적인 삶의 다양한 맥락에 따라 억압받는 사람이 있었고 좌파 역시 점점 소외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재규합 내지는 좌파라는 의미를 재생성하여 살아가는 가능성에 대해 정치인으로서의 장석준 선생님께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장석준 : 이건 말로 할 문제가 아니라 열심히 살아야 할 문제인데 말이죠. (웃음) 일단 좌파라는 말 자체가 문제시되니까, 그걸 좀 다르게 말할 필요가 있어요. 좌파라는 말은 사실 아무 뜻도 없는 말입니다. 유래를 보면 프랑스 대혁명 당시 급진파들이 왼쪽에 죽 앉아 좌파로 불렸다고들 하는데, 결국 우연인 거죠. 급진파가 오른쪽에 있었다면 우파로 불렸을 겁니다.
여성주의나 사회주의, 이런 이념은 뚜렷하게 지칭하는 바가 있지만 그것을 말하는 순간 무언가 빠져나갑니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라고 한다면 여성주의와 생태주의가 빠져나가요. 좌파라는 단어에는 아무 뜻도 없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없죠. 협소하게 지칭해보자면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는 의미가 있겠고요. 전 <좌파로 살다> 해설 마지막에 에른스트 블로흐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현존하는 것이 진리일 리는 없다."
전 이 문장이 좌파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명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 태도로 삶을 바라본다는 건, 계속 꿈꾼다는 겁니다. 꿈을 꾸면 불행해져요. 현실이 꿈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까 우울증과 울화병이 잠깐 얘기됐는데, 어떻게 보면 좌파의 직업병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조롱의 대상일지라도 한국 사회에 꼭 있어야 하고, 카산드라나 잠수함 공기를 살피는 토끼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가 이 답답함을 스스로 인식하고 뚫고 나가는데 있어 해결자 역할을 자임할 순 없겠지만, 문제를 제기하고 출발점을 만드는데 있어 더없이 필요한 존재라고 믿습니다.
구체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바깥을 누군가는 사고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두 개의 선택지만 존재하는 사회라면 전 이민을 준비해야 합니다. (웃음) 지금 당장 그 바깥을 얘기하면 표를 못 얻죠. 노동당도 원외정당입니다. 5년 뒤, 10년 뒤에도 좌파의 주장이 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삼성과 새마을 운동 바깥이 존재한다고, 그 바깥을 바라봐야 한다고, 그 두 개 없이도 한국 사회가 존재한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노정태 : 좌파라는 단어에 대한 각자의 소회를 풀어놓는 과정을 거쳤는데,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겁니다. 발화하지 못한 주체를 대신하는 참칭 행위부터, 꼭 좌파가 아니라도 좀 더 나은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부딪히면서 복잡한 권력관계가 존재할 텐데, 이 속에서 어떻게 정체성을 지키며 살 수 있는가에 대해 정희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어요.
정희진 : 이런 토론회나 좌담회에서 답답한 적이 많았는데, 지금은 엄청나게 노트 필기 중이에요. 세 분께 많이 배우고 있고,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주최 측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웃음)
지금 하신 질문에 앞서, 제가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자면 한국 사회에서 불행한 사람들은 욕망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엄기호 선생님 말씀처럼, 그 좌절이 청년들에게 가장 심하죠. 이미 가능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어떤 식의 신화가 미디어를 통해 너무 많이 유포되고 있는데, 현실에선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거든요.
장석준 선생님과 엄기호 선생님의 얘기를 이어보자면, 좌파는 전통적으로 지식인입니다. 이게 매우 중요해요. 아무나 좌파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엘리트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좌파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민중이라고 혼동하면 안 돼요. 이 부분에 대해선 가야트리 스피박에 제일 잘 얘기했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 <좌파로 살다>에서 스피박과 주디스 버틀러 같은 훌륭한 좌파 여성이 빠진 것에 대해 불만이 있습니다. (웃음)
다시 돌아가면, 좌파라기보다는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부분 좌파를 탄압하고 어떤 부분 좌파를 욕망하죠. 좌파로 정초하려는 건 지식인으로 정초하려는 겁니다. 좌파로 산다는 게 힘들다는 전제가 틀렸다는 건 그 때문입니다.
한국에선 좌파라기보다 NGO나 직업 활동가라는 개념이 더 익숙할 수 있죠. 사실 그 부분도 근본적으로 잘못된 개념이라고 봐요. NGO 상근자, 활동가에 대한 굉장한 비하가 있잖아요. 그 부족한 보수를 받고 일하는 사람을 '무식한 따까리'라고 은연중에 여기죠. 저도 NGO에서 5년 일했었는데, 간사 출신이라고 하면 다들 깜짝 놀라더라고요. 제가 간사를 그만둘 때 변절자라고 욕을 먹었어요. 하지만 유학 갔다 온 다음 살짝 NGO에 발만 걸친 사람은 추앙받더라고요. 이런 이중의식 자체가 사실 굉장히 문제입니다.
오키나와의 어떤 평화활동가는 60대 할아버지입니다. 그야말로 완전한 무소유의 화신처럼 보여요. 아주 가난하게 살면서, 어떤 행사만 있으면 대자보와 플래카드를 부착하는 작업을 도맡아 합니다. 남들이 하찮은 일이라고 여기는 일만 골라서 자원해요. 그분 얘기를 들어보니 대학생 시절 전공투였대요. 당시 전공투의 잘못된 판단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의미에서 오키나와로 일부러 내려와, 존재감 없이 자신의 삶을 사는 겁니다.
한국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죠. 한국에선 30살만 넘어도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운동 사회 내부에서 갈등이 일죠. 너도나도 정치권 진출이 이뤄집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하는 생애 주기가 여기서도 일어나는 거예요. 이 나이대에는 이쯤 해야 한다는, 회사 문화와 다를 바 없는 경쟁과 엘리트 의식이 있습니다.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면 좌파든 페미니스트든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나이와 진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운동이 가능한지, 그 토대와 함께 얘기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희진 : 저는 목적적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사실 되게 우연한 기회에 따라 움직이는 편인데, 그 원고 역시 어느 날 오후 4시쯤 홍세화 선생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때문에 쓰게 됐어요. 어떤 좌파 필자가 펑크를 냈다고, (웃음) 제가 글은 못 써도 속도는 빠르거든요. 그날 저녁에 급하게 75매를 써서 보냈어요. 글의 원래 주제는 국정원과 이석기 의원과 '종북'이라는 사건에 대해 진보진영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였어요.
전 한국 좌파들이 국정원에 놀아나고 있다고, 진보진영 내부의 분열 사태를 국정원이 대신 해결해주는 모양새에 대해 썼어요. 사실 대놓고 좌파를 비판한 원고는 아니었습니다. 좌파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게 한 20퍼센트 정도 될 거예요. 나머지 80퍼센트는 탈식민주의에 근거한 글이었어요. 한국 사회 진보진영은 더 좋은 국가를 만드는 데 있어 서구만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 진보진영은 오바마를, 보수진영은 부시를. 하지만 서구지향적인 싸움의 목표는 똑같다고 봤어요.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 다만 각기 다른 방법론으로 싸우는 거거든요.
모든 사회주의 운동은 국가 때문에 실패했어요. <좌파로 살다>에도 일본 좌파의 역사가 등장하지만, 여기서 천황제에 대한 입장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에 불만을 가졌습니다. 일본의 좌파들 대부분이 천황제에 대한 입장 때문에 국가사회주의로 전향했잖아요.
이런 점에 비춰봤을 때, 우리 사회가 나아갈 모델의 방향에 대한 상상력은 없으면서 백인 할아버지가 말한 게 옳다 그르다만을 두고 싸워봤자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원고에서도, 좌파와 우파의 차이점은 네이션 빌딩의 방법론 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앞으로도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썼어요. 하지만 그 원고를 꼼꼼하게 보지 않은 채 단지 정희진이 썼다는 것 때문에 '페미니스트로서 좌파를 비판한다'는 관점이 성립되어 버린 것 같기도 해요.
전 일단 반론에서 '좌파 정체성'이라는 말에 상당히 의문을 갖게 되는데, 그 정체성의 정치가 오히려 동성애자, 장애인, 여성들의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다수의 좌파들이 학벌, 지연으로 정체성의 정치를 하지만, 그걸 정체성의 정치라고 부를 순 없죠.
어쨌든 제 글의 요점은 탈식민주의였습니다. 서구의 국가 모델을 벗어난 로컬의 상상력과 고민이 더 중요하다는 것, 사실 그런 역할을 강준만 선생님이나 조한혜정 선생님이 꾸준히 해오셨지요. 내가 선 이 자리에서 한국 사회의 미래를 그려나가야 하는데, 다시 말해 '나는 좌파다'라고 말하기 이전 '지금 여기'를 고민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좌파들은 70년대 맨체스터, 80년대 한국 어딘가, 이렇게 그들의 '어디'는 다른 시공간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지 말자는 겁니다. 지금 여기에서 이 상황에 맞는 지식을 생산하자는 겁니다.
장석준 : 자본주의 역사와 좌파 역사 모두 150년이 넘었죠. 그 기간 동안 좌파 역시 엄청난 오류와 잘못을 저질렀고 한계를 보였으며 나치 강제수용소에 버금가는 행위도 자행했어요. 그걸 절대로 옹호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처럼 <좌파로 살다> 책 내용으로 들어가 보죠.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좌파에 대한 좌파의 투쟁을 이끌었습니다. 체코의 이르시 펠리칸 같은 경우, 체코 공산당원이었지만 '프라하의 봄' 당시 결국 소련 탱크에 맞서 싸웠고, 헝가리의 죄르지 루카치는 사회주의 조국이라고 믿었던 소련으로부터 처형당할 뻔했어요.
20세기 중반 이후 중요한 좌파 사조를 이끌었던 이들이었던 신좌파들 역시 주로 공산당에서 탈당하여 투쟁하는 과정에서 사상을 만들어 갔고요. 이중 이탈리아의 신좌파 운동을 이끌었던 루치아나 카스텔리나는 소련의 체코 침공을 비판했다가 당원 자격이 정지됐고요. 중국의 신좌파 왕후이는 아직도 6·4사건, 즉 1989년 6월 4일 중국 정부가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무력 진압한 사건에 사로잡혀 있고요. 지금까지도 중국에서 입 밖으로 꺼내 얘기할 수 없는 6월 4일에 발생한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또 그 안에서 중국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여전히 붙들고 있는 겁니다.
한국 사회 역시, 예외 없이 좌파 역사의 오류들을 인정하고 투쟁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현존하는 것이 진리일 리 없다"는 블로흐의 세계관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고 해야겠지요.
엄기호 : 스스로 좌파로 살아간다면 뭘 제일 중요시해야 할지 고민했을 때, 제게는 당파성이라는 답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교육 문제를 중심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그 비슷한 예를 들자면, 어떤 친구가 왕따당할 때 '너희들은 왜 괴롭히냐'라며 친구의 곁에 선다는 건, 그 친구의 무고함과 죄 없음을 옹호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심지어 그가 무고하지 않았다면 그 친구와 함께 처벌되는 것까지 감수하는 거죠. 제게는 그게 가장 중요한 당파성입니다.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편과 곁을 구분하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친구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곁에 선다는 건, 사운드가 말로 들릴 때까지 듣는다는 걸 뜻합니다. 내가 계속 말을 걸고 귀 기울인다는 것을 포함한 당파성이요. 한국에서 소위 비판적 지식인이라고 얘기하는 이들의 당파성은 정치적 입장에 대한 당파성 뿐입니다. 전 현재 노동당 당원입니다. 민노당 분당, 진보신당 분열 때도 그렇고, 곁에 섰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고 정치적 편의 언어만 남아서 싸우는 걸 지켜보면서 저게 과연 당파성일까 생각한 적이 많았어요. 굉장히 가슴 아팠고요.
그런 비정하고 심란한 상황에서 당파성이 너무 쉽게 정치적 문제나 편의 문제라고만 생각하기 시작하면, 곁이 생기는 게 아니라 없어지고 파괴되는 참혹한 결과만 낳는 게 아닌가 싶어져요. 사실 이런 관점으로라면 갈수록 더 우울해지죠. 내가 이렇게 우울할 정도면 당직자들은 얼마나 우울할까 정말 걱정됩니다. 여러분들이 이 좌담회에 와서 우리 얘기를 들어주시는 것도 좋지만, 지지하는 곳을 실질적으로 후원하는 방법들도 찾아봐 주셨으면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약간 사적인 얘기를 덧붙이자면, 만원 내면서 100만원 요구를 할 때 답답해요. (웃음) 예전에 국제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할 때 아는 사람에게 만원씩 후원해달라고 부탁하니까 "소식지 같은 건 보내주냐?"하고 묻더라고요. 제가 버럭 짜증을 내면서 (웃음) "나한테 필요한 건 돈 만 원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연대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어요. 전 그게 연대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서 연대한다는 건, 이익 교환이 아니라 '주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강하게 얘기하자면 비자본주의적인, 반자본주의적인 관계요.
우리가 좌파로 살아간다고 했을 때 삶 속에서 어떻게 비자본주의적인 경제를 만들어내고 부분적으로 실천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건 호혜적인 선물 관계가 되어야지 교환 관계가 되어선 안 돼요. 제가 예전에 예수쟁이였기 때문에 신학 용어를 좀 쓰겠습니다. (웃음) 하나님 나라의 부분적 성취라는 개념이 있어요. 지금 당장 크게 늘릴 순 없더라도, 우리 삶에서 하나님 나라를 부분적으로 맛볼 수 있어야 해요. 안 그러면 헛수고입니다. 전 그 부분을 여기 와주신 관객 여러분들도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노정태 : 토론 내용이 점점 흥미진진해지는데, 아쉽게도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이제 마지막 공식 질문을 드려야 할 때입니다. <좌파로 살다>에 등장하는 수많은 좌파들 중, 누가 가장 인상적이었는지 지목해 주시고, 그걸 귀감으로 삼든 대척점으로 삼든, 한국에서의 좌파의 삶이 그에 비추어 어떤 고민을 할 수 있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얘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장석준 : 일단 이 책 해설을 쓰느라 힘들었습니다. (웃음) <좌파로 살다>에서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멕시코에서 활동하는 아돌포 힐리였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쪽 좌파 이론가로서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좌파로 살다>를 통해 그의 이력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어요. 그의 출발은 트로츠키주의였습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마르크시즘의 어떤 측면이 라틴 아메리카의 노동자 계급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면 변혁이 힘들어집니다. 자칫 서구 추종주의로 빠질 수도 있고요. 하지만 아돌포 힐리는 나름의 궤적을 통해 원주민, 농민이야말로 변혁의 주체라고 확신한 뒤 출발점인 트로츠키주의를 넘어 마르크시즘을 근본적으로 다시 살피게 됩니다.
그 과정이 인상적이었어요. 처음에 공부할 땐 '저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는데, 거기서만 그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우리'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 때문에 서구 백인 남성 노동자 중심의 좌파 담론만 있던 세계에 또 다른 이야기가 덧붙여지며, 좀 더 풍성한 세계 좌파 서사로 확대됩니다. 더 다양해지고 더 섬세해지죠. '저들'의 이야기로 출발해 '우리'의 이야기로 대꾸하며 진정한 '인류'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전형적 사례로서 주목했습니다.
정희진 : 아까 엄기호 선생님이 당파성에 대해 얘기하셨는데, 사실 어렵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국의 많은 지식인이나 좌파는 스스로를 보편적이며 정치적으로 가장 올바른 존재로 자리매김하려 해요. 초월적이고 추상적인 당파성, 듣기 좋은 말, 소위 '정치적 올바름'이 주가 되죠. 장애인이나 여성, 동성애자 등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사회적 이해관계에 있어 특수한 위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차이적이며 사소한 무엇으로 치부해 버려요. 하지만 지당하고 올바른 말만 하면서 어떤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다면, 그건 당파성이라 할 수 없어요. 우리 사회 지식인들은 그런 윤리의식이나 책임감이 없어요. 그게 저를 가장 좌절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엄기호 선생님이 당파성에 관한 책을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좌파로 살다>에서 전 역시 동아시아 사례들이 좋았습니다. 인도의 K. 다모다란과 중국의 왕후이, 일본의 아사다 아키라요. 인도나 중국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잖아요. 인도의 공식 언어는 수십 개에 달하는데, 전부 다 아주 달라요. 인도 자체의 그런 복잡성 내에서 마르크시즘을 보편화시킨다는 건 사실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중국의 경우도 그렇죠. 중국 영토 끝에서 끝까지 시차가 8시간 정도인데, 미국 같은 경우는 각 지역 별로 다른 시간대를 쓰잖아요, 그런데 중국은 그냥 하나로 통일한 시간대를 쓴다더군요. (웃음)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단히 흥미롭게 읽었어요. 한 편의 세계사, 좌파들의 칼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모서리, 예각적인 세계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편 아사다 아키라의 경우 제가 알고 있는 일본 공산당과는 좀 다른 얘길 해서 재미있었어요. 일본 공산당이 이제 와서는 그렇게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지도 못하고, 또 비겁한 측면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재일교포의 문제에 있어 공산당은 전혀 개입하지 않아요. 재일교포를 말하지 않고 전후 일본의 국가건설을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역할을 했는데, 공산당은 재일교포가 겪는 불합리한 처우에 대해 '우린 일본인이다, 자이니치가 아니다'라면서 모른 척만 하고 있죠. 계급 문제에 있어서도 일본 공산당은 고용 확대를 목표로 삼고 있어요.
노정태 : 오늘 이 자리에서 매우 거대한 주제, 좌파라는 게 뭘까, 누구를 위한 좌파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떻게든 결론을 내본다면, 아까 장석준 선생님이 인용하셨던 블로흐의 "현존하는 것이 진리일 리 없다"를 이렇게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그것의 현존을 이루어내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리일 수 없다, 고 말입니다. 공식적인 대담은 여기서 마치고요, 시간 관계상 딱 하나의 질문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 아까 엄기호 선생님이 과잉계몽된 주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한편 한국 상황을 보면 계몽이 너무 적게 이뤄졌다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국 계몽을 해야 한다면 과잉계몽된 주체들을 어떻게 계몽해야 할지, 이에 대해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대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엄기호 : 우린 안다고 착각하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안다고 착각하는 게 묘해요. 계몽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전 그걸 과잉 계몽이라고 표현하는 것이고요. 저 같은 경우 여전히 원고를 쓸 때 자신이 없어서 주변 사람들한테 엄청나게 많이 물어보고 의견을 구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잘 안다'고 해서 물어보면, '본질을 안다'고만 답해요. 본질을 알기 때문에 세세한 것, 결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런 결을 알 필요도 없고 거추장스럽다고 느끼는 거죠.
예를 들어 인문학(人文學)은 사람을 보면서 이해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난 사람의 본질을 안다'라고만 해버리면,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와 경험을 몰라도 상관없는 것처럼 되어버려요. 과잉계몽은 계몽이 아니에요. 그건 무지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계몽주의적인 방식으로 계몽이 안 됩니다. 정치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원래 그런 거 아냐?"라고만 답변이 돌아올 때, 어떻게 하면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할 것인가, 그게 제가 고민하는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입니다.
노정태 : 원래 어떤 토론회든 이 시간쯤 되면 다들 눈이 풀려서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표정을 짓고 계실 텐데, 지금 다들 너무 초롱초롱해서 영 아쉽네요. (웃음) <좌파로 살다>라는 책으로 만나 '좌파로 살다?'라는 물음표를 간직한 채 귀가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흥미로운 대담을 진행해주신 세 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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