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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전야의 밀양, 봄은 언제...

밀양 송전탑 사태, 공사 강행과 반대로 팽팽한 긴장감

밀양에도 봄바람은 불었다. 그러나 긴 겨울이 남긴 흉물스런 기억을 녹이지는 못했다. 송전탑 건설 공사는 겨우내 강행됐고, 탑들은 이미 많은 마을을 포위하고 있었다.

10년여의 싸움. 그러나 시간은 주민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10년은 송전탑 반대의 역사라기보다 건설 강행의 역사였다. 대통령이 멈춘 적이 있었지만 잠시였을 뿐 어김없이 공사는 재개됐다. 총리와 장관이 밀양을 찾았지만 주민들의 요구가 제대로 논의될 기회가 마련되지 않았고, 선로 변경 등 석연치 않은 의혹에 대해서도 명확히 해명되지 않았다. 책임회피성이거나 수순 밟기용이었다. 공중파에서 말은 한 방향으로 흘렀다. 지난해 가을부터 극심해진 경찰의 개입으로 공사는 차질 없이 진척돼 왔다. 반대해도 소용 없다는 무기력감이 주민들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마을마다의 사정은 달랐다. 경찰력에 막혀 손을 쓰지 못한 채 공사를 지켜만 보는 마을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전을 기다리듯 무기를 들고 공사 현장을 원천 봉쇄한 마을도 있었다. 부북면 주민들은 127번 현장의 움막에 방호 절벽을 만들고 철조망까지 쳐 놓았다. 평밭마을의 경우 참호를 파고 유사시 그 안에서 최후를 맞겠다고 말하는 주민도 많았다. 일부 주민은 그 참호를 '무덤'이라 불렀다. 산외면 용회마을 101번 현장에도 주민들의 움막이 들어섰다. 격전지가 될 공사지를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는 한전은 호시탐탐 기습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주민들은 밤낮으로 조를 짜며 현장을 지킨다. 크고 작은 마찰과 함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밀양은 지금 폭풍 전야다.

움막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이들이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지를 말하는 깃발이었다. 하지만 국가에게 국민이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하는 깃발이었다. 밀양 주민, 아니 이 소수의 국민들은 산외면 보라마을에 서 있다 파괴된 '밀양의 얼굴들'과 닮아 있었다. 그 절규하는 얼굴들, 그리고 힘겨운 싸움을 끝낼 수 없는 주민들의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을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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