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3년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자행된 김대중 납치사건을 두고 일본 정부가 재조사를 시도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 차원에서 재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일본 외무성은 납치사건이 일어난 지 10년째가 되던 1983년, 당시 미국에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관련 조사를 진행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부가 26일 공개한 제21차 외교문서 중 총 5권으로 구성된 ‘김대중 동정’ 기록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1982년 12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일본 외무성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에 도착하면 일본 정부는 일본 내 야당 등으로부터 당사자에게 당시 상황을 다시 들어보라는 이른바 ‘사정 청취’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대중 납치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를 김대중 전 대통령 본인에게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어 2월 1일에는 이재춘 당시 동북아 1과장이 야나이 일본 주한 공사와 만남을 갖고 “우리 정부는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며 “이 문제(김대중 납치사건 재조사)에 관하여는 양국 정부가 같은 배를 타고 있으므로 상호 노력하여 문제의 소지를 키우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달 23일 일본 정부는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본 국내 수사 당국에 의해 계속 수사 중인 상황이며, 그 수사의 일환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조사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로서 김 전 대통령의 말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제로 조사를 할 것인가의 문제는 김 전 대통령의 동의도 필요한 상황이라며 조사가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뒀다.
미국은 이 문제에서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3월 11일 당시 정부가 입수한 미국 반응을 보면 미 국무성 한국과장은 “미국 FBI가 김대중과 접촉을 시도한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사법당국의 요청에 따라 김(김대중)의 반응을 일본 측에 전달하는 역할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 국무성이나 법무성은 이 문제에 전혀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또 4월 19일 그는 “실제로 사정 청취가 이뤄지면 미국은 FBI가 동석하길 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5월 10일 일본 정부는 미국 정부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을 조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자신의 납치사건에 대해 사죄하지 않고 있다는 점 ▲자신의 진상규명 요청에 대해 일본 정부가 화답하지 않고 있다는 점 ▲한국 법원이 자신을 재판한 것이 이른바 한일 정치 결착 위반이라는 점 등을 들어 조사에 응할지 여부를 답하지 않았다.
이에 당시 내각의 고토다 관방장관은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로서는 김대중이 조건을 고수하는 한 사정 청취(조사)를 행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사실상 재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를 두고 김대중 납치사건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현재 일본 정권의 한일관계 재구축 방침과 정면으로 상충되는 문제이므로 본격적인 재수사는 당분간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정부의 예측대로 재조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8월 1일 일본 정부는 김대중 납치 사건 특별수사본부를 해체했다. 정부는 이를 두고 “8월 말 한일 정기 각료회의 개최 및 11월 예정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방한, 방일과 관련하여 한일관계뿐만 아니라 한미관계에 영향을 미친 불행한 사건에 결말을 내고자 하는 일본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해석했다.
결국 양국 정부 모두 김대중 납치 사건의 진상을 덮어두기로 합의함으로써 김대중 납치 사건, 박정희 대통령 및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등으로 최악의 상태로 치닫던 한일 간 갈등은 다소나마 봉합됐다. 이후 사건의 배후와 경과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2007년 10월 발간된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조사 보고서를 통해 당시 중앙정보부장인 이후락의 지시 아래 김 전 대통령이 납치됐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