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첫 독일대표 출신의 실패
파울루 힝크(41)는 한국 프로축구 사상 첫 독일국가대표 출신 외국인 선수다.
1904년 증조부가 브라질에서 독일로 이주를 했지만, 여전히 브라질 국적자로 남아있던 힝크는 독일로 귀화하여 1998년 9월 2일, 몰타와의 원정평가전을 통하여 A매치에 데뷔했다. 독일 축구 역사상 브라질 귀화자의 첫 국가대표 선발 사례다.
1999년 국제축구연맹 대륙간컵, 2000년 유럽선수권, 2002월드컵 유럽예선 등에 참가하며 A매치 13경기 502분(경기당 38.6분)을 뛰었지만, 득점 없이 도움 1개를 기록했다.
루마니아와의 2000년 유럽선수권 조별리그 1차전(1-1무)에서 3-5-2 대형에서 2명의 중앙 공격수 중 1명으로 풀타임을 뛰면서 전반 28분, 공격형 미드필더 메메트 숄(44)의 장거리 슛 직전에 패스한 것이 국가대항전의 유일한 공격포인트다.
2004년 7월 24일, 전북 현대는 계약금 35만 달러(3억7632만 원), 연봉 50만 달러(5억3760만 원)에 1년 계약을 맺고 힝크를 영입했다. 등록명은 Rink의 브라질 포르투갈어 발음인 '힝키'로 정해졌다.
비록 A매치에서 골은 없었지만, 독일대표로 대륙간컵과 유럽선수권이라는 메이저대회를 경험했으며 독일 분데스리가 통산 120경기 7035분(경기당 58.6분) 34골 18도움(90분당 공격포인트 0.67), 유럽클럽대항전 16경기 911분(경기당 56.9분) 2골 3도움(90분당 공격포인트 0.49)이라는 경력은 K리그 역대 외국인 선수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한다.
그러나 2004시즌 전북에서 16경기 2골 2도움에 그쳤으며, 선발출전은 5경기에 불과할 정도로 기량 입증이나 입지 확보에 실패했다. 결국, 계약기간의 절반인 6개월 만에 방출되고 말았다.
누가 봐도 실패한 한국 생활이지만, 2004년 10월에는 3일 부산 아이콘스와의 경기에서 K리그 통산 5000번째 도움, 26일 알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와의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2-2무)에서는 전반 32분 선제골을 넣으면서 나름 발자취를 남겼다.
나. 환경 적응에 실패했던 첫 독일 선수
비록 국가대표 출신은 아니지만, 힝크보다 19년이나 먼저 한국에 온 독일 선수가 있었다.
1985년 8월, 포항제철축구단은 수비수 디트마르 샤흐트(52)와 계약금 1만 달러(1075만2000원), 월봉 2500달러(268만8000원)의 조건으로 영입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985년 서울 중화요리점의 짜장면 1그릇은 616원, 안전행정부의 2014년 1월 품목별 개인서비스 평균가격을 보면 서울은 4071원이다.
짜장면 가격 인상폭인 약 6.6배를 대입하면 2014년 기준으로 샤흐트의 연간 계약 총액은 약 2억8422만원이다. 당시 샤흐트의 계약조건을 '호조건'이라 표현한 것을 보면 체감 액수는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제공권이 좋은 수비수로 평가되면서 7경기 2골로 좋은 기량을 선보였지만, 1985시즌이 끝나자 독일로 귀국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귀국 후 독일 일간지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샤흐트는 "모기에 잔뜩 물리고 여름 더위에 잠을 설쳤다. 영어도 통하지 않아 의사소통이 어려웠고 음식은 먹을 것이 없었다. 오전 6시에 훈련으로 일과를 시작, 아침 식사 후에 잠을 자는 생활도 미칠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프로 통산 분데스리가에서 22경기, 독일 2부리그에서 228경기 19골의 기록을 남겼다. 지도자로는 독일 2부리그 팀들을 지휘하다가 최근에는 준프로(4부리그)와 아마추어(5부리그) 팀을 맡고 있다.
선수 경력 중 주목할 부분은 분데스리가 통산 7회 우승 및 1997년 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제패에 빛나는 독일 명문 샬케 04의 암흑기를 함께 한 것이다.
1989년 샤흐트가 입단할 당시 샬케는 2부리그에 속해있었다. 샤흐트는 1989/90시즌 32경기 6골로 자신의 리그 최다 골을 기록했고, 1990/91시즌에는 30경기 1골로 주전으로 활약하며 소속팀의 분데스리가 승격에 힘을 보탰다.
1991/92시즌 분데스리가로 복귀한 샬케에서 5경기를 뛰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으니 샬케의 암흑기 탈출을 함께한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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