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씨는 55년생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다. 현재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젊었을 때는 소유 주택이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면서 5~6배의 이익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IMF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과거의 '재미'만을 믿고 투자했다가 빚만 지고 땅바닥에 나앉게 됐다. 후회했지만 늦은 일이었다.
자식들이 있지만 아직 자기 앞가림하기 바쁘다. 용돈 달라고 하기도 쉽지 않다. 막내는 아직 취업도 하지 못했다. 이 씨는 부모를 돌아가시는 날까지 집에서 모셔야 했다. 자신들이 샌드위치 세대라는 것을 새삼 요즘 느끼고 있다. 친구들을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자신이 죽으면 화장한 재까지 스스로 뿌려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이 씨와 같이 6.25 직후인 1955년에서 1963년 사이 태어난 이들을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일컫는다. 한국 경제발전과 함께 성장했고 현재는 은퇴를 바라보고 있거나 이미 은퇴한 50대가 그들이다. 하지만 은퇴 이후 삶도 만만치 않다. 노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것은 물론, 여전히 자식 뒷바라지도 해야 한다.
자신의 삶도 불투명하다 그나마 있는 집은 언제 은행 이자로 날아갈지 모른다. 이렇다 할 노후대책도 없다. 소규모 자영업에 베이비부머가 뛰어드는 이유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골목 상권으로 하나둘씩 들어오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막혀 그나마 투자한 돈도 까먹는 판이다. 실제 지난 2월 금융결제원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2103년 부도낸 자영업자 가운데 50대는 2명 중 1명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에게 제2의 삶이란 요원한 것일까. 2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씽크카페에서는 민주당 김현미 의원실 주최로 일상폴폴2014 오픈테이블 행사 '베이비부머 세대, 함께 살자'가 열렸다. 현재 베이비부머가 처한 현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상생의 길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동네 빵집이 대형 프랜차이즈에 맞서는 방법은?
이날 참석한 베이비부머들은 제2의 인생을 위한 수단으로 ‘협동과 상생’을 꼽았다. 동네 빵집 협동조합을 만들고 대형 프랜차이즈와 겨루고 있는 박인서 씨도 마찬가지였다.
박 씨는 "80년대 중반부터 빵집을 운영했다"며 "그때는 밀가루 반죽해서 설탕 좀 넣어도 빵은 불티나게 팔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90년대를 지나 2000년도부터 프랜차이즈 빵집이 골목마다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빵집 운영이 쉽지 않았다. 박 씨는 "2000년대 이후 약 80%의 동네 빵집이 문을 닫았다"고 밝혔다.
박 씨의 빵집도 이때 문을 닫았다. 하지만 빵만은 최고로 만들 수 있다는 자부심이 박 씨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대형 프랜차이즈에 맞서는 ‘수단’을 고민한 끝에 빵집 주인 11명과 빵집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대형프랜차이즈를 이길 수 있는 것은 협력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은 비싸서 사지 못했던 제빵기계도 힘을 모아 마련했다. 제빵공장도 설립했다. 빵만 만드느라 홍보는 어떻게 하는지 몰랐지만 한 대학 홍보동아리에서 박 씨의 동네 빵집 협동조합 홍보와 마케팅을 도와줬다.
박 씨는 "지난 1월과 2월에는 적자였지만, 3월 들어서는 손익분기점을 맞추게 됐다"며 "4월에는 1주일 동안 백화점에 입주도 한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에서 협동 문화 꽃피우는 게 중요"
김현미 의원은 "개별 빵집은 자본력이 한계가 있어 비싼 기계를 사지 못한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라며 "동네 빵집 협동조합이 보여준 사례는 상생과 협동의 경제, 즉 협동조합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베이비부머처럼 개인 힘으로 현실 문제를 극복하기 어려운 이들의 경우, 개인이 아닌 협동과 연대를 통해 새로운 길을 찾는 시도가 앞으로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동네 빵집 협동조합과 달리 상당수 협동조합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희망제작소 사회적 경제센터 정상훈 전 센터장은 그 이유를 두고 "우리 사회가 경쟁과 배제의 사회이기 때문"이라며 "이 논리에서는 상생과 협동이 기본인 협동조합이 살아남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기업과 똑같은 조건이라면 '착한' 협동조합이 '독한' 대기업을 이기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그는 협동조합이 대기업을 이기기 위해서 "사회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협동의 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있다"며 "제도적 개선을 통해 개별 협동조합의 경쟁력을 키워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협동을 이끌어낼 것인가도 지속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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