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정보기관 협력자의 고백 "김 씨 자살 기도, 무서웠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정보기관 협력자의 고백 "김 씨 자살 기도, 무서웠다"

[추적] 유우성 사건 후폭풍, '휴민트'의 붕괴

간첩 증거 조작 의혹으로 일반 국민들은 알기 힘든(알아서는 안되는) 정보기관들의 은밀한 정보 수집 방법이 언론을 통해 만천하에 공개됐다. 어떤 목적이었든 정보기관이 고의로 공식 문서를 조작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 것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문제에 불과하다. 이면의 더 큰 문제는 국가 정보기관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비단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적 차원에서 불가피한 정보(첩보)를 얻는 기관 내부 시스템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런 문제 의식으로 <프레시안>은 한 정보기관에 협력, 정보원으로 일을 했던 인사와 접촉했다. 박성훈(가명, 48세) 씨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사업을 한다. 박 씨는 자신의 신분이나 이름이 연상되는 어떠한 내용을 쓰지 말아달라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를 통해 '정보원 세계'의 실태를 살펴봤다. 그는 기관에 '등록'이 돼 있는 정보원이다. <편집자> (첫번째 기사 바로 보기 : 정보원들의 진짜 세계…전직 군경 출신 '1순위')

'윗동네' 사람 소개, 신분증 스캔때론 '불법'에 '위험' 감수 요청도

이들 정보원이 받는 요청은 가벼운 정보 수집부터, 불법적인 일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윗동네' 인사의 신분을 알아봐 달라거나, '윗동네'의 신분증 하나를 스캔해서 보내달라는 식의 요구도 있다. 특정 시설의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고 했다. 현지 정부 관공서 라인의 특정 인사, 'OO급 이상' 지위의 사람을 연결시켜 줄 수 있느냐는 식의 요구도 한다. 박 씨는 "가끔 얼토당토하지 않는 사람을 뚫어달라(연결시켜달라)는 요구도 하는데, 그런 요구는 위험성이 굉장히 높다. 여기(중국)에서는 그런 일을 잘못하면 현지에서 잡혀 징역을 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외에 '윗동네'에서 외화 벌이 목적으로 중국에 차린 회사 등에 대한 조사는 물론 접촉을 요구할 때도 있다. 주로 중국 쪽 상황을 체크해 동향을 보고하지만, 때로는 특정 직무 종사자나, '윗동네' 출신 탈북자, 북한을 빈번하게 드나드는 중국인 들에게 접근, 정확한 목적을 밝히지 않은채 그들을 한국으로 보내달라는 요구도 한다. 그 경우 정보기관 요원들은 "한국 영사관을 통한 입국 비자 발급을 용이하게 처리해주고, 한국 방문 시 자신들이 일체의 한국 체류 관련 비용 등을 책임지겠다. 보내만 주면 한국에서 알아서 하겠다"고 정보원들에게 설명한다.

정보기관 요원 측에서 금전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번에 구속된 일명 '김 사장(국정원 김 모 조정관)'과 자살을 시도한 정보원 김 씨의 경우, 1000만 원대의 돈 거래가 있었다는 진술이 나왔다. 물론 정보원 측이 금전을 요구할 때도 있다.

씨는 관련해 "내 담당 라인이 '(금전) 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정도 수준에서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돈을) 받아본 적은 없다. 지금 하는 본업으로 먹고 살만 하기 때문이다. 애국심, 국가관이 살아 있으니, 너무 위험하거나 불법 소지가 있는 일들이 아니면 요청을 들어줘 왔다. 국가가 하는 일이고,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협조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나는 요청을 거부할 수 있는 정도 수준은 된다. 요원들도 강제로 일을 맡기지 않는다. 내가 거부하면 자기 라인의 다른 사람에게 제안을 할 것이다. 그러나, 특정 출신에 대한 비하는 아니니 이해를 구한다. 대부분 조선족 정보원들, 즉 중국 국적인데 한국말이 능수능란한 사람들 중 '장사'에 밝은 사람은 돈을 받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조선족 김 씨'의 경우 먹은 돈이 있다면 일명 '김 사장'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할 상황이었을 것이다. 돈거래가 끼어들면 위험한 것을 요구하게 되고, 어떤 요구라도 수행하게 된다. 그것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간첩 사건 문서 위조와 같은, 불법인데다 위험한 일에까지 뛰어들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브로커 등을 통해) 그런 위조 자료들을 만들기가 용이하다."

ⓒ 연합뉴스


"국정원이 휴민트 버리는 것 보고 허탈…나도 잘못되면 저러겠구나"

국정원은 유우성 씨 간첩 증거 조작 사건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신뢰를 잃었고, 사람을 잃었고, 정보를 잃었다. 국가 안보를 위태하게 한 셈이다.

"지금 세태가 어떻느냐 하면, 과거 '흑금성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도 어떤 사람을 실컷 써 먹고 버린 것 아닌가. 본인은 억울해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국정원 자체가 진보 쪽에서 보면 '정권의 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긴 해도 애국심을 가진 사람들은 안타까운 면이 있더라도 기관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조직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들을, 국정원 스스로가 자꾸 버리고 있다.

어떤 탈북자가 '윗 동네'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치자. 그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불순한 사람으로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증거 조작과 같은) 바보 짓을 하고, 상황에 따라서 사람(정보원)을 버릴 수 있는지…. 정보 기관이 정보원의 업무적 '바운더리(영역)'를 공개하면 안 되지 않나. 어떻게 보면 국정원의 이런 행동들 때문에 신뢰도, 정보도 다 털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관에서는 어떤 정보든 얻어보려고 절실하게 휴민트에 접근을 한다. 우리같은 정보원들은 그 절실함을 알기 때문에 도와준다. 그런데 이용 가치가 없어지거나, 이번 '조선족 김 씨' 사례처럼 (국정원 고위직) 자신들이 위험에 처할 경우 가차없이 휴민트를 버리고, 또 신원을 공개해 버린다. 휴민트 자체만 관심이 있지 휴민트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안위에는 신경도 안쓰는 태도들이다. 그런 소식이 들릴 때마다 과거 "국가를 위해"라는 신념으로 일했던 게 허무해지고, 또 '후에 나도 저런 꼴이 날까'하며 무서워진다. 나도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

지금, 남재준 국정원장 체제 하에서 '휴민트'는 붕괴되고 있는 중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