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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공포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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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공포와 희망

샌프란시스코 체제: 미-일-중 관계의 과거, 현재, 미래 <9·끝>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부정적 유산들이 곧 사라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태지역의 안정에 대한 새로운 위협들이 쉽사리 제어될 것 같지도 않다. 각국의 민족주의가 경쟁적으로 달아오르고 있으며, 이러한 민족주의는 정부 내외에 자리 잡은 전쟁주의자들의 조작에 의해 더욱 강화되면서 젊은 세대에게로 전승되고 있다.

역사전쟁은 완화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조장된 역사적 기억상실증으로 말미암아 더욱 심화되고 있다. 아시아 “공산주의”를 격퇴한다는 목표 아래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도적으로 심어진 영토분쟁의 싸앗들은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미국 군사기지의 제국은 마치 마음대로 형상을 바꾸는 괴물처럼 냉전 이후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오키나와(沖繩島)의 수난과 “두 개의 일본”이 가까운 장래에 갑작스럽게 변화할 것 같지도 않다. 일본의 점진적인, 그러나 “역동적인” 재군사화는 미국의 핵우산 아래 가속화되고 있다. 만일 일본 헌법이 개정된다면 군사화는 더욱 역동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군사화는 미국에의 예속적 독립을 유지시키는 물질적, 정신적 한계를 깨부수는 정도로까지는 진행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대립과 갈등을 넘어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다우어 교수는 최근 들어 “덜 대결적인 동아시아의 신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구호로 “권력 분점”이란 말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아시아 협조 체제(Concert of Asia)" "태평양 공동체” “팍스 퍼시피카(Pax Pacifica: 팍스 아메리카나에 반대되는 말)” 등의 구호에서 “권력 분점”의 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권력 분점의 성공 여부는 비정부 민간 네트워크의 확장 여부에 달려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상호의존과 상호 이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개인과 기업 간의 촘촘한 그물망은 시민단체(NGO)와 다국적기업, 그리고 관광과 대중문화와 같은 문화 및 교육 분야의 교류까지를 아우른다. 이들이야말로 풀뿌리 차원 협력과 통합의 기반이자, 극단적 민족주의와 호전적 대립에 대한 해독제”라고 강조한다.

나아가 “이러한 네트워크들은 이미 상당 부분 확립돼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는 어찌하여 이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극단주의와 비이성의 목소리를 물리치는 데 실패했는가? 그들은 이길 수 있을까? 이길 수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가능한가?”라며 민간 분야 교류를 통해 평화롭고 안정적인 동아시아 신질서를 모색할 것을 촉구한다.<편집자>

▲'일한단교 공투위원회', '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 등 우익 네티즌 단체 회원들의 혐한 시위. 한 시위 참가자가 일본군 모자를 쓰고 시위에 나와 '반일 분자를 쳐죽여라'라고 쓴 종이 피켓을 목에 걸고 있다. ⓒ연합뉴스

4. 공포와 희망

이제까지 말한 사태 전개의 방향은 매우 불길하다. 중국의 발흥은 1950년대 이래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석권해 왔던 팍스 아메리카나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과거 소련을 상대로 군비경쟁을 벌여왔던 미국과 일본은 이제 중국을 상대로 한층 심화된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다. 나아가 이번 군비경쟁은 디지털 혁명에 의해 촉발된 정밀무기 및 사이버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전략 경쟁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과거의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무기들도 여전히 존재하며, 첨단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의 속속 개발되지만 이것이 보다 현명한 정치지도자들을 배출하지는 못한 채 말이다.

이러한 군비경쟁의 모든 당사자들은 당연히 자신들은 평화를 옹호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군사화를 진행하면서 “방어”라든가 “억지” 등 고상한 단어로 자신의 행위를 호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자신의 편집증에 사로잡혀 있다. 모든 나라에서 국수주의가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1970년대 이후 그토록 어렵사리 쌓아온, 중국과 나머지 세계와의 우호 및 상호의존의 구조가 취약해진 것으로 보인다. “우발적 전쟁”에 대한 경고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부정적 유산들이 곧 사라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태지역의 안정에 대한 새로운 위협들이 쉽사리 제어될 것 같지도 않다. 각국의 민족주의가 경쟁적으로 달아오르고 있으며, 이러한 민족주의는 정부 내외에 자리 잡은 전쟁주의자들의 조작에 의해 더욱 강화되면서 젊은 세대에게로 전승되고 있다.

역사전쟁은 완화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 조장된 역사적 기억상실증으로 말미암아 더욱 심화되고 있다. 아시아 “공산주의”를 격퇴한다는 목표 아래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도적으로 심어진 영토분쟁의 싸앗들은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미 군사기지의 제국은 마치 마음대로 형상을 바꾸는 괴물처럼 냉전 이후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오키나와의 수난과 “두 개의 일본”이 가까운 장래에 갑작스럽게 변화할 것 같지도 않다. 일본의 점진적인, 그러나 “역동적인” 재군사화는 미국의 핵우산 아래 가속화되고 있다. 만일 일본 헌법이 개정된다면 군사화는 더욱 역동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군사화는 미국에의 예속적 독립을 유지시키는 물질적, 정신적 한계를 깨부수는 정도로까지는 진행되지 못할 것이다.

“비대칭”은 중국의 발흥과 미국의 아시아 “회귀”에 관한 논평들에 단골로 등장하는 중심 개념이다. 이 용어는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미국과 일본 간의 주종 관계(patron-client)를 뜻하기도 하며, 미국의 어마어마한 군사력에 대항하는 중국의 현재, 나아가 미래의 군사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2차 대전 후 미국의 군사분쟁 경험이 분명히 보여주듯이, (제3세계 국가의) 비대칭 전력은 (미국) 군사무기의 압도적인 우월성을 쉽사리 극복해냈다. 이것이 베트남전쟁의 교훈이었지만 미국은 이 교훈을 제대로 체득하지 못했고, (2001년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대재앙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중국의 군사력 현대화는, 군사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비대칭 전력을 이용해) 미국 전략가들이 자랑스럽게 떠드는 “전방위 지배(full spectrum dominance)"를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중국의 ”A2/AD" 위협에 대한 미국의 대응, 즉 “공해전(Air-Sea battle)"이나 심층 타격으로는 양측의 무한 군비경쟁을 지속시키는 악순환을 지속시킬 뿐이다.

나아가 샌프란시스코 체제 지속에 대한 중국의 도전에는 정치적 측면에서의 비대칭이 존재한다. 중국은 권위주의 국가인 반면, 미국과 일본은 민주적 원칙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이것은 핵심적인 차이이다. 동시에 이 세 나라 모두에서 기존 정치제도의 운영을 방해하는 강력한 힘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분명 중국에는 (정치과정의) 투명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밀주의와 무책임함은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냉전 초기부터 시작해서-그리고 2001년 9.11 테러 이후 안보 우려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에 의해-미국의 비밀 군사작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제 미국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안보국가(national-security state)로 탈바꿈한 것이다. 미·중·일 세 나라 모두에서 특수이익 집단의 정책 관여와 비정상적인 정책 결정이 만연하고 있다. 부패와 환상, 터무니없는 기대들도 만연하고 있다. 다시 한 번, 합리적 정책이 아닌 병리적 정책과 관행이 사태 전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보다 안정되고 건설적인 미래의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 희망은 군사적 대결에 대한 집착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 각 나라의 정치적 자원과 대중매체의 관심이 군사적 대결에 쏠려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제대로 된 해법이 될 수 없다. 증오에 가득 찬 민족주의 경쟁이 계속되는 한, 희망을 찾을 수 없다. 민족주의 경쟁에 중독이 되다시피 한 한중일 세 나라가 역사전쟁을 끊임없이 되살리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중국과 미국은 아태지역의 패권을 놓고 제로섬 게임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한, 이 지역의 안정은 확보될 수 없다. 미국은 더 이상 이 지역의 유일한 초강대국이 아니다(중국의 존재와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 비록 엄청난 군사력과 함께 냉전 초기부터 이 지역에 구축해온 방대한 군사기지의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해도 말이다. 오랫동안 지연되어 온 중국의 강대국으로의 재부상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현재 중국의 부상은, 20세기 전반 실패가 예정된 제국주의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나 1970~8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일본을 초강대국인 것처럼 보이게 했던 현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문제는 중국 내외의 여러 요인들이 중국으로 하여금 이 지역에 헤게모니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의 희망은 1970년대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에서 비롯된 평화로운 통합이라는 비전으로 되돌아가는 데 있다. 나아가 여러 구체적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경제적 상호의존을 심화시킴으로써 이러한 긍정적 비전의 내용을 채우는 데 있다. 2012년 지역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덜 대결적인 신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구호로 “권력 분점”이란 말이 제기되고 있다. “아시아 협조 체제(Concert of Asia)" "태평양 공동체” “팍스 퍼시피카(Pax Pacifica: 팍스 아메리카나에 반대되는 말)” 등의 구호에서 “권력 분점”의 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상상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특히 지금처럼 영토 분쟁과 군사력 팽창이 안보 및 국가적 자존심의 차원으로 격상돼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공동체는 1990년대부터 본격화됐으며, 이러한 지역공동체는 건설적 교류를 촉진하는 잠재력이 있는 반면 다자 포럼을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객관적 교훈도 남겼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권력 분점의 성공 여부는 비정부 민간 네트워크의 확장 여부에 달려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상호의존과 상호 이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개인과 기업 간의 촘촘한 그물망은 시민단체(NGO)와 다국적기업, 그리고 관광과 대중문화와 같은 문화 및 교육 분야의 교류까지를 아우른다. 이들이야말로 풀뿌리 차원 협력과 통합의 기반이자, 극단적 민족주의와 호전적 대립에 대한 해독제이다.

이러한 네트워크들은 이미 상당 부분 확립돼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는 다음과 같다. 어찌하여 이들은 극단주의와 비이성의 목소리를 물리치는 데 실패했는가? 그들은 이길 수 있을까? 이길 수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가능한가?

(번역 :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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