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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미국에 대한 ‘예속적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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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미국에 대한 ‘예속적 독립’

샌프란시스코 체제: 미-일-중 관계의 과거, 현재, 미래 <7>

미-일-중 동아시아 3강 체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과 중국이 확실한 자주 국가인 반면 일본은 (미국에) “예속된 독립국가”라는 점이다. 냉전 초기 중국은 소련의 괴뢰로 인식된 반면 일본은 자유세계 미국의 동맹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중국은 분명한 자주 국가가 자리 잡은 반면 일본은 여전히 미국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예속적 독립국가로 뒤처져 있다.

다우어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피후견국가인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미국이라는 '전쟁기계'의 부속품이 되는 대가를 치르고 얻어진 것이다. 미국이라는 전쟁기계는 특정 시점과 특정 지역에서 평화를 지키기는 했으나 이와는 반대로 자원을 낭비하고, 군비경쟁을 촉발시킨 것은 물론, ‘핵무기’ 선제공격을 위협하고, 학살을 자행하며(민간인 살해나 고문 행위 등), 한반도와 인도차이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엄청난 파괴와 피해를 낳았다. 피후견국가 일본은 미국의 덜 군사적이기는 하지만 근시안적이고 소모적인 외교정책에 대해서도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야 했다. 또한 피후견국가라는 지위는 일본이 지정학적으로 유연한 정책을 택하거나, 대국적인 정책을 취할 모든 가능성을 가로막았다.” 결국 미국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획득하지 못한 일본은 미국의 군사주의 정책을 추종할 수밖에 없는 신세인 것이다.<편집자>

▲ 지난해 12월 26일 아베 신조(왼쪽에서 두 번째)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모습. 아베 총리와 일본 정치권은 이후 과거사 문제로 주변국과 갈등을 빚었다. 동아시아 역내의 전략적 이익 차원에서 미국은 아베의 이런 행동을 못마땅해했고, 이후 아베는 결국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의 책임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재검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8) '예속적 독립'

전략적, 물질적, 심리적으로 현재 아시아에서-그리고 세계 전체에서- 일본의 위상은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상당 부분 중국의 경제 강국으로의 부상, 이와 함께 1990년대 이후 상대적으로 쇠락해온 일본의 영향력을 중국이 대체해 왔기 때문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일본에 붙여졌던 각종 수식어들-'경제 대국' '기적' '1등 국가 일본"-은 더 이상 일본에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수식어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수식어들의 대부분 이제 중국으로 옮겨졌다.

이런 역할 교체와 수식어의 이동은 매우 과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여전히 강대국의 일원이고, 중국은 경제, 정치, 사회, 인구, 환경에 걸쳐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전 초기, 미국이 태평양을 “미국의 호수”처럼 석권하고 일본을 아시아 유일의 위대한 경제 강국으로 보호했을 때와 비교하면 지각변동이라고 할 만큼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 모든 눈길은 아시아태평양에서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신흥국인 중국에, 그리고 향후 이 지역 세력판도의 변화, 특히 미국과 중국, 일본 간 '3각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쏠려있다.

하지만 이 3각 관계는 한편으로 기울어져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확실한 자주 국가와 여전히 (미국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으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장 바뀌지 않을 샌프란시스코체제의 유산이다. 냉전 시대 봉쇄정책의 기본 전제를 생각한다면 이런 상황은 매우 역설적이다. 공산주의는 단일체제로서, 새로 수립된 중공 정권은 소련의 꼭두각시나 위성국가에 불과하다는 것이 봉쇄정책의 논리였으나, 1960년대 초 중국과 소련이 갈라서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누구도 중국의 자주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게 됐다. 반면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세계'의 동맹국인 일본은 중국처럼 자주 국가가 되지 못했다.

일본의 제한된 자치권은 미·일 군사관계의 본질 속에 내재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체제 출범 이후, 특히 일본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던 1970년대부터 미국과 일본은 많은 문제들에 관해 이견을 보였으나, 양국 간 최대 쟁점이었던 통상마찰도 미·일 군사동맹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일본은 미국의 기본 전략과 대외정책들에 순종할 뿐이었다. 미·일 동맹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지지자들조차 양국 관계는 “본질적으로 그리고 불가피하게 불평등”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미·일 관계에 대해 냉혹한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은 예속과 순종이란 말을 사용했다. 일본은 미국의 “피후견국가(client state)"국가로서 냉전 종식 이후 미국에 대한 종속은 더욱 심화됐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불균형한 관계가 일본에 평화와 번영이라는 형태로 엄청난 혜택을 가져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론도 가능하다. 전후 일본은 소련이나 이른바 공산주의 진영으로부터 심각한 외부 위협에 직면한 적이 없었다. 또한 일본의 번영은 미국의 보호보다는 훨씬 더 많이 일본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찌 됐건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미국이라는 '전쟁기계'의 부속품이 되는 대가를 치르고 얻어진 것이다. 미국이라는 전쟁기계는 특정 시점과 특정 지역에서 평화를 지키기는 했으나 이와는 반대로 자원을 낭비하고, 군비경쟁을 촉발시킨 것은 물론, “핵무기” 선제공격을 위협하고, 학살을 자행하며(민간인 살해나 고문 행위 등), 한반도와 인도차이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엄청난 파괴와 피해를 낳았다. 피후견국가 일본은 미국의 덜 군사적이기는 하지만 근시안적이고 소모적인 외교정책에 대해서도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야 했다. 또한 피후견국가라는 지위는 일본이 지정학적으로 유연한 정책을 택하거나, 대국적인 정책을 취할 모든 가능성을 가로막았다.

1972년 중국과 일본이 관계를 정상화했을 때 이처럼 지속되고 있는 후견-피후견 관계는 적지 않은 일본인들에게,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성향의 사람들에게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였다. 일부에게 이는 “아시아” 국가로서 일본의 지향과 정체성에 관한 외교정책의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반면 다른 사람들에 근본적 문제는 국민적 자존심에 관한 것이었다. 일본의 보수 극우 진영에서 '보통' 국가를 추구한다는 것은 헌법을 개정하고 재군사화(remilitarization)에 대한 제약을 폐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군사화의 가속화가 일본의 진정한 독립이나 자주권을 확보하는 길이라는 생각은 기만적이다. 일본은 결코 미국 군사력의 품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실 미국이 일본에 대해 원하는 것은 보다 군사화된 협력자, 평화헌법의 제약에서 벗어나 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비전을 도와주는 것이다.

미국과 다른 동맹국과의 관계가 불평등한 것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위계질서란 냉전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의 헤게모니적 본질에 딱 들어맞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양자 관계 중 미·일 관계만큼이나 구조적 불평등이 심하고 이에 대한 비판이 많은 관계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전쟁과 평화에 관한 정책에 지혜와 자제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본인들조차 미국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양국이 맺은 귀중한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할 조그만 대가라고 주장한다.

분명히, 특히 태평양전쟁의 증오와 공포를 기억한다면, 그 우정은 정말 소중하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체제 하에서 치렀던 그 대가는, 피후견국가로서 일본이 겪었던 모멸감이나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대해 일본이 진정 독립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 수 없었다는 점에서, 미국과 일본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컸다. 이것이야말로 아시아의 세력판도가 변화하고 있으며 “아시아의 세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실감 나게 들리는 2010년대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불행한 유산이다.

(번역 : 이승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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