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가정. 만약 '6인회(김성식, 정태근, 홍정욱, 김부겸, 김영춘, 정장선 전 의원의 모임)'가 안철수 의원이 내민 손을 잡았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생겨났을까? 대중적인 이미지 좋고, 정치 공력으로도 어지간한 중진들과 견주어 손색없는 이 정예 멤버들을 품었더라도 안 의원이 과연 독자 신당의 꿈을 접었을까? 그 독자 신당의 궁극적인 성공은 확언할 수 없더라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가해지는 충격파만큼은 간단치 않았을 것이다. 기존 정당의 기득권 안주와 대비되는, 제3 신당의 맹렬한 질주를 지금 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태풍은 불지 않았다. 6인회와 안 의원 사이에 어떤 어긋남이 있었는지 정확한 내막을 알지 못한다. 다만, 안 의원이 자신의 기득권은 내려놓기를 주저한 채 이들에게 일을 벌여보자고 한 제안 자체가 무례했다는 설은 주워들었다. 사실이라면, 적어도 김부겸, 김영춘 두 사람에겐 확실히 예의가 아니었다. 적어도 지난 10여 년간 이들이 겪어온 고난의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면 말이다.
2010년 10월, 김부겸 의원이 민주당 의원 전원에게 "일신상의 문제로" 친필 서한을 보낸 일이 있다. 손학규 대표 체제 출범 후 (손 대표와 가까운) 자신이 당직에서 배제돼 구구한 억측이 떠돌자 "참담한 마음"에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였다. 당직 배제에 대한 원망 따위는 없었다. 그가 정말 참담했던 건, 그 구구한 해석에 "영남 출신이고 한나라당 출신 때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탓이었다. 그는 "낙인과 멍에"라고 했다. 그걸 제발 지우고 벗겨달라고 동료 의원들에게 호소한 것이었다.
김부겸, 김영춘 의원이 이른바 '독수리 5형제'의 일원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한 건 2003년의 일이다. 이들의 탈당은 정치 생명을 걸고 바리케이드를 넘은 월경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한나라당으로부터 날아오는 '배신자', '정치 철새' 공세를 견디며 선도 탈당해 길을 열어준 덕에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당 신주류 세력은 열린우리당 창당에 정당성을 얻었다.
김 의원의 편지는, 그 후 7년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나라당 출신', '영남 출신'이라는 이방인 취급에 대한 서러움, 호남 출신 성골들이 지배하는 민주당의 배타적 정서에 대한 원망에 다름 아니었다. 오죽하면 그가 2011년 낸 책 제목이 <나는 민주당이다>였을까. 안 의원의 제안은, 이들에게 또 다시 경계를 넘어 자신을 위한 정계개편의 불쏘시개가 되어달라는 청이었기에, 간곡했을지라도 무례했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새 정치'는 이제 방향을 틀어 합당으로 귀결됐다. 새정치민주연합엔 '새 정치'도 충만하고 '혁신'의 기운도 넘친다. 안 의원을 한껏 배려한 발기 취지문을 보니, 경제 민주화보다 "민주적 시장경제"가 앞서고, 복지를 설명함에 "보편과 선별의 전략적 조합"이라는 난해한 문구가 따른다.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를 아우르"려는 노력인가보다 싶다. '우클릭'이 걱정된다면 강경파들을 바라보면 된다. 이들은 더 많은 복지와 더 선명한 경제 민주화를 위해 어떤 싸움도 불사할 채비라고 한다.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이 벌이는 멋진 경쟁이 시작됐는데 어째 불안하다. 개혁과 혁신을 빙자해 숱하게 나부꼈던 과거의 깃발들이 줄줄이 꺾여 지금에 이른 과정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30대의 '젊은 피'로 수혈돼 20년 허송세월 끝에 '낡은 피'가 되어 가는 486 세대 정치인들, 기득권을 비판하다 스스로 기득권이 되어버린 '가짜 노무현'들이 모두 어제의 안철수였다. 여기에 "노무현을 파는 당내 세력과는 신당에 같이 갈 수 없다"는 모 최고위원의 '나 홀로 친노' 꼴불견은 덤이다. 자기들끼리 티격태격하다 욕설이 난무하고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새 정치'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벌인 일이다.
그렇다고 목청 큰 이들이 자기 손에 쥔 무엇 하나 내려놓았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난 2012년 총선 때, 탄탄한 지역구인 경기 군포와 서울 광진갑을 버리고 사지나 다름없는 대구와 부산으로 자진해 내려간 김부겸, 김영춘 의원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다. 쟁쟁한 486 세대의 맏형급임에도 '민주'를 팔고 '개혁'을 떠벌이는 대신 바위에 부닥치는 계란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변변한 당 지원도 없이 벌인 선거에서 김부겸 40.4%, 김영춘 35.8%라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그럼에도 선거 뒤엔 자신의 노력과 정성 부족을 탓했다. 총선에서 낙선한 뒤에도 다른 지역구를 넘보거나 중앙 정치를 기웃거리지 않고 부지런히 척박한 밭을 갈았다.
이들이 6.4 지방선거에 대구시장으로, 부산시장으로 다시 나선다. 지역주의의 극복의 첨병 역할을 기꺼이 떠맡은 이들에게 민심이 반응해 '출마해 달라'는 지역 주민들의 글과 사진이 SNS를 타고 퍼지기도 했다.
"매노(買盧)종북"이니, "건방 떨지 말라"느니 하는 아귀다툼으로 발을 뗀 새정치민주연합의 시작을 보니 더욱 확실해진다. 김부겸·김영춘이 '새 정치'다. 이들을 옥죄였던 '낙인과 멍에'를 이제는 풀어줘야 '새 정치'가 말 값을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의무이기도 하고, 유권자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이들의 이미지만 가져다 쓰고 알맹이를 버릴 게 아니라면,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는 한 번으로 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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