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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을 배신하는 순간 의사도 죽는다!

[서리풀 논평] '시민'과 협상하라

'시민'과 협상하라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16일(일요일) 저녁부터 협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17일 오전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니,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 논평을 쓸 수밖에 없다.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고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정부와 의협이 협상을 마무리하더라도 말끔하게 정리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의협이 회원 투표를 공언했고, 그 절차를 거쳐 최종 결정을 할 때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는 어렵다.

게다가 그 과정도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 벌써부터 누가 무슨 내용을 협상하는지 모른다고 말이 많다. 그러려니 하지만 어차피 '밀실 협상' 소리는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사이 경험으론 협상 후가 더 걱정스럽다.

어찌되었건 짐작으로 이러쿵저러쿵 곁 소리를 하려니 민망하다. 하지만, 이 일의 성격으로 볼 때 정부와 의협이 협상을 독점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형식과 외형은 몰라도 내용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충분히 논평할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협상이 일단 어떻게 마무리 되더라도 이번 주 내내 두 당사자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의 협상 상대가 정부 또는 의협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을 착각하면 일은 수습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커지고 어려워진다.

결론부터 말하자. 진정한 협상 상대는 '시민'이다. 널리 퍼진 용법으로 보면 '국민'이라고 해야 하겠으나, 그렇게 하면 바로 '국익'을 들고 나올 것 같아 시민으로 바꾼다. 여기서 시민이 서울 시민이나 광주 시민이 아님은 물론이다. 정부와 의협 모두에게 당부한다.

우선 정부. 정부가 시민을 빼놓고 협상하는 것은 그리 생소한 일이 아니다. 며칠 전 타결을 선언한 한국-캐나다 자유무역협정(FTA)만 봐도 그렇다. 축산을 내주는 대신 자동차를 얻었다는 식의 말 꾸미기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아예 적자가 날 예상 효과까지 숨기고 졸속으로 협상을 했다는 것 때문에 더 시끄럽다. 대기업과 재벌에만 이롭고 목소리 약한 집단은 할 수 없이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현실. 게다가 그 과정조차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면 이건 반(反)민주주의의 극치다.

정부는 예의 '국익론'으로 모든 것을 덮으려고 한다. 그러나 나라에 이롭다는 그 국익은 도대체 어떤 국익인가. 그리고 누가 정한 것인가. 공정한 배분을 외면하는 이익은 이미 기울어져 있던 권력을 반영할 뿐이다.

게다가 정부와 그것을 움직이는 관료는 스스로의 이익에서 자유롭지 않다. 자유무역협정 예를 들지만, 무엇이든 마찬가지다. 몇 나라와 협정을 체결했나 하는 관료적 성과 목표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한다는 정치적 목표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 여기에 '그들'의 이익은 있을지 몰라도 국민의 이익, 진짜 국익은 찾기 어렵다. 이번에 의협과 협상하는 정부 역시 눈앞의 자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공무원으로서의 성과는 물론이지만, 현실 정치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겉으로는 국익을 말하지만 시민은 뒷전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시민의 이익이 반영되는 협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외부와 협상하기 이전에 우선 시민과 협상해야 한다('협상'이 엄격하게 정확한 말인지는 따지지 말자). 이건 협상 실무가 어떻다는 모든 핑계를 넘는, 민주 사회의 기본 원칙이다. 이제라도 널리 시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

정부 다음은 의협이다. 협상에 나선 의협 역시 시민을 상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격 진료와 의료 영리화 반대라는 조금은 '정치적'인 이유를 걸었지만, 이 일은 여전히 의사들의 것이라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시민은 아직 '부차적' 요소인 것으로 보인다.

벌써 소문이 파다하다. 의협이 수가 결정 과정을 바꾸는 일을 협상 대상으로 하고 있고, 구체적으로는 수가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의 권력 구조를 바꾸려고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 사안은 시민과 더 직접 관련된다. 이런 저런 말이 있어도, 그리고 여러 한계가 있더라도, 건정심은 시민이 참여하는 유일한 의사 결정 구조이다. 시민을 빼놓고 참여 구조를 바꾼다? 생각하기 어렵다. 이뿐 아니라 어떤 사항도 수가와 관련된 것을 협상의 핵심으로 삼을 생각이라면 위험하다.

모두 알다시피, 사회적 지지라는 면에서 의사들의 이번 집단행동은 2000년 의사 파업 때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는 그것이 충분한 명분을 가진 것이면 파업이 정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 의사 파업을 어떻게 볼 것인가)

ⓒ프레시안(김윤나영)
조건을 달긴 했지만 여러 사회단체와 노동 단체도 공감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 가운데서도 우호적인 뜻을 가진 이가 꽤 있었다. 의사들의 집단적인 요구나 행동 가운데에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여러 단체와 개인이 전과 달리 조건부로라도 지지를 보낸 이유는 분명하다. 의료 영리화가 결국 시민의 건강과 복리를 해칠 것이고, 이를 막기 위한 의사들의 노력을 존중하고 협력한다는 뜻이다.

응급이나 중환자, 수술과 같이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가 아니면, 어느 정도는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보통 사람들의 공감이었다. 의사들의 요구(물론 그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이다)가 시민들의 이해관계 또는 요구와 조화롭게 만났던 것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협상은 특히 의협과 의사 사회에 중요한 도전이 될 것이다. 협상에서 시민들을 배제하는 순간, 누가 보더라도 자기 이해만 내세우는 경우, 막 시작되었던 지지는 비판과 반대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수가 인상과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으로 정리될 것이다. 원격 진료와 영리화 반대는 잘해야 '전술' 수준으로 그렇지 않으면 얕은꾀로 전락한다. 이것이 의협과 의사들이 바라는 것인가?

수가 결정 구조는 의사들과 일반 시민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길게 보면 다르게 볼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 정도까지 '숙고'하고 동의에 이르기 어렵다. 앞으로도 의사들이 시민들과 더 지루하고 어려운 협상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결국 의협(의사들)도 정부와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협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시민의 뜻이 반영되지 않으면, 당장 정부와 무엇인가를 합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기왕의 성과를 모두 까먹을 공산도 크다.

그렇다면 현실의 협상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 우선, 협상은 의료 영리화(그 연장선으로서의 원격 진료)에 집중되어야 한다. 여러 차례 말한 것처럼, 의료 영리화를 강화하는 어떤 정책도 한국 의료의 공공성을 훼손할 것이 뻔하다. 정당성과 도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금까지 사회적 '공론장'에서 동의된 시민의 뜻이라고 확신한다.

아울러 협상의 과정이 정당한지 다시 묻는다. 정부와 의협 모두 시민의 뜻을 묻는(시민과 협상하는) 공개적이고 명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한, '그들'만의 협상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의료 영리화 정책을 변경하는 협상은 쉽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가이드라인을 준 마당에 정부가 완전히 후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런 만큼 의협이 안고 있는 도전은 더 크다. 영리화는 시늉만으로 끝내고, '실리'를 얻겠다고 결정할 가능성을 말한다.

그래도 비관할 필요는 없다. 정부와 의협 모두, 당사자(특히 의사)의 이익과 시민의 공적 관심이 맞아 들어간 이번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협상의 모든 당사자가 더 겸손하게 그리고 더 넓고 멀리 보면서, 공적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기를 바란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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