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의 소원은 아들보다 하루 더 사는 겁니다." 가수 김태원 씨가 아들의 발달장애를 고백하면서 한 말이다. 발달장애인의 실화를 다룬 영화 <말아톤>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 소원은 초원이가 저보다 하루 먼저 죽는 겁니다."
13일 오전 광주 북구 모 아파트에서 남편과 아내, 다섯 살 난 아이가 함께 숨진 채 발견이 됐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 치료했는데도 발달장애 호전이 없어 힘들었고 치료가 잘 안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 부부만 죽으면 아이가 너무 불쌍하니 함께 가겠다. 우리 세 식구는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유서가 있었다. 영정 사진은 세 식구가 함께 찍은 사진으로 써달라고.
지난 2일에도 경기도 동두천에서 한 주부가 네 살배기 아들과 함께 아파트에서 뛰어 내렸다. 이 아이도 발달장애를 겪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서울 관악구에서는 열일곱 살 발달장애 아들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도 있었다. 그는 "이 땅에서 발달장애인을 둔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건 너무 힘든 것 같다. 힘든 아들은 내가 데리고 간다. 아들과 함께 묻어 달라"고 유서에 적었다. 모두들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저 세상에서도 아이를 돌보겠다는 마음은 같았다.
발달장애 자녀 부양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보통 치매 노인 부양에 비견되곤 하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수십 년을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하루 더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심지어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평생을 방 안에 쇠사슬로 묶어 둔 부모가 TV 고발 프로그램에 소개된 적도 있다.
발달장애인 가정의 장애 부양비용이 연간 평균 2000만 원가량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모들은 자녀를 돌보느라 일을 제대로 하지 못 해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 가정도 많다. 발달장애인 가정의 45%가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기초수급 가정이라는 통계도 있다. 발달장애인만 19만 명이라고 하는데, '쉬쉬’ 하느라 알려지지 않은 발달장애인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까지 더하면 70만 명이 고통의 그늘 아래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 그래서 더 세밀한 관심이 필요한 장애다.
발달장애에 대한 사회적 제도 정비 요구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발달장애와 관련된 입법만 해도 2007년 4월 발달장애인의 생계유지 및 지원을 위한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 제정이 추진됐으나 7년이 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약속은 지킨다’는 대통령이기에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이번에는"이라고 희망을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이른바 '복지 사각지대'가 문제되자 박 대통령은 직접 "찾아가는 복지"에 대해 한 마디 하셨다. 덕분인지 보건복지부는 14일 "위험할 땐 119, 힘겨울 땐 129"라는 슬로건을 건 '긴급복지지원제도' 홍보 광고를 주요 일간지 1면에 일제히 실었다. 복지 업무 인력도 수천 명을 늘리겠단다.
그런데 여전히 '발달장애지원법'에 대해서는 감감 무소식이다. 이유는 역시나 예산 타령, 형평성 타령이다. 얼마나 더 죽이고 죽어야 박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에 대해 '한 마디'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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