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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인생을 '단단'하게 만든 '3개월 임금 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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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인생을 '단단'하게 만든 '3개월 임금 체불'

[인터뷰+설명] '1사 1노조' 유니손 소아스지부

대학 내 하청 업체 소속 청소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 파업은 한국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영국 런던의 소아스(SOAS)대학에서도 지난 4일과 5일,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요구안도 한국 청소 노동자들과 똑 닮았다. “원청인 대학이 직접 고용하라.” 영국 워릭대학에서 최근 박사 과정(고용 관계 및 조직 행동)을 마친 이정희 전 <매일노동뉴스> 기자가 지난 5일 소아스대 파업 현장을 찾았다. 이 전 기자가 쓴 글을 총 두 회에 걸쳐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

본명이라고 했다. 이름이 레닌(Lenin Escudero Zarsoza)이다. 올해 서른일곱의 그는 에콰도르에서 태어났다. 공산당 핵심 당원인 그의 부모가 사회주의 혁명 지도자이자 사상가인 레닌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아들의 이름을 레닌이라 지었단다. (이 노조에는 레닌 말고 스탈린도 있다. 스탈린 역시 본명이란다.)

축구 선수였던 그는 21세 때 심각한 부상을 입어 축구를 포기하고 2000년에 영국으로 건너왔다. 기회와 평등권을 보장하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삶은 팍팍했다. 다른 이주 노동자들이 그러하듯이 그는 한때 일주일에 7일, 하루 16~18시간씩 일을 했다.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은 주말에 일을 하지 않는 대신 주중에는 하루 15시간이 넘게 일을 한다. 투잡을 넘어선 쓰리잡 인생이다. 새벽 3시, 첫 번째 업무 시작이다. 2시간 45분 동안 런던 시내에서 사무실 청소를 한 뒤 곧바로 6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소아스 대학에서 청소를 한다. 이 일이 끝나면 HSBC 은행에서 오후 8시 30분까지 3시간 동안 청소를 한다. 몸은 힘들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함께 대학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 간에 공평하고 평등한 노동 조건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소아스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첫해인 2003년, 청소 도중에 떨어지는 의자에 발이 찍히는 사고를 당해 발톱 3개를 잃었다. 일은커녕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받은 것은 법정 병가휴가 수당인 주당 84파운드(15만 원). 집세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도 없는 금액이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했다면 살고 있던 집에서 쫓겨났을지도 몰랐다. 의사는 최소 한 달 휴가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3주 만에 완쾌되지 않은 상태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알았다. 소아스 대학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자신들과 달리, 법상 기준보다 높은 수준의 병가 휴가의 적용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 소아스 유니손 지부의 노조 대표 중 한 명인 레닌이 파업 중인 한국 청소 노동자들이 보내온 연대의 뜻을 담은 ‘단결 투쟁’ 머리띠를 하고 포즈를 취했다. ⓒ이정희
그즈음 또 다른 사건도 있었다. 소아스 청소노동자들이 고용돼 있던 오션(Ocean)이라는 청소 업체는 3개월 동안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방법이 없어 몇몇은 떠나기도 했지만 레닌과 동료들은 물어물어 노조(유니손)를 찾았다. 그때 알았다. 생활 임금이란 제도가 있고, 노조를 통해 집단적인 목소리를 함께 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또 알게 되었다. 소아스 직접 고용 노동자들과의 차별적인 대우를 멈추는 방법은 핵심 사용자인 소아스가 자신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 말고는 없다는 것을.

레닌의 말이다. “소아스대학은 모든 노동자를 평등하게 대우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 말은 청소 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더러 왜 (우리를 고용하지도 않은) 대학 당국을 향해 불만을 말하느냐고 묻는데, 그건 소아스대학이 우리들의 실질적인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평등한 대우를 보장하는 것은 소아스의 책임이다. 청소 업무를 계속 외부 업체에 맡기고 싶다면, 동등한 노동 조건을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하청 계약을 맺어라. 그렇지 않다면 대학이 우리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2003년 이후 지부에서 노조 대표 중 한 명으로 열심히 활동해 오고 있는 그는 해고 위협을 겪기도 했다. 업체 매니저가 업무 외 일을 지시한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일은 2012년 어느 날부터인가 레닌이 하기로 돼 있었다고 한다.

“업체는 내가 요구를 거부할 것을 알고 나에게 그런 지시를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내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를.”

레닌은 이 사건으로 2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지만 곧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자신이 속한 노조인 유니손이 대학 교직원 노조인 유씨유(UCU), 소아스 학생회 등과 함께 연일 집회를 열고 정직 처분의 부당함을 알려낸 덕분일 테다. “그들은(ISS와 SOAS 대학 측은) 내가 더는 노조 활동을 하지 않기를 바랐겠지만, 그 사건으로 나는 더욱 단단해 졌다”고 레닌은 말했다.

정규직과 하청 비정규직이 하나의 노조에
유니슨 소아스 지부의 1사 1노조 정책…"왜 따로 노조를 하나요?"



소아스 청소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조의 이름은 유니손 소아스 지부(UNISON SOAS branch)다. 이 지부에 소아스 대학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과 ISS에 고용된 청소 노동자들이 함께 조직돼 있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들과 사내 하청 업체 노동자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에 가입해 조합원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셈이다.
유니손은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도 조직된 노조인데, 조합원이 130만여 명으로 영국 노동조합 가운데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이 노조의 기본 원칙은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고용된 회사가 공공 부문이든 민간 부문이든 관계없이,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것이다.

모든 조합원은 조직의 골간인 지부(branch)에 소속돼 조합원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한다. 노조의 규약과 실행 규칙에 따르면, 지부는 주로 하나의 주된 사용자(one principal employer)에게 고용된 노동자들, 즉 대개 사업장 단위로 조직이 된다. 설사 사업의 일부가 아웃소싱된 경우이더라도 그 사업장에서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경우에 이 노동자들도 조직해야 한다.

유니손 본조에서 아웃소싱 관련 업무 책임자인 데이브 존슨은 “민간 부문으로 아웃소싱된 사업, 대표적으로 청소 업무 등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을 지부 조합원 범주에서 배제하는 것은 노조 규약 위반”이라며 “이들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조직하지 않는 경우는 있을 수 있지만 이들을 지부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지부 규정 등에) 명시한 곳은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버밍험 근처 더들리 병원 유니손 지부에는 이미 아웃소싱된 청소, 세탁, 보안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병원에 직접 고용된 간호사, 조산원, 기술 인력, 행정 인력 등과 함께 조직돼 있다. 고용 사업주가 누구인지 관계없이 하나의 병원(혹은 다른 공공부문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라면 하나의 노조 지부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 사진 맨 오른쪽 검은 비니모자를 쓴 사람이 지부장 샌디 니콜. 대학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파업에 참가한 청소 노동자들. ⓒ이정희
유니손 본조의 데이브는 “광범위하게 확산한 공공 부문 아웃소싱 때문에 대부분의 유니손 지부는 (고용 업체 성격으로 따질 경우) 공공-민간 노동자들이 혼합돼 조직돼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고용 사업주에 따라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가 조금 차이가 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유니손 더들리병원 지부처럼 공동 지부장(joint branch secretary)을 두고 있는 지부도 있다. 하나의 지부로 묶여 있되, 2명의 사무국장이 직접 고용 노동자들과 아웃소싱 업체 고용 노동자들 각각 대표하는 구조이다.
소아스 지부장인 샌디 니콜은 “지난 2006년, 청소 노동자들의 임금이 3개월이나 체불되었다는 얘기를 접하고 바로 캠페인 및 조직화에 나섰다”며 “이들이 대학이 아닌 민간 청소 업체에 고용돼 있다는 사실이 우리 지부로 조직하는 데 어떠한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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