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새로운 직거래 모델을 만들어 주세요." 국민이 농식품부에 바라는 버킷리스트 정책 1위다. 지난해 농식품부가 직접 조사한 결과다. 그 다음으로 "대형유통센터를 건립해 유통단계를 축소해주세요.", "농산물 수급안정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부담을 줄여주세요."가 2위와 3위를 잇고 있다. 그러니까 국민이 농식품부에 바라는 숙원 'Top 3'가 모두 유통 문제에 몰려있는 셈이다. 그만큼 농산물 유통이 국민 생활에 중요하다는 절박한 메시지다. 중요한만큼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는 의미다.
지난해 박근혜정부는 '농산물유통 구조개선 대책'이란 걸 발표했다. 일찍이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과제는 정부의 140개 국정과제 중에서도 우선적 현안 3가지 집중과제로 선정된 것이다. 또 농산물 유통 3대 과제는 '과다한 유통비용', '높은 가격변동성', '산지-소비지 자격의 괴리'로 진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도매시장 개선, 농산물 직거래 확대, 농축산물 유통 계열화, 농산물 수급관리 체계화를 주요대책으로 삼고 있다. 한마디로 "생산자는 제값으로 팔고 소비자는 더 싸게 사는 건강한 유통생태계 조성"을 하겠다는 목표다.
돌이켜보면, 지난 정부들도 농산물 유통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산지유통시설 및 조직 육성, 도매시장 및 종합유통센터 건립, 물류합리화 등 농산물 유통 개선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농산물 유통의 비효율성,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성이라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농축산물의 유통개선은 본디 구조변화가 필요한 작업이다. 그래서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농협유통사업이 오랜 기간 공을 들였으나 여전히 생산자와 소비자로부터 비판을 듣는 이유도 다 거기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이번 박근혜정부의 농산물 유통정책의 차별성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유통단계 축소, 가격 안정화가 핵심내용인 듯하다. 구체적으로는 농협을 중심으로 산지부터 소비지까지 유통흐름을 수직화 하겠다는 것이다. 또 직거래 지원으로 다양한 유통경로 사이에 경쟁을 유발해 유통효율을 높이려고 한다. 소비자 참여, 민관협치 등도 아울러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정부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번 정부에서도 농산물 유통 현장의 부정적 목소리는 여전히 크고 잦다. 우선 산지유통에서 농협의 점유가 과도하게 커지면 경쟁을 통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걱정이다. 또 자칫 유통계열화가 공룡 같은 농협중앙회의 조직을 유지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고 대놓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농협의 효율, 생산성, 무엇보다 협동조합으로서 진정성을 먼저 확보하라는 따끔한 충고가 먼저다. 결국 다른 농정계획과 마찬가지로 유통계획에서도 목표치는 제시되었다. 하지만 실천 방법과 내용은 여전히 빈약해 보인다. 좀처럼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다지 새롭지도 않다. 결정적으로, 또 협동조합이 아닌 협동조합, 농협만 보인다. 우리 농산물 유통시장의 뿌리 깊은 난제다.
농산물 유통시장의 3대 난제, 비효율, 가격의 불안정과 비대칭
현재 국내 농축산물 유통비용률(유통비용/최종가격)은 평균 40~45% 수준이다. 손실률이 높은 채소류(무, 배추 등, 70%수준)와 과일류(50%수준)의 유통비용률이 높고, 축산물(40%~45%)은 전체평균과 유사하다. 저장성이 높은 식량작물(쌀, 감자 등, 20~30% 수준)은 감모로 인한 손실 등이 적어 유통비용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처럼 높은 유통비용의 문제는 가격 대비 큰 부피와 중량, 부패와 감모 등 높은 손실률, 분산된 생산과 소비주체, 소비의 고급화 등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유통경로 간 경쟁 부족, 유통단계별 비효율성이 보다 중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우선 도매시장 및 대형유통업체(31%) 경로가 85% 수준으로 과점 상태를 보이고 있다. 생산자단체에 의한 유통계열화(12%)는 대형유통업체에 비해 물류효율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민, 농가 등 생산자에게 유리한 직거래는 아직 초기단계로 4% 수준으로 유통비중이 저조한 게 현실이다. 청과물의 대표 경로인 도매시장은 5~7단계로 복잡한 게 문제다. 단계별 비효율성도 문제다. 산지·도매·소매 등 유통단계별로 장애요인이 곳곳에 존재한다. 또 산지의 경우, 생산규모의 영세성, 산지유통조직의 규모화·전문화 부족으로 소규모 출하단위로 물류 비효율도 초래된다.
65세 이상 고령농가는 1980년 6.7%에서 2010년 31.8%로 급증했다. 2011년 공동선별·공동계산(공동명의 판매후 이익 분할) 참여율은 34.2% 수준이다. 도매시장의 경우, 규제위주의 관리로 인한 도매시장법인·중도매인 등 주체 간 경쟁부족, 낙후된 시설, 각종 수수료 등으로 효율성이 저조하다. 소매시장의 경우에는 산지와의 효율적 연계를 위한 직거래 인프라가 부족하고 소규모 소매유통 등으로 높은 운송비가 부담스럽다.
높은 가격변동성은 가격과 소득의 불안정성으로 직결된다. 농산물은 공산품에 비해 가격변동성이 높은 상품이다. 특히, 저장성이 낮고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채소류(무, 배추 등), 청과류의 가격변동성이 높은 편이다. 높은 가격변동성은 非탄력적 공급·수요, 자연재해 등 공급충격에 취약한 농산물의 특성에 주로 기인한다. 그리고 경매제의 내재적 한계, 주요 품목 수급관리 미흡 등도 원인이다. 경매제도의 경우, 주로 단기 수급만을 반영하는 도매시장의 경매가격이 시장의 대표가격으로 작용함으로써 변동성이 더 커진다. 경매에 의해 가격이 결정됨으로써 당일 수급상황에 크게 의존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산지유통인 등 공급주체는 출하조절 등 투기적 행위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시장 실패 상황을 야기하기도 한다.
산지-소비지 가격의 非연동성으로 가격의 비대칭성도 상존한다. 산지가격이 오를 때는 소비지가격도 덩달아 상승한다. 하지만 하락할 때는 소비지가격이 충분히 하락하지 않는다. 가격의 비대칭성이 상존하는 부조리한 실물시장이 문제다. 산지 공급가격과 소비지 가격을 연동시킬 수 있는 생산자단체에 의한 유통계열화 및 직거래 시스템이 취약한 데서 기인한다. 지난 2010년 가격 폭등(400%)시에도 한살림 생협은 가격 급변동시 평시 계약가격 수준(2000원/포기)으로 판매할 수 있었다. 공급자 가격보전 체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목하고 학습해둘 사례다.
김영삼정부부터 이명박정부까지 과거의 정부들은 산지조직화룰 꾸준히 추진했다. 적지 않은 성과도 냈다.
하지만 핵심 산지조직인 농협의 조직화, 규모화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도매시장은 거래 공정성은 어느 정도 달성했으나 유통비용이 과다하고 운영시스템도 효율적이지 않다. 직거래는 아직 안전성 및 가격보증체계 등이 불안하고 부실하다. 지속적일 것이라는 믿음이나 보장도 약하다. 종합유통센터는 유통단계 축소에 일정하게 기여했다. 하지만 당초 목적인 도매기능은 많이 약하다. 수급안정 정책은 가격안정 효과가 기대에 못미친다. 농협계약재배는 사후적 땜질식 관리라는 비판마저 받고 있다.
로컬푸드, 가격안정기금 등으로 유통 패러다임 전환을
이같은 우리 농산물 유통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혁신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당장 로컬푸드(Local Food) 같은 근본적 가치에 주목해야한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먹거리 이동 거리(Food Mileage)를 최소화한다. 그래서 환경과 건강을 지킨다. 나아가 지역사회의 공동체활동, 도농상생을 촉진한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일찍부터 로컬푸드 확산을 위해 농민시장(Farmer's Market), 학교급식, 공공급식 등 민간 차원의 노력을 기울였다. 정부 차원에서도 "Know your farmer, Know your food" (당신의 농부를 알고 당신의 먹거리를 알자) 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차원의 지원이 적극적이다. 미국의 2013 농업법에는 로컬푸드 정책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Farmers market and local food promotion program)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일본의 로컬푸드운동은 '지산지소(地産地消)'로 함축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직접 판매하는 농산물 직매장이 활성화됐다.
한국은 주로 지역단위에서 비영리단체 또는 지자체가 주도하는 양상이다. 1994년 시작된 강원도 원주의 농업인 새벽시장이 효시에 가깝다. 당초 원주시농업경영인회가 하천둔치에 직거래 장터를 개설한 것이다. 2010년에는 원주시가 '농업인 새벽시장 개설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아예 임시시장으로 등록하고 점용허가를 발급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 전북 완주군의 '약속 프로젝트', 전남 나주시의 친환경 급식사업 등 지역 특성에 따라 다양한 로컬푸드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개설된 완주군 용진농협의 로컬푸드 직매장의 성공사례는 고무적이다. 관내의 소농, 고령농 등 농업인이 당일 생산한 농산물을 농협이 마련한 상설 매장에 직접 가져와 진열한다. 당연히 생산자실명제다. 그러면 농협이 판매를 책임진다. 완주 용진농협의 사례처럼 로컬푸드 직거래는 고령농과 영세소농의 판로 확대에 적합한 대안유통 채널이다.
이같은 로컬푸드 유형은 각 나라의 특성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공통적으로 '농민시장', '지역공동체지원농업', '학교급식', '농산물 직매장'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농민시장(Farmer's Market)은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농민이 소비지 도시 내의 특정 장소에 정해진 날짜에 직접 가지고 나와 판매 하는 장터를 뜻한다. 미국에는 농민장터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994년 1755개에서 2011년 7174개로 매년 전국적으로 1000개씩 증가하고 있다.
공동체지원농업(CSA,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은 소비자가 생산자와 계약을 해서 계약기간 동안 농산물을 배달받는 시스템이다. 공동체지원농업의 원형은 일본의 테이카이(teikei, 제휴)에서 시작됐다. 이후 유럽을 거쳐 미국에 도입되면서 본격 활성화되었다. 미국은 현재 전국에 1000개소가 넘는 CSA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철꾸러미사업'이라는 한국적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된 다품종 소량으로 생산된 제철 농산물을 하나의 꾸러미 형태로 '꾸려' 회원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하는 방식이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의 '언니네 텃밭', 충북 오창농협의 '자연이랑', 전남 남평농협의 '드강푸른물', '흙살림 꾸러미' 등이 대표적이다.
학교급식은,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에 소재한 학교의 급식 식자재로 공급하는 사업이다. 미국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그리고 비영리단체 등이 연계해 FTS(Farm to School) 학교 급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급식을 지역농업과 유기적으로 긴밀히 연결하는 게 특징이다. 학생들에게 지역에서 생산한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지역농민들에게는 판로 확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2013. 3월 기준, 50개 주의 1만2429개 학교가 FTS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약 1300만 달러의 지역 농산물이 거래되는 시장규모다.
우리나라는 역시 주로 지자체가 주도하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된 친환경 농산물을 학교급식에 공급하고 있다. 전남 나주시는 2003년 7월 우리나라 최초로 학교급식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국산농산물 소비 촉진'과 '아이들의 건강권'을 지켜내자는 목적이다. 조례는 우리 농산물 및 친환경 우수 농산물만을 학교급식에 이용할 수 있도록 법제도적 근거를 만들고 그에 따른 재정적 지원을 하자는 게 골자다. 농협나주연합사업단이 학교급식의 운영 및 공급주체로 책임을 맡고 있다.
농산물 직매장은, 농업인이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 내외의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개설된 시설이다. 일본의 경우, 지산지소 운동이 확산되면서 지역농산물 직매장이 전국에 1만7000여 개(2009년 기준)가 운영되고 있다. 연간 판매금액은 8800여 억 엔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대개 '로컬푸드 직매장'이라 부른다. 농업인이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의 상설매장에 가지고 와서 직접 진열하고, 농협 등 직매장 운영주체가 판매대행을 해주는 방식이다. 전북 완주군의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이 성공적인 선도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가격의 불안정과 비대칭이라는 농산물유통의 구조적 난제를 해소해줄 농산물가격안정기금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지역마다 농산물가격안정기금 조례가 속속 제정되고 있다. 충북 음성군은 2012년 1월 전국 최초로 '최저가격보장을 위한 농축산물 가격안정기금' 조례를 제정했다. 지난 2010년 8월 조례제정 운동 선포식으로 시작, 주민 발의안을 낸지 2년만의 성과다. 이로써 음성군 농민은 쌀, 고추, 복숭아, 인삼, 한우, 수박 등 6개 농축산물의 도매시장 가격이 최저가격 이하로 떨어질 경우 가격안정기금의 지원을 받게 된다. 이때 농산물 최저 가격은 3년 간 도매시장 가격과 농촌진흥청에서 조사한 생산비, 현지 생산비를 참고, 매년 상반기 농·축산물 가격안정기금운용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차액 지원 농작물은 6600평방미터 이내이며 한우는 연간 출하 30마리 이내로 제한된다. 이미 1차로 10억 원의 기금을 확보했고 2017년까지 총 50억 원의 예산을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다. 음성군의 매년 10억 원의 기금을 출연하고 음성군내 협동조합도 기금 출연에 동참한다. 조기 시행 시점을 2015년 말로 목표하고 있다. 현재 음성군의 뒤를 이어 충남 부여군, 충북 증평군, 충북도청 등이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마케팅보드(유통위원회)도 농민들의 숙원이다. 마케팅보드(유통위원회)는 영국, 영연방국가를 중심으로 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되었다. 품목별 마케팅보드는 유통명령, 유통협약, 자조금제도등과 연계해 대자본 중심의 농산물 시장에서 농민의 주체적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적극적 제도다. 이같은 마케팅보드는 국가가 관리하거나 국가가 승인한 실체로서, 농산물의 구매 혹은 판매의 통제에 대한 합법적 권리를 부여받은 조직이다.
우리나라는 WTO협정 체결 등으로 2004년 이후 감축대상보조(AMS)를 1조4900억 원으로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향후에도 계속 감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정부 주도의 농업보조금 위주 개별농가 지원책은 지속되기 어렵다. 이제 우리도 뉴질랜드(키위), 캐나다(버섯), 네덜란드(원예) 등 농업선진국들처럼 마케팅보드, 통합마케팅조직에 배타적으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그래서 해당품목 생산자들이 자조금사업과 전국단위 수발주 통합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생산자단체 의무가입과 의무자조금 납부와 관련한 입법 사례가 있기는 하다. '축산자조금의 조성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농수산 자조금의 조성 및 운용에 관한 법률' 등이다. 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서도 다른 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는 해당법의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선진농업국처럼 법에 근거해 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 통합마케팅조직에 배타적인 권한과 책임을 부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국내외 선례를 감안할 때, 지역연합과 연계해 품목사업을 육성하는 생산자조직화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이다. 외국은 기초생산조직부터 품목별로 발전한 반면, 우리는 농가와 농협 모두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게 특징이다. 따라서 양곡, 원예, 축산 등 전 품목을 포괄하는 지역연합을 중심으로 품목별 마케팅 보드와 전국연합을 육성하는 방안이 적합하다. 정부도 이를 중심으로 통합패키지형 정책사업을 추진하는 방안이 효과적일 것이다. 이처럼 생산농가의 협동적, 연합적 사업조직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정책은 농협의 경제사업 활성화 정책과도 서로 부합되는 것이다.
농민은 국민의 생명을, 국민은 농민의 생활을
우리나라의 농산물 유통 문제점은 고질적이고 구조적이다. 하지만 의욕적인 논리는 난무하나 구체적인 실천은 부족하다. 고민이 현장에서 괴리되었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분석과 실험이 요구된다. 선진 외국의 사례도 무조건 답습할 게 아니다. 외국과 다른 국내 여건과 과학적으로 비교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단순한 유통단계 축소로는 안 된다. 유통비효율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유통주체는 당장의 가격, 유통마진 보다 생산자 및 소비자의 만족도를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전에 생산자와 소비자의 의식부터 개선되어야 한다. 사업적 책임감과 사회적 책무도 더 높여야 한다. 최소한 불법과 편법의 도덕적 해이는 시장에서 근절해야 한다.
농협은 주어진 역할에 비해 보여준 성과는 미흡하고 실망스럽다. 여전히 사업구조와 전략의혁신할 필요가 상존하고 있다. 소매분야의 하나로마트 계열화, 소농을 위한 로컬푸드 활성화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다. 지엽적인 노력에 불과하다. 본디 유통의 구조는 소비자 요구에 따라 결정된다. 재편이나 혁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농산물 유통은 더할 나위가 없다. 농협의 혁신방법도 다르지 않다. 합리적인 소비자와, 민주적인 조합원의 요구와 주문을 수용하면 된다.
근본적으로 우리 국민들은 우리 농산물을 선호한다. '신토불이'는 애국적이고 민족공동체적인 정서의 발현에 다름 아니다. 이런 충성도 높은 소비자에게 정직하고 안전한 우리 농산물을 공급할 책임은 오로지 생산자와 유통주체들에게 먼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농산물 유통시장에는 문제가 산적해있다. 속성도 구조적이다. 농업 생산의 영세성, 산개된 산지, 소모적 경쟁의 유통상 등이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개선대책이 조직화, 규모화, 대안유통경로 등에 초점이 맞춰진 이유일 것이다. 인위적인 규제나 지원보다는 시장에서 합리적이고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다양한 유통단계를 육성하겠는 게 핵심이다. 결론적으로 농산물 유통혁신은 유통 단계 축소 정도의 단순한 처방 수준은 뛰어넘어야한다. 강력한 수급안정 시스템 구축,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한 새로운 유통질서와 패러다임을 개발하는 게 먼저다. 덧붙여 유통현장에서 자금력을 가진 일부 중간상인들의 과도한 밭떼기 전매, 부당이익을 노리는 고의적 출하조절 등 고질적 병폐를 근절해야 한다. 또 농축산물 가격을 단지 물가안정을 위한 방패막이 정도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소비자들의 자세와 태도도 책임이 크다. 품질의 차이를 외면한 채 오로지 싼 물건만 찾는 이기적인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 농민의 피와 땀, 유통주체들의 노동의 댓가인 고품질 농산물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그에 상응하는 가격을 기꺼이 지불하려는 소비의식을 가져 야 한다. 결국 유통도 대안이 필요하다. 그래서 직거래, 농산물가격안정기금, 자조금, 마케팅보드 같은 '스스로, 그리고 서로 살리는' 협동과 연대의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대안유통 경로에서 활로를 찾는 게 상책이다.
그렇게 5% 농민 생산자는 95% 도시민 소비자의 생명을 책임지고, 95% 도시민 소비자는 5% 농민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지면 된다. 농민의 생활과 국민의 생명을 상호호혜적으로 등가교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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