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방한 예정인 사사키 아타루는 국내 독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송태욱 옮김, 자음과 모음 펴냄)에서 상당히 '편파적으로’ 조르조 아감벤을 평가한다. 아마 국내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책 <열림 : 인간과 동물(L’aperto : L’uomo et l’animale)>(Bollati, 2002)에서 아감벤이 세계의 종말을 묘사하는 어느 그림을 설명하며 세계의 종말과 인간의 동물화를 등치시킨 것을, 철학자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한다. 더 나아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역사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고 떠들어대는 아감벤 부류들, 가령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아감벤이 논의의 단초로 삼고 있는 알렉상드르 코제브를 싸잡아 그들의 유치한 태도를 꼬집는다.
그의 평가 내용이나 그에 대한 논박이 이 글의 관심사는 아니다. 오히려 옮긴이가 후기에서 다른 내용을 제쳐두고 사사키가 지나가면서 잠깐 언급했던 것을 굳이 끄집어내고 부각시킨 이유가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의 평가 내용이나 그에 대한 논박이 이 글의 관심사는 아니다. 오히려 옮긴이가 후기에서 다른 내용을 제쳐두고 사사키가 지나가면서 잠깐 언급했던 것을 굳이 끄집어내고 부각시킨 이유가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래서 아감벤을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저자의 편파적인 평가가 마음에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감벤을 알아야 대화에 낄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을 때, 이 저자의 단편적이고 편파적이기 그지없는 한마디는 아감벤에 대한 평가의 장에 공공성을 가져온다. 편파적인 세상에서의 공정함은 또 다른 편파밖에 없을 테니까."(같은 책, '옮긴이의 말’, 284~285쪽, 강조는 필자)
달리 말해 그 수입과 소비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이들이 존재하고, 누구나 시대의 교양처럼 그 수입품에 대한 사용 후기를 남겨야 하는 강박적 상황이 발생한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이 연루의 장과 그 방식을 통틀어 '담론'이라 부른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가끔 일어나는 '논쟁'이란 수입품의 원산지 오기를 적발하고 그 연루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끝나거나 '현실 적용'과 '실천'이라는 잣대로 성급하게 그것의 진가를 결론짓고 기존의 신념을 되풀이하는 것에서 중단되기 일쑤다.
아니면 서구 이론의 '공습' 혹은 '폭격'으로 불러야 그 실감이 더할지도 모르겠다. 저 옮긴이에게서는 마치 아감벤이라는 이론의 폭격을 피해 방공호에 대피해 있다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사사키라는 일본발 공습으로 해방의 순간을 맞이하는 모습이 떠올려지지 않는가? 이 공습/폭격과 해방은 이론의 '출처'를 묻고 따지는 방식으로, 즉 '미국발', '유럽발' 등등으로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중이다.
1. 아감벤 현상-이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할 때, '한국 공습 원년'에 해당하는 2008년 자크 랑시에르와 더불어 우리 앞에 도착한 아감벤과 그를 둘러싼 열풍(?)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물음은 인식론의 문제이자 방법론의 문제처럼 보인다. 이 열풍 자체가 또 하나의 현상이자 이론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어떤 비평의 방법을 취하느냐에 따라 말이다.
몇 가지 길을 사람들은 이미 노정하고 있다. 우선 아감벤을 연구자의 모범으로 삼고 그의 '해석학적 놀이'를 함께 즐기는 길이 존재할 것이다. 아이가 장난감(미니어처)를 가지고 노는 것 마냥 말이다. 아감벤이 필경사 바틀비를 예로 들어 '~하지(되지) 않음의 잠재성/능력'을 부각시킨 것처럼, 잠시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거나 눈을 감고서 그 무위의 상태에 머무르거나 잠재력의 실현을 거부하는 방법이다. (흥미롭게도 독일에서 전자책으로 출간된 한병철의 소책자 제목이 <두 눈을 감으세요(Bitte die Augen schließen)>다. 그는 실시간으로 아감벤을 구체화하거나 의도와 달리 그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때 사물을 바라봐야 하는 목적으로부터 눈은 자유로워지고 시쳇말로 '목적 없는 수단'에 머무르게 된다. 한마디로 이 길은 그의 '진의'를 왜곡하지 않기 위해, 저 열풍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거나 거리를 두고 성마른 현실 적용과 평가를 일시적으로 '중단'시키거나 최소한 유예시켜 본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오히려 특정한 이론가의 수용이나 독해 방식에서 한국 사회의 징후를 진단하기도 한다. '아감벤 원년'인 2008년 한 주간지에서 (☞기사 바로보기 : '내몰린 자들이야말로 체제의 얼굴이다', <시사인> 25호(2008년 3월 4일) 랑시에르('몫 없는 자')와 아감벤('호모 사케르')를 함께 묶어 소개하고 있는 세태로부터 '이론 수입국'의 징후를 읽어내고 있는 이택광의 비판적 논평처럼 말이다.
"일부 언론에서 자크 랑시에르와 조르조 아감벤을 같은 특집으로 다뤘는데, 이 둘을 같은 맥락에 놓고 '같은 철학자'로 보는 관점 자체가 '이론 수입국' 한국의 현실을 드러내는 징후 같다. 엄밀히 말해서 이 둘은 서로 다른 철학적 맥락에 놓여있는 이론가들이고, 뚜껑을 열어보면 별반 관계가 없는 철학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랑시에르나 아감벤이나 모두 '이단'이긴 하지만, 아감벤에 비한다면 랑시에르는 훨씬 현실정치에 가까운 사람이다. (…) 말하자면 현실에 적용하기에 그[아감벤]의 주장은 다소 사변적이다. 글로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위력을 새삼스럽게 목격하는 요즘에 '자본주의는 없다' 같은 아감벤의 발언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눈에 뻔히 드러나는 단순한 사안을 너무 복잡하게 다룰 필요는 없는 것이다. (…) 한국에서 아감벤이 읽히는 방식은 다분히 안토니오 네그리의 렌즈를 통한 건데, 이런 아전인수식 읽기와 아감벤의 진의는 엄연히 다르다."
('이론수입국의 징후', <무례한 복음>(이택광 지음, 난장 펴냄), 211~212쪽)
('이론수입국의 징후', <무례한 복음>(이택광 지음, 난장 펴냄), 211~212쪽)
하지만 이러한 염려(?)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감벤의 서명이 새겨져 있는 개념들, 호모 사케르를 비롯하여 무젤만(아사 직전 상태의 수용소 수인들을 뜻하는 은어 <편집자>), 예외상태, 강제 수용소 등은 표제화되어 널리 통용되었다. 특히 국가와 공동체로부터 배제되거나 추방당하는 이에게는 죄다 '호모 사케르'라는 새로운 주어가 따라 붙었다. 그 술어에는 아무런 새로운 내용이 더해지지 않고서 너도나도 선언되거나 선언하였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이다!"
이 지점에서 그러한 세태를 비판하고 교정해볼 수 있겠다. 최근에 번역 출간된 <사물의 표시>(조르조 아감벤 지음, 양창렬 옮김, 난장 펴냄)에서 아감벤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자신의 방법론을 뒤늦게 아주 명료하게 제시한 것처럼 말이다. 이를테면 호모 사케르가 처해있는 주권자가 결단하는 법의 '예외상태'란 "법질서에 포함된 자와 법 바깥에 있는 호모 사케르 사이의 수평적 나눔의 선이 관건이 아니라, 이 나눔의 선이 어떻게 한 인간을 수직적으로 가로지르는가, 즉 법의 차원에서는 시민 또는 법적 주체로 다뤄지던 자가 법이기를 그친 법의 차원에서는 어떻게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가 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양창렬, '조르조 아감벤',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난장 펴냄), 227쪽)라고 명시하는 식으로 말이다.
한마디로 특정 공동체 바깥으로 상시적으로 배제된 타자들과 그들을 환대하는 윤리가 아감벤의 관심사가 아니라, 차라리 한때는 시민이었던 자가 돌연 시민으로 대우받지 못하게 만드는 법이나 공동체의 구성적 원리가 문제라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이다"(<호모 사케르>(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진우 옮김, 새물결 펴냄), 232쪽)라는 선언이 함축하고 있는 그 '진의'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방법만으로는, 즉 아감벤에 대한 세심한 독해를 주문하거나 그의 사변을 현실에 적용할 때 발생하는 난점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는 이제 '아감벤 현상'이라 부를 만한 것을 다루는 데 충분하지 않다. 물론 이 현상이 전개되는 양상이나 그 실감은 작년 방한한 지젝이나 바디우의 것과도 또 다르다. 당장 검색 엔진으로 아감벤의 공습이 시작된 이래 일어난 '촛불 시위', '용산 참사', '밀양 송전탑'을 호모 사케르와 연관 검색해 봐도 수십 개의 블로그 글이나 기사들의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배제와 추방의 '현장'에는 늘 그의 표제어가 유령처럼 따라다닌 셈이다.
가령 어느 시인은 인터뷰에서 시인의 마음가짐으로 망자를 애도하기 위해 용산 참사 현장에 나갔던 게 아니라, 자신 역시도 속해 있었고 여태껏 안전하다고 여겼던 '중산층'이라는 보루가 언제든 상시적으로 국가에 의해 붕괴될 수 있다는 그런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호모 사케르도 이와 비슷한 궤적을 그린 게 아니었을까? 앞서 언급했던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에 처하게 될 운명'을 '(국가폭력에 의해) 중간계급조차 상시적으로 붕괴할 운명'과 등치시키고 공동의 것으로 일시적으로나마 전유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공동 운명을 '박탈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축적'(데이비드 하비)에서 파생된 결과로 부르든 혹은 다른 것으로 분석하든간에, 호모 사케르는 그간의 다른 호명 도구와 달리 우리의 환대를 기다리는 공동체 외부의 타자가 아닌 각자가 낯선 형태로 들이민 자신의 불안을 고스란히 투영한 것에 다름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다음 칼럼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호모 사케르'라는 형상은 이제 여타 인간(homo)의 형상들(호모 파베르나 호모 이코노미쿠스, 호모 레지스탕스)과 나란히 거론되고 '갑을관계' 혹은 '주인·노예관계'처럼 한국 사회의 모순을 설명하는 관용어로 널리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기사 바로보기 : 조국, "'멍게'로 살 것인가", <경향신문>, 2014년 2월 18일) 본래의 맥락이나 문제 설정은 온데간데없고 다만 '공통적으로 사용'될 뿐이다.
이를테면 작년 독일의 각종 신문은 <리베라시옹>에 실린 아감벤의 번역 기고문으로 떠들썩했다. '라틴제국이 반격한다!(Que l'Empire latin contre-attaque !)'(☞기사 바로보기)라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둔갑한 이 기고문은 곧장 독일 언론의 표적이 되었다. "삶, 문화, 종교의 형태들 사이의 실재적인 동류성을 포기하고서 엄격하게 경제적인 기반 위에 존재하길 바라는 유럽"에서 유럽 연합의 위기의 원인을 찾으려 했던 그의 의도는 완전히 무시되었다. 대신 '(선진) 라틴 문명 대 (미개한) 게르만 문화'라는 낡은 도식이 부활했다고 보는 관점에서 시작해 그의 출신 성분인 '가톨릭 라틴주의'에 근거를 두고 '반프로테스탄트주의'와 '반독일주의/반미주의'를 비판하는 기사도 등장했고, 심지어 그를 '베를루스코니의 철학자'로 폄하하는 칼럼까지 실리기도 했다. 물론 독일 언론과 나눈 인터뷰에서 그가 밝혔듯, 프랑스 언론이 과장·왜곡한 측면 탓에 정작 자신의 주장의 '진의'가 오해받은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저 기고문을 찬찬히 읽어보면 전후에 알렉상드르 코제브가 드골에게 제출한, 독일 제국의 경제적 성장으로 (라틴)민족국가가 몰락할 것이라는 경고를 담은 문건 '라틴제국(Empire Latin)'이 주장의 핵심 근거로 자리잡고 있다. 즉 유대인 수용소와 관타나모 수용소를 유사한 것으로 병치시켰던 것처럼, 그는 프로테스탄트적 독일제국 대 가톨릭적 라틴제국(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삼국의 통합제국)의 상황이 지금 유럽 연합 내의 북남 갈등에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고, 그러므로 코제브가 제출한 저 경고와 대안에 닮아있는 것을 지금의 정치적 현실에 어떤 식으로든 부과하길 시도해야 한다고 분명히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엇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아감벤의 진의와 그에 대한 왜곡과 오해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
만약 한국의 아감벤 현상과도 또 다른 독일의 아감벤 현상을 '반 아감벤주의'라 부를 수 있다면, 독일의 한 신문과 나눈 아감벤의 인터뷰에서 그 배경을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라울프 :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법체계 전체의 확장과 법규제의 엄청난 증가를 목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 매일 더 많은 법들이 만들어지고, 이를테면 독일인들은 그들이 [행정부와 의회가 있는] 베를린보다 [연방 헌법 재판소와 연방 재판소가 있는] 칼스루어의 통치를 훨씬 더 많이 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아감벤 : […] 오늘날 우리는 아노미와 무질서라는 극단이 어떻게 규제라는 극단과 완벽하게 공존하고 있는지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An Interview with Giorgio Agamben', In: 《German Law Journal》, Vol. 5 No. 5, pp. 611~612, 번역은 필자)
말하자면 2002년 급작스럽게 아감벤의 독일어 번역이 증가한 이래 기본적으로 현행 법질서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단적 사유로 많은 오해를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걸 '아감벤 현상'이라 부르고, 이 왜곡과 오해의 장소를 그의 진의가 '사용'에 노출되어 그 둘을 구별하기 힘든 장소로 보는 게 더 유용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을 보편적 규칙을 특수한 개별 사례에 적용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아감벤 자체가 '세속화'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그러한 세속화, 아감벤의 정의에 따르면 '공통의 사용'으로 되돌려 놓는 이 세속화를 가능케 만드는 달라진 삶의 형태를 조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와 반대로 세속화는 자신이 세속화하는 것을 무력화한다. 일단 세속화되고 나면, 사용할 수 없고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 그 아우라를 상실한 채 [공통의] 사용으로 되돌려진다. 이 둘 모두 정치적 작업이다. 환속화가 권력의 실행을 성스러운 모델로 데려감으로써 권력의 실행을 보증한다면, 세속화는 권력의 장치들을 비활성화하며, 권력이 장악했던 공간을 공통의 사용으로 돌린다."(같은 곳)
왜냐하면 아감벤이 현실에 적용 가능한 '규칙'이란 애초부터 문서화되거나 명시된 게 아니라 처음엔 그저 '생활방식' 혹은 '삶의 형태'와 동일시됐다고 말하듯, 새로 수입된 이론을 곧장 현실에 적용하는 버릇은 사후적으로 교정되거나 계몽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형태'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혹자는 '이론 수입국'의 징후라고 불렀던 것뿐이다. 이처럼 한 탁월한 개인과 그의 말글이 현상의 지위에까지 오르는 삶의 형태를 설명하는 방식은 여럿 존재할 테지만, 이 글에서는 아감벤이 뒤늦게야 자신의 방법론으로 천명한 것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
이 길은 두 차원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아감벤이 괴테를 따라 "패러다임인 한에서 현상들은 이론이다"('1장: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 <사물의 표시>, 44쪽)라고 단언했듯, 그의 방법론인 '패러다임'을 그를 둘러싼 현상들에 적용하여 역으로 그에 대한 '인식 전환'과 '인식 가능성'을 도모해보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 그의 사상이라는 이데아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이데아는 먼저 감각적으로 식별 가능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여기가 곧 아감벤 현상이 이론이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그가 여타 유럽 정치철학자들과 달리 '비운동권' 출신이라는 점, 다시 말해 비운동권 정치철학자임에도 우리가 그에게 기대하는 게 동일했다는 점이 부각될 필요가 있다. 앞서 소개한 기사에서 68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이것을 계기로 자신의 스승인 알튀세르와 '인식론적으로 단절한' 랑시에르와, 같은 해 프랑스 시골의 어느 세미나에서 하이데거에게 사사받았던 아감벤을 패키지로 묶어 소개했듯이 말이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이 차이가 아감벤 현상과 그의 육성 사이의 간극이나 식별이 불가능해지는 지점을 상당 부분 명료하게 밝혀 줄 것이다.
2. 패러다임 혹은 아감벤 곁에 세우기(para-deigma)
우선 패러다임.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 무젤만, 예외 상태, 강제수용소 같은 형상들이 (…) 분명히 실증적인 역사 현상"(1장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 <사물의 표시>, 13쪽)임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은 그것들을 '패러다임'으로 다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기능은 "더 광범위한 역사-문제틀적 맥락 전체를 구성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같은 곳)라고 덧붙인다. 과연 그에게 패러다임이란 무엇일까? 늘 그렇듯 그는 토마스 쿤과 푸코의 패러다임 개념을 서로 견주고 다시 플라톤과 아리스테텔레스로 되돌아가 칸트를 우회하여 패러다임을 다음처럼 정의 내린다.
"요컨대 패러다임은 감각적인 개별 형상이면서도 모종의 방식으로 에이도스, 즉 정의되어야 하는 형상 자체를 포함하고 있다. (…) (플라톤이 자주 인식의 패러다임으로서 사용하는) 상기에 있어서 감각적 현상이 그 자신과의 비-감각적인 관계에 놓이고, 이런 식으로 다른 것 속에서 재-인식되듯이, 패러다임에 있어서도 단순히 어떤 감각적 유사성을 인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조작을 통해 유사성을 야기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 때문에 패러다임은 결코 주어진 것이 아니며 '비교하기', '곁에 세우기', 특히 '보여주기', '제시하기'를 통해 생겨나고 발생한다. (…) 이데아는 패러다임으로서, 즉 그 고유한 이해 가능성의 한복판에서 고려된 감각적인 것이다. (…) 변증술이 도달하려는 무-가정의 것은 무엇보다 감각적인 것을 패러다임으로 사용해야 열린다."
(<사물의 표시> 33쪽, 37쪽, 강조는 필자)
(<사물의 표시> 33쪽, 37쪽, 강조는 필자)
더 흥미로운 점은 앞서 '아감벤 현상'이라 불렀던 것 또한 그의 패러다임론이 지나는 자취를 그대로 따라간다는 점이다. 마치 아감벤 곁에 서려는(para-deigma) 것 마냥 말이다. 아감벤이라면 이것을 괴테를 따라 '원현상'(Urphänomen)으로 부를 것이다.
원현상은 각각의 현상에서조차 인식 가능한 최종 요소이며, 패러다임으로 스스로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때문에 저 유명한 괴테의 격언은 현상들 너머를 탐구해서는 안 된다고 확언한다. 패러다임인 한에서 '그것들[현상들]은 이론이다.' (같은 책 44쪽)
얼마 전 동계 올림픽에서 여자 피겨 결승전 중계와 판정 논란을 보던 많은 이들이 올림픽이 기존의 '국가주의'와 '국민주의'로부터 이탈해가고 있음을 '여신 김연아'를 통해 '미감적으로' 간파했던 것처럼, 혹은 비록 다른 '국대'(국가대표)임에도 빅토르 안/안현수라는 탁월한 개인을 응원하면서 그가 추방(?)된 저간의 사정에 대해 공분하고 '국가에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고까지 생각하는 데까지 가닿은 것처럼, 그의 방법론은 이미 공통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달리 말해 우리가 보통 '일반화의 오류'나 '환원론'이라는 장벽으로 주저하면서도 특수한 개별 사례로 전체적인 형상을 인식하려는 버릇이나 충동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 때, 아감벤은 주체와 객체, 곧 연구자/일반대중과 연구대상 사이를 구별짓는 도식을 폐기하고 '패러다임의 존재론'이라는 그럴싸한 대답을 안겨주고 있다. 물론 그는 연구자라는 정체성에 국한시키고 있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누군가 패러다임성이 사물 안에 있는지 연구자의 정신 안에 있는지 묻는다면, 나는 그 질문이 의미없다고 답하겠다. 패러다임에서 문제가 되는 이해가능성은 존재론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인지적 관계가 아니라 존재에 준거한다. 패러다임적 존재론이 있는 것이다. 월러스 스티븐스의 「장소 없는 묘사」라는 제목을 단 시구만큼 그 내용을 빼어나게 정의한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 보이면 그리 있을 수 있으리,
태양이 그리 보이면 그리 있듯이.
태양은 하나의 예. 그리 보이기에
그리 있으니, 그리 보이는 것에 모든 것이 그리 있구나. (같은 책 46쪽)
더군다나 빅토르 안/안현수라는 탁월한 개인이 다른 곳도 아닌 올림픽에서 미감적으로 가시화시켜 보여준, '국적과 무관한 시민권'이나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에 대한 관념(이데아)을, 즉 아감벤의 표현대로라면 유배된 탁월한 개인이 유배지에서 다른 시민권을 획득했을 뿐 아니라 이곳의 (성남시) 시민권도 역으로 재획득하는 원현상을 사람들은 실제로 자유로이 사용하기도 한다. 가령 어느 신문 칼럼(☞기사 바로보기 : '한국 여성은 왜 우월한가?' <한겨레>, 2014년 2월 18일)은 여자 쇼트트랙의 탁월함을 예로 들며 '한국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얼핏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견해를 입증하기 위해 사회생물학적 진보주의와 국가주의/국민주의의 혼종된 관념을 끌고 왔다. 그것을 비판하는 데 저 암묵적으로 합의된 관념이 활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아감벤이 세속화되고 있다는 얘기는 운동권 문법의 관용어구인 '이론과 실천의 괴리'나 '이론의 현실에의 적용'을 이탈하는 다른 경로를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이론과 그를 둘러싼 현상 사이의 구별이 불가능해지는 지점, 혹은 차라리 그가 의도적으로 보일 만큼 자유로운 사용에 자신의 이론을 노출시키고 그것을 패러다임론이라는 방법론으로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그에게 '환원적'이라는 비판을 궁색하게 만들고 '현실 적용(불가)'라는 주박을 덧씌우기 힘들게 만든다. 그는 늘 이미 앞서 사용되고 있다.
3. (비)'운동'(권)
그렇다면 여기에는 기존의 '운동권' (출신)과는 또 다른 그의 출신성분(?)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운동이 예전 같지 않게 된 저간의 사정과도 관련 있지 않을까? 달리 묻자면 과연 한국에서의 아감벤 수용사(?)가 확연히 보여주듯 그를 여타 유럽 좌파 철학자들과 같은 자리에 두고 비슷한 기대를 해도 되는 걸까?
이 기대는 지금껏 그가 '비운동권' 출신이라는 점을 사소하게 취급하거나 전혀 고려에 두지 않았던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그가 1968년 5월에 파리 시내를 뒤흔들어 놓았던 총파업의 끝자락에 참여했지만 그가 같은 해에 노정했던 발자취, 즉 아테네-파리-뉴욕-로마-르 토르를 따라가 보면 그 의문이 풀린다.
보통 아감벤이 1966년과 1968년 두 차례 남부 프랑스 남부 지방 르 토르(Le Thro)의 하이데거 세미나에 참석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세미나를 1968년의 '(비)운동'이라는 맥락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8년의 세미나는 그의 지적인 세계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였다.
처음에 그는 서구 철학의 기원인 그리스 아테네를 방문했고, 5월에는 파리의 시위에 참여했다. 그리고 곧장 뉴욕으로 건너가 헨리 키신저 교수가 열었던 하버드 대학의 국제 세미나에 합류하여 당시 철학과 조교였던 스탠리 카벨의 '할리우드 영화로 보는 미국문화'에 대한 강연을 듣기도 했다. 스물여섯의 청년 아감벤은 키신저의 강연이 끝날 무렵 키신저가 정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시 고향인 로마로 돌아가 며칠 후 짐을 싸들고 하이데거와 조우하게 된다. 정치적으로 아주 복잡하고 모순적인 참여를 했던 독일의 철학자, 하지만 전후 재야에 묻혀 살던 그 철학자 말이다.
아감벤이 회상하듯 이 세미나 체험은 그의 철학 이력에 결정적이었다. 세미나가 끝나고 학생들이 그를 에워싼 채 질문세례를 퍼붓자, 하이데거는 아감벤의 필생의 화두가 될 말을 한다. "자네들은 내 한계를 알겠지만, 나는 모른다네."(David Kishik, 'Introduction', In: 《The Power of Life: Agamben and the Coming Politics》, Standford, 2012, pp. 1~2)
"수년 전 그는, 사상가의 위대함이란 자신만의 내적 한계에 얼마나 충실한가를 통해 측정될 수 있다고 쓴 적이 있다. 그리고 이 한계를 알지 못하는 것은 (…) 그 존재가 드물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비밀스런 선물이라고도 썼다. (…) 사유란 그것이 이 숨어 있음 안에서 길을 잃을 때에만, 또 더 이상 그 사물을 볼 수 없을 때에만 사물에 근접해간다. 이 변증법적인 숨어있음/드러남, 망각/기억이야말로 그 안에서 명령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말이 도래할 수 있고, 주체에 의해 단순히 조종되지도 않는다(나는 명명백백하게 내 스스로에게 영감을 불어 넣을 수 없다)."
(조르조 아감벤, 《Idea of Prose》(Suny Series),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5년, 59쪽, 번역은 필자)
(조르조 아감벤, 《Idea of Prose》(Suny Series),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5년, 59쪽, 번역은 필자)
이탈리아 바깥에서 이러한 운동의 흐름을 들뢰즈와 가타리는 '삶의 형식'을 바꿔놓는 자족적인 것으로 운동의 새로운 정의를 마련하기도 했다. 즉 "적어도 '운동'의 주요 경향은, 어떤 이슈가 없으면, 적이 없으면 – 역으로 피억압자가 없으면, 어딘가에 '불행'이 없으면 – 싸울 수 없는 이러한 부정적/반응적인 논리와는 무관하다. 조르조 아감벤의 말처럼 벌거벗은 생명과 삶의 형식을 분할하는 것이 하나의 권력 기술이라면 또한 그것이 근대의 대표 논리를 기축으로 하는 정치형태와도 이어진다면, 그것이 사생활과 활동생활 그리고 쾌락과 운동을 분열시키는 무겁고 힘든 윤리주의로 이어진다면 오히려 '운동'은 명쾌하게 파격적 삶의 방식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파격의 시공간을 구성함으로써 그러한 분열을 극복하려 한다는 것이다."(사카이 다카시의 <통치성과 자유>(오하나 옮김, 그린비 펴냄), 24쪽)
하지만 문제는 비르노가 정식화했듯 80년대 등장한 신자유주의의 '역전된 혁명'이 이 운동의 힘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소진시켰다는 데 있다. 마치 푸코가 통치성의 위기로, 즉 '안전하게 자유를 누리도록' 최소한의 통치만을 추구하는 자유주의 통치술의 위기로 인민 대신에 등장한 '인구'라는 새로운 주체와 그를 관리하는 '생명관리정치'(삶정치)를 분석하는 강의에서 결국 전후 독일과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분석하는 데 많은 논의를 할애하고 있는 것처럼, 운동의 경험이 전무한 비운동권 아감벤은 80년대 이후 유럽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공간의 탄생을 목도하고 그 어떤 운동권보다 유연하게 대처한 것이다. 가령 이미 소진된 고유명사이자 정작 운동의 당사자들이 아무런 정의도 내리지 않았던 '운동'이라는 개념 대신에 다른 개념 장치의 발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운동 경험의 유무와 그로 인한 아감벤과 네그리의 차이는 베니스에서 열린 어느 토론회에서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설전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그 내용은 다만 아감벤이 추후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써내려간 '운동(Movement)'이라는 간결한 에세이를 미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모임에서 계속 제기되었던 한 단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운동이다. 이 단어는 우리 전통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네그리의 개입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책에서도 이 단어는 다중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때마다 매번 전략적으로 노출된다. 가령 다중 개념이 주권과 아나키라는 그릇된 선택지와는 분리되어야 할 때 그렇다. 내가 가진 불편한 마음은 이 단어를 사용했던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서 이 단어를 결코 정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내가 처음으로 깨달았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생겨났다." (조르조 아감벤, '운동', 영어 번역문 ☞바로보기, 한국어 번역문 ☞바로보기, 번역 다소 수정)
그리고 그는 이 운동 개념을 조목조목 따져나가기 시작한다. 운동의 패배가 곧 이 운동 개념에 대한 정의가 부재한 탓이라고 전제하고서 말이다. 그는 나치 부역으로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칼 슈미트의 논문 중에서도 제3제국의 공식문서였던 <국가, 운동, 인민: 정치적 통일성의 삼분할(Staat, Bewegung, Volk : die Dreigliederung der politischen Einheit)>(Hanseatische Verlagsanstalt, 1935)을 인용하면서 이 나치 법학자가 운동 개념을 최초로 정의내리길 시도했던 것에 당혹감을 표한다. 그러면서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박미애·이진우 옮김, 한길사 펴냄)에서 논하듯 제1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에서는 각 정당들이 스스로를 운동으로 먼저 정의 내렸던 것에 비춰, 19세기 인민의 자리에 인구가 등장할 때, 곧 민주주의 정체의 주체인 인민이 몰락한 뒤에 필연적으로 뒤따라 나오는 것이 운동이라고 규정한다. 푸코를 빌어 말해보자면 생명관리정치/삶정치의 등장이 인민의 몰락과 운동의 부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조르조 아감벤의 해석을 중심으로 하는 (어느 정도는 데리다와 낭시의 저작에서도 나타나는) 두 번째 주된 흐름은 삶정치가 모호하며 갈등에 찬 지형이라는 점을 받아들이지만, 저항이 가장 극단적인 한계지점에서만, 전체주의적 형태의 권력의 주변부에서만, 불가능성이 임박한 자리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본다. 여기서 이러한 저자들은 아무래도 횔덜린의 시 「파트모스」의 유명한 행들 –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 또한 자란다" – 을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해석의 흐름은 삶정치를 어느 정도 삶권력으로부터 구분하지만, 무력하고 주체성을 결여한 것으로 남겨놓는다. 이 저자들은 푸코에게서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행동의 가능성이 모두 제거된 삶정치 정의를 찾고자 하지만, 실제로 삶정치적 저항의 구성적 능력을 부정하는 이러한 분석의 지점들에서 이들이 기대는 것은 하이데거이다. 아감벤은 삶정치를 신학-정치적으로 조옮김하여 삶권력과 단절할 유일한 가능성은 '무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하이데거의 '게라센하이트'[내맡김] 개념을 상기시키는, 대안을 건설할 능력을 전적으로 결여한 공허한 거부의 태도이다."(<공통체>(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지음, 정남영·윤영광 옮김, 사월의 책 펴냄), 102~103쪽)
그리고 아감벤이 이른바 '벌거벗은 생명/삶'에 저 무위라는 생명형식/삶형태를 부과하려 한다면, 네그리는 빈자를 곧장 다중에 결속시켜준다.
"빈자는 배제되는 동시에 포함되는 역설적 위치를 차지하는데, 이는 일련의 사회적 모순들 – 일차적으로 가난과 부 사이의 모순이지만 또한 종속과 생산, 위계와 공통적인 것 사이의 모순 – 을 부각시킨다. (…) 그[마키아벨리]의 역사 및 정치 분석에 핵심적인 것은, 분개에서 사회적 무질서 혹은 봉기('투물티'tumulti)의 창출에 이르고 다시 다중 – 다중은 부로부터 배제되지만 부의 생산에는 포함된다 – 의 반란을 위한 조건을 마련하는 데로 나아가는 진전과정이다. 인간은 결코 벌거벗고 있지 않고 벌거벗은 삶으로 특징지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늘 옷을 입고 있으며 고난의 역사뿐 아니라 생산능력과 반란의 힘 또한 부여받고 있다."(같은 책 95~96쪽)
4. 1989년 전후 – 무위의 공동체(1983/1986)와 도래하는 공동체 (1990)
<도래하는 공동체>의 상당 부분은 1983년과 1986년에 출간된 장-뤽 낭시의 <무위의 공동체>(박준상 옮김, 인간사랑 펴냄)에 빚지고 있다. 물론 본래의 공산주의적 이념이었던 자유와 평등을 배신하고 "피할 수 없는 정치적 하중으로 우리를 짓누르고 있던"(같은 책, 23쪽) 현실 공산주의의 붕괴 직전에 쓴 낭시의 저작과,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끝으로 그 붕괴를 직접 목격하고 어느 정도 홀가분하게 써내려간 아감벤의 저작 사이에는 시간적 간극 이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차라리 이렇게 말해야 적절하겠다. 비운동권이었던 그에게 현실 공산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채무나 배신감은 덜했다고 말이다. 90년대 초반 한국 사회에 '개량주의'와 '전향'이라는 딱지 붙이기가 휘몰아치던 운동권 진영과 달리, 그는 거기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말이다.
낭시가 현실 공산주의에 대한 배신에도 불구하고 80년대 프랑스 신철학자들의 행보와 달리 (신)자유주의로의 전향과도 거리를 두고서 '함께-있음[공존재]'(l'être-commun / being together)으로서의 또 다른 공동체의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반면, 아감벤에게서는 그러한 '함께-있음'조차 무위로 떨어지고 만다.
가령 낭시는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구현된 '상실된 실체로서의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관념을 비판하면서, 공동체란 타인에게 '의존/노출(exposition)'되어 있는 단수성(singularité) 사이의 공동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즉 "타인의 죽음에서 인정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때"(82쪽) 그러한 타인의 죽음을 경험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는 유한한 단수성 사이에 공동체가 만들어진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그는 공동체의 내재적인 실체성을 지우고 그 자리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향한 공동의 나타남'(77쪽)을 새겨 넣는다. 그리고 그에게 공동체 내 단수성 사이의 "소통이란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제도적 과제에서 벗어나 무위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79쪽)
반면 아감벤은 이런 가능성조차도 모조리 비워낸다. 대신 낭시의 '아무 것도 아닌 것'을 향해 함께 있는 자리에 '임의적 특이성(la singolarità qualunque)'을,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l'etre quel tel)를 세워둔다. (앞의 개념은 낭시가 아감벤에 끼친 영향을 고려해 볼 때 '아무거나의 단수성'으로도 번역 가능할 것 같다. 왜냐하면 아감벤에게서도 특정 속성을 통한 국가나 공동체로의 귀속이라는 관념이 전면적으로 부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특이성은 한마디로 '언어적 존재'이다. 가령 "나무란 단어가 모든 나무를 무차별적으로 지칭할 수 있을 때"(<도래하는 공동체> 19쪽) 가정되는 그 보편적인 의미 탓에 배제되는 '특이한' 나무, 바로 '그 나무, 어떤 나무, 이 나무' 말이다.
"언어적 존재란 자기 자신을 포함하면서 동시에 포함하지 않는 집합이며,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모든 집합의 집합이 바로 언어이다. 언어적 존재(불린 존재)는 집합(나무)인 동시에 특이성(그 나무, 어떤 나무, 이 나무)인 그런 것이다." (19~20쪽)
이 언어적 존재로서의 특이성은, 그에게 다른 종류의 영향을 끼친 알랭 바디우의 <존재와 사건>(조형준 옮김, 새물결 펴냄)에서 '현대 국가(복지)론'에 대한 성찰이라 부르고 싶은 장 '성찰 9 : 역사적·사회적 상황의 상태'와 비교해 볼 때 의미가 분명해진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감벤의 특이성이란 마치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냥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바디우는 집합론을 빌려와 "국가의 본질은 개별자들을 알 필요가 없고"(같은 책, 181쪽) 다만 "사회의 자본주의적 본성에 의해 구조화된 항들을 수로 세고, 관리하고, 체계화하는 가운데 재현한다"(같은 책, 183쪽)고 말한다. 즉 국가는 개인을 직접 상대할 수 없고 우리가 흔히 사회운동사에서 '계급'이라고 불러왔던 부분집합을 재현할 뿐이다.
더 나아가 바디우는 국가가 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넌지시 암시한다. 아감벤의 특이성처럼, 계급이나 계층으로 재현되지 않고 아무런 속성이나 정체성 없이 남아 있으려는 '특이한 항'이 "보편적으로 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라고 예측한다. "그러면 계급이 폐지되고, 다시 말해 부분들이 종말을 고하며, 또한 초과를 통제할 모든 필요성도 사라질 것이다."(바디우, 187쪽)
아감벤은 이러한 국가 소멸의 가능성의 미약한 실현을 천안문 사태에서 확인한 것처럼 보인다. 마치 최근 일어난 아큐파이(occupy) 운동의 원형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 사건을 민주화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국가에 대해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임의적 특이성이 출현한 사건으로 본다.
"중국의 5월 시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들의 요구 사항에서 확실한 내용이 상대적으로 거의 없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 도래하는 정치가 새로운 이유는 그것이 더 이상 국가의 정복이나 통제를 쟁취하는 투쟁이 아니라 국가와 비국가(인류) 사이의 투쟁이며 임의적 특이성과 국가 조직 사이의 극복될 수 없는 괴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임의적 특이성들은 아무런 사회도 형성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임의적 특이성들이 옹호해야 할 아무런 정체성도, 인정받아야 할 아무런 사회적 귀속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는 결국에는 정체성에 대한 요구는 어떤 것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 심지어는 국가 안에 있는 어떤 국가 정체성에 대한 요구까지도 말이다."(<도래하는 공동체>, 117~118쪽)
때문에 그에게는 국가에게 아무런 권리나 정체성에 대한 인준도 요구하지 않는 임의성 자체가 국가가 대응할 수 없는 위협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가 금지하는 것을 욕망하거나 요구하지 말라. 대신 아무 것도 되지 말고 요구하지 말라."
이 지점에서 국가와 무관한 신성한 인간인 호모 사케르의 '미니어처'가 탄생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디우의 가설을 따라 만약 어떤 식으로든 국가에 의해 재현되기를 바라거나 요구하지 않는 임의적이고 특이한 항들만으로 이뤄진 상태가 가능하다면, 자본주의적 관계를 고스란히 재현하는("국가는 지배계급의 국가이다") 기능을 하는 국가의 존재란 불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특이한 다수들이 존재할 뿐이다.
"대표/재현될 수 있는 아무런 정체성도 갖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국가와 완전히 무관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문화에서 인간 생명의 신성함이라는 위선적 도그마와 공허한 인권 선언이 은폐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성한'이란 말은 로마법에서 쓰였던 의미로만 이해될 수 있다. 사케르는 인간 세계에서 배제된 자이며 사람들은 그를 희생물로 바쳐서는 안 되지만 죽일 수 있었고 그것은 살인이 아니었다."(같은 책, 119쪽)
이 가설을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에 활용해 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기본소득은 그 실현의 현실적 가능성, 이를테면 재원마련에 논의의 핵심이 머물러선 안 되고, 오히려 국가 기능의 소멸, 한마디로 극단적으로는 국가의 폐기라는 귀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국가란 사회 구성원을 개별자로 대하거나 취급하지 않고 특정의 부분집합, 예컨대 '중간계급'이나 '부르주아 계급'과 같은 부분-다수만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이런 부분집합에 포함되지 않는 개별항, 즉 그러한 재현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고 노동여부와 성별, 나이와 무관하게 공통적이고 보편적으로 개별항을 직접 상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덧붙이자면 기본소득 논의와 관련해 국가가 지급하는 그 소득을 가지고 소비를 향유하는 삶을 살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라는 물음이 던져지는 것도 바로 이 맥락에서이다. 국가는 자본주의적으로 이미 구조화된 항을 재현할 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노년층에게 매달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을 부분 기본소득으로 보고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근거로 내세우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물음은 이 공약이 보수적으로 조정된 이유가 단지 재원 마련의 어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관계를 재현하던 국가의 기능을 무화시킬 위험을 곧장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기본소득을 부과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국가가 모든 국민을 개별적으로 취급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네그리와 아감벤의 차이이기도 하다. 오히려 아감벤은 혹자의 지적처럼 잉여가 잉여로서의 '삶의 형태'를 누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물을지 모른다.
물론 이것은 가설에 불과하거나 일시적일지 모른다. 마치 아감벤이 기 드보르를 따라 인간의 육체가 신성함으로부터 탈구되어 자유로이 상품으로 교환되고 말 때 그 해방이 곧 포섭을 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열림과 닫힘'의 이중성을 우리는 촛불 시위의 '환등상'에서 이미 경험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나 거리에서 축제를 즐기고 난 뒤 그 환등상 속에서 주목받지 못했거나 보이지 않던 이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할 때 말이다. 가령 그 축제에 참여하지 못한 채 오히려 과노동을 해야 했던 '시청역 1번 출구 GS25 편의점에서 일하던 시급 알바생'이나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을 내지 못하는 이들이 속출할 때 말이다.
그래서일까. 아감벤은 <도래하는 공동체>에 관해 파리에서 열렸던 바디우와의 토론에서 "모든 사회 계급이 용해되어 있는 단일한 행성적인 소시민 계급[프티 부르주아]"(89쪽)에 대한 정의를 삭제하겠다고 말한다.
"먼저 이 책(<도래하는 공동체>)이 재출간된다면 행성적 프티 부르주아에 대한 이 정의를 뺄겁니다. (…) 저한테 흥미로운 것은 (…) 현대 자본주의의 규준이 노동 착취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언어의 착취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 하지만 언어가 그 소통의 공백을 보여준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즉 이것이 곧 스펙터클입니다."(☞기사 바로보기 : '바디우의 '도래하는 공동체'에 대한 논평과 아감벤의 응답을 중심으로', 번역은 필자)
지금 분명한 건, 아감벤의 책에서 마치 맑스의 '프롤레타리아트'처럼 한 계급에 속해 있으면서도 계급 자체를 철폐할 수 있는 계급에 유비적인 '프티 부르주아'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신 그 자리를 호모 사케르와 무젤만이 꿰차고 있다. 역사적 개별사례이자 패러다임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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