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의 건강을 살펴보는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전 대구한의대학교 교수)의 '낮은 한의학' 연재가 매주 수요일 계속됩니다.
이상곤 원장이 조선 왕의 건강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당시 왕들의 모습이 오늘날 현대인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왕들은 산해진미를 섭취하였지만 격무와 스트레스, 만성 운동 부족 등으로 건강 상태는 엉망이었습니다. 이 원장은 "왜 왕처럼 살면 죽는지를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현대인의 바람직한 건강 관리법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번 연재의 주인공은 연산군입니다. 연산군은 조선 왕 중에서 폭군의 대명사로 꼽힙니다. 폐비 윤 씨의 아들로서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심적 고통을 겪었던 그의 삶을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실록에 기록된 그의 행적은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연산군의 건강은 어땠을까요? 몰락하기 전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요? <편집자>
정력에 좋다며 백마에 메뚜기까지
사실 연산군은 패륜적으로 성에 집착했던 것치곤 자식 농사가 신통치 않았다. 왕후 신 씨에게서 2남 1녀, 후궁에게서 2남 1녀로 성종이 16남 12녀를 둔 것과 비교할 때 사뭇 왜소해 보이는 건 그의 찔끔거리는 소변 기능과도 관련이 깊다. 실제로 양기가 모자랐던지 연산군 9년엔 양기를 보충하려고 백마를 골라 내수사로 보낼 것을 명한다.
우리 역사상 가장 엽색적인 행각을 벌인 것으로 기록된 사람은 고려 시대의 신돈이다. 성현의 <용제총화>엔 신돈의 엽색 행각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신돈의 권세가 커지자 사대부 중에 얼굴이 어여쁜 아내와 첩을 둔 자가 있으면 매번 허물을 씌워 감옥에 넣었다. 그러고는 만약 주부가 찾아와서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하면 죄를 면한다고 말하였다. 신돈이 매번 찾아온 주부를 상대로 엽색 행각을 벌였다. 양기가 쇠약해질까 두려워 백마의 음경을 잘라 먹고 지렁이를 회쳐 먹었다."
연산군도 마찬가지였다. 실록 9년 2월 8일 기록은 "백마 가운데 늙고 병들지 않은 것을 찾아 내수사로 보내라고 하였다. 흰 말고기는 양기에 이롭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자오선(子午線)의 '오'는 말을 뜻한다. 자는 북쪽 차가운 것을 의미하고, 오는 남쪽 뜨거운 것을 상징한다. 말은 뜨거운 양기의 상징이다.
<본초강목>에서 소와 말을 음양으로 대조한 대목은 음양론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말발굽은 둥글어서 하나로 있으니 양이고 소의 발굽은 갈라져 둘로 있으니 음이다. 말이 병들면 앉아 있고 소가 병들면 서 있는 것, 말이 일어설 때 앞발을 먼저 일으키고 소가 일어설 때 뒷발을 먼저 일으키는 것 모두가 말이 양이고 소가 음이어서라는 것이다. 따라서 말이 사납게 날뛸 때 쇠고기를 먹이면 온순해진다는 지혜까지 기록했다. <본초강목>은 백마의 음경을 얻는 방법까지 상세히 안내한다. 암말과 교미할 때 세력 강성의 발기된 것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산군 12년 5월엔 "각사의 노복 가운데 총명한 자를 골라 궐문 밖에서 번을 나누어 교대로 근무시키되 이름은 회동역습소라 하고, 이전으로 통솔하게 하되 이름은 훈동관이라고 하여 귀뚜라미, 베짱이, 잠자리 등 곤충을 잡아오게 하라"고 특별 지시를 내린다. 그 속엔 메뚜기도 포함됐다.
잠자리 종류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크고 청색인 것을 청령(??)이라고 한다며, 동쪽의 이(夷)인들은 잠자리가 푸른 새우가 변해 생긴 것으로 믿기 때문에 그것을 먹는다고 설명한다. 날개와 발을 떼고 볶아서 먹으라고 했다. 실제 효능도 양기를 돕고 신장을 데우는 것으로 설명했다. 메뚜기는 위장을 돕고 소화를 잘 시켜주는 약으로 여겨졌다. 뒷다리가 튼실한 메뚜기가 정력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력과 뒷다리를 연결시키는 것이 뜬금없는 발상은 아니다. 인간의 체온은 40% 이상이 근육에서 만들어진다. 그 근육의 70% 이상은 허리와 허벅지 등 다리 근육에 분포한다. 나이 들어 하반신의 활동량이 줄고 근육이 부실해지면 체온을 만드는 힘이 줄어든다. 야간에 소변을 자주 보고 발기 부전의 노화 증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반신의 든든한 근육 힘이 바로 양기를 발생시키는 근원인 셈이다. 미사일을 쏠 때 발사대가 좋아야 하듯 하체가 튼튼해야 오줌발이 세지고 양기도 개선된다. 양기는 찾기 힘든 백마나 물개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
실록 11년 8월 7일 기록을 보면, 연산군은 새로 조제한 홍원룡, 흑원룡, 홍갈호, 흑갈호 250환을 재상에게 선물한다. 원룡, 갈호는 도마뱀과 개구리를 약재로 쓴 것으로 양기를 돕는 약이다. 도마뱀은 본래 색을 잘 바꾸는 동물이다. 주역의 역(易)자는 바로 도마뱀을 형상화한 글자다. 동양 철학의 기본 전제는 변화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뿐이다"라는 말에 가장 부합하는 동물이다. 하루 열두 차례씩 때의 변화에 맞춰 색깔이 변한다는 카멜레온의 속성을 형상화한 것이다. 대부분의 뱀 종류가 성기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봤듯, 도마뱀도 정력제로 사용됐다.
재미있는 건 처녀성 증명에 도마뱀이 사용됐다는 사실이다. 중국 고전 <박물지(博物志)>를 보면, 처녀성을 증명하는 수궁사에 대한 기록이 있다.
"수궁사의 재료가 되는 것은 도마뱀이다. 도마뱀을 그릇에 넣어 기르면서 주사를 먹이면 도마뱀의 몸이 온통 붉은색이 된다. 계속 먹여서 일곱 근이 되었을 때 아주 여러 번 절구질을 해서 여자의 지체에 바르면 죽을 때까지 색깔이 변하지 않게 된다. 오직 성관계를 가질 때만 없어지기 때문에 자궁을 지킨다고 해서 수궁(守宮)이라고 한다. 한무제가 시험해보니 과연 효험이 있었다."
공부 빼먹으려 꾀병
연산군은 세자 시절부터 면창(面瘡)을 앓았다. 성종 23년 10월 기록은 이렇게 전한다. "그렇다. 요사이 세자가 면창을 앓아 강(講)을 멈추었다." 즉위 후에도 중국에 가서 웅황해독산과 선응고라는 처방을 구해와 만덕이라는 종에게 실험한 다음 의관의 동의를 얻어 치료했다.
이후로 기록된 질병은 대부분 경연을 피하기 위한 꾀병으로 짐작된다. 본래 연산군은 세자 시절부터 공부를 빼먹기로 유명했다. 위와 같은 날의 기록이다.
"세자는 마땅히 학문에 근면하여 나아가 덕업을 닦아야 할 것인데, 요사이 강(講)을 폐한 날이 많으니, 심히 작은 일이 아닙니다."
연산군 2년 11월 8일과 22일엔 기침, 감기로 경연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그 사유를 밝히면서 신하들이 자신을 게으르다고 나무란다는 이야기로 자책한다. 재위 3년엔 안질로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이유로, 10월엔 혓바닥 통증으로 또는 눈썹 위가 가려워서, 더위 때문에, 두통을 호소하면서 경연을 피한다. 경연에 나갈 수 없는 이유로 한결 같이 질병을 꼽은 걸로 미루어 진짜 아픈 게 아니라 꾀병일 개연성이 높다. 의관 아닌 본인 스스로 질병을 거론하는 점은 더욱 분명한 방증이다.
중종 1년 11월 8일 연산군이 31세 되던 날 실록은 그의 죽음을 기록했다. 교동 수직장 김양필, 군관 구세장이 와서 아뢰기를, "초 6일에 연산군이 역질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죽을 때 다른 말은 없었고 다만 신 씨를 보고 싶다 하였습니다."
역병은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생기는 대표적 질환이다. 중국의 고전 <소녀경>이나 <옥방비결>등의 방중서는 과도한 성욕이 심신을 지치고 쇠약하게 만들어 면역력을 약화시켜 병을 초래하고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강조했다. <동의보감>은 정력(精力)의 정(精)을 이렇게 정의한다.
"정은 유기즉생기 시인즉생인(留己則生己 施人則生人)이다. 자신에 정기가 머물면 자기를 살리고 남에게 정기를 베풀면 아이가 생긴다."
마왕퇴 한묘에서 발견된 <양생방(養生方)>은 정기를 누설하지 말 것을 이렇게 강조한다.
"한번 정기를 누설하지 않으면 이목이 총명해지고, 두 번 정기를 누설하지 않으면 목소리에 탄력이 생긴다. 아홉 번에 이르면 신명에 통할 수 있다."
물이란 인생의 한때처럼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인체에서 흐르는 체액도 한번 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나오는 정기를 최대한 아끼고 참으면 신선이 된다고 강조한 점은 정기의 중요성을 간절히 강조한 것이다.
광기의 남자, 시대의 색골이라 불린 연산군을 거친 수많은 여자가 있었겠지만, 그가 죽음의 문전에서 보고 싶었던 사람은 단 한 사람, 자신의 부인이었다. 어머니의 부재로 시작된 광기는 부인을 그리는 것으로 마감됐다. 태어난 순간이나 죽는 순간은 보통의 사람과 똑같았던 인간이 바로 연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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