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는 식량, 음식, 식품 등을 뜻한다. 모두 필수재(Necessary Goods)다. 사람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모든 사람이 그 철칙 앞에서는 평등하다. 거의 불편부당하다. 모든 사람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량 이상의 먹거리가 반드시 공급돼야 한다. 그래서 식량과 음식 같은 필수재는 국가 재정을 우선 써야 마땅하다. WTO(세계무역기구)의 농업협정에서도 공공비축, 국내 식품지원이 허용보조에 해당하는 이유다. 또 급식, 공공급식 영역은 정부조달협정 상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그만큼 먹거리는 사람이 생활하는 데, 생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자원이다. 지금 우리 정부는 취약계층에게 다양한 먹거리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학교와 노인 급식 지원, 푸드뱅크사업, 임산부 및 영유아 보충영양관리사업 등이다. 이른바 '먹거리 정의(Food Justice)'를 실천하려는 정책목적이다. 여기에서 '먹거리 정의'란 넓은 의미로는 일반적인 '먹거리 보장(Food Security)' 전반을 의미한다. 좁은 의미로는, 농촌의 중소농이 주로 생산하는 유기농산물 등 '좋은 먹거리' 구매대금을 정부, 지자체, 기업, 개인 등이 대지급해 도시의 저소득 취약계층에게 기부하는 방식의 '좋은 먹거리' 기부프로그램'을 말한다.
오늘날 정부는 국정의 복지 철학, 한정된 예산 등의 문제로 대상계층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 다수의 취약계층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재산과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최저생계비 이하 계층이 지원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특히 노인, 아동, 한부모, 조손가구 등은 '낙인효과(Stigma Effect)' 등으로 먹거리 주권에 능동적으로 접근하고 이용하는 데 불편함과 어려움이 있다. 이 땅에서 '먹거리 정의'는 아직 요원한 것이다.
정부는 2006년 3월 '식품기부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바 있다. 이 법 제7조에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식품기부 및 기부식품 제공사업을 지원·장려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때 '필요한 시책'에는 '경비의 일부 보조'도 포함돼 있다. 일단 정책적으로는 실제적 지원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책의지를 실효성 있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재정기반이 전제 또는 수반되어야 한다. 재정기반이 보장되지 않은 모든 정책은 유명무실한 공염불이나 공수표에 불과하다. 기만이고 허구다. 거짓말이다.
따라서 지난해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사회복지세' 같은 재정기반 조성 및 지원 장치를 개발해 연계할 필요가 있다. '조세정의·복지확대를 위한 사회복지세 도입 방안'은 빈곤층, 노인, 장애인, 실업자, 보육, 학교급식 등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복지 재원을 조성하려는 목적이다. 즉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납세의무자로 하여금 해당 납세액의 15~30%를 가산하는 방식의 사회복지세를 신설, 재원은 오로지 복지 확충 목적에 제한해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 사회복지세로 조달, 조성한 복지예산으로 '먹거리 정의' 구현과 실행에 필요한 '좋은 먹거리' 구매자금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먹거리 정의'는 농·도상생 차원의 민·관 협력 또는 민·민 협력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실천 가능하다. "도시의 후원자, 독지가가 농촌 중·소농의 유기농 먹거리 등 '좋은 먹거리'를 자발적으로 유상으로 구매 또는 대지급해서 도시나 농촌의 저소득 취약계층에게 무상으로 기부"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인 취약계층은 좋은 먹거리를 제공받아 좋고, 생산자인 농촌의 중·소농은 농산물을 좋은 곳에 판매할 수 있게 되'는 상호호혜적이고 지속가능한 농·도상생 프로그램으로 발전할 수 있다. 서로 닫혀있는 농·도상생형 사회복지의 물꼬를 트는 고성능 열쇠가 될 수 있다. 먹거리가 사회 정의를 앞당기는 필수재로 기능할 수 있다.
우리 먹거리 정의의 수준은 공급도, 안전도 '불의'
우리나라의 먹거리 문제를 인식하는 수준은 여전히, 매우 낮다. 일단 먹거리에 대한 양적·질적 욕구를 사회적 욕구로 인정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체계적인 먹거리 보장 정책이나 복지 프로그램이 정립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 단발적이고 간헐적인 프로그램들이 시차와 거리를 두고 산만하게 출몰하는 양상이다. 단지 생활이 아닌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결식 빈곤층과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시혜적으로 '공공급식'을 베푸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평가다.
2011년 현재 보건복지부로부터 급식지원을 받는 결식아동은 48만 명에 달한다. 교육부부터 무료급식을 지원받는 초중고생도 50만 명이다. 전체 초중고생의 약 7% 수준이다. 그런데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결식노인이나 노숙인이 적지 않다. 결식은 아니지만 먹거리의 절대량이 부족해 항상 배고픔을 느끼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선다.
그만큼 한국의 먹거리 불안감, 먹거리 위험도는 심각해 보인다. 절박해 보인다. 그럼에도 먹거리 보장(Food Security) 정책이 현실과 현장의 요구와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는 뭘까. 우선 먹거리 보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책 당국자들은 오직 '결핍문제'를 해결하는 게 먹거리 보장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있다. 매우 낮은 차원의 문제인식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 먹거리 위기를 인식하는 데 생산자와 소비자, 절대 빈곤계층과 상대적 부유층, 시장주의자와 생태주의자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다. 먹거리 정의 실현을 위한 사회적 연대가 허술하고 취약하다는 말이다.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힘든 사회적, 경제적 대립·대치 구조가 상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게다가 먹거리 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가둬두려는 생각이 강하다. '각자 알아서 먹고 살자'는 이기적이고 야박한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먹거리는 생산자에서 소비자에 이르는 먹거리 공급연계(Food Supply Chain)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관련된다, 사회, 환경은 물론 건강, 교육, 문화 분야까지 가히 융·복합적으로, 통섭적으로 넓게 걸쳐 있는 문제다. 그래서 시장성 보다 공공성으로 풀어야 해결이 가능한 문제다. 마땅히 국가가, 정부가 앞장서 나서야 한다.
먹거리 공급보다 더 큰 문제는 '먹거리 안전'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저소득 빈곤층이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먹거리의 안전도와 영양수준은 매우 취약하다. 결식아동 무료급식이나 경로식당 제공 음식은 대부분, 신뢰도가 낮은 수입 식재료나 냉동식품,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인 게 현실이다. 심지어 먹거리 사회학에서는 '밥상의 양극화' 현상마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건강을 위해서 신선하고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웰빙 식품'의 생산량은 소비자의 수요량을 따라가지 못한다.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에서는 소득수준 차이가 곧 식재료 선택을 강제하게 된다. 또 세계화된 먹거리 체계로 고칼로리 패스트푸드가 각국의 식탁을 지배하고 있다. 가격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저급한 먹거리다. 그만큼 저소득층이 탄산음료, 과지방 과자, 패스트푸드, 감자튀김 등 '나쁜 식품(Junk Food)'에 접근하기 쉬운 구조가 고착돼 있다. 특히 독거노인들의 식사는 한국인 영양섭취기준조차 충족시킬 수 없다. 2010년 보건복지부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만 65세 이상 노인의 평균 섭취량은 권장섭취량의 50% 미만이었다. 이처럼 계층에 따라, 연령에 따라 먹거리(영양)의 불평등 문제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 전체 소득은 늘었지만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대부분 가구의 소득은 줄어들고 있다. 가계소득 감소로 인해 '비싼 쌀 대신 라면을 사는 식'으로 소비의 중심이 정상재에서 열등재로 하향 이동하고 있다.
먹거리 양극화, 영양․건강 불평등의 해법이 '먹거리 정의'
최근에는 비로소 먹거리 양극화와 이에 따른 영양, 건강 불평등 문제를 '먹거리 정의(Food Justice)'의 문제로 접근하는 추세다. 이른바 먹거리 대안운동 진영에서는 "현재의 먹거리 체계가 지불능력이 있는 소수의 계층만이 선택 가능하고 접근할 수 있는 '부정의(Injustice)'한 상태"로 규정한다. 따라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전략적 접근을 통해서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먹거리의 문제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환경과 구조의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령 '부익부 빈익빈' 같은 사회 양극화 현상이 주원인이라는 진단이다.
특히 우리 사회 빈곤층 등 취약계층의 생존권 문제는 심각한 지경이다. 소득수준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빈곤층 가구의 규모가 시장소득 기준으로 2003년 9.3%에서 2010년에 12.2%로 증가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중도 2000년 7.2%에서 2010년 10.9%로 50% 이상 늘어났다. 먹거리 보장은 이 같은 먹거리 정의의 문제를 제도적이고 정책적 접근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먹거리의 문제는 '차가운' 시장경제가 아닌 '따뜻한' 사회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즉 먹거리 보장이란 "단순히 절대적 측면에서의 먹거리 충분성 문제를 벗어나 적절 수준의 영향과 건강에 대한 먹거리 영향 문제, 안전성 등 먹거리의 질적 문제와 관련해서 사회적 최저선(National Minimum) 관철의 의미를 가진다"라는 게 학계의 정설로 정리되고 있다.
가령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먹거리 정책은 먼저 '푸드(Food)'를 중심에 놓는다. 그리고 소비, 건강, 환경, 문화, 사회관계, 과학기술, 공공보건, 사회정의, 복지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단순히 배고픈 빈곤층이나 취약계층에게 무상으로 '밥 한 끼' 나눠주는 정도의 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먹거리 보장 정책, 또는 먹거리 복지 운동은 '먹거리 정의' 개념을 충실히 이해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최근 사회적 경제의 대안적 실천의 일환으로, 공공급식 제도화에 있어서 로컬푸드(Local Food)의 '복지성'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먹거리 정의 실천의 선도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미국, 유럽을 비롯한 외국의 경우 곡물류에 그치지 않고 육류, 신선과일. 채소, 건조 가공식품 등 모든 식품군을 포괄해 지원하고 있다. 특히 농산물 수매 후 가공해서 장기비축이 가능한 형태로도 보관한다. 즉 장기비축 가능물자와 로컬푸드 직접구매 공급 물량 등으로 국가적 수준과 지역적 수준을 혼용해서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형태다.
'먹거리 정의'의 출발은 비정상적 제도와 법률의 정상화부터
역시 현실에서는, 실천현장에서는 잘못된 정책이 문제다. 제도와 법률이 문제다. 결식아동 급식지원프로그램의 가장 큰 문제는 신청과 배달 등 관리체계가 허술하다는 점이다. 이는 저소득층 아동에게 지원되는 급식의 소관 부서가 '밥과 우유', '학기 중과 방학 중'에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학기 중 급식은 교육청이 맡아 무상으로 지원하지만, 방학 중 급식은 자치단체의 복지 관련 부서가 담당한다. 또 우유는 자치단체 농축산 관련 부서가 따로 맡고 있다. 이러한 전달체계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급식을 비롯한 저소득층 자녀 지원사업 신청체계를 일원화하는 합리적인 법안이 필요하다.
급식의 질적 측면도 문제다. 결식아동과 결식노인에 대한 친환경 식재료 구입비용은 전혀 지원되지 않는다. 일부가 급식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존재한다. 지역아동센터중앙지원단 보고서(2012)에 의하면, 2011년 지역아동센터를 찾는 10만233명 가운데 급식지원을 받는 아이들은 학기 중 7만1779명(80.1%), 방학 중 8만1197명(86.7%)으로 집계됐다. 전국의 지역아동센터 3985곳 가운데 6.1% 가량인 242곳은 아예 급식비를 전혀 지원받지 못해 급식을 실시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 무료급식프로그램에도 구멍이 뚫렸다. 최근 무료 경로식당 운영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물가는 오르고 무료급식이 필요한 노인은 늘어나는데 지원금은 몇 년째 오르지 않고 있어 그렇다는 것이다. 또 공공급식 예산의 대부분이 초중고 친환경 무상급식 지원 분야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료급식 지원 주체가 정부에서 일선 지자체로 넘어가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2005년부터 67개 사회복지사업 등 모두 149개 사업이 '분권교부세' 지원사업으로 포함되면서 일선 지자체로 넘어간 것이다. 이후 정부는 업무를 이관했다는 이유로, 자치단체는 예산이 없다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
보건소를 통해 집행하는 영양플러스사업은 그동안 지원의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도 있는 반면, 문제점들도 적지 않게 지적되고 있다. 우선 사업대상자 선정이 선별적이고 그 수가 지나치게 제한되어 있다. 현재 예산 문제 때문에 수혜 자격을 가진 대상자의 약 5~7%만 수용 가능하다. 벤치마킹 사업 모델인 미국의 WIC 프로그램의 경우 참여자격이 있는 대상자의 약 57%가 수혜를 받고 있다. 또 사업 대상 범위도 한정되어 있다. 대상은 영유아, 임산부 여성 등인데, 영양섭취가 심각하게 부족한 저소득층 어린이나 청소년, 그리고 노인 등은 수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업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영양 보충식품이 다양해질 필요도 있다. 값싼 고칼로리 식품을 배제하고 신선하고(fresh), 제철에 난(seasonal), 지역산(local), 친환경 (organic) 야채나 과일 등을 대체식품으로 제공할 수 있는 전달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급식, 시설급식 등과 연계한 공공급식 통합지원센터(가칭) 정도의 지자체별 먹거리 전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푸드뱅크, 푸드마켓 같은 저소득층 지원프로그램 사업은 운영과 관리체계에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우선 기부 식품 대다수가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신선 식재료가 아니라 가공식품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이용자들에게 먹거리 적절성(Food Adequacy)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또 푸드뱅크를 통한 나눔의 문화가 '나눔'이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개입되는 경우마저 있다. 푸드뱅크 기부자 중에는 대기업이나 개인 기부자 보다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자영업자가 더 많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부 개념보다는 정부의 인증, 포상 등 홍보나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팔고 남은 부식류의 식품을 푸드뱅크에 원자재 값에 팔기도 한다. 기부의 선의 보다는 각종 세제 혜택이라는 실익을 챙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기부식품의 이용자들이 기초생활수급자들이나 차상위계층으로 거의 한정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다. 2011년에는 수급자 66.7%, 차상위계층 15.7%로 전체 이용자의 82.4%를 차지하고 있다. 이용자는 지역사회에서 낙인이 찍힐 우려가 있다.
법률도 고칠 게 많다.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에는 소비자에 대한 안정적 식품공급에 관한 정책이 누락돼 있다. 식품지원 활성화를 위한 기반 조성을 위해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제7조(농수산물과 식품의 안정적 공급)를 '소비단계'까지 연장해 포함하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 안에는 소비자에 대한 안정적 식품공급에 관한 정책이 누락돼 있다.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제23조에서도 식품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정책 시행을 "국가 차원에서의 적정 비축과 농지의 효율적 이용"으로 한정하고 있다. 식품지원제도의 활성화 대책의 근거로는 불충분하다는 평가다. '식품산업진흥법' 제32조(인증표시가 된 식품의 우선구매)에서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의 공공기관' 등 우선구매기관에 '먹거리 보장' 또는 '먹거리 정의' 식품 구매기관(가칭 '기부식품지원센터')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농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 제19조 2호2(고령 농어업인등의 영양개선)에서는 '고령 농어업인'만을 식품지원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다. 또 '영양 개선을 위한 시책 마련'의 필요성만 제시했을 뿐, 식품지원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식생활교육지원법'은 기본방향과 기본계획 수립에 식품지원 관련 법률조항이 불분명하다.
보건복지부 소관 법률도 마찬가지다. '식품기부 활성화에 관한 법률'부터 개정할 필요가 있다. 기부식품지원센터는 전국 시·도, 시·군·구 단위로 '기부식품지원센터' 설치 근거를 마련하고 신고제를 지정제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 기부된 식품 등은 이용자에게 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 개정 법률은 '먹거리 바우처' 등의 방식으로 수혜자(소비자)에게 지원금이 직접 지원되는 경우까지 포함해야 할 것이다. 보다 적극적인 '먹거리 정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필요한 경비의 전부' 까지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밖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농어촌주민의 보건복지 증진을 위한 특별법, 긴급복지 지원법 등은 다양한원인으로 발생하는 빈곤층, 취약계층을 미처 포괄하지 못한다. 식품기부 등 '먹거리 정의' 관련 구체적 정책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먹거리 지원제도의 효율적 운영 전략과 전술을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먹거리 지원제도가 효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농식품부, 보건복지부 등 중앙정부를 비롯해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 희망먹거리네트워크 등 민간기관 등 여러 주체들이 식품지원 관련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기관 및 제도 간 연계 없이 산발적이고 단편적인 지원정책이 반복되고 있는 양상이다. 그동안 자원 투입이 일부계층에 중복되거나 사각지대가 확대되는 등 문제점도 누적되고 있다. 관련 법령 정비, 제도 보완, 통합관리시스템 구축 등 식품지원정책 전반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운영시스템이 정립되어야 할 때다.
먹거리 공급체계도 개선되어야 한다. 식품바우처(Food Boucher)는 통합관리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생계비, 식품, 식생활 형태로 운영되는 유형을 '식품바우처'로 통합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무엇보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구체적으로 취약계층의 가구 특성별 식생활 형편을 고려한 다양한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운영의 자율성도 보장된다. 무엇보다 다른 용도로 변용, 전환되기 쉬운 생계비 지원방식을 바우처로 전환함으로써 식품지원 정책효과도 제고할 수 있다.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의 활성화도 숙제다. 미국 농무부(USDA)는 과일, 채소 등 신선식품 섭취 증가 추세와 농업의 연계도를 강화하기 위해, 파머스 마켓이 영양지원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파머스 마켓'은 "중앙, 또는 정해진 장소에서 농부(생산자)가 농산물을 대중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는 매장 또는 시장"을 말한다. 농산물의 개별 생산자인 직거래 농업인, 파머스 마켓을 운영하는 관리조직으로 구성된다.
무엇보다 제도 운영의 성과와 성패는 최적 먹거리를 선정하는 일에서 좌우될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득수준별로 저소득계층에서는 에너지 섭취량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칼슘, 비타민A, 리보플라빈, 비타민C의 섭취가 권장량에 미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식품군별로는 채소류, 버섯류, 과실류, 육류, 우유류, 계란류 섭취가 크게 적다. 또 식품을 선정하는 기준으로는 영양소의 양적인 보충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 친환경인증농산물, 우수농산물(GAP, HACCP 등) 등 양질의 신선한 식품을 엄선해야 한다. 지역 내에서 생산된 신선한 과일, 채소 등을 지원하는 로컬푸드(Local Food)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해 연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나마 고무적인 사실은, 최근 '먹거리 정의' 실천을 위한 다양한 형태와 체계의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에서는 한국과수협동조합연합회, 한국사과연합회, 한국배연합회 등 3개 민간생산자단체와 MOU를 맺고 서울시가 차액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청소년들에 저렴한 가격의 과일을 제공하고 있다. 중앙정부, 지자체 차원의 정책의지로 실천이 가능한 민·관 협력 모델이다.
민·민 협력 사례도 눈에 띈다. 2012년 12월에는 '희망먹거리네트워크'가 출범했다. 친환경무상급식 확대 운동을 추진해온 학교급식네트워크가 창립 11년 만에 발전적으로 확대·개편된 것이다. 창립선언문은 의미심장하다. "정부에서 농민들에게 수매한 기초농산물을 공공급식에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농민들에게는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고 국민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또 "먹거리 후진국에서 먹거리 주권국으로, 위험의 먹거리에서 행복의 먹거리로 만드는 일을 지금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희망먹거리네트워크는 친환경무상급식을 넘어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 보장을 위해 공공급식, 먹거리 복지, 식량자급률 확대 관련 정책연구 및 대안 먹거리 교육 프로그램 개발, 급식센터 네트워크 등 사업 영역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지역도, 사회적기업도 가세했다. 지난해 전북 장수군 하늘소마을에서 창업한 '지니스테이블(대표 박진희)'의 활약이 눈에 띈다. 저소득층의 유기농 공급을 주요 사업목적으로 한 사회적협동조합을 표방하고 있다. 환경운동, 노동운동 활동가 출신의 귀농인 박 대표는 2009년 귀농해 소규모 유기농 농사를 지었다. 그동안 유기농산물을 직거래로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일정 정도의 소득수준 등 경제력을 갖춘 이들이 대다수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저소득 취약계층은 유기농 등 좋은 먹거리에 접근할 기회가 차단되어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안타까웠다. 그래서 "누구든지 좋은 농산물을 먹을 권리가 있다"는 먹거리 정의(Food Justice) 구현을 사업비전으로 내걸었다. 일단 지역 장수군의 영양플러스 사업에 유기농산물을 공급하는 것으로 시작으로, 지역아동센센터 급식자재 유기농 공급에 주력하고 있다. 공급자(기부자)와 소비자(수혜자)를 기부시스템으로 연계해 "농촌에서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생산자(농부)는 팔아서 좋고, 도시의 저소득 취약계층은 '좋은 먹거리'를 먹어서 좋은" 농·도상생의 '먹거리 정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또 농촌이든, 도시든 관내 유휴경작지 무상 임차 활용으로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관내 독거노인, 저소득층에게 무상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꾸러미 회원 등 일반판매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기부 목적 구매도 병행해 연계할 수도 있다.
'먹거리 정의'의 재원은 사회복지세를 걷어서
현재 한국은 경제적 양극화가 확대되고 저출산, 고령화 등의 사회적 문제의 해악이 심각한 지경이다. 마치 한 사회와 공동체가 감내할 수 있는 임계점, 사점에 다다른 기분이다. 저소득층, 장애인, 노인, 청년, 실업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복지비 등 사회안전망은 부족하거나 부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먹거리 정의는 자꾸 요원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먹거리 정의 같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려면 안정되고 예측가능한 예산이 전제되어야 한다. 가령 사회복지세를 통한 사회복지비 재원의 발굴 및 개발이 우선되어야 한다. 학교급식 복지재원의 한계도 사회복지세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기준으로 745만 명에 이르는 초중고 학생에 대한 급식비 총액은 4조3751억 원에 달한다. 이중 67%인 2조9312억 원을 학부모가 부담하고 있다. 시도교육청이나 지자체가 부담하고 있는 비중은 33%에 불과하다. 초중학교 무상교육에도 불구하고, 급식은 유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체 학생의 9.7%인 73만 명의 저소득층에 대해 제한적으로 실시하는 무상급식도 '낙인 효과'로 계층간 위화감을 조장하는 등 문제가 적지 않다. 특히 보편적 복지가 절실한 요구되는 분야다.
사회복지세는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납세의무자로 하여금 해당 납세액의 15~30%를 가산하는 방식(surtax)의 특별세를 신설하자"는 것이다. 이때 사회복지세 재원은 오로지 복지확충을 위한 재원으로만 사용하도록 한다. 구체적으로는 사회복지세의 30%와 20%를 각각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사회복지교부세'와 '교육복지교부금'을 신설, 지자체와 시도교육청에 지원해 관련 복지재원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머지 50%는 중앙정부로 하여금 아동수당 신설, 국공립보육시설 확대나 저소득층 및 실업자 지원 확대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도록 한다. '먹거리 정의 구현'을 위한 식품기부 활성화 사업의 재원으로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소득의 양극화에 따른 빈부 격차 심화로 취약계층이 점증하고 있다. 저소득 취약계층의 불건전하고 불안정한 식생활은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되고 있다. 갈등과 대립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먹거리 보장' 또는 '먹거리 정의'와 관련한 지원사업은 다양한 편이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대상계층을 포괄하지 못하고, 다수의 취약계층이 수혜에서 배제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기도 하다. 지원형태도 완성도가 떨어진다. 생계비 지원 형태로 단순하게 운영되거나 특정계층의 일부 소비자에게 편협하게 국한되는 수준이다.
물론 먹거리 취약계층을 위한 먹거리 보장 프로그램이 강조되는 추세이기는 하다. 하지만 여전히 '먹거리 보장'으로 개념화할 수준은 아니다. 보편성이나 공공성이 떨어진다. 심지어 '자선'이나 '구제' 프로그램의 수준과 크게 구별하기 어려운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기부자들의 '도덕덕 해이'가 개입되는 빈틈을 보이기도 한다. 복합적이고 절박한 오늘날의 먹거리 위험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정책적, 제도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그러자면 우선 먹거리 보장에 대한 사회적 인식부터 성숙시켜야 한다. 먹거리의 양적 충족을 보장이라 주장하는 건 낮은 저열한 인식 수준이다. 먹거리의 접근성, 적절성, 지속가능성을 공히, 조화롭게 보장하는 품격을 갖춘 수준이어야 한다. 또 먹거리 위기를 인식하는 데 생산자와 소비자, 절대 빈곤계층과 상대적 부유층, 시장주의자와 생태주의자 사이의 큰 간극을 좁혀야 한다. 그래야 먹거리 연대, 먹거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추진할 수 있다.
무엇보다 먹거리 위기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해당된다는 사실을 사회구성원 모두 공감하고 공유해야 한다.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또한 먹거리 문제는 개인의 문제도 아니다. 결국 관계의 문제로 확장된다. 먹거리는 생산자에서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먹거리 공급연계(food supply chains)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과 관련된 문제다. 그래서 먹거리는 사회적 문제다. 먹거리 보장정책의 핵심인 공공급식 등 사회성, 공공성을 확보하는 게 성공의 요체다.
국가의 기능을 유지하는 '공공 부문'은 물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급식(먹거리 보장) 또한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국가의 기능 못지않게 중요한 '사회공동체'를 건강하고 지속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마땅히 국민 또는 시민들의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먹거리 보장' 또는 '먹거리 정의'는 공공성, 지역성, 복지성이 움직이지 않는 원칙이 되어야 한다. 국가나 정부가 국민의 식생활을 위해, 행복한 삶을 위해 당연히 봉사하고 감당해야할 3대 책무라 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