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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에 이미 금성에 도착한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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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에 이미 금성에 도착한 한국인!

[프레시안 books] 한낙원의 <금성 탐험대>

금성 탐험, 시시할 것도 대단할 것도 아닌

금성 탐험, 하면 어떤가? 뭐, 그다지 멀고 특별한 여행일 것 같지는 않다. <스타워즈>나 <아바타> 같은 SF(Science Fiction) 영화를 보면 우주를 쓩쓩 잘도 날아다닌다. 외계 종족이 출현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외계 종족이나 지구인이나 다 우주의 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현실을 생각해 보자. 인간이 처음 달에 발을 디딘 게 1969년, 45년 전이다. 당시 흑백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달 착륙 화면을 보면서 전세계는 환호했다. 나만의 착각인지 모르지만, 나는 얼마 안 있어 인간이 지구 곳곳을 누비듯 저 먼 우주의 별들을 신나게 여행하리라 기대했다. 그뒤 달에는 몇 번 더 가는 데 성공했지만, 인간은 아직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인 금성에도 가지 못했고 화성에도 가지 못했다. 더군다나 앞으로도 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저는 달에는 가 봤지만 금성엔 못 가 본 걸요.”
"누군 가 봤나, 모두 처음이지.”
홉킨스 소장은 지금까지 진행해 온 금성 탐험을 위한 유인 우주선 발사 계획을 대충 설명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계획은 1962년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에 50, 60회에 걸쳐 무인 우주선을 발사하여 금성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고, 드디어는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금성에 관한 자료가 충분해짐에 따라, 미소 간에는 달을 정복할 때와 같이 날카로운 경쟁이 붙었다.
―<금성 탐험대> 12~13쪽

▲<금성 탐험대>(한낙원 지음, 창비 펴냄). ©창비
수많은 과학소설과 SF 영화가 우리를 현혹하고 있지만, 지금도 우리는 겨우 이 지점에 와 있는 것 아닌가. <금성 탐험대>(한낙원 지음, 창비 펴냄)는 1962년 12월부터 1964년 9월까지 월간 <학원> 지에 연재되었다. 인간이 달에 미처 도달하기 전이다. 소설 속의 정황은 인간이 달에는 갔지만 아직 금성엔 못 간 상태다. 21세기인 지금이 바로 그렇다. 그 상황에서 미국과 소련 간의 금성 탐험 경쟁이 벌어지고, 한국의 우주인들이 각기 미국과 소련의 우주선에 탑승해서 우주여행이라는 이색적인 경험과 목숨을 건 모험을 펼친다.

상상 속에서 우리는 종횡무진으로 우주를 날고 외계인을 만나고 별들 간의 전쟁을 목도하지만, 발 딛고 선 자리를 보면 나로호를 수차례 시도 끝에 겨우 궤도에 올려놓고 한국인을 우주에 보내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우주선에 태워야만 하는 게 객관적인 현실이다.

과학소설의 세계는 과학의 이름으로 낭만적 상상을 수행하거나 과학 반 환상 반의 허구를 창조하는 것이라 해도 과히 빗나간 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 과학소설의 개척자인 한낙원(韓樂源, 1924~2007)의 작품 세계도 낭만적 상상과 과학적 환상을 수행한 것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잡지나 신문 등에 연재될 때 대개 '과학모험소설' '공상과학소설' 등으로 장르가 표시되었다. 이러한 '모험' '공상'을 바탕으로 한 과학소설의 창작 방향은 하나는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또 하나는 과학이 약속하는 미래에 대한 기대로 추구되었던 것이다.

▲ <한낙원 과학소설 선집>(한낙원지음, 김이구 엮음, 현대문학 펴냄). ©현대문학
<금성 탐험대>에 앞서 1959~60년에 발표된 <잃어버린 소년>(<한낙원 과학소설 선집>(한낙원 지음, 김이구 옮김, 현대문학 펴냄)에 수록되어 있다)을 보면 한라산 우주과학연구소에서 우주선이 뜨고 한국의 우주인 소년소녀가 우주 괴물들과 우주에서 요란한 전투를 벌인다. 여기에 비해 <금성 탐험대>는 좀 더 현실주의적인 접근을 시도했달까, 한국의 젊은이들이 치열한 우주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소련이 만든 우주선을 타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물론 과학소설이 허용하는 허구 세계에서 1960년대 초반의 미소 간의 우주 개발 경쟁이 작품의 배경 설정에 반영돼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한낙원은 인간이 아직 달에 도착하기 이전인 60년대 초반의 시점에, 이 작품의 배경으로서 인간이 달에 도달하고 나서 금성에 가기 위해 강대국 간에 경쟁을 하는 것으로 당대 현실의 맥락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따라서 금성 탐험, 하면 기분대로 시시하게 볼 것도 그렇다고 대단하게 볼 것도 아니다. <금성 탐험대> 속 한국의 세 젊은이—고진과 박철, 최미옥은 하와이의 우주항공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서 미국의 우주선 V.P.호와 소련의 우주선 C.C.C.P.(에쎄쎄르-에스에스에스에르)호에 탑승해 두 강대국이 우주에서 벌이는 싸움에 휘말려 들어가고, 외계인 알파성인과도 조우하는 모험의 주인공이 된다.

우리는 <금성 탐험대>를 읽으며 시선을 저 머나먼 우주, 안드로메다 은하나 삼각형자리 은하에 둘 필요가 없으며, 나로호나 우주인 이소연을 보던 시선을 그대로 이동하여 읽어 나가면 된다. 우주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이색적인 경험인데다 시작부터 의문의 납치 사건이 일어나 미스터리를 기조로 서사가 진행되는지라 시종 긴장과 흥미를 느끼며 책장을 넘길 수 있다.

과학 방송극 등 다방면으로 활동한 한낙원 작가

나는 <한낙원 과학소설 선집>의 해설을 쓰면서 '한국 과학소설의 개척자 한낙원'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이 제목의 의의는 두 가지다. 한낙원이 쓴 작품을 '공상과학소설'이나 '과학모험소설'이라 하지 않고 '과학소설'로 일러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낙원이 한국 과학소설의 '개척자'라는 것. 개척자는 대개가 선구자이듯 그도 과학소설의 개척자이자 선구자이다.

▲ 한낙원 작가. ©한애경 제공

한낙원은 어린이와 청소년 독자가 읽을 과학소설을 주로 썼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한국 과학소설 연구(연구랄 것도 거의 없지만)에서 그의 작품 활동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한낙원 과학소설 선집>에서 얼마간 밝힌 것처럼 한낙원은 1950년대 말부터 과학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해 전 생애에 걸쳐 '과학소설가'의 이름에 걸맞은 창작 활동과 저술 활동을 지속하였다. 시기마다 과학소설이나 과학 소재 작품을 발표한 작가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50년대 말 60년대 초에 일찍이 뚜렷한 작품을 남긴 작가로는 한낙원 외에 확인된 연구 결과가 없을뿐더러, 꾸준히 과학소설을 창작하는 작가는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한낙원은 주로 신문, 잡지 연재를 통해 작품을 발표했는데, 중단편 작품은 25편 내외, 장편은 38편 정도 발표한 것으로 집계된다. 동화도 있고 동극도 있지만 주 장르는 어린이와 청소년용 과학소설이다. 그의 작품은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않은 것도 많아서 작가의 유품인 신문, 잡지 스크랩으로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고, 상당수 작품이 발표 지면과 발표 일자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또한 그가 집필한 과학방송극도 35편 이상 존재하는데, 유품으로 확인되는 작품 목록은 내가 최대한 조사해서 <한낙원 과학소설 선집>에 수록하였다.

한낙원은 해방 직후 평양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일찍이 방송극에 관심을 가져 1953년부터 해외 방송극을 각색해 소개하기 시작했다. 또한 과학 지식을 알려주는 대화극 형식의 과학방송극을 상당수 집필하였고, <100년 후의 월세계><화성에서 온 사나이> 등 창작 방송극도 집필하였다. 1957년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새벗> 지에 번역해 소개하기 시작한 이후 <바다 밑 20만 리><우주 전쟁> 같은 과학소설의 고전도 번역하였다. 과학 정보 소개 글, 과학자 이야기, 과학 칼럼 등도 각종 지면에 기고하였다. 따라서 그는 과학소설가로만 한정할 수 없고, 극작가이자 번역가, 과학저술가이기도 하다.

그가 1983년에 직접 작성한 이력서를 보면 1961년 1월부터 12월까지의 시기에 "런던신문대학원 방송극작과 이수(통신강좌)/(The Radio Play Course, London School of Journalism)”라고 적혀 있는데, 그가 방송극에 대해 선구적인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공부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극작 활동은 앞으로 드라마 연구 쪽에서도 유의해서 연구해야 할 미답의 영역이고, 과학소설도 아직 많은 작품이 제대로 검토되지 못한 상황이다.

▲ <금성 탐험대> 연재 1회본. ©김이구 제공

한낙원은 경제 성장이 지상 목표였던 시대에 과학 발달이 가져올 미래의 삶에 대한 기대가 컸던 분위기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과학에 흥미를 갖고 미래 사회의 주역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희망을 강렬하게 품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과학소설 창작에 열의와 사명감을 갖게 되었고, 어린이 청소년 독자에게 다가가는 과학소설의 장르적 특징을 그 나름대로 개척해 작품으로 구현했기에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을 일궈나갈 수 있었다.

그의 작품들은 한국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설정해서 그들이 모험과 새로운 경험을 통해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것을 그리는 특징을 보여준다. <금성 탐험대>는 그런 성격을 전형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오늘날 과학소설을 쓰는 작가들의 작품 경향은 상당히 다양하지만 지금 이곳의 사람들, 곧 우리 자신을 직접적으로 과학적 상상의 그물 속에 주인공으로 밀어 넣는 힘은 상당히 미약한 듯하다. 그런 점에서 과학소설을 쓰는 작가들도 선구적인 과학소설가인 한낙원의 작품을 새롭게 읽고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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