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옥천 배바우 마을에 전국 각지에서 농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모두 녹색당원들이다. '농민의 안녕을 묻다'를 주제로 농민의 날 행사가 열렸다. 홍성 홍동면의 보행권 확보 운동, 장흥의 도농교류, 지역신문과 공동체, 옥천 안남면 주민자치 활동 등의 풀뿌리 자치사례 발표와 대화가 이틀 동안 이어졌다. 외딴 작은 농촌마을에서, 의미심장한 정치행사가 벌어진 셈이다.
굳이 이들이 중앙을 놔두고 벽지의 마을로 모여든 이유는 역시 남다르다. 주민자치나 지역공동체를 고민하고 염원하는 이들에게 배바우 마을과 옥천 안남면은 모범이자 전범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 배울 게 유난히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느 지역이나 마을처럼 정권 교체, 지자체장의 정책변화 등 외부의 힘에 휘둘리지 않은 점이 눈에 띈다. 주민 스스로 자신들의 일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구조와 체계를 애써 만들어냈다. 그 치열한 노력의 과정과 현장에는 황민호 씨 같은 강고한 마을운동가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이른바 체제에서 쓰이는 마을이라는 용어는 그저 그런 뿌리 조직을 뜻하는 정도에 불과할지 모르죠. 국가나 정부의 거대한 힘으로 쉽게 포섭하거나 제압할 수 있는 작고 나약한 존재로서 마을이죠. 하지만 마을은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이고 일상에서 가장 내밀하고 가깝게 부대끼는 삶터잖아요. 우리에게 국가나 정부보다 더 중요하고 절신한 개념일지 몰라요. 마을이란 '마을이 학교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고 우리가 생각하고 말할 때 그 마을인거죠."
지역에서는, 그리고 SNS 세상에서는 '권단'이라는 필명으로 더 알려진 황 씨. 지금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마을에 대해 품고 있는 사고와 사랑이 매우 깊고 진하다. 숙명적으로 마을에 모든 걸 걸고 살아가는 사람 같다. 우선 마을이란 모름지기 자립과 자치, 자급자족이 가능해야 한다고 믿는다. 결국 협동과 연대의 지역사회로 지속적으로, 거침없이 진화해야 한다는 소신이 굳고 강하다. 가히 마을자치 또는 독립운동에 뛰어든 마을운동가의 자세를 방불케 한다.
"우리가 견지할 방향은 자립이 가능한 생활권 중심의 지역사회라야 한다는 것이죠. 어느 정부가 보기에는 그것만큼 불온하고 불편한 상태는 없을 수도 있어요. 정부나 관청같은 외부나 상부의 도움이 그다지 필요치 않다는 것은 억압과 착취의 지배 하에 놓일 필요가 없다는 말일테니까요. 그런 마을은 언제든 스스로 독립할 수 있고, 뜻을 같이 한 이들과 서로, 함께 연대하면서 싸워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국가나 정부의 통제와 간섭이 불필요한 거죠. 그렇다면, 국민 각자의 연결고리들을 끊어내고 각개 약진하는 경쟁의 대열에 늘어서게 하려는 불순한 체제의 의도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거죠."
이른바 '마을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수천 곳의 마을마다 경쟁적으로, 소모적으로 벌어지는 정부지원 공모사업에 대해서도 황 씨는 불만이 많다. "기실 줄세우기를 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는 진단이다. "그래 지원해줄 테니 어디 한번 열심히 노력해 봐, 다만 우리가 정해놓고 제시하는 기준과 표준에 합당해야 해, 그래야 점수도 주고 뽑아줄 거야, 아니면 지원받을 생각일랑 아예 하지도 마"라는 식으로 윽박지르고 다그치는 정부나 지자체의 태도에 황 씨는 늘 모욕감을 느낀다. 마치 "정부가 정한 기준에 맞춰 공모에서 선정된 마을은 잘 나서 된 것이고, 떨어진 마을은 못 나서 그냥 그 모양 그 꼴로 살아야 한다"고 가혹한 낙인을 찍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참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일이 아닐 수 없어요. 그게 다 우리, 마을사람들을 무시하고 분열시키는 짓들이에요. 우리 마을사람들끼리는 서로 질시해야 할 대상이 아니죠. 서로 견제해야 할 대상도 아니고요. 함께 힘을 모아 연대해서 함께 살아갈 삶의 토대를 건설해야하는 동지들이죠. 우리를 좌지우지하려는 거대한 외부의 힘들에 맞서 싸워야 하는 공동체 식구들이잖아요."
그렇게 우리끼리 서로 협동하고 연대하기 위해서는 먼저 만나고 모이는 게 중요하다는 게 황 씨의 지론이다. 일단 만나고 모여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론의 장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녹색당 농민 모임이 옥천에서 열린 것도 녹색당원으로서 황 씨의 이 같은 생각이 받아들여진 결과라 할 수 있다.
"마을이라는 삶터는 고향과 같은 곳이잖아요. 그곳에서 태어났든 태어나지 않았든. 내가 뿌리 내리고 살고 있는 마을공동체와 지역 사회가 고향처럼 소중한 거죠. 정서적으로, 직관적으로, 인간적으로 따뜻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생활과 생존의 공간이죠. 고향처럼 자기 제어와 남에 대한 배려가 얼마든지 가능한 그런 지역사회를 되찾고 지켜내야 한다는 책무를 늘 잊지 않으려 애를 쓰는 편이죠. 그리고 그런 고향같은 마을끼리 서로 연대하며 지역사회, 지역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뿌리단위 조직으로 순기능을 발휘한다면, 비로소 마을은 우리 아이들이 온전히 성숙한 인간으로 자랄 수 있는 학교가 될 수 있을 테고요."
옥천신문 기자, 황민호
황 씨는 기자였다. 옥천이 고향이 아니다. 대전에서 태어났다. 대전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2002년에 옥천신문 기자로 옥천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10년 동안 옥천신문 기자로 살았다.
"편집국장까지 했어요. 대표적인 지역신문으로 진보적 옥천신문에서 일하면서 체제에 대한 비판도 열심히 하고 그러면서 세상도 많이 배웠어요. 하지만 어느 날 생활을 점검하고 정산해보니 내 삶은 그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인생에 빨간불이 들어왔고 브레이크를 밟아서라도 삶을 다시 돌아보고 싶었어요. 달리는 차창에서 스치듯 보이는 풍경을 보는 것을 벗어나 그 자리에 멈춰선 채 살아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맞추고 또렷하게 세상을, 사람을 바라보고 싶었진 거죠."
황 씨는 옥천의 변방인 청산면 주재기자 노릇을 자청한 적이 있다. 지역에서 처음 시작한 일은 마을 어린이들과 친구가 되는 일이었다. 방과 후에 갈 곳이 없었고, 별다른 놀이문화가 없었던 아이들에게 그는 영화를 보여주었다. 그 다음 희망의 작은도서관을 만들었다. 아이들과 친해지다 보니 동네 어르신들과도 자연스레 정을 나누게 되었다. 청산면에 사람의 온기가, 공동체의 활력이 살아났다. 황 씨는 그때 취재 현장에서 만난 부모 잃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돌보고 있다.
2006년 5월. 청산면의 한 산골 마을에서 40대 남자가 숨진 현장을 취재하러 갔던 황 씨가 시신 옆에서 혼자 울고 있는 아이를 총각의 자취방으로 데려와 동거를 시작한 것이다. 아동보육시설 등 전문기관에서 가정 위탁에 필요한 소양교육까지 받으며 아이를 돌보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 이제는 불안해하던 부모님도 친손자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신다. 이후 결혼한 아내를 아이는 이모라 부르며 잘 따르고 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옥천살림 배달부, 황민호
황 씨는 옥천신문을 그만둔 이후, 마을연구소 안남의 책임연구원으로. 옥천살림 기획팀장으로, 옥천군농민회 사무국장으로, 그리고 옥천순환경제공동체의 운영위원장으로 지역 사업에 헌신하고 있다.
특히 로컬푸드 사업을 하는 옥천살림에서 생전 처음 트럭 배달 일을 하고 있다. 머리를 버리고 몸을 한번 써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몸과 먹을거리에 대한 성찰을 깊이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과체중과 고혈압의 문제도 해결하는 소득까지 얻었다.
"우리 농촌이 벼랑 끝에 서 있다는 말도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비명횡사 직전입니다. 우리 밥상과 들녘이 철저하게 끊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밥상을 보면 당장 들녘이 사라진다 한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마트에서 사 먹으면 되거든요. 값싸고 때깔 좋은 수입농산물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싼 것이라고 해서 덥석 짚어드는 순간 우리는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농산물을 만든 바다 건너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당하고, 그런 농산물을 유통시켜서 엄청난 이윤을 챙기는 재벌 대기업에게 당하는 겁니다. 돈도 털리고, 건강도 빼앗기고, 미래도 빼앗깁니다. 하지만 두부 한 모라도 우리 것을 사주면 농부가 살아나고 들녘이 살아납니다."
황 씨는 마주치는 사람마다 붙잡고 호소한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하던 애국자들의 심정을 떠올리며 당부한다.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값보다는 가치, 맛보다는 건강, 포장지나 브랜드에 속지 말고 관계를 먼저 생각해 주십시오. 바로 우리 눈앞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는 농민들을 생각해 주십시오. 그분들은 우리의 건강한 먹을거리를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 먹지 않으면 농촌의 불빛은 꺼져 갈 것입니다. 몸과 맘을 망치는 가짜 먹을거리들이 창궐할 것입니다."
이렇게 옥천살림에서 먹을거리를 배달하느라 지역을 샅샅히 누비면서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일종의 정치관과 세계관도 다시 정돈할 수 있었다.
"4년마다, 5년마다 군수가 누가되느냐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린다면 이것 참 로또 방식의 불안한 시스템 아닌가요. 권력에 휘둘리기 쉬운 우리 스스로 무게중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에요. 권력자에 의해 제어되는 것이 아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제어하는 자치구역을, 생활체계를, 자치 공간을 회복하자는 것이죠. 권력 체제와 행정체계와 불화하면서 우리의 생활세계를 지켜내자.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자립운동을 벌여나가자. 그렇게 우리의 무게중심을 세우고 흐름을 잡아나가자는 것이죠."
그래서 황 씨는 최근 옥천순환경제공동체라는 결사체의 배에 기꺼이 올라탔다. 운영위원장이라는 노와 키까지 움켜쥐고 옥천이라는 지역공동체의 바다를 향해 닻을 올렸다.
"막상 길을 나서고 보니 걱정이 더 많아요. 잘 될까 하는 불안감도 없지 않고요. 저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요. 지역에서 다양한 만남과 모임을 추동하면서 한사람이라도 더 지역주민들을 참여하도록 하는 게 관건이라고 봐요. 모두 함께, 같이 사는 공생공영의 지역사회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저 또한 마을사람이자 지역주민으로서, 소박한 바람이자 욕심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