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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는 잠재적 범죄자? 용역계약서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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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는 잠재적 범죄자? 용역계약서 보니…

54개 대학 분석…순응·친절·동원 강요당한 서러운 그녀들

국내 54개 대학의 청소 용역 계약서를 분석한 결과, 상당수 대학이 청소 노동자에게 '친절'과 '순응'을 강요하거나, '잡담'과 '배회', '불쾌한 인상' 등을 금지하는 인권 침해적인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6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서울경인지역서비스지부(이하 서경지부)는 이 같은 결과를 보여주는 국내 54개 대학의 2013년도 또는 2014년도 청소 용역 계약서 사본 일부와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지난달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던 중앙대에서도 노동자들의 콧노래와 잡담, 소파에서의 휴식 등을 금지하는 용역 계약서가 발견돼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조사 대상 대학 4곳 중 1곳이 '순응·친절' 강요

청소 노동자는 관리자 등의 지시에 '순응'하고 항상 '친절'해야 한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한 곳은 계약서를 확보한 54곳 중 13개(24.1%) 대학이었다.

국립대인 금오공대는 "청소원은 근무 중 교직원 및 학생과 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며, 항상 친절하게 응대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고 제주대는 "청소원은 타인에게 혐오감을 줄 정도의 얼굴 및 몸치장을 금한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포함해 놨다.

논란이 됐던 중앙대와 마찬가지로 근무 중 '잡담'을 금지하고 있는 대학은 7곳(13.0%)이 확인됐고, 배회 금지(근무지 이탈 금지)를 명시한 대학은 12곳(22.2%)이 있었다.

청소 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 신상 조회를 의무화한 대학도 5곳(9.3%) 발견됐다. 국립대인 한국예술종합학교는 "현장 책임자는 도급원(청소 노동자)에 대한 신상 조사를 철저히 해 도난, 분실 등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모든 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계약을 용역 업체와 체결했다.

행사 준비, 집기 운반, 제초 작업 등을 위해 원청(대학)이 청소 노동자 동원을 요청하면, 이를 반드시 따르도록 한 대학도 33곳(61.1%) 확인됐다. 이 가운데 서울대, 경남과기대, 경인교대 등은 "동원을 이유로 청소 노동자(또는 업체)는 반대 급부를 요구할 수 없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파업․노조 활동 원천 금지 62.96%…"계약서만 봐도 불법 파견"

청소 노동자의 쟁의 행위 또는 노동조합 활동 등을 사실상 원천 금지함으로써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을 위반하는 계약 내용을 갖춘 곳은 34곳(62.96%)에 달했다.

진주교대는 "청소 작업원은 파업 또는 태업 등으로 교직원, 학생 및 외래객의 업무에 불편을 초래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고, 광운대는 청소 노동자 금지 행위 항목에 "파업 또는 태업을 하는 행위"를 포함해 놨다.

이 외에도 경북대, 목포대, 한밭대 등은 용역 업체에 쟁의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감독할 것을 요구하거나, 쟁의 행위가 발생해 대학 측에 손해가 생길 경우 이를 업체가 부담토론 하는 손해배상 제도를 뒀다.

원청(대학)이 요구할 때 청소 노동자를 '교체'하도록 한 대학은 분석 대상 대학 중 절반이 넘는 31곳(57.4%)에 달했다. 청소 용역 사업장에서 원청의 '교체' 요구는 곧바로 '해고'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이같은 조항들은 '불법 파견' 판정을 받을 소지가 크다. 노동 전문인 최성호 변호사는 "대학들이 관리․노무 비용 절감, 즉 사용자 책임 회피를 위해 간접 고용(외주)을 택하고도 사실상 청소 노동자 인사에 직접 개입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계약서만 봐도 도급을 위장한 불법 파견 소지가 높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직접 고용 전환 시, 1인당 연 300만 원 급여 상승 가능"

계약서를 통해 용역비 세부 내역을 확인할 수 있었던 47개 대학에서, 용역 업체가 중간에서 가져가는 관리비 및 이윤은 연간 용역비의 8.6%를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47개 대학의 연간 용역비는 759억7662만 원이었고, 이 가운데 관리비는 25억2488만 원(3.3%), 이윤은 40억1088만 원(3.3%)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47개 대학 중 23개 국․공립 대학은 용역 업체 선정 및 낙찰을 위해 조달청 전자입찰 수수료로만 연 2억2161만 원가량을 지출하고 있었다. 만약 이 대학들이 2147명의 청소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며, 업체 관리비와 이윤 만큼을 청소 노동자 급여로 전환한다면, 노동자 1명 당 연 300만 원 급여 상승 효과가 생긴다.

이번 54개 대학의 용역 계약서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우원식․유은혜․배재정․박홍근 의원이 교육부를 통해 취합했다. 54개 대학 중 41개 대학은 전국 국․공립 대학 전부이며, 나머지 13개 대학은 서울 소재 사립 대학들이다.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홍익대, 성균관대, 한양대, 경희대, 한국외대, 국민대, 숭실대, 세종대, 건국대, 동국대, 상명대, 가톨릭대 등은 용역 계약서 제출을 거부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서경지부는 이번 조사․분석을 계기로, 청소 노동자 노동권 및 인권 보호를 위한 대책을 장기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6일 오전 10시 30분 국회에서 대학 청소 노동자 간접 고용 증언 대회를 열어 피해 사례를 검토하고 구체적인 대안들을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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