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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은 머슴, 맞는 말일까?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의 정치 ④

정치인, '심부름꾼' 자처하면 그만인가?

집값이 오르면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이 날아가고, 반면에 집값이 내려가면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한 사람들이 하우스푸어(house poor)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면 집값은 올라야 하나, 내려야 하나? 고민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이다. 

1990년대 후반 아이엠에프(IMF) 사태와 함께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이 생겨나고 점점 더 증가하여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섰고, 그 숫자는 적게는 600만 명에서 10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직으로 2년을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법을 만들었으나 2년이 되기 직전에 해고하는 등 문제는 지속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비정규직을 모두 철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다른 쪽에서는 비정규직을 없애면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는다고 반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한 한미 FTA 논의는 이명박 정부에서 협정에 서명하고 국회에서 비준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논의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찬반 양쪽으로 갈라져 심각한 갈등을 야기하였다. 비준이 완료된 지금도 독소조항의 일부 개정 등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고, 반대하는 측은 여전히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명박 정부부터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는 등 남북 관계가 꽉 막혀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도 개성공단이 중단되는 등 여전히 신뢰관계는 구축되지 않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경색된 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역시 딜레마이다. 

이처럼 서로 요구하는 바가 달라 갈등을 일으키고 대립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사람이 바로 정치인이다. 정치인들은 이와 같이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대안이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사회문제의 특성상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안을 찾는 것은 어렵다. 그러므로 우선으로 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나머지 당사자들에 대해서는 그 대안이 이 상황에서 최선의 방안임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일이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종종 정치인들이 국민의 심부름꾼, 머슴이 되겠다고 하는 말을 듣는다. 정치인이 무슨 택배회사 직원도 아니고 어떻게 무엇을 심부름하겠다는 것인지, 머슴으로 동네에 와서 마당이라도 쓸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과거 독재자의 하수인 역할을 할 때나 민주주의가 아직 덜 발달했을 때, 중앙에서 돈을 가져다 나누어 주는 일을 할 때는 그럴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사회가 다원화되어 복잡해지고 서로 이해관계의 대립이 많아지고 있다. 선악의 구분도 쉽지 않다.

따라서 정치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여러 집단이나 개인들 사이의 또는 집단과 개인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해결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복잡한 사회현상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끊임없이 스스로 공부해야 하고,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하는 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 존중하려면 선거 패배 책임 져야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은 다른 일로 바쁘다.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나 경조사에 쫓아다니느라 시간이 없다. 구의원 또는 군의원, 시의원 또는 도의원도 많이 있는데, 국회의원까지 지역의 조그만 행사에 쫓아다니는 것은 정말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현장의 소리를 듣는 것과 눈도장을 찍으러 다니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또한 정당이 제대로 발전하게 되면 지역의 의견은 자연스럽게 중앙으로 올라오게 될 것이다. 

사회문제에 정통하기 위해서 정치인은 우리 사회의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당 활동에서 훈련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치인은 사회문제들에 대해서 열정을 가지고 균형감각을 살려서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문제해결에 실패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고 물러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2008년 18대 총선에서 수도권 지역에 뉴타운 광풍이 불어 다수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소위 '타운돌이' 의원들의 탄생이었다. 이후 부동산 경제가 침체되면서 지역의 재개발 문제는 추진하기도 어렵고 중단하기도 곤란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떠한 대안이나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 정치인들이 19대 총선에 다시 나와 표를 달라고 했던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닌가? 

독일에서 기민당 헬무트 콜 총리의 독주가 장기간에 걸쳐 계속될 때, 사민당에서는 라퐁텐(O. Lafontaine), 샤아핑(R. Scharping), 슈뢰더를 차례로 총리후보로 내세워 끝내 정권교체에 성공하였다. 당시 이들은 사민당의 트로이카로 불렸다. 하지만 지난 선거의 총리후보를 다음 선거에 다시 내세우는 일은 결코 없었다. 어떤 정치인이든지 준비가 안됐으면 선거에 나서지 말아야 하고, 나섰다가 안 됐으면 반드시 그 책임을 져야 한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앨 고어(Al Gore)' 후보는 대통령에 거의 당선되었다가 낙선하였다. 당시 공화당의 부시 후보보다 총 득표수에서는 더 많은 표를 얻고도, 미국 대통령 선거의 특성상 선거인단 수에서 부족하여, 그것도 대법원의 판결에 승복하느라 떨어진 것이다. 그 아쉬움이 오죽 컸을까. 하지만 2004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나오지는 않았다. 새로운 인물이 다시 민주당 후보(존 케리 John Kerry)로 나섰다. 

유권자를 존중한다면 (대통령이나 총리후보의 경우) 이전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가 다시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에는 이런 점이 무시되는 측면이 있다. 대표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례가 그것이다. 물론 정치적 상황이 특수하여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가 대선에서 4수를 한 것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대선에서 진 사람이 다시 대선에 나오는 것을 정당화할 핑곗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꼭 대통령이 되어야만 국가를 위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러한 후진적 정치행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또 정치인들의 원활한 순환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바로 정당을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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