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취임 1주년을 앞두고 대한민국 국가와 사회에서 묘한 정치적 형세가 펼쳐지고 있다. 대선 기간 내내 앞세우고 다녔던 국민통합의 기치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은 작심한 듯 높은 성벽을 쌓아 국민 중 자기편을 성 안으로 끌어들이고 적대자는 차근차근 성 밖으로 몰아내는 '농성(籠城) 통치’의 틀을 갖춰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8일 민주당 비례대표 초선인 장하나 의원이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를 '부정 선거'라고 규정, '대선 결과 불복'을 선언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사퇴하고 보궐선거를 하라’는 제목의 개인 성명을 발표할 당시만 하더라도 새누리당은 거의 당 전체가 나서 앞다퉈 발끈했다.
그런데 올 2월 10일 광주광역시의 한 성당에서 열린 천주교 광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역시 현 대통령을 뽑은 2012년 대통령 선거를 '부정 선거'로 규정하고 "모두가 나서서 '가짜 대통령’을 국민의 이름으로 해임하자”라고 공공연히 성명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이번에는 두 달 전과 달리 전혀 못 들은 척하고 있다.
2월 17일 천주교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같은 교구 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우산 성당에서 열린 '부정 선거 규탄, 민주주의 회복’ 시국 미사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 자리에서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이동훈 신부는 강론을 통해 "스포츠 경기에서 부정 사실이 드러나면 메달을 박탈하고 실격 처리한다. 부정 선거를 통한 대통령 당선은 박탈되어야 하고 실격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도 새누리당은 떠들려면 떠들어 보라는 태도로 외면했다. 심지어 이동훈 신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를 언급한 일을 거론하며 "올림픽 금메달을 놓친 것에 이렇게 격분하며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정치인들이 부정 선거로 인해 민주주의의 메달을 놓친 것에는 왜 그리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히려 감추기에 급급한지 모를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래도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정치적 반대자나 비판에 대해 새누리당이나 청와대가 관용을 베풀기로 정책을 바꾸어서 그럴까. 그게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장하나 의원이나 천주교 신부님들뿐만 아니라 시민 대중 사이에서도 지난 대선은 '관권 부정 선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사태가 이상하게 번지다 보면 대통령이 사퇴할 수도 있을 정치적 암초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는 금기가 아니다. 이 사안에 가장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이 가동되고 있지 않고, 이런 정치 세력의 원동력이 될 최종 근거인 국민 대중이 아직은 사태를 방관하는 틈을 타 박근혜 정부는 반대자들을 이리저리 나누어 각개격파하려는 대오를 취하고 있다. '종북 몰이’를 통해 진보진영을 자체 분리시키고, 종북 세력과 단일화를 꾀했다는 책임을 물어 야권 연대를 원천봉쇄하면서, 정치적 소통 대신 통치의 압박으로 일반 대중을 얼어붙게 만든다.
취임 1주년을 코앞에 둔 현재의 시점에서 박근혜 정부에서는 정치가 실종하고, 정보 공작을 앞세워 권력기관들을 결집시켜 반대자에 대한 타격을 극대화하는 '박정희표 통치 스타일’이 재연되고 있다. 그 스타일과 내용 면에서 이제 대통령 박근혜는 독립된 정치 인격이라기보다 - 유시민 전 장관의 야유대로 - '박통 2세’라고 조롱당해도 할 말이 없는 '박정희 아바타’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정치인 박근혜를 그 선친과 부정적으로 연관시키는 정치적 연좌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가 아버지인 박정희를 단지 계승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상당수가 인정하는 ― 아버지의 위업을 아직도 믿는 한국의 기층 대중으로부터 상당한 신망을 확보한 거의 유일한 보수 정치인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아버지의 부정적 유산, 즉 가혹한 인권 탄압과 노동 착취를 동반했던 반민주적 폭정의 희생자들에게 아버지와 어느 정도 정치적 거리를 둘 수 있는 민주주의적 상황을 배경으로 참회와 화해의 손길을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보수 정치인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두고 "국민 화합의 최적임자”라고 언급한 것이 단지 덕담만이 아니라, 보수의 여망을 짊어지고 거침없이 진보의 정책을 구사할 수 있는 박근혜야말로 국민 통합의 적임자가 될 수 있는 천혜의 정치적 위치를 타고났었다고 나는 믿는다.
실제로 그는 대선 기간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브랜드였던 3대 정책을 모조리 선점하고 들어왔다. 첫째는 보편복지, 둘째는 경제민주화, 셋째는 한반도 신뢰 관계 구축이었다. 이런 진보 정책을 일단은 표방하고 나섬으로써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근혜’라는 정치언어 프레임을 벗어나 이명박 정권과 어느 정도 차별성을 짓는 데 성공하면서 야당의 선명성을 정책 면에서 희석시키는 데 상당 정도 성공했다.
물론 오차 범위 안의 비율로 성취된 박근혜의 당선이 이런 정책 경쟁에서의 우위가 아니라, 결정적으로는 국정원과 국군정보사령부 심지어 국가보훈처까지 가세한 이명박 정권의 은밀한 선거 개입 공작 덕분이라는 의혹이 지난 1년간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조기에 잠들었던 개표 부정 의혹까지 되살아나는 조짐까지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이 지난 1년간 대선 기간 내내 떠벌렸던 진보적이고 국민 통합을 지향하는 정책들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일부라도 추진하고 나섰다면, 선거 과정에 대한 의혹이 새삼 이렇게 확신으로까지 상승하는 것은 막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태는 정반대로, 그것도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악화되었다. 지금 남은 것은 배신감뿐이다. 보편복지는 일찌감치 수정되었고, 경제민주화는 실종되었으며, 한반도 신뢰관계 구축은 그 접점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드러난 것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절멸시키려는 악착스러움뿐이다. 다만 40년 전과는 달리 앙상한 국가 폭력을 마음껏 구사하지 못하는 물리력의 한계 때문에 스타일은 아버지 그대로이지만 성과는 별로 신통치 않은 수준이다 보니 결국은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나 김용판 무죄 판결에서 보듯이 법조문이나 법조계를 정권의 방패막이로 악용할 방법만 궁리하는 '농성 통치’만 남았다.
법치주의에 대한 의식이 아직은 허약하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잡은 검찰과 사법부가 과거 박정희 시대의 군부가 했던 역할을 대신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점점 커진다. 대통령 직할지인 국가'정보원’은 대한민국의 큰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국가'정치원’으로 일찌감치 업그레이드됐다. 국정원, 검찰, 그리고 사법부가 2008년 촛불시위를 막았던 명박산성 역할을 떠맡으면서, '새로운 유형의 보수 아이콘’일 수 있었던 박근혜를 단지 '박정희 아바타’로 박제화시키고 있다. 현 정권과 관련된 정치 현안에 관해서 만큼은 사법부가 계속 정권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가장 큰 비극은 청와대‧국정원 농성장 안에서 부화하고 있는 이 과거 시대의 '에일리언’을 퇴치할 리플리 이등 항해사(영화 <에일리언>에서 시거니 위버 분)와 같은 존재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농성 통치'의 성채에서 오는 신호에 따라 이런저런 권력 좀비들이 움직이는 대한민국의 정치판과 시민 생활은 황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도 앞으로 4년이나…….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지난해 12월 8일 민주당 비례대표 초선인 장하나 의원이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를 '부정 선거'라고 규정, '대선 결과 불복'을 선언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사퇴하고 보궐선거를 하라’는 제목의 개인 성명을 발표할 당시만 하더라도 새누리당은 거의 당 전체가 나서 앞다퉈 발끈했다.
그런데 올 2월 10일 광주광역시의 한 성당에서 열린 천주교 광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역시 현 대통령을 뽑은 2012년 대통령 선거를 '부정 선거'로 규정하고 "모두가 나서서 '가짜 대통령’을 국민의 이름으로 해임하자”라고 공공연히 성명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이번에는 두 달 전과 달리 전혀 못 들은 척하고 있다.
2월 17일 천주교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같은 교구 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우산 성당에서 열린 '부정 선거 규탄, 민주주의 회복’ 시국 미사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 자리에서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이동훈 신부는 강론을 통해 "스포츠 경기에서 부정 사실이 드러나면 메달을 박탈하고 실격 처리한다. 부정 선거를 통한 대통령 당선은 박탈되어야 하고 실격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도 새누리당은 떠들려면 떠들어 보라는 태도로 외면했다. 심지어 이동훈 신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를 언급한 일을 거론하며 "올림픽 금메달을 놓친 것에 이렇게 격분하며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정치인들이 부정 선거로 인해 민주주의의 메달을 놓친 것에는 왜 그리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히려 감추기에 급급한지 모를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래도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정치적 반대자나 비판에 대해 새누리당이나 청와대가 관용을 베풀기로 정책을 바꾸어서 그럴까. 그게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장하나 의원이나 천주교 신부님들뿐만 아니라 시민 대중 사이에서도 지난 대선은 '관권 부정 선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사태가 이상하게 번지다 보면 대통령이 사퇴할 수도 있을 정치적 암초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는 금기가 아니다. 이 사안에 가장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이 가동되고 있지 않고, 이런 정치 세력의 원동력이 될 최종 근거인 국민 대중이 아직은 사태를 방관하는 틈을 타 박근혜 정부는 반대자들을 이리저리 나누어 각개격파하려는 대오를 취하고 있다. '종북 몰이’를 통해 진보진영을 자체 분리시키고, 종북 세력과 단일화를 꾀했다는 책임을 물어 야권 연대를 원천봉쇄하면서, 정치적 소통 대신 통치의 압박으로 일반 대중을 얼어붙게 만든다.
취임 1주년을 코앞에 둔 현재의 시점에서 박근혜 정부에서는 정치가 실종하고, 정보 공작을 앞세워 권력기관들을 결집시켜 반대자에 대한 타격을 극대화하는 '박정희표 통치 스타일’이 재연되고 있다. 그 스타일과 내용 면에서 이제 대통령 박근혜는 독립된 정치 인격이라기보다 - 유시민 전 장관의 야유대로 - '박통 2세’라고 조롱당해도 할 말이 없는 '박정희 아바타’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정치인 박근혜를 그 선친과 부정적으로 연관시키는 정치적 연좌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가 아버지인 박정희를 단지 계승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상당수가 인정하는 ― 아버지의 위업을 아직도 믿는 한국의 기층 대중으로부터 상당한 신망을 확보한 거의 유일한 보수 정치인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아버지의 부정적 유산, 즉 가혹한 인권 탄압과 노동 착취를 동반했던 반민주적 폭정의 희생자들에게 아버지와 어느 정도 정치적 거리를 둘 수 있는 민주주의적 상황을 배경으로 참회와 화해의 손길을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보수 정치인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두고 "국민 화합의 최적임자”라고 언급한 것이 단지 덕담만이 아니라, 보수의 여망을 짊어지고 거침없이 진보의 정책을 구사할 수 있는 박근혜야말로 국민 통합의 적임자가 될 수 있는 천혜의 정치적 위치를 타고났었다고 나는 믿는다.
실제로 그는 대선 기간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브랜드였던 3대 정책을 모조리 선점하고 들어왔다. 첫째는 보편복지, 둘째는 경제민주화, 셋째는 한반도 신뢰 관계 구축이었다. 이런 진보 정책을 일단은 표방하고 나섬으로써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근혜’라는 정치언어 프레임을 벗어나 이명박 정권과 어느 정도 차별성을 짓는 데 성공하면서 야당의 선명성을 정책 면에서 희석시키는 데 상당 정도 성공했다.
물론 오차 범위 안의 비율로 성취된 박근혜의 당선이 이런 정책 경쟁에서의 우위가 아니라, 결정적으로는 국정원과 국군정보사령부 심지어 국가보훈처까지 가세한 이명박 정권의 은밀한 선거 개입 공작 덕분이라는 의혹이 지난 1년간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조기에 잠들었던 개표 부정 의혹까지 되살아나는 조짐까지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이 지난 1년간 대선 기간 내내 떠벌렸던 진보적이고 국민 통합을 지향하는 정책들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일부라도 추진하고 나섰다면, 선거 과정에 대한 의혹이 새삼 이렇게 확신으로까지 상승하는 것은 막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태는 정반대로, 그것도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악화되었다. 지금 남은 것은 배신감뿐이다. 보편복지는 일찌감치 수정되었고, 경제민주화는 실종되었으며, 한반도 신뢰관계 구축은 그 접점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드러난 것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절멸시키려는 악착스러움뿐이다. 다만 40년 전과는 달리 앙상한 국가 폭력을 마음껏 구사하지 못하는 물리력의 한계 때문에 스타일은 아버지 그대로이지만 성과는 별로 신통치 않은 수준이다 보니 결국은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나 김용판 무죄 판결에서 보듯이 법조문이나 법조계를 정권의 방패막이로 악용할 방법만 궁리하는 '농성 통치’만 남았다.
법치주의에 대한 의식이 아직은 허약하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잡은 검찰과 사법부가 과거 박정희 시대의 군부가 했던 역할을 대신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점점 커진다. 대통령 직할지인 국가'정보원’은 대한민국의 큰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국가'정치원’으로 일찌감치 업그레이드됐다. 국정원, 검찰, 그리고 사법부가 2008년 촛불시위를 막았던 명박산성 역할을 떠맡으면서, '새로운 유형의 보수 아이콘’일 수 있었던 박근혜를 단지 '박정희 아바타’로 박제화시키고 있다. 현 정권과 관련된 정치 현안에 관해서 만큼은 사법부가 계속 정권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가장 큰 비극은 청와대‧국정원 농성장 안에서 부화하고 있는 이 과거 시대의 '에일리언’을 퇴치할 리플리 이등 항해사(영화 <에일리언>에서 시거니 위버 분)와 같은 존재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농성 통치'의 성채에서 오는 신호에 따라 이런저런 권력 좀비들이 움직이는 대한민국의 정치판과 시민 생활은 황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도 앞으로 4년이나…….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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