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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회의원 전직은 검사, 앵커…독일은?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의 정치 ②

89년에 대변인, 2005년에 총리되다

2013년 연말부터 3번째 임기를 시작한 '앙겔라 메르켈' 연방총리는 1954년생이다. 이미 1968년 무렵 구동독의 집권당이었던 독일사회주의통일당(SED)의 청소년조직 '자유독일청년(Freie Deutsche Jugend)'의 적극적인 회원이었다. 그녀는 동독 지역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1986년에는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12월, 동독의 '민주개혁당(Demokratischer Aufbruch)'에 가입하여 대변인으로 활동하였다. 이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독 지역에서 새로이 생겨난 여러 정당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자유 선거로 선출된 구동독의 마지막 정부에서 잠시 부대변인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90년 8월, 이 당이 기독교민주당(CDU: 이하 기민당)에 통합되면서 그녀는 기민당의 당원이 되었다.

독일의 총선에서 모든 유권자는 1인 2표를 가진다. 즉, 지역구의 직접 후보에게 1번째 1표, 동시에 선호하는 정당에 2번째 1표를 행사한다. 통일 이후 처음으로 독일 전역에서 치러진 1990년 12월의 총선에서 그녀는 구동독 지역인 메클렌부륵-포폰먼(Mecklenburg-Vorpommern) 주의 한 선거구에 (정당 명부에 의한 비례대표 후보가 아닌) 직접 선거의 후보로 출마하여 연방하원(Bundestag) 의원에 당선되었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이후 7선을 기록하게 된다.

ⓒ조성복

2005년부터는 CDU의 총리 후보로 출마하여 실제 연방총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2013년을 제외하고는 과반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띤다. 동시에 정당 투표에서의 기민당 득표율은 그보다도 훨씬 더 적은 것을 보면 우리와 같은 몰표 현상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총리의 지역구에서조차도 다른 당에 대한 지지가 55~65%로 절반을 넘었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통일 후 동독 출신의 정치인을 필요로 했던 당시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에 의해 발탁되어 1991~94년 사이에 연방가족부 장관, 1994~98년에는 연방환경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98년 사민당에 정권을 넘겨주면서 그녀는 기민당의 사무총장이 되었고, 1999년에 불거진 헬무트 콜의 정치자금 스캔들의 여파로 2000년에는 CDU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후 2년마다 대표직을 갱신하면서 순차적으로 계속된 '주 의회(Landtag)' 선거(지방선거)에서 기민당을 승리로 이끌었다.

연방공화국인 독일은 총 16개의 주(州)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도시 형태의 주 3곳(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각 지방의 형편에 따라 4~5년을 주기로 서로 다른 날에 선거를 치르며, 선거 방식에서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처럼 각 지자체가 지방의회의 임기를 스스로 결정하는 등 보다 나은 지방자치제를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여러 주에서의 선거 승리를 바탕으로 메르켈은 2005년의 총선에서 승리하여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다. 이후 2009년과 2013년 선거에서도 연이어 승리하여 3번째 총리직을 수행 중이며, CDU 대표직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여성이자 동독 출신이라는 장벽이 있었지만 그녀의 경력을 되돌아보면, 최고 정치인이 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정치 전문가'가 정치한다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öder)' 전 총리는 1944년생으로 19세인 1963년에 사민당의 당원이 되었다. 1971년에는 SPD 하노버 지역 청년위원회(Jusos) 위원장이 되었고, 1978~80년에는 연방 청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80년 연방하원에 진출하여, 이후 6년간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86년 그는 연방하원의 의원직을 내려놓고, 니더작센(Niedersachsen) 주 의회 선거에서 주지사(Ministerpräsident: '주총리'라고도 함)에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주지사는 연방과 마찬가지로 주 의회 의원의 과반수를 확보하는 당에서 차지한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 의회의 야권 지도자로 남았다. 1990년 주 의회 선거에서 승리하여 녹색당과 공동으로 주 정부를 구성하고 주지사가 되었다. 1994년 주 선거에서는 사민당 단독으로 과반수를 얻어 단독으로 두 번째 주 정부를 구성하며 연임하였다. 1998년 3월, 주 선거에서 다시 반수가 넘는 지지를 받아 3기 주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또한 주지사를 하면서 1997년 11월부터 98년 10월까지는 연방상원(Bundesrat)의 의장을 겸임하였다.

슈뢰더는 니더작센 주 선거에서 내리 3번을 승리한 인기에 힘입어 1998년 3월 1일 주 선거의 3번째 승리 직후, 9월에 있을 연방총선의 사민당 총리후보로 추대되었다. 그는 이 총선에서 승리하여 그동안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던 기민-자민당의 연립 정권을 무너뜨리고 연방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녹색당이 연방정부에 참여하는 적록연정을 탄생시켰다.

이후 2002년 총선에서 여론 조사에서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극적으로 재선에 성공하여 2005년까지 총리직을 연임하였다. 선거 직전에 동독 지역에서 발생한 홍수 사태에 대한 신속한 대응 및 처리와 미국이 계획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던 것이 승리의 원인으로 분석되었다. 슈뢰더 또한 최고 정치인이 되기에 충분한 경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다.

16년간 장기 집권했던 1930년생 '헬무트 콜' 전 총리도 16세 고등학생 때인 1946년에 이미 기민당의 당원이 되었다. 그는 고향인 루드비히하펜(Ludwigshafen)이라는 도시의 청년위원회를 새로이 만드는데 동참하였고, 1954년에는 라인란트-팔츠(Rheinland-Pfalz) 주 청년위원회 부위원장, 1959년에는 시 위원장 등의 당직을 수행하다가, 1966~1974년에는 주 위원장이 되었다. 1969~76년까지 주지사를 역임하였고, 1982~1998년까지 4차례나 연방총리를 연임하였다.

이들 3명의 연방총리뿐만 아니라 뮌터페링 SPD 전 대표(1940년생, 1966년 당원가입), 슈타인마이어 현 외무장관(1956년생, 1975년 당원 가입, Jungsozialisten으로 활동), 가브리엘 현재 SPD 대표 겸 부총리(1959년생, 1976년 청소년위원회 가입) 등에서 보듯이 대다수 독일의 주요 정치인들은 이미 이른 나이부터 정당 활동을 해 왔으며, 정치인에 필요한 훈련을 받아왔다.

이처럼 독일에서는 연예인이 직업인 사람이 정치인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또 판사, 검사를 하다가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도 드물다. 10여 년 이상 독일에 살았지만 방송에서 아나운서나 앵커를 하다가 의원이 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독일에서는 최소한 단순히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졌다거나 또는 권력에 가까이 있었다고 해서 정치인으로 선출되지는 않는다. 이는 정치인의 전문성이 중시되기 때문이다. 주로 일찍부터 정당에서 또는 정치권에서 일해 오던 사람이 정치인이 된다. 그래서 정치를 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정당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면 된다.

반면에 우리사회는 정치인의 전문성을 인정하는데 상당히 인색하다. 그래서 정치는 아무나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치 지망생이 정당 활동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이 쉽지 않고, 각 정당들도 선거 때가 되면 공직의 후보자들을 외부에서 데려오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정당은 인재를 육성하지도 않는다. 또 정치인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이나 학교도 없다.

그저 돈이나 학식이 있거나, 또는 어느 분야에서든지 성공하여 유명세를 가지면 누구나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정치인의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정치인의 역할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논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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