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며칠 후면 김연아 선수의 현역 마지막 무대인 소치 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시작됩니다. 13일(현지시각) 러시아 소치에 도착한 김연아 선수는 이날부터 줄곧 공식 연습을 하면서 컨디션을 끌어 올렸습니다. 빙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김연아 선수는 크게 이상이 없다면서 적응 훈련을 원활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김연아 관전법’ 기사를 통해 (☞바로가기) 김연아 선수가 기술적인 요소, 특히 점프 부문에서 남다른 스케일을 갖고 있다고 설명드렸는데요. 이번에는 김연아 선수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무기, ‘예술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예술성을 평가하는 점수, PCS
피겨스케이팅의 점수는 기술점수와 PCS(Program Component Score)라고 불리는 구성점수로 나뉩니다. PCS 점수는 선수의 예술성을 주로 평가하는 점수인데요. 항목은 ▲스케이팅 스킬(기술요소) ▲전환·연결 ▲연기·수행 ▲안무·구성 ▲해석력 등 총 5가지 항목으로 구성돼있습니다.
각 항목 당 점수는 10점 만점이고 0.25점 단위로 끊어서 점수를 매깁니다. 9명의 심판이 매긴 점수 가운데 최고점과 최저점을 뺀 나머지 점수의 평균을 낸 뒤, 쇼트프로그램은 0.8, 프리프로그램은 1.6을 곱해 최종 점수를 산출합니다. (남성의 경우 쇼트 1, 프리프로그램은 2를 곱해 점수 산출)
항목별로 평가기준을 살펴보면요. 우선 스케이팅 스킬(Skating skills)은 해당 선수의 기술적인 측면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수치입니다. 전체적인 스피드와 엣지 사용, 스텝, 턴, 활주, 힘, 가속, 균형감 등을 평가합니다. 스케이팅의 기본적인 능력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기술적인 영역에서 문제없이 스케이팅을 한 선수라면 이 항목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전환·연결(transitions) 항목은 점프와 나머지 기술 요소들 사이의 연결이 매끄러운지, 각 기술요소들의 전환은 자연스러운지를 평가하는 부문입니다. 예를 들면 김연아 선수는 몸을 뒤로 젖히는 ‘이나 바우어’라는 자세를 한 뒤에 더블 악셀 점프를 뛰는데요. 그냥 활주하다가 점프를 뛰는 것 보다는 특정한 동작과 점프를 연결하면 난이도도 올라가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점프와 같은 기술적인 요소들이 프로그램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됩니다. 이런 경우 전환·연결 항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연기·수행(performance)은 말 그대로 선수의 연기력을 평가하는 항목입니다. 선수가 하나의 프로그램을 얼마나 아름답게 수행해내는지를 평가하는 것인데요. 이 항목은 안무·구성 항목과 연관이 있습니다. 안무·구성(Choreography)은 전체적인 안무와 더불어 프로그램의 컨셉, 통일성, 공간 활용, 분위기 등을 평가하는 것인데요. 선수가 구성한 안무를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연기·수행 항목입니다.
마지막으로 해석력(Interpretation) 항목은 음악에 잘 맞는 움직임, 리듬의 표현, 음악의 뉘앙스를 반영하는 스케이팅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선수가 수행하는 연기와 음악이 얼마나 잘 조화되는지, 선수가 프로그램에서 선정한 음악을 연기로 얼마나 잘 승화시키는지를 평가하는 항목입니다.
PCS 점수, 공정한 것일까?
그런데 PCS 점수가 선수의 실력에 맞게 제대로 주어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예술성을 어떻게 숫자로 계량화해서 평가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점수를 주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PCS 점수의 항목당 기준을 보면 기술점수의 기준보다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소 모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니 심판의 주관이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특정 선수에게 좋은 점수를 몰아줄 수 있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전체 점수 비율에서 기술점수보다 PCS 점수를 많이 받는 선수도 있습니다.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가 이 중 하나인데요. 마오 선수는 2010년 그랑프리 시리즈 HHK 트로피에서 쇼트와 프리 프로그램에서 받은 기술점수가 52.23점으로 11위에 그쳤지만, PCS 점수는 85.17점으로 2위를 기록했습니다. 기준이 명확한 기술점수 부문보다 다소 기준이 모호한 PCS 점수 부문에서 심판이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측면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탈리아의 카롤리나 코스트너 선수도 기술점수에 비해 PCS 점수를 많이 받는 편에 속합니다. 코스트너 선수는 2009년 세계선수권 당시 프리프로그램에서 7번의 점프 중 더블 악셀 점프를 제외한 모든 점프를 제대로 뛰지 못하는 최악의 경기를 펼쳤는데요. 이 대회에서 코스트너는 기술 점수만 따지면 21위였지만, PCS 점수만 놓고 보면 5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선수들의 공통점은 ISU(국제빙상연맹)에 영향력이 큰 국가 출신의 선수라는 것인데요. 일본의 경우 ISU를 후원하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특히 지난 2013년 세계선수권의 경우 13개 스폰서 중 10개가 일본기업이었을 정도로 일본 기업의 투자가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아무래도 자본을 대주는 이들의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20년 넘게 국제빙상연맹 회장직을 맡고 있는 오타비오 친콴타는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처럼 이탈리아 선수들에 대한 애정이 많습니다. 코스트너 선수가 요청하지 않더라도 심판들 입장에서는 ‘친콴타 회장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김연아 마지막 경기, 편하게 즐겨보세요
든든한 기업의 후원도, 그렇다고 ISU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인사도 없는 한국 입장에서 현재로서는 김연아 선수의 실력이 공정하게 평가받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공정하게 판정을 받았든, 아니면 다른 나라 선수보다 박한 평가를 받았든 김연아 선수의 PCS는 다른 선수들보다 대부분 높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부상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기량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 2009년입니다. 2009년 이후 김연아 선수는 출전한 대회마다 PCS점수 1위를 기록했습니다. 심지어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이 끝난 이후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 선수는 점프에서 다소 실수가 있어 기술점수로는 2위였지만, PCS 점수로는 1위를 기록했습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당시 김연아 선수는 프리프로그램에서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PCS에서 9점대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또 2013년 세계선수권에서는 연기·수행, 안무·구성, 해석력 항목에서 김연아 선수에게 10점 만점을 준 심판이 3명 있었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이 대회에서 전환·연결을 제외한 모든 항목에서 9점대를 받으면서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의 PCS 점수였던 71.76보다 높은 73.61점을 획득했습니다.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출전한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대회의 프리프로그램에서, 김연아 선수는 71.52점의 높은 PCS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날 김연아 선수는 첫 번째 점프인 ‘트리플러츠 + 트리플토룹’ 컴비네이션 점프에서 뒤 점프를 뛰지 못하는 실수를 범했는데요. 그럼에도 PCS 점수가 70점이 넘었습니다. 실수 없이 완벽한 연기를 펼친다면 PCS 점수는 이보다 더 올라가겠죠?
김연아 선수가 다른 선수들보다 PCS 점수가 높은 이유는 우선 완벽한 스케이팅 기술에 있습니다. 격이 다른 점프 외에도 김연아 선수는 엣지 사용이 능숙한 선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한 엣지를 사용하다 보니 스케이팅 기술은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또 김연아 선수의 눈빛과 손짓, 표정 등도 연기·수행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어려운 기술을 소화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연기를 한다는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인데요. 김연아 선수가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이유는 기술적인 요소가 탄탄하게 받쳐주기 때문입니다. 선수가 기술요소 수행을 부담스러워하면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기는 쉽지 않겠죠?
김연아 선수가 음악과 잘 어울리는 스케이팅을 하고 있다는 점도 PCS에서 고득점을 받는 이유로 꼽힙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을 중계했던 미국 NBC 방송의 해설자 산드라 베직은 “음악에 맞춰 점프를 뛴다”며 김연아의 음악성에 대해 높이 평가했습니다. 점프와 음악, 음악과 기술요소들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번 올림픽 이후에는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습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 이어 또다시 정상의 자리에 오를 것인지에 많은 관심이 몰리고 있지만, 한편으로 김연아 선수의 현역 선수 생활의 마지막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이 마음 편하게 그의 마지막을 함께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더군다나 김연아 선수는 많은 피겨 전문가들이 인정하듯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경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메달을 딸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면서 점프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한 편의 잘 짜인 공연을 감상하듯이 볼 수 있는 수준의 경기라는 것입니다. 살 떨리는 경쟁에서 잠깐 벗어나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보면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올림픽이 끝나면 이제는 정말 ‘돈 주고도 못 볼’ 작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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