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이명박 X파일'에 대한 의혹을 처음 제기한 정인봉 전 의원이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졌다. '제 살 깎아먹기'라는 당 안팎의 비난이 거세게 제기되는 가운데 박근혜 전 대표마저 그를 비판하고 나선 것.
당 지도부는 정 전 의원의 의혹 제기를 '해당행위'로 규정하고 오는 15일 윤리위에서 징계 여부와 수위를 논의할 방침이지만, 정 전 의원은 윤리위에 출석한 뒤 확보한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정면대응했다.
박근혜 "정인봉은 옳지 않지만 후보검증은 해야"
방미 중인 박근혜 전 대표는 현지시간으로 13일 "정인봉 특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어제 걱정이 돼서 (정 특보에게) 전화를 했다"면서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지난번에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또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한국전 참전비에 헌화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더 이상 문제제기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확실히 드렸고,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현재 캠프의 법률특보를 맡고 있는 정 전 의원의 경질 여부에 대해 박 전 대표는 "그 내용을 경선관리위원회에 넘긴다고 이야기한 것이 물의를 빚었다고 하는데, 지난 번 약속대로 더 나간 것은 없는 것 같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박 전 대표는 정 전 의원을 윤리위에 회부키로 한 지도부의 방침에 대해선 "당에서 하는 일은 당에서 하는 일이고…"라면서도 "네거티브와 검증은 다르다. 두 번이나 집권에 실패했는데, 또 실패해선 안 된다는 차원에서 검증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후보검증'의 필요성은 다시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네거티브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갖고 의도적으로 상대를 비난하고 흠집을 내는 것"이라며 "그런 것은 절대 안 된다. 네거티브를 하면 오히려 역풍이 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인봉 "15일 공개하겠다"
후보검증의 당위성을 굽히진 않았지만 박근혜 전 대표가 자신의 측근인 정인봉 전 의원을 만류하고 나선 것은 일단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네거티브의 진원지'라는 비판을 의식한 거리두기로 해석된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검증은 당의 승리를 위한 검증이어야지 실패를 위한 것이거나 자해를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경고했다.
줄서기를 막자는 취지로 이날 구성된 '당이 중심이 되는 모임' 발족 기자회견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권영세 최고위원은 "(후보의) 자질 등의 문제는 상대 당이나 일반인이 제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당 내의 인사가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고, 맹형규 의원도 "당 내의 진흙탕 싸움이 계속되면 국민들로부터 한나라당은 버림을 받을 것이다. 유력 후보 진영이 자중해야 한다"면서 박 전 대표 측을 겨냥했다.
눈총이 이어지자 박 전 대표의 대리인으로 경선관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김재원 의원은 "이런 식의 공방은 박 전 대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정 전 의원에 대한 당의 윤리위 회부 방침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인봉 전 의원은 14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15일 법률특보직을 사퇴하고 당 윤리위원회에 출석하겠다"면서 "윤리위에서 자료를 공개한 뒤 국회 기자실에서 이 전 시장과 관련한 의혹을 공개하겠다"고 말해 새로운 파장을 예고했다.
정 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 캠프의 일원으로 윤리위에 출석하기에는 부담스럽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인봉, 왜?
이처럼 박근혜 캠프에서조차 손을 내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굽힘이 없는 정인봉 전 의원의 돌출행동의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일단 지난해 자신의 재보선 공천을 무산시킨 이명박 전 시장 측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앞서 '검증공세'를 들고 나온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실제로 정 전 의원은 지난해 7.26 재보선에서 맹형규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공석이 된 송파갑 지역구에 공천을 받았다가 이를 박탈당했다. 지난 16대 국회 때 그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 선거법 위반 사유가 알려졌기 때문.
당시 그는 일부 기자들에게 '성접대'를 포함한 수백만 원 대의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밝혀져 의원직을 잃었다. 이명박 전 시장의 최측근인 이재오 최고위원이 지난해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정 전 의원의 이같은 전력을 문제 삼아 공개적으로 공천에 반대했었다.
이처럼 공천 탈락을 계기로 '이명박의 사람'으로 분류되던 정 전 의원이 돌아섰다는 분석이 많다. 정 전 의원은 지난 1996년 총선 때 이 전 시장이 종로 지역구에 출마했을 당시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냈고, 이 전 시장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8년 재보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와 정 전 의원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의심도 여전하다. 특히 이명박 전 시장은 전날 법무법인 '서울' 설립연회를 겸한 이석연 변호사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박근혜 전 대표 측을 직접 비판했다.
이 자리에서 이 전 시장은 자신을 둘러싼 검증공방과 관련해 "설 명절 전에 그런 이야기를 퍼뜨리고 싶었나 본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가"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쯧쯧쯧…"이라고 혀를 차기도 했다.
정두언 의원은 호칭도 생략한 채 정인봉 전 의원을 맹비난했다. 정 의원은 14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일 정인봉이 박근혜 전 대표의 법률특보직을 사퇴하고 모든 것을 밝힌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는 구정여론 반전을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된 시나리오에 따라 이뤄지는 정치공작"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모든 음해공작이 사실이 아닌 것을 밝혀질 경우 정인봉 개인은 물론 박근혜 캠프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궁극적으로는 박근혜 전 대표도 정치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반박했다.
원희룡 의원도 이날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에 출연해 "누구나 상식적으로 볼 때 박 전 대표와 (정인봉 전 의원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명박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오해를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