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짜 원고를 갖고서 만든 잡지! 그럼에도 수많은 작가와 독자가 지지하고 열광하는 잡지 <맥스위니스>, 그리고 맥스위니스의 사람들. 얼마 안 되는 어설픈 경험으로 세상을, 책을 규정하지 않고, 누군가 제안하면, 그리고 그것이 그럴싸하다면 바로 만들어내는 참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책과 사람들 이야기. "아, 이 책은 완성된 책에 대한 자부심 어린 기록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을 포함하여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대한 정직한 기록이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 모두를 공개한 이 책은 자신들이 책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거기에서 느낀 즐거움을 독자와 편집자 모두와 나누고 싶다는 우정의 표현으로 보인다. 참, 재밌고 유쾌한 책, 그리고 용기를 주는 책, 제목은 <왜 책을 만드는가?>(맥스위니스 엮음, 곽재은·박중서 옮김, 미메시스 펴냄)다.
안은별(<프레시안> 기자) :
-애초엔 내가 좋아하는 <란>(1985)에 대한 이야기나, 세계적 거장으로 대접받으며 20세기 말을 누빈 일본 영화인의 영화계 비화를 기대하고 집어 들었다. 그러나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김경남 옮김, 모비딕 펴냄)은 딱 1950년, <라쇼몽>에서 멈춰 있었다. 그러니까 거인의 애송이 시절 이야기란 건데, 그래서 더 좋았던 점이 하나 있었다.
누군가는 구로사와가 속 좁다고 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악인도 다 시대의 산물'이라며 개개인을 욕하는 행동에 눈살 찌푸릴 수도 있지만, 나는 이거야말로 매력적이고 뭔가 영화 감독답다고 생각했다. 그가 선한 얼굴을 하고 악의를 내뿜는 개개인에 주목한 덕에, 그 특유의 울화로 역겨운 기억까지 끌어안은 덕에 영화 속에서 생생한 인물 묘사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웹툰으로 어느 때보다 만화라는 장르가 대중화된 시점이지만 여전히 종이 만화 잡지는 귀하고, 그래서 나올 때마다 다 챙겨 본다. <이미지 앤 노블>(이미지 앤 노블 펴냄) 창간호는 탄생도 반갑고 수록된 만화 작품들도 다 재미있었다. (덧붙여 최민석의 단편소설 <독립운동가 변강쇠>는 웃느라 정신없었고, 호수와 바스티앙 비베스의 대담은 '작품 생활'하는 미술가-만화가들의 정체성 고민을 잘 보여주었다.)
그런데 편집이 아쉽다. 오자나 비문도 많지만 그걸 말하려는 게 아니라,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는지 잘 안 보인다는 거다. 편집자는 보이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고들 하지만, 그건 책을 이음매 없이 만드는 솜씨를 말하는 거지 책의 정체성을 의인화된 형태로 상상하게끔 하는 누군가는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간호라면 거기에 더욱 집중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 묵직한 잡지가 표방하는 "어른들이 즐길 수 있는 문예 만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정승일(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
: 지난해 봄, 내가 아는 분께서 코스타리카 국립대학의 한국학과 책임자로 부임하면서 한국을 떠났다. 아, 부럽다 ㅎㅎ. 코스타리카라니. 코스타리카는 부탄 다음으로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던데…. 영국 민간 싱크탱크 신경제재단(NFF)은 2012년 6월, 전 세계 151개국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 기대수명, 환경오염 등을 평가해 국가별 행복지수(HPI)를 산출하여 발표하였는데, 2009년에 이어 2012년에도 코스타리카는 총 64점으로 행복지수 1위의 나라로 선정되었다.
히말라야의 고산 지대에 있는 부탄처럼, 코스타리카 역시 안데스 고산 지대에 높인 원시국가여서 그렇게 행복 지수가 높은가 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Social Democracy in the Global Periphery : Origins, Challenges, Prospects』 (Richard Sandbrook 등 지음,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라는 책을 읽어보니 전혀 그게 아니다.
코스타리카 역시 바로 옆의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멕시코 등과 마찬가지로 극심한 사회혼란과 빈부격차, 부패정치를 겪던 전형적인 남미 국가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세력이 연이어 수십 년간 집권하면서 사회복지와 노동권, 인권과 시민권, 투명한 국정운영을 뿌리내렸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에게도 희망이 보인다. 스웨덴 등 유럽 선진국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보다 더 가난한 제3세계에서도 행복한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생생한 증거 사례가 아닌가!!
이 책을 읽어보니, 아프리카에 있는 모리셔스(Mauritius)라는 나라 또한 ‘성공적인 제3세계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로 발돋움한 대표적 모델로 소개된다. 아프리카에 만연한 사회혼란과 인종분규, 부패정치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치츠 교수가 “미국은 모리셔스에서 배워야 한다”고 질타했다고 한다.
그런데, 모리셔스가 어디지? 인터넷을 뒤져보니, 마다가스카르 옆의 작은 섬나라, 요즘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곳이다. 그 나라의 사진들을 살펴보니, 그야말로 낙원이요 유토피아다. 홍기빈 박사가 스웨덴의 비그포르스(Wigforss)의 입을 빌려 말한 ‘잠정적 유토피아’가 여기에 있는 모양이다. 오~~ 가고 싶다. 아니, 아예 그곳에 살고 싶다. 하하하.
일단 나는 취미로 독서를 할 만큼 여유롭지 못한 사람임을 밝힌다. 팔기 위한 책이 아니라면 손을 댈 여력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읽은 책을 엄청나게 많이 파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나오자마자 바로 장바구니에 담고 하루라도 빨리 받아보기 위해 출판사에 직접 주문도 넣는 수선을 떨었다. 이게 특권인지 천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 <서점 VS 서점>(로라 밀러 지음, 박윤규·이상훈 옮김, 한울 펴냄)이 반가운 걸 보니 아직은 전자에 가까운 듯싶다.
<서점 VS 서점>이란 제목을 보면 대번에 한국 상황이 떠오르면서 각각의 서점 앞에 여러 단어를 넣어보게 되는데, 오프라인/온라인, 대형/소형 같은 짝도 있고, 동네서점이나 독립서점 같은 각각의 그림도 떠오른다.
이 책은 미국에서 도서판매업이 어떻게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렀는지 연원과 경과를 살피는데, 좀 더 많은 독자에게 좀 더 많은 책을 팔기 위해 서점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원제 "Reluctant Capitalists: Bookselling and the Culture of Consumption"과 첫 번째 장 제목 '상업문화와 상업문화에 대한 불만'에서 알 수 있듯 "책이 다른 상품처럼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으로 비춰지는 데 대한 불안감"과 "신성한 것을 지나치게 상품화하려는 현대의 판매 촉진 기술"이 불러일으킨 불안감이 마주하는 공간으로서의 서점을 말하는 책이다.
나는 이 불안한 동거의 가사도우미 같은 느낌을 받는데, 때로는 청소와 설거지가 지겹기도 하지만 이들의 밤을 몰래 들여다보며 혼자만의 쾌락을 즐기기도 하니, 이도 취미라면 취미라 할 수 있겠다. 자, 부디 주말에는 취미를 즐기자.
애거서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던 소설 <봄에 나는 없었다>(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포레 펴냄)를 읽는 건 묘한 경험이다. 명문 여학교 출신, 변호사 남편, 예쁘고 똑똑한 아이들, 안락한 가정, 모든 것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여성 조앤은 여행중 사막에 고립된다. 오지 않는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아무도 없는 사막을 헤매는 그녀는 처음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조종할 수 있다. 아니, 조종하지 못하나? 상황에 따라서는 생각이 사람을 조종할 수도 있나? 도마뱀처럼 구멍에서 밀고나오거나 초록 뱀처럼 마음속을 슥 지나갈 수 있을까.”
기차역에서 자신을 배웅한 다음 너무 빨리 돌아서서 기쁜 얼굴로 걸어가던 남편, 병명을 숨겼던 딸,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표를 냈던 요리사…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들이 기억속 숭숭 뚫린 구멍에서 튀어나오며 조앤을 광기 직전까지 몰아간다. 자기기만과 위선적인 독선으로 점철됐던 가짜 행복의 실체는, ‘진실’이라는 이유로 옹호될 수 있을까, 사람이 그렇게 쉽게 ‘나 자신’을 놓아 버릴 수가 있을까?
이 소설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1926년 실종 사건을 즉각 떠올리게 한다. 어머니의 죽음과 남편의 외도를 잇달아 경험한 뒤 자취를 감췄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전모는 밝혀지지 않은 크리스티 실종 사건은, 소설 속 조앤의 광기 어린 독백과 겹쳐지며 갖가지 서늘한 의문을 자아낸다. 제러드 케이드가 쓴 <애거서 크리스티와 11일 간의 실종(Agatha Christie and the Eleven Missing Days)>(2011)을 이 책과 함께 읽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참, <봄에 나는 없었다>는 '결코' 추리소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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