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가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미성년자의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가 됐다. 벨기에 하원은 13일(현지시간) 18세 미만 미성년자 안락사 허용 법안을 승인했다. 벨기에 집권 사회당은 지난 2012년 12월 미성년자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는 안락사법 개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후 약 1년간 공청회 등 여론 수렴 과정과 의회 논의를 거쳐 작년 12월 이 법안은 상원을 통과한 데 이어 이날 하원의 승인을 얻음에 따라 국왕의 재가를 거쳐 곧 시행될 예정이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안락사를 허용했으나 안락사법은 18세 이상에만 적용돼 왔다. 네덜란드는 12세 이상에 대해 안락사를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벨기에의 안락사 허용법안은 나이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다만 미성년자에게 자신의 상태와 안락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전문의사의 판단과 부모의 동의를 요구하는 등 엄격한 요건하에 시행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벨기에에서는 매년 1000 건 이상의 안락사가 시행되고 있으나 젊은 나이의 안락사 시행 요구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6년에서 2012년 사이에 18세 이상 20세 미만인 자가 안락사를 신청한 경우는 단 한 건에 불과했다. 미성년자 안락사 허용에 대해 정치권과 여론의 지지가 높아 법안 통과가 예상된 바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미성년자가 판단 능력이 있을 경우에는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75%로 찬성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종교계는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으며 의료계에서는 치열한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벨기에 의료계 대부분은 미성년자의 자기결정 능력을 전제로 하고 엄격한 요건하에서 안락사를 허용하는 방안을 지지했다. 소아과 전문의들은 지난해 11월 의회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이미 법의 테두리 밖에서 시행되고 있는 미성년자 안락사를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 의사는 "죽음을 앞둔 미성년자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 받아 성숙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들에게서 마지막 남은 가능성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료계 일부에서는 말기 환자의 통증치료가 가능하다면서 고통을 이유로 안락사를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맞섰다. 소아과 전문의 160명은 의회에 미성년 안락사 허용법안 표결을 연기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 법안 논의 초기부터 반대 입장을 밝혀온 가톨릭 교회는 하원 표결을 앞두고 미성년 안락사 허용에 반대하는 금식기도일을 시행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벨기에의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지도자들은 공동 성명에서 "이처럼 중대한 문제가 점점 더 가볍게 취급되고 있는 것에 크게 우려한다. 미성년자 등 취약계층의 안락사는 원치 않는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가 지난 2001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법으로 허용한 데 이어 2002년 벨기에, 2009년 룩셈부르크가 이에 동참했다. 미국에서는 오리건 주가 1997년부터 허용했다.
스위스의 경우 직접 안락사를 시키는 것은 여전히 불법이지만 안락사를 돕는, 이른바 '조력자살'은 허용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주 등 몇몇 주에서도 조력자살이 허용된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안락사 허용 문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벨기에서는 2012년에 1432건의 안락사가 시행됐다. 이는 전년보다 25% 증가한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도 2012년에 안락사 사례가 전년보다 13% 증가한 4188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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