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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 환락가 불야성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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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 환락가 불야성의 비밀

[낮은 한의학] 성종의 건강학 ③

조선 왕의 건강을 살펴보는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전 대구한의대학교 교수)의 '낮은 한의학' 연재가 매주 수요일 계속됩니다.

이상곤 원장이 조선 왕의 건강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당시 왕들의 모습이 오늘날 현대인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왕들은 산해진미를 섭취하였지만 격무와 스트레스, 만성 운동 부족 등으로 건강 상태는 엉망이었습니다. 이 원장은 "왜 왕처럼 살면 죽는지를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현대인의 바람직한 건강 관리법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번 연재의 주인공은 성종입니다. 세조의 손자 성종은 만 열세 살에 왕위에 올라 조선 왕조의 틀을 잡은 왕으로 꼽습니다. 성종 때에 이르러서야 조선은 나라꼴을 제대로 갖췄지요. 한편, 성종은 조선 왕조를 소재로 한 사극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인수대비, 폐비 윤씨, 연산군 등으로 이어지는 자극적인 인물의 핵심에 그가 있기 때문이죠.

그럼, 이런 성종의 건강은 어땠을까요? 앞으로 세 번에 걸쳐서 이상곤 원장이 성종의 건강을 샅샅이 파헤칩니다. <편집자>


성종은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하직했다. 세상을 떠나기 나흘 전 배꼽 밑에 작은 덩어리가 생겨 지난밤부터 조금씩 아프고 빛깔도 조금 붉다고 얘기하면서 전에 유사한 증세를 앓았던 이세좌를 불러 질병 치료 경험을 듣는다. "신은 이 병을 앓은 지 15년이 지났는데 별다른 치료 방법은 없고 다만 무쇠와 천년 된 기와를 달궈 그 부위에 찜질을 하였을 뿐입니다"라는 답변을 듣는다.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날 의관 송흠이 진후하고 나와서 말했다.

"성상의 몸이 몹시 여위셨고, 맥도가 부삭하여 어제는 육지였는데, 오늘은 칠지였습니다. 그리고 얼굴빛이 위황하고 허리 밑에 적취(積聚)가 있고, 내쉬는 숨은 많고 들이쉬는 숨은 적으며, 입술이 또 건조하십니다. 성상께서 큰 소리로 약을 물으시므로 아뢰기를, '청심연자음, 오미자탕, 청심원 등의 약은 청량한 재료가 들어 있어서 갈증을 그치게 할 수 있으니, 청컨대 이를 진어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또 성상의 몸을 보건대 억지로 참으시면서 앉으신 듯하기 때문에 마침내 물러나왔습니다."

<난경> 56편엔 배꼽 밑 덩어리인 적취에 대한 상세한 병리적 설명이 있다. 아랫배에 있는 적취는 신장 부위에 있다고 해서 신적(腎積)이라고 한다. 신적은 신수가 부족해서 생기는데, 신수는 신장에 저장된 에어컨과 같은 음(陰)적이고 차가운 물질이다. 상화가 망동하면 음이 모자라게 되며 반대편인 양(陽)적인 양기가 병적으로 왕성해지고 상승한다. 이런 상태를 분돈(奔豚)이라 한다. 돼지새끼가 기세 좋게 내디디는 상태와 같아서 숨쉬기가 어려워지고 씩씩대게 된다. 사실 죽기 한 달 전 성종은 숨 가쁘고 기침이 나는 천증(喘症)을 호소한다.

어쩌면 그런 증상들은 성종의 마지막을 위한 예고편이었는지 모른다. 또 신수가 부족해지면 혈액 속의 물이 줄면서 끈적해지고 응고돼 쌓이면서 적취가 된다고 설명한다. 이런 병리관은 성종이 앞에서 호소한 증세와 딱 맞아떨어진다. 그에 따른 처방은 이런 추론을 더욱 명확히 한다. 청심연자음은 주색을 과도하게 즐기거나 과식으로 인해 입 마름증이 왔을 때 처방하는 대표적 약물이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위장이 약하고 식욕이 부진하며 소변을 자주 보고 입이나 혀가 건조한 하반신 쇠약에 적용한다.

매실의 두 얼굴

청심연자음의 주성분인 연밥씨는 그런 특징을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연은 무성한 여름 햇볕에 대응해 더욱 무성히 푸르러진다. 뿌리가 끌어올린 수분에 의존해 상부의 무성한 열을 식히는 것이다. 인체에서도 하부에 빠져나가는 수분을 수렴해 상부를 적셔주므로 소변이 자주 빠져나가는 걸 막으면서 입 마름을 해소한다.

오미자탕도 마찬가지다. 오미자는 5가지 맛을 고루 갖췄지만 신맛이 가장 우세하다. 오미자를 쪼개 보면 돼지 콩팥처럼 생겨 신장 기능을 도우면서 침을 잘 만들어 입 마름을 없애준다.

마지막으로 처방된 제호탕은 갈증을 없애는 대표적 약물이다. 제호탕의 효능은 여름의 번열을 없애고 갈증을 그치게 하는 것이다. 처방은 불에 구운 오매라는 매이 한 근, 초과 한 냥, 사인, 백단향 각 5돈, 연밀 5근을 가루 내어 꿀에 넣어 끓인 다음 자기그릇에 담가두고 찬물에 타 먹는 방식으로 복용한다.

제호탕의 주 약물인 매실의 약효는 한 편의 시와 같다.

"봄이 오기 전에 매(梅)는 꽃을 피우며 얼음과 눈을 흡수하여 스스로를 적신다. 따라서 매화나무는 얼음처럼 차가운 한수(寒水)로 불꽃 같은 욕망인 상화를 억제한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입이 마른 것을 촉촉하게 하고 가슴이 답답한 것을 없애준다."

선비들은 매화꽃으로 안주를 만들어 술을 마시기도 했다. 눈 녹인 물에다 백매를 조금 넣고 매화꽃을 띄워 하룻밤 묵힌 다음 꿀을 넣어 안주를 만드는 것이다.

<본경소증>은 그 부작용에 대해서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갈증을 느낄 때 매실이라는 말만 들어도 입에 침이 나온다. 매실은 가장 빠르게 진액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그 진액은 공짜가 아니다. 내부에 있는 액을 끌어올리는 것이며, 내부의 액은 우리 몸의 액의 근원인 신장에 있는 생명의 액이다. 자꾸 액을 끌어올리면 신장 기능이 허약해지며, 그 결과 신장이 주관하는 치아가 손상된다. 근육도 상하고 위장도 부식하여 허약해진다.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치아가 약해지면 호도 육을 씹어 먹어라."

▲ 드라마 <인수대비>의 성종. ⓒJTBC

성종의 재위 기간은 25년이다. 24년 말부터 그의 건강은 아주 나빠졌다. 24년 입술 위에 종기가 나서 8월 14일부터 9월 17일까지 낫지 않아 어쩔 줄 몰라 한다. 25년 1월 20일엔 코피가 나오면서 멈추지 않아 경연을 중지하며, 2월엔 감기 증세가 덮친다. 5월부터는 다시 서증으로 두통이 생겨 일본 사신을 접견하지 못하며, 중국 황제의 탄신일에도 배례를 올리지 못한다. 12월 12일엔 다리가 여위고 연약해 마비된 것을 힘들어하다 허리 밑 종기와 갈증으로 운명한다.

<동의보감> 소갈(消渴)문에 따르면 소갈의 종류는 상 중 하 3가지다. 성종의 증상은 하소에 가깝다. 하소는 "하초에 열이 잠복해 있는데 신이 허하여 받게 되면 다리와 무릎이 여위어 가늘어지고 뼈마디가 시큰거리며 정액이 소모되어 골수가 허해지고 물이 당긴다." 소갈의 증상은 지금의 당뇨와 가깝다.

성종이 잠든 곳은 서울 선릉이다. 한평생 풍류를 즐긴 그는 죽어서도 잠들지 못한 채 선릉의 환락가 불빛 속을 거닐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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