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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개혁 가능하다, 대통령만 마음먹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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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개혁 가능하다, 대통령만 마음먹으면!

[프레시안 books] 정승일의 <굿바이 근혜노믹스>

중국 고대 신화 속 인물인 우 임금은 황하의 범람을 잘 막아낸 공로로 왕이 됐다. 큰 비가 오면 걷잡을 수 없이 넘쳐나는 강물은, 고대인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었을 게다. 그렇다고 해서 강 근처를 떠나서 살 수도 없다. 농경 문명이 대부분 강 근처에 터를 잡은 데는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홍수가 나면 모든 걸 잃어버릴 줄 알면서도, 강 근처를 떠나서 살 수 없는 딜레마.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사람들은 머리를 맞댔고, 지식과 권력이 그 과정에서 생겨났다.


우 임금의 신화는 이렇게 생겨난 리더십의 한 상징이었을 게다. 홍수처럼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는 고대인들에게 국가의 필요성을 심어준 계기였으리라.

먼 미래의 후손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여름철이면 넘쳐나는 강물로 인해, 고대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곤 했다. 우리도 다를 게 없다. 수시로 범람하는 돈의 흐름을 통제하지 못해서 재앙을 겪는다. 동남아시아에서 비롯된 금융 불안이 순식간에 회오리가 돼 한국을 강타했던 게 1997년 외환위기다. 당시 숱한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거리에 나앉았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엔 환율이 출렁이면서 숱한 중소기업이 황당한 난리를 겪었다. 이른바 키코(KIKO : knock-in knock-out) 사태다.

합리적으로 예측하고 통제하기엔 너무 규모가 커져 버린 금융자본. 지금 우리에게 국가의 역할을 묻게 하는 존재다. 마치 고대인들에게 홍수가 그랬듯 말이다. 그러나 우리 사는 모양새가 고대인들과 꼭 같지는 않다. 요동하는 돈의 물줄기가 우리네 삶의 터전을 망가뜨렸던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가 요구했던 건 국가의 역할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에 힘을 싣자는 주장이 팽배했다. 이른바 진보, 개혁 성향의 지식인들 역시 대체로 그랬다. 많은 한국인에게 국가란 불편한 존재였던 탓도 있다. 국가권력을 찬탈한 군부와 싸우면서, 국가의 역할 자체에 회의감을 가졌던 이들도 있다.

▲<굿바이 근혜노믹스>(정승일 지음, 공은비 엮음, 북돋움 펴냄). ⓒ북돋움
이런 상황이 답답했던 한 무리의 지식인이 있었다. 이른바 '대안연대'로 묶였던 이들이다. 그들은 국가의 역할을 긍정하는 데서 당시 혼란에 대한 해법을 찾았다. 재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재벌 계열사를 해외 자본에 넘기는 식의 재벌 해체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안연대' 그룹 가운데 한 명이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이종태 <시사인> 기자 등과 두 차례에 걸쳐 대담집 <쾌도난마 한국경제><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부키 펴냄)를 냈던 그가 최근 새로운 책을 냈다. <굿바이 근혜노믹스>(정승일 지음, 공은비 엮음, 북돋움 펴냄)가 그것. 공은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기자가 묻고, 그가 답하는 형식이다.

이 책에선 앞서 낸 대담집들에 비해 그의 생각들이 더 선명한 모양새로 담겼다. 예컨대 상당수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이 강조하는 금산분리 원칙(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에 대한 그의 생각을 설명하는 대목이 그렇다. 이런 원칙에 교조적으로 얽매일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은행이 항구적으로 산업자본인 재벌을 지배하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책에는 금산분리 원칙이 생겨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충실한 설명이 담겼다. 재벌 해체에 반대하는 그의 평소 주장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가 잘 드러난다는 점이 <굿바이 근혜노믹스>의 미덕이다.

그는 기존 '경제민주화' 담론이 착오에 빠졌다고 본다. 경제력 집중 자체를 적대시하는 논리가 '경제민주화'라는 외피를 두른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오류라는 것. 그가 보기에 경제력 집중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대규모 설비 투자, 장기간에 걸친 기술인력 양성과 연구개발 투자 등이 필수적인 산업이 있다. 이는 개별 산업의 특징일 뿐이다. 예컨대 항공우주산업에 진출하려면, 집중된 경제력이 필수적이다. 반면, 동네 빵집은 적은 자본으로도 할 수 있다. 경제력 집중 자체를 '악'으로 보는 논리는, 항공우주산업과 비슷한 대규모 수출 제조업이나 첨단기술 산업 등을 포기하자는 주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게 과연 옳은 걸까.

저자가 보기에, 진짜 중요한 문제는 경제력 집중 자체가 아니다. '집중된 경제력'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이뤄지느냐가 진짜 문제다. 재벌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다. 삼성전자가 덩치가 크다는 점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덩치에 어울리는 사회적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 이건희 회장 일가가 불합리한 전횡을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재벌 개혁의 초점은 거대 재벌을 쪼개는 게 아니라 시민의 사회적 권리에 바탕을 둔 규제를 강화하는 것에 맞춰져야 한다. 그리고 이런 규제를 하는 주체는 민주주의가 실현된 국가다.

흔히 오해하듯, 그가 삼성 재벌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 등 삼성의 주요 계열사가 지닌 경쟁력은 계속 확대·유지하되, 노동자의 기본권을 무시하고 비리를 저지르는 행태에 대해선 강력한 제재를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아울러 온갖 비리로 얼룩진 이건희 일가와 삼성 그룹이 '생이별' 하게끔 해야 하며, 그게 제도적으로도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이게 상당수 개혁성향 경제학자와 다른 지점이다. 이건희 일가의 전횡에 대해 강력하게 날을 세우는 경제학자 가운데서 흔한 입장은 이렇다. 지금은 이건희 일가가 지닌 주식 지분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이를 조정해서 지분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목표라는 게다. 이런 목표가 실현된다고 해도, '생이별'은 불가능하다.

반면, 저자 정승일은 이건희 일가와 삼성 그룹이 '생이별'하고, 대신 은행이 삼성그룹을 지배하는 형태를 바람직하게 여긴다. 마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창업주인 김우중 회장과 대우그룹이 '생이별'했듯 말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그는 국가지주회사가 삼성을 지배하는 구상에 대해 설명한다. 삼성 수뇌부가 상속에 따른 세금을 피하려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찌 됐건 삼성 입장에서 상속세가 큰 부담인 것도 사실이다. 세금을 제대로 내려면, 기업 규모를 줄여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상속세를 현물주식으로 걷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그리고 그 주식을 국가가 소유하는 모델이 국가지주회사다.

금산분리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데 대한 그의 비판 역시 이 대목과 맞물린다. 그가 선호하는 기업 지배 권력은 국가>은행>주주 순인 듯하다. 요컨대 주주보다는 은행이, 은행보다는 국가가 대기업을 지배하는 게 낫다고 본다.

반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들어선 이른바 민주정부의 개혁방향은 정반대였다. 사실상 국가소유였던 은행을 민영화했다. 또 은행 대신 주주가 대기업을 지배하는 쪽으로 정책이 만들어졌다. 이런 정책과 뗄 수 없는 게 금산분리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은행이 제조업 분야 대기업을 지배하는 건 잘못이다. 부도난 기업에 대해 한시적으로 유지하는 상황일 뿐, 경영이 정상화되면 다른 대주주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2008년 환율 급등은 중소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키코 등 파생상품으로 인한 손실, 엔화 등 외화대출에 따른 원금 및 이자율 상승은 중소기업에 이중, 삼중의 부담을 안겨줬다. ⓒ프레시안
하지만 그는 산업은행이 옛 대우그룹 계열사인 대우조선해양을 지배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외국에선 흔한 일이다. 예컨대 독일에선 1920~30년대 경제 위기 속에서 다임러, 벤츠 등 자동차 업체가 파산하자 도이체방크라는 채권은행이 대주주가 됐다. 자동차 기업인 다임러-벤츠의 경영이 정상화 된 뒤에도 도이체방크는 줄곧 대주주 역할을 했다. 저자는 이런 모델을 지지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금산분리 원칙 때문에 이런 모델이 불가능하다. 금산분리 원칙에 대한 그의 비판적 태도는 그래서 나왔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경제민주화' 논쟁에서 드러났듯, 저자의 입장은 시장에 견고한 신뢰를 보내는 주류 경제학자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 주류 경제학자 가운데 개혁적 성향을 지닌 이들과도 역시 떨어져 있다. 또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과도 다르다. 그리고 이런 차이를 저자 역시 잘 알고 있다. 이번 책에는 이런 차이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어떤 차이는 좁혀질 여지가 있어 보인다. 한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관치금융에 대해 몹시 비판적이다. 또 시중은행의 여신심사 능력에 대한 불신도 강하다. 그러나 저자가 주장하듯, 은행의 심사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안이 현실화된다면 차이가 좁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차이는 그냥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예컨대 견고한 생태주의자라면,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는 국가의 역할을 긍정하고, 대규모 제조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이런 생각이 생태주의와 공통분모를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그간 자유주의 성향 지식인들이 저자에게 쏟아냈던 비판 가운데 상당수는 근거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저자가 국가의 역할을 긍정한다고 해서, 독재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지지하는 국가는 민주 공화국이다. 국가에 집중된 권력을 긍정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그는 집중된 경제력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중요한 건 민주주의다. 집중된 경제력과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가능하게끔 하는 게 지금 필요한 개혁 방향이다. 이게 그의 생각이다.

싫든 좋든, 우리는 고생해서 번 돈 가운데 일부를 헐어 정부에 세금으로 낸다. 또 정부가 운영하는 행정 서비스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한순간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한번쯤은 국가기구의 순기능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책을 덮고 나서, 고대 중국의 우 임금 이야기를 떠올린 건 그래서였다. 우리는 홍수처럼 제멋대로 흐르는 금융자본의 파괴력을 무서워한다. 그러나 자본의 질서를 완전히 벗어나서 살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황하의 범람이 두려웠던, 그러나 황하 근처를 떠날 수는 없었던 고대 중국인들처럼 말이다. 고대인들은 제멋대로 범람하는 황하를 다스릴 지도자를 뽑고, 국가를 만들었다. 그렇게 최초의 권력이 생겨났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작업도 비슷한 게 아닐까. 자본을 다스릴 권력을 만들어야 한다. 다만 우리는 고대인들보다는 조금 더 지식이 쌓였으므로, 고대인들에게 부족했던 한 가지를 추가해야 할 게다. 그건 바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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