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맏형' 이규혁(36)의 마지막 올림픽이 시작된다.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 당시 소년이었던 그는 이제 불혹을 바라보는 중년이 됐다. 이번 소치 올림픽 한국 대표단 가운데 최고령 선수다. 대표팀 막내 피겨스케이팅 박소연과는 무려 열아홉 살 차이가 난다.
20여 년 경력을 쌓는 동안 그는 한국 스케이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다. 1997년 월드컵에서는 우리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이후 월드컵 우승만 14차례 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2연속 우승하는 성과를 일궜다.
하지만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첫 출전인 릴레함메르에서 500m 36위-1000m 32위, 1998년 나가노에선 500m 8위-1000m 13위를 기록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에서 500m 5위-1000m 8위에 오른 뒤, 2006년 토리노에서 500m 17위-1000m 4위에 올랐다. 당시 1000m 동메달리스트와 기록 차이는 단 0.05초였다.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생각했던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500m 15위-1000m 9위였다. 경기가 끝난 뒤 그는 그대로 빙판 위에 무너져 내렸다.
밴쿠버 대회 이후는 줄곧 좌절의 시간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몸은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주변에선 은퇴를 권유했다. 1년 정도만 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은퇴 준비를 하려고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우울증이 생기는구나'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규혁의 꿈은 여전히 '메달'이다. 그러나 스스로 메달권 선수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20년 전 릴레함메르 올림픽에서처럼 참가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목표를 다르게 세우니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4년 전 빙판 위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던 것과는 달리 부담을 턴 듯 가벼운 모습이다. 소치에 도착한 그는 현지의 생생한 소식과 소감 등을 담은 글로 써 포털 사이트에 보내고 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일이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이번만큼은 메달이나 기록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몸과 마음으로 즐겨보기로 결심하고 왔다. 올림픽은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태연하게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전과는 분명 다르다"고 했다.
그는 7일 오후 8시(현지 시각) 열리는 개막식에서 한국 선수단 기수로도 선정됐다. 단순히 대표팀 연장자인 덕도 있지만, 20년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끊임없이 한계에 도전하는 올림픽 정신에 부합한 인물이기 때문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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