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의 군비 경쟁과 군사적 긴장 고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 국방비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영국의 군사정보 분석기관인 IHS제인스가 내년이면 중국의 국방비가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주요국 세 나라의 국방비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을 것이고, 2024년에는 서유럽의 모든 국가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을 전망을 내놓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국내외 언론이 이러한 분석 결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이에 앞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중국은 군비 증강이 경제 성장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중국의 지속적인 군비 증강이 태평양 지역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본 총리의 이러한 발언은 대단히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위협을 이유로 자국의 군비 증강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그러자 중국의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는 1인당 군사비를 기준으로 삼으면, 중국은 4만6520달러 수준인 반면에, 미국은 중국의 11배인 44만3660달러, 일본은 중국의 5배인 23만7200달러 수준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또한 중국 정부는 13억에 달하는 인구, 기다란 해안선, 15개 국가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자국의 국방비는 결코 높지 않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중국의 국방비, 우려와 과잉반응 사이에서
국가별 국방비는 어떤 통계 기준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크게 달라진다. 2013년 절대액을 기준으로 삼으면 중국의 국방비는 약 1390억 달러로 세계 2위이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5배인 6650억 달러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일본은 중국의 7분의 3 수준인 590억 달러로 5위, 한국은 중국의 4분의 1인 340억 달러로 10위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자신의 국방비가 높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1인당 국방비를 비교 기준으로 제시하거나 절대액으로 미국보다 훨씬 낮다는 점을 제시한다. 반면 한-미-일은 연평균 두 자리 수에 달하는 중국의 국방비 증액률과 절대 액수를 주된 비교 기준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GDP 대비로 보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2013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바로가기) 2012년 기준으로 미국의 국방비는 4.35%, 한국은 2.8%, 중국은 1.99%, 일본은 0.99%이다.
추이를 보면 미국은 부시 행정부 출범 때 정점을 찍었다가 금융위기와 연방예산 삭감, 그리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면서 감소 추세로 돌아서고 있다. 한국은 국방비 증액률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하면서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일본은 지난 20년간 1% 미만으로 묶어 두었다가 아베 신조 정권 출범 이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은 2009년 2.2%에서 2012년 1.99%가 보여주듯이 점차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어떤 통계 수치를 제시하느냐에 따라 중국의 국방비에 대한 반응은 달라진다. IHS제인스의 분석처럼 중국의 국방비가 주요 유럽 국가들을 합친 것보다 많다는 점이 강조되면 중국의 국방비는 대단히 높다고 여겨질 수 있다. 반면 GDP 대비나 증액률이 감소 추세로 돌아선 것에 주목하면 다른 해석도 가능해진다. 이와 관련해 외교안보 전문 매체인 <더 디플로메트>는 중국의 국방비에 대한 언론 보도가 “맥락을 놓칠 경우 왜곡되기 십상”이라며 “중국의 국방비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끔찍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중국 국방비에 대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조사 결과도 있다. 각국의 위협 인식의 차이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가 2013년 봄에 아시아 각국 국민들 상대로 중국의 국방비 증액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바로가기) 일본인은 무려 98%가 부정적으로 본다고 답변한 반면에, 중국의 우방국인 파키스탄 국민은 5%만 그렇다고 답했다. 이 조사결과에서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91%), 호주(71%), 필리핀(68%) 등에서 중국의 국방비 증액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다.
이들 국가는 미국이 중국 포위와 봉쇄를 겨냥한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혹은 '재균형(rebalance)' 전략의 핵심적인 동맹국들이다. 이에 따라 이들 나라에서 ‘중국위협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데에는 자신의 독립적인 시각보다는 미국의 시각에 편승해서 중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2010년 86%에서 2013년 91%로 높아진 것이 주목된다. 이러한 인식이 강해질 경우 한국도 국방비를 더 많이 늘리고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국민들의 복지와 교육에 써야 할 예산이 위축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 더욱 요원해지며 미·중 관계에서 한국의 딜레마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보다 균형적이고 독립적인 관점에서 중국의 국방비 문제를 바라봐야 할 까닭이다.
물론 필자 역시 중국의 국방비에 대해 강한 우려를 갖고 있다.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자면, 나는 2012년 말에 중국 전문가들과 중국 국방비에 대해 논쟁할 기회가 있었다. 중국인들이 판에 박힌 주장을 되풀이하자 필자는 “중국의 가장 큰 문제는 중국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마저 근거 없는 중국 때리기로 치부하는 것”이라며 중국이 계속 10% 이상씩 국방비를 늘려나가면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외적으로는 중국의 ‘평화발전론’이 공허한 정치적 수사로 전락할 것이고, 내적으로는 양극화 해소에 필요한 물적 토대를 갉아먹게 될 것이며, 군비증강과 더불어 군산복합체가 비대해지면 중국도 ‘미국병’을 앓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그 요지였다.
끝으로 6자회담의 잠재적 유용성을 강조하고자 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6자회담 참가국들인 남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국방비를 합치면 세계 국방비 총액의 70%를 차지한다.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어온 북한의 국방비는 세계 국방비의 0.2% 수준이지만, 부족한 군비를 핵과 미사일을 통해 상쇄하려고 한다. 이러한 군비경쟁을 완화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아시아 패러독스’를 해결하는 핵심적인 과제에 해당된다.
6자회담의 유용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도 발견된다.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면 동북아 군비경쟁의 핵심적인 요인을 완화할 수 있게 된다. 또한 6자회담의 실무그룹 가운데 하나인 동북아평화안보체제는 ‘아이디어 공백’ 상태이다. 그 공백 상태를 6자회담 참가국들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로 메워나가면 동북아의 미래를 보다 희망적으로 설계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가 계속 방치되면 한국은 최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하여 6년째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는 6자회담을 안락사시켜서는 안 된다. 한국에 그건 안락이 아니라 악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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