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5일 오전 열린다. 정 회장은 회삿돈 900억 원 가량을 횡령하고 계열사에 2100억 원대의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 재판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이들은 재판부가 최근 기업위기를 맞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의 상황을 고려해 선처를 할지 아니면, 경제정의의 관점에서 엄격한 판결을 내릴지 주목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 1심 선고공판 예정…검찰 "엄정한 단죄 필요"
정몽구 회장이 혐의를 받고 있는 죄명은 업무상 배임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이다. 정 회장은 2001년 이후 비자금 693억 원을 조성하는 등 900억 원대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고 검찰은 설명하고 있다.
또 자동차부품 회사 (주)본텍을 그룹 계열사로 편입하면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아들 의선 씨와 글로비스에 실제 가치에 훨씬 미달하는 가격으로 신주를 배정했다고 검찰은 주장한다. 즉 아들에게는 막대한 이익을 부여하고, 지배주주인 기아차에는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1999~2000년 청산이 예정돼 있던 현대우주항공 채무에 대한 정 회장 개인의 연대 보증 책임을 피하기 위해 계열사들을 유상증자에 참여시키고, 자금난을 겪던 현대강관이 유상증자를 실시하자 손실이 예상됐지만 역외펀드를 설립해 현대차·현대중공업의 자금을 증자에 참여시켜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도 정 회장은 받고 있다.
이같은 혐의로 정 회장을 기소한 대검 중수부는 지난달 16일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의 횡령 및 배임 범행은 범죄가 중대하고 폐해가 크다"면서 "엄정히 단죄해 기업경영이 투명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정 회장에게 징역 6년을 구형했다.
재판부, '경제정의'냐 '경제살리기'냐
검찰이 밝힌 기소 내용의 사실 여부가 이날 재판부의 선고 형량을 좌우하겠지만, 대내외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현대차의 상황이나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법원 내의 강경 기류 등 재판을 둘러싼 대외환경 때문에 재판 결과에 대한 전망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줄곧 재벌 비리 등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간 재판부가 재벌들의 위법행위에 대해 지나치게 관용을 베풀고 있다는 부정적 여론을 불식시키기 위한 취지였다.
이번 정 회장에 대해 중형이 선고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번 판결로 법원이 재벌에만 미온적이라는 세간의 의혹에서 벗어나 '경제정의'를 세웠다는 여론의 평가를 끌어내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판부가 정 회장에 대해 선처를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등이 연루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의혹 사건에 대해 법원이 재판을 계속 연기하는 등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준 것과 같이 재판부가 정 회장에 대해서도 엄단 보다는 선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현대차가 대내외에서 겪고 있는 위기 상황이나 장기 침체에 빠져들고 있는 국내 경제상황도 재판부가 고려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기업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판부가 정 회장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 특히 현대차에서는 이같은 논리를 재판부에 강하게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원화강세와 해외판매부진, 고질적인 노사갈등으로 지난해 35%나 이윤이 감소했다. 또 경쟁사인 도요타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자동차 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현대차는 받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지난 4일 정 회장의 이번 재판을 전망한 기사에서 "한국의 수출 및 고용 시장에서 전체의 약 5%를 차지하는 현대차의 국가 경제적 중요성이 감안돼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많은 한국인이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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