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에서 전기, 시설, 소방 업무를 담당하던 하청 노동자들이 설 연휴 기간이었던 지난 1월 31일 문자 메시지로 집단 해고 통보를 받았다. 노동조합은 "업체가 바뀌는 과정에서 전 용역업체 관리자가 노동조합을 탈퇴하면 고용 승계를 해주겠다고 말했다"고 밝혀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대병원 시설관리분회(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지역지부 성원개발분회)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에서 전기, 시설, 소방 업무를 담당하는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전체 126명 가운데 9명이 지난달 31일 문자 메시지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계약 외 인원' 2명을 포함하면 128명 가운데 11명이 해고됐다.
서울대병원은 1978년 법인화된 이후로 35년간 시설 관리를 '성원개발'이라는 업체에 맡겼는데, 지난 1일부터는 새로운 용역업체 '현대C&R'이 들어서면서부터 인력이 기존 126명에서 114명으로 줄었다. 고용 승계되지 않은 12명 가운데 3명은 사직을 표했고, 해고자 9명 중에 4명은 노조원이다. 해고자들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 십 년간 서울대병원에서 일했다.
"'노조 탈퇴해야 채용된다'며 근로계약서 들이밀어"
해고 통보를 받은 김철민 서울대병원 시설관리 분회장은 "성원개발 관리자가 현장 일부를 선별적으로 돌아다니며 '노동조합을 탈퇴해야 채용된다'고 말하면서 새 근로계약서를 들이밀었다"며 "노조 탈퇴를 거부한 사람이 1순위로 잘렸고, 나머지는 정년이 다 된 사람, 계약 외 인원(기간제)"이라고 말했다. 신규 채용을 빌미로 노동조합 탈퇴를 종용하는 것은 '부당 노동 행위'로 불법이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 분회장은 "서울대병원에서 하청업체가 바뀐다고 사람을 해고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노사는 용역 업체가 바뀌더라도 고용을 승계하도록 노력한다고 합의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서울대병원은 1000억 원대 암센터 개원에 이어 첨단외래센터(1200억 원), 심장뇌혈관병원(1100억 원) 공사를 추진 중이면서 지난해 7월 비상 경영을 선포한 바 있다. (☞ 관련 기사 : 수천억 건물 올리는 서울대병원, '저질 의료재료' 논란)
김철민 분회장은 "지난 1월 8일부터 업체 입찰에 들어갔고, 5개로 좁혀진 업체가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인원 감축 계획'을 설명했다"며 "현대C&R이 그 중 가장 많은 인원 감축 계획을 내놨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이 '인건비 절감'을 목표로 용역업체를 바꾼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야간 소방 인원 부족한데 사고라도 나면…"
인력 감축에 따른 안전 문제도 우려된다. 김철민 분회장은 "지금도 주간에는 소방 인원이 있지만 야간에는 없어서 기계과에서 임시로 야간 소방 업무를 맡고 있다"며 "사고가 나면 책임질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은 지난해 소방과 냉동 설비 인력 충원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분회장은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해고된다는 소문이 무성해서 올해는 설에 고향에도 내려가지 못하고 대기했다"며 "연세가 많은 아버지에게 (설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 사정을) 얘기하지도 못했는데, 막상 해고 문자를 받아보니 그 심경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서울대병원 인력이 빠지니까 성원개발에서 (고용을 승계받지 못한 인력) 12명에 대해서 서울대병원이 아닌 다른 작업장에 새로 배치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3명은 취업을 포기했고, 9명은 전환 배치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인력 감축이 병원의 비상 경영 체제와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경쟁 입찰 방식이다 보니, 병원에서는 기존 시설을 114명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하는 현대C&R에 맡긴 것"이라며 "인력을 줄이기 위해서 업체를 바꾼 건 아니고, (인력 감축이) 병원 비상 경영과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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