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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목숨' 전문상담사로 학교폭력 없앤다고?

공공기관인 교육청이 10개월짜리 계약직 남발

지난달 29일,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며 설 연휴 분위기가 만연했다. 한혜숙(여·53) 씨는 귀성길에 오르는 대신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를 했다. 교육청 앞은 유난히 한산했지만 그는 오후 6시부터 7시까지 자리를 지켰다.

2011년부터 중학교에서 전문상담사로 일해 온 그는 요즘 따라 자주 정아(가명·여) 양을 생각한다. 정아는 가게에서 2만8800원어치의 물건을 훔치고 적발된 뒤 혼란스러운 마음을 한 씨에게 털어놓았던 학생이다. 정아의 절도는 처음이 아니었다. 가정 형편이 매우 좋지 않아 방황한 탓이었다. 가게 주인은 부모가 전화하지 않는다면 경찰서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정아의 어머니는 무심하게 '네가 알아서 하라’고만 말했다.

한 씨는 정아의 손을 잡고 가게 주인에게 찾아갔다. 그는 "훔친 물건값만큼 보상하게 하기보다는, 여기에서 그 돈만큼의 노동을 하게 해 달라. 자기가 훔친 물건의 가치를 알고 나면 아이도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인을 설득했다. 결국 정아는 그 가게에서 6시간 동안 일하며 반성의 기회를 가졌다. 이후 잦은 절도는 끝났고 별 탈 없이 졸업했다.

한 씨는 "아이들은 정말 고민이 많다. 외로운 아이도 많다"며 "그런데 교사의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에 전문상담사가 있으면 아이들과 교감하며 상처를 달래주고 학교에 적응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는 3월부터 한 씨는 더 이상 전문상담사로 일할 수 없다.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방침대로라면 1년 이상 근무한 전문상담사를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공공기관인 시·도 교육청은 고용 보장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10달~1년짜리 계약을 남발해왔다.

▲ 전국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원들이 지난해 12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Wee클래스 전문상담사 계약해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교폭력 근절한다더니…연말에 상담사 1000여 명 대량해고

지난 2011년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이 일어난 이후 정부는 학교 폭력을 근절하겠다며 학교별로 전문상담사를 배치했다. 학교 폭력을 예방하고 더 나아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돕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연초부터 계약 종료 통보를 받아야 했다. 계약 종료는 곧 해고를 의미한다.

민주노총 전국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이하 학비노조)은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근무 중인 전문상담사 1067명(인천·대전·세종·전북·전남·경북·제주 교육청 소속)이 지난해 12월부로 집단 계약 해지됐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해고자들의 농성이 이어지자 대전시 교육청은 지난달 29일, 해고자 전원을 평가해 탈락자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재고용하기로 학비노조 대전지부와 합의했다. 그나마 나머지 시·도 교육청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 계약에 대해 현재 협의 중인 교육청들도 전원 무기 계약직 전환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라, 추가로 해고자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오직 강원도 교육청만 오는 2월 계약이 종료되는 상담사 256명 전원을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했다.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이후 전국이 뒤집어지면서 교육부가 부랴부랴 마련한 전문상담사 제도가, 10개월짜리 계약직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연말이면 계약 때문에 눈치만…극한의 스트레스

한 씨는 연말에 덮쳐오는 스트레스를 이렇게 표현했다.

"나도 기사로만 볼 때는 단기 계약직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못 했다. 연말에 재계약이 될지 종일 눈치를 보는 게, 심적 고통이 엄청나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의 단계가 1에서 10까지 있다고 치면, 9 정도다."

그는 기간제 교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사회복지사, 직업상담사 등 다양한 자격증도 있다. 능력에 비해 급여는 낮았다. 한 달에 120만 원 정도를 받았다.

낮은 급여와 상시적인 고용 불안에 시달리면서 상담사 일을 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상담사 중에 이른바 '고스펙'인 사람들이 많다. 석사 이상의 자격을 갖춘 사람도 많이 봤다. 그런 사람들이 한 달 120만 원 받고 일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학교에서 일하는 상담사들은, 학업 스트레스나 가정불화나 친구 관계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일한다. 아이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엄청난 책임감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가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학비노조는 한 씨와 같은 상담사를 포함한 학내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 보장 대책을 교육청에 요구하고 있다. 교육청이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7일~8일 양일간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앞에서 규탄집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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