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세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클럽
이번에는 상급학년들을 위한 방과 후 클럽을 방문했다. 코펜하겐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도시 파룸이라는 곳에 있는 방과 후 클럽으로 10~15세의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었다.
오래된 농가를 개조한 이 클럽은 밖에 자전거를 묶을 수 있는 장소가 넓었다. 아이들이 대개 학교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입구에 선생님들과 그곳에 등록한 아이들의 사진이 벽에 붙어있고 클럽에 올 때마다 아이들이 사인을 하는 공책이 있었다.
이 클럽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방에는 부엌시설과 식탁 의자 그리고 한쪽구석에는 텔레비전과 소파 등이 놓여있었다. 식탁과 의자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마침 춤을 가르치고 있었다. 옛날 춤인 미뉴에트였다.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배우는 아이들이나 매우 진지하게 연습하는 중이었다.
농가의 헛간을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방문한 때가 여름 방학 중이라 아이들이 적어서 한산했지만 대신 그곳의 책임자인 윌라 씨로부터 보다 세심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방과 후 클럽이 여는 시간은 평소에는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방학 때는 오전 10시~ 오후 5시 반까지이다. 총 등록 학생 수는 400명이고 보통 150명 정도가 늘 이 클럽에서 북적인다고 했다.
원래 농장이었는데 어떤 회사가 사들였다가 운영이 잘 안되자 시청에서 빌려서 방과 후 클럽으로 쓸 수 있도록 내주었다고 한다.
자그마한 농가 건물 세 채와 창고며 헛간 등을 그대로 이용해서 공예, 목공, 미술, 재봉, 세라믹, 요리, 풀무질, 활쏘기 등의 여러가지 특별 활동반과 아이들의 쉼터가 곳곳에 만들어져 있었다.
자유롭게 클럽을 택하는 아이들
이 방과 후 클럽의 교사는 모두 20명인데 전공에 따라 각자의 반을 맡아서 이끌어가고 있고, 아이들은 맘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이 반, 저 반으로 간다고 했다.
윌라 씨가 처음 안내한 곳은 목공실과 공예반이었다. 목공실은 온갖 전문적인 도구와 장비가 갖추어져 있어 나무로 무엇이든 못 만들 것이 없어 보였다. 공예반에서는 아이들이 유리구슬과 도자기로 만든 목거리, 반지 등을 보여주는데 디자인이며 솜씨가 상점에서 파는 것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마당에 화초들이 많고 온실도 있어 그 속에서는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그 화초를 돌보고, 온실 일 하는 것을 모두 아이들이 맡아서 한다고 했다. 원예에 취미가 있는 아이들이 스스로 한다는 것이었다.
"터키 여행에서 배워 온 방식으로 아이들과 바닥에 타일을 깔 거예요"
전에는 창고였음직한 건물에 들어가니 마구간처럼 칸이 나뉜 큰 우리에 토끼들이 한 마리씩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주위에는 건초들이 쌓여있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이곳에 와서 토끼를 한 마리씩 맡아서 먹이도 주고 매일 관찰하며 기록을 한다고 했다.
조금 외떨어진 헛간으로 가는 길에 서있는 컨테이너를 윌라 씨가 문을 열어 보여주었다. 바로 훌륭한 음악실이었다. 드럼세트며 기타며 여러 악기들이 있어 밴드 하나쯤은 넉넉히 구성할 정도였다. 음악에 취미 있는 아이들은 여기서 마음껏 연습을 하고 즐기며 행사가 있을 때는 공연도 한다고 했다.
윌라 씨가 맡고 있는 세라믹 반은 벽이 없이 지붕만 씌워놓은 헛간에 들어있었다. 올해의 프로젝트는 바닥 타일 만들기라고 하면서 아이들이 만든 타일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터키여행을 했을 때 거기서 옛 방식을 배워 와서 아이들과 함께 만들고 있는 중이라며 다 완성이 되면 그 헛간 바닥에 타일을 깔 예정이라고 했다.
"그 나이대 아이들에겐 비밀스런 장소도 필요하죠"
재료는 타일가게에서 부스러기 타일, 혹은 헌 타일을 얻어오거나 아주 헐값으로 사온다고 했다. 윌라씨를 보니 이곳의 교사들은 아이들을 가르친다기보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어떤 주제를 정해서 아이들과 함께 만들며 스스로도 즐긴다는 인상이 들었다.
세라믹 반 옆에는 아이들이 모여 앉아 모닥불을 피우고 차를 끓여 마시며 놀 수 있게 돌멩이들이 놓여있는데 여간 아늑해 보이는 게 아니었다. 헛간 뒤쪽에는 재래식 대장간이 그럴듯하게 차려져 있어서 쇠 다루는 일을 해볼 수도 있고 바로 옆에는 요리교실을 위한 조리대와 오븐이 갖추어져 있어 아이들이 빵을 만들어서 구워 먹는다고 했다.
또 그 옆에는 밧줄을 직접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밧줄 사다리도 만들고 줄타기도 하고 놀 수 있는가 하면, 좁지만 활쏘기도 할 수 있도록 과녁이며 활이 있었다.
헛간 앞의 넓은 풀밭 한쪽에는 울퉁불퉁한 낮은 장애물이 비슷한 것이 연속으로 있어 물어보니 그곳이 토끼 경주장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토끼를 데리고 와서 훈련을 시켜 일 년에 한두 번 토끼경주가 열리는데 그런 야단법석이 없다고 했다.
풀밭 끄트머리에는 짚으로 된 작은 움막집이 하나 있었다. 아이들이 숨어들기 딱 좋은 만한 곳이었다. 윌라씨는 이 클럽에는 아이들이 숨을 곳이 많다며 웃었다. 그 나이또래의 특성에 맞추어 비밀스러운 장소를 일부러 만들어놓은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학부모를 초청하는 행사
초지 한쪽에서는 고무로 된 간이수영장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놓은 것이 보였다. 작년에 일일 장터를 열었던 곳이라 했다.
학부모를 초청해서 1년 동안 만든 것을 보여주고 파는 행사인데 아이들이 주관해서 행사를 진행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나무를 엮어 가게모양을 만들고 장터에서 통용될 돈도 만들고 하는 식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창고 하나는 우리로 치면 '귀신놀이 집'이었다. 들어가면 으스스하도록 분위기를 꾸며놓아서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곳이었다.
간이 돔 형태로 된 체육관에는 여러 가지 구기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데 특히 껌껌한 겨울에 실내 핸드볼이나 하키를 많이 한다고 했다. 그 바깥은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곳이었다.
다시 본 건물 쪽으로 오는 길에 들린 별채의 방 하나에는 라디오나 오디오등의 전자제품 부속이 널려있었다. 전기에 소질 있는 아이들이 와서 논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모여 앉아 카드놀이 할 수 있는 방도 있고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쉴 수 있는 방도 있었다.
컴퓨터는 두 대뿐…야외 활동을 적극 권장
윌라 씨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곳은 재봉실과 그림 그리는 방이었다. 재봉실 역시 어느 전문 학원 못지않아 보였고 그 옆방에는 여자아이들이 패션쇼 놀이를 할 수 있게 옷이며 천, 화장품, 인형, 종이박스, 패션쇼 그림 등이 쌓여있었다.
그림 그리는 방에는 아이들이 그린 다양한 그림을 문과 벽에 붙여놓았는데 이 클럽에 처음 오는 아이들은 우선 여기에서 그림을 그리며 이곳에 적응을 한다고 했다.
이곳에 컴퓨터는 단 두 대 뿐이라고 윌라 씨는 자랑스럽게 말하며 대개 여름에는 밖에서 보내도록 하고 겨울에 실내에서 지낸다고 했다. 그러나 겨울에도 밖에서 활동하는 반이 있고 반드시 밖에서 지내야 하는 기간도 있다고 했다.
일 처리가 다부진 덴마크 대학생, 쩔쩔매는 한국 대학생
성의껏 안내를 해준 윌라 씨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나오면서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기에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마음껏 놀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자라니까 자연히 창의력 있는 교사나 직업인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동안 주위에서 덴마크 대학생과 한국의 대학생이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덴마크 대학생은 일을 다부지게 처리하는 반면 한국 대학생들은 일이 서툴고 쩔쩔매기 일쑤였다.
한국 아이들은 그저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면서 자라는데 비해 덴마크 아이들은 어려서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실제 해보니 그럴 만도 하다고 비로소 이해가 갔다.
필자 이메일 : kumbikumbi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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