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의 건강을 살펴보는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전 대구한의대학교 교수)의 '낮은 한의학' 연재가 새해에도 매주 수요일 계속됩니다.
이상곤 원장이 조선 왕의 건강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당시 왕들의 모습이 오늘날 현대인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왕들은 산해진미를 섭취하였지만 격무와 스트레스, 만성 운동 부족 등으로 건강 상태는 엉망이었습니다. 이 원장은 "왜 왕처럼 살면 죽는지를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현대인의 바람직한 건강 관리법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번 연재의 주인공은 성종입니다. 세조의 손자 성종은 만 열세 살에 왕위에 올라 조선 왕조의 틀을 잡은 왕으로 꼽습니다. 성종 때에 이르러서야 조선은 나라꼴을 제대로 갖췄지요. 한편, 성종은 조선 왕조를 소재로 한 사극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인수대비, 폐비 윤씨, 연산군 등으로 이어지는 자극적인 인물의 핵심에 그가 있기 때문이죠.
그럼, 이런 성종의 건강은 어땠을까요? 앞으로 세 번에 걸쳐서 이상곤 원장이 성종의 건강을 샅샅이 파헤칩니다. <편집자>
대군 칭호도 받지 못한 채 자산군에서 자을산군으로 봉해진 성종의 즉위는 장인 한명회와 관련이 깊다. 형 월산군과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당시 4세)이 있었는데도 성종이 왕위에 무난히 오른 배경엔 당시 최고 권력자 한명회의 존재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성종의 질병도 한명회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성종을 평생 동안 괴롭힌 질환은 더위 먹는 병인 서증(暑症)이었다. 서증은 11세 무렵부터 시작돼 승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호소한 질병이다. 최초의 관련 기록은 성종 14년 6월 11일에 나타난다.
"정해년에 심한 더위를 먹어 여름만 되면 이 증세가 발병한다."
같은 해 6월 25일 기록엔 정희왕후의 제사를 임금이 지내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을 밝힌다. 19년 6월 7일엔 의정부에서 더위 때문에 경연과 국정 활동을 중지했고, 25년엔 머리가 아프고 더위 먹은 증상이 있어서 경연을 취소했다.
서증은 한명회의 집에서 얻은 것이다. 성종 14년 6월 14일, 왕의 질병이 점차 나아지자 육즙을 먹어야 한다고 대신들이 강권한다. 성종은 자신의 병을 오래전에 얻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며 육즙을 거부한다.
"내가 어렸을 때 서질(暑疾)을 얻어 언제나 심한 더위를 만나면 그 증세가 다시 일어나니, 이것은 상당군(한명회)이 알고 있는 바이다. 내가 이 병을 얻은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됐다."
19년 6월 7일엔 이런 말도 한다.
"내가 어려서 한 정승의 집에 있을 때 더위를 먹어 인사불성이 되니, 대부인이 손수 목욕시켜 구료하여 다시 깨어났는데, 지금까지 더운 철을 만나면 항상 더위를 먹어 병이 날 것 같아 6월부터 7월까지는 경연에 나아가 정사 보는 것을 중단한 것이 오늘날 비롯된 게 아니다."
<동의보감>은 서증을 이렇게 정의한다.
"하지 이후에 열병을 앓는 것은 서병이다. 서란 상화(相火)가 작용하는 것이다. 여름에 더위를 먹으면 답답증이 생기고 말이 많아지며 몸에서 열이 나고 갈증이 나서 물을 들이켜고 머리가 아프며 땀이 나고 기운이 없어진다."
여기서 의미 있게 되새겨볼 것은 상화가 작용한다는 점이다.
상화란 신장(腎臟)에 소속된 명문(생명의 문 또는 생명의 근본이라는 뜻으로, 오른쪽 콩팥을 이르는 한의학 용어)의 화를 가리킨다. 한의학에서 심장과 신장에 대한 해석은 현대 의학의 그것과 다르다. 인체를 소우주라는 관점으로 확대할 때 뜨거운 심장은 여름이고 신장은 겨울이다. 겨울은 계절의 시작과 끝이다. 1월이 두 얼굴의 사나이인 야누스를 뜻하는 'january'인 점과 같다. 가장 차가운 계절인 겨울과 가장 뜨거운 계절의 시작인 봄의 기운을 아우른다는 의미다.
신장은 차가운 쪽과 뜨거운 쪽 양면이 있다. 차가운 쪽이 물을 상징하는 신수(진액을 이르는 한의학 용어)라면 신장의 뜨거운 부분인 명문은 보일러이며, 흔히 단전(丹田)이라는 붉은 밭과 맥락을 같이한다. 현대 의학의 부신(副腎)은 보일러와 같은 의미를 내포한다. 명문은 생명의 문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인체의 보일러다. 상화가 있어 더위를 잘 탄다는 점은 보일러가 지나치게 항진돼 잘 달아오르는 걸 의미한다.
인간은 체온 36.5도의 항온동물이다. 보일러도 있지만 반대편엔 에어컨도 있다. 에어컨으로 진정하는 힘은 약하고 보일러로 달아오르는 힘은 큰 게 곧 상화다. 성종은 에어컨인 신수는 약하고 보일러인 상화, 명문화는 강한 열성 체질이었다.
까칠하고 직설적인 성격
왜 하필 장인 한명회의 집에서 서증이 시작됐을까. 중국 원나라 때의 유명한 의사 주진형은 상화를 식욕, 성욕 등 인간적 욕망이 발동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했다. 인욕(人慾)이라고 하지만 사실 분노의 감정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성종은 한명회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한명회의 집에 있는 동안 성종은 사실 별 볼일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상화가 발동할 만큼 분노할 상황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한명회는 결국 성종 12년 6월 중국 사신과 압구정에서 잔치를 벌이려고 국왕의 차양을 빌리려다 실각한다. 성종은 이 일을 계기로 한강변의 정자 중 선대왕이 지은 두 곳을 제외한 모든 정자를 헐어버리라는 명을 내렸다. 차양막을 요청한 죄에 대한 벌치곤 과도해 보인다.
성종은 잘 흥분하고 예민했다. 재위 15년 1월 29일 권찬이 '주사안신환'을 처방해 올린다. 주사안신환은 열이 심하게 올라오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과 떠도는 화를 진정시켜 정신을 편안케 하는 약이다. 경계(驚悸)증에 쓰는 약이기도 하다. 경계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말하는데, 중국 한나라 말의 의사 장중경은 경계의 원인을 "밥은 적게 먹고 물을 많이 마셔서 물이 명치에 있는 것이 심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으로 정의했다.
성종은 재위 19년 12월 21일 형인 월산대군 이정이 죽자 자신의 증세를 다시 토로한다.
"나의 증세는 본래부터 있었던 것으로 마음이 상하면 가슴이 아프다."
성종은 가뭄이 들면 자주 수반(水飯)을 들었다. 물에 밥을 말아먹는 수반은 자연재해를 극복하고자 하는 자신의 도덕성을 과시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속이 타는 체질의 특성이 드러난 것이다.
까칠하고 직설적으로 반응하는 특징은 실록에도 잘 나타난다. 원상(조선 시대에 왕이 죽은 뒤 어린 임금을 보좌해 정무를 맡아보던 임시 벼슬)인 김질이 "비위는 찬 것을 싫어하므로 수반이 비위를 상할까 염려합니다"라며 걱정하자 "경의 말과 같다면 매양 건식을 올려야 하겠는가"라고 성질 급하게 반박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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