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일부 언론이 여당 핵심관계자의 입을 빌어 "한명숙 총리가 2월말 당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지만 한 총리 본인은 "복귀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그럴 계획도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한 총리의 측근 인사들도 "사실이 아니다"고 합세했지만 일부 인사들은 "현재로서는…"이라는 단서를 달았고, '대통령의 탈당 등 향후 정치일정과의 연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관계가 없을 순 없지만 현재 가정법으로 말할 순 없다"고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어차피 현직 의원인 한 총리가 노 대통령의 임기 끝까지 함께 가며 대선을 관리할 수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복귀 문제는 그야말로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포스트 한명숙'에 대한 고민이다. 개헌, 여당의 분열, 가시화되는 대통령의 탈당, 정권 재창출에 대한 고민, 탈 없는 대선 관리 등 난제들과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레임덕의 방지라는 짐을 노 대통령과 나눠 질 수 있는 총리감이 마땅찮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상황으로선 한 총리의 후임으로 어떤 인물이 기용된다 할지라도 결국 이같은 짐은 노 대통령이 홀로 지고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당 복귀 지연설의 배경
현재 여권에서는 한 총리의 복귀 시점에 대해 2월말 설과 3월말~4월초 설이 엇갈리고 있다. 결국 한 총리의 복귀 시점은 노 대통령의 정국 구상을 축으로 해서 본인의 의사가 반영되는 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3월말~4월초 설이 힘을 얻는 데에는 현 정국 상황이 한 몫 하고 있다.
전날 출범한 정부 내 개헌추진기구는 국무조정실장을 단장으로 하고 있어 사실상 한 총리의 총괄 아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2월 말 개헌안 자체가 발의된다 하더라도 한 총리가 국회 개헌 논의 상황을 지켜보고 때론 여당을 다그쳐가며 개헌안 처리 여부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는 시점까지 자리를 지켜줘야 한다는 것.
비정치인 출신으로 중립적 성격이 강한 인사일 수밖에 없는 후임 총리에게는 그 역할을 맡기기도 힘들고, 자칫 후임 총리 지명자에 대한 국회 인사 청문 과정이 길어지고 잡음이라도 생길 경우 개헌안을 챙기는 부담과 일상적 국정 까지 노 대통령이 도맡아야 한다.
경제 관료 출신인 권오규 경제부총리의 총리 대행체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완전히 자리잡은 한명숙 총리
새해 들어 노 대통령이 총리에게 맡겨뒀던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기로 결정해 잠시 뒷말이 나왔지만 최근 한 총리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은 더욱 두터워진 눈치다.
특히 당청 간의 연결고리가 사실상 완전히 끊어진 상황에서 한 총리가 당과 대통령 간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 이 와중에 노 대통령은 한 총리의 몇 가지 건의를 수용하기도 했다.
지난 연말 임기단축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노 대통령이 마음을 돌린 데도 한 총리가 큰 역할을 했을 뿐더러 최근 노 대통령이 친노직계 참정연 의원들을 불러 '기초당원제를 수용하라'고 간곡히 권유한 배경에도 한 총리의 조언이 존재했다는 것.
물론 이같은 한 총리의 역할과 그 결과를 냉정히 따지자면 '봉합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당장의 궤멸을 막고 봉합이라도 시킨 것이 한 총리 덕'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정책적인 면에서도 한 총리는 최근 노 대통령의 신임이 남다른 유시민 복지부 장관을 공개석상에서 질책하는 등 내각 장악력을 높여 가고 있다.
이런 상황 역시 한 총리의 복귀 시점이 좀 더 늦춰질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한 총리 본인으로서도 전당대회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여당의 상황이 어떻게든 정리된 다음에 '실적'을 가지고 복귀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
한 총리는 지난 연말 기자간담회에서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솔직히 저도 잘 모르는 일"이라고 말해 그 가능성을 열어 둔 바 있다.
장상, 장대환, 김석수 카드의 학습효과
이처럼 지금이야 노 대통령과 한 총리가 '몽돌과 받침돌'로 호흡을 잘 맞추고 있지만 애초부터 노 대통령이 선뜻 한 총리를 낙점한 것은 아니었다. 바깥의 평가야 어떻든 간에 전임 이해찬 총리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신임이 워낙 두터웠고 이 전 총리 역시 탁월한 업무수행능력으로 이 같은 기대에 부응했었다.
난데없는 골프 파동으로 이 전 총리가 낙마한 이후 노 대통령의 의중에 있던 차기 총리는 김병준 현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한 총리도 취임 직후 정책수행 능력이나 업무 장악력에서 일부 문제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한 총리 이후 후임 총리를 포함한 노 대통령의 내각 구상은 이 정도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어려움일 수밖에 없다.
일단 정치색이 옅은 인물을 낙점할 수밖에 없고, 대통령 맘에 드는 정치적 역량이 있는 인물을 기용하고 싶어도 국회 동의 가능성도 난망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이른바 홍삼스캔들로 망신창이가 된 상황에서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명분으로 장상 카드를 사용했으나 실패했고 뒤이은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회장의 기용 카드도 도덕성 문제가 불거져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연이은 실패는 DJ 정부의 레임덕을 가속화 시켰다.
결국 비정치적인 인물이라는 대원칙이 세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노 대통령이 김대중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김석수 전 총리처럼 무색무취한 인물을 내세울 가능성은 극히 낮다.
악전고투가 뻔한 전망
레임덕에 대해 극심한 강박을 갖고 "대선 전날까지라도 공연한 비판은 신경 쓰지 않고 할 일은 하겠다"고 공언하는 노 대통령인 만큼 손발을 맞출 수 있고 정책수행능력이라도 뛰어난 인물을 고를 것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개헌안이 국회에서 부결되고 여당이 몇 갈래로 쪼개질 경우 청와대에 실리는 정무적 부담은 점점 더 커진다는 점이 문제로 남는다. 개헌안 부결은 야당과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여당의 분열은 그나마 방패막이조차 없어진다는 냉혹한 현실을 의미한다.
물론 노 대통령이 이같은 상황을 손 놓고 두고만 볼 리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노 대통령에게는 김대중 정권 시절 박지원 전 비서실장과 같은 역할을 할 사람도 없다.
한덕수, 김우식 등 현재 거명되고 있는 그 누가 총리로 기용된다고 하더라도 이같은 힘든 상황에서 내각을 챙겨야 하고 레임덕도 방지해야 하는 한편 대선도 관리해야 한다. 정무적 역할을 제외해도 이 정도다.
결국 노 대통령의 짐은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가령 한 총리가 지금 당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희망해도 노 대통령이 쉽사리 한 총리를 보낼 수 없는 지점은 바로 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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