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비정규직이 널리 퍼진 것은 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입니다. 빠르게 자리 잡은 이 시스템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폐해를 만들어 왔습니다. 오늘날 비정규직 문제를 생각한다는 것은 이 사회의 건강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한 첫걸음일 것입니다.
비정규 노동자의 얼굴을 봅니다. 얼굴로 정규와 비정규를 가를 수 있을까요? 그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비정규직 이전에 동등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이들이 다른 존재가 아님을 아는 과정이며, 차별이 어느 지점에서 발생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단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기회일 것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이기도 한 이상엽 기획위원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얼굴을 사진에 담아 보내왔습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비정규 노동자의 이야기를 사진과 음성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상엽 기획위원의 사진과 이혜정 <비정규노동> 편집장의 글이 어우러지는 이 연재는 매주 본지 지면과 이미지프레시안을 통해 발행됩니다. <편집자>
저는 한국교직원공제회 콜센터에서 일을 했어요. 지금은 해고되었지만요. 집에선 다 큰 아들, 딸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예요. 콜센터 일은 2001년부터 시작했으니까 13년 일했네요. 제가 한국교직원공제회에서 처음 일할 때만 해도 직접고용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한국고용정보'라는 위탁업체가 들어왔어요. 한국교직원공제회 건물 6층에 임대료 한 푼 안 내고, 교직원공제회 컴퓨터를 쓰면서 '한국고용정보'라는 간판과 관리자만 들어온 거예요. 이름도 생소한 이 위탁업체가 들어오고, 우리한테 '위촉계약서'란 걸 내밀더라구요. 우리를 관리하는 업체만 바뀌는 것뿐, 변하는 건 없으니 안심하라기에 싸인했지만 상황은 달랐어요. 직접고용일 때에는 해고, 징계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있었는데 위탁업체 소속이 되고 나서는 해고가 훨씬 쉬워졌어요. 고객 민원도 무조건 상담원이 책임지게 되었구요.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관리자가 도끼눈으로 쳐다봐요. 그러다보니 물도 마실 수가 없어요. 영업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연장근무를 시켜요. 연장수당도 주지 않으면서요.
부당한 일에 대해 항의를 하면 간단하게 해고시켜버려요. 저도 그렇게 해고가 되었어요. 위탁업체 사장 처제가 상담원으로 같이 근무를 하면서 온갖 특혜를 다 받았는데, 그것에 문제제기를 했다가 해고가 되었죠.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는데 지방노동위에서는 승소를 했어요. 그러나 몇 개월 뒤 중앙노동위는 '위촉계약서'에 사인했다는 이유로 저를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거예요. 특수고용이라면서요. 그렇게 저는 노동자가 아니게 되었어요. 콜센터 노동자로 13년을 살았는데도요. 너무 억울해요. 이 위탁업체는 좋은 일자리 창출 부분에서 대통령상도 수상한 곳이래요. 이렇게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해고하고,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니게 만들어 놓은 회사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곳이라니요. 말도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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