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비정규직이 널리 퍼진 것은 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입니다. 빠르게 자리 잡은 이 시스템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폐해를 만들어 왔습니다. 오늘날 비정규직 문제를 생각한다는 것은 이 사회의 건강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한 첫걸음일 것입니다.
비정규 노동자의 얼굴을 봅니다. 얼굴로 정규와 비정규를 가를 수 있을까요? 그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비정규직 이전에 동등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이들이 다른 존재가 아님을 아는 과정이며, 차별이 어느 지점에서 발생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단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기회일 것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이기도 한 이상엽 기획위원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얼굴을 사진에 담아 보내왔습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비정규 노동자의 이야기를 사진과 음성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상엽 기획위원의 사진과 이혜정 <비정규노동> 편집장의 글이 어우러지는 이 연재는 매주 본지 지면과 이미지프레시안을 통해 발행됩니다. <편집자>
나는 가정방문 베이비시터입니다. 나이는 52세구요. 정확히 말하자면 아기 돌보미죠. 예전에는 방과 후 교육까지 맡아서 0세부터 11세까지가 케어 대상이었는데, 이번에 정부시책 때문에 0세부터 5세까지로 바뀌었어요. 나는 생후 1개월짜리 아이를 돌보기도 했어요. 이용자 가정에서 시민센터 홈페이지에 구인요청을 하면 거기에 맞는 거리와 나이 대를 계산해서 시민센터에서 연결해 주죠.
가정에서 일을 하다 보니 빨래 삶기나 손빨래를 원하기도 하고, 심지어 가사 일까지 시키는 분들도 있어요. 커튼 빨래를 시킨다는 분도 있어요. 근무 수칙에 가사일은 하지 않는다고 명시가 되어 있긴 해요. 그런데 엄마들이 바쁘니까 출근하며 두고 간 설거지 거리나 빨래 같은 거를 더러 해 주기도 하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요구받기도 하죠. 식사가 제일 큰 문제 중 하나인데, 방문 가정에 식사준비가 안 되어있을 때는 3천원을 주게 되어있는데, 그나마도 돈을 요구하게 되면 불편해지니까 말을 못하기도 해요.
급여는 4대 보험비 적용되고, 퇴직금까지 떼고 나면 월 97만원 정도 받아요. 거기다 발전기금 회비라고 해서 3만원을 떼는데 그 용도를 알 수 없었어요. 알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거죠. 복지라는 것도 없었구요. 그런 배경 속에서 작년 11월에 노조가 결성되었어요. 이제 시작인데 갈 길이 멀어요.
※ 이 글은 격월간 <비정규노동> 3-4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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