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쫒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면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 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의를 마친 뒤 우리나라의 경제가 처한 상황을 이같이 묘사했다. 우리보다 기술 경쟁력이 낮다고 평가된 중국은 정부의 체계적인 산업 육성 계획으로 우리나라를 무섭게 뒤쫒고 있고, 우리보다 앞선 일본은 10여 년의 장기 불황을 극복하며 우리와 격차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의 이같은 우려가 과장되지 않았다는 점은 통계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29일 산업자원부, 관세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과의 무역흑자는 5년 만에 처음 줄어든 반면, 일본과의 무역적자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최대 수출국이자 최대 무역흑자국이고, 일본은 최대 수입국이자 최대 무역적자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통계 결과는 지난해 우리나라는 벌어들인 돈은 줄고 나간 돈은 크게 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격차는 줄어들고, 일본과의 차이는 더욱 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산자부의 통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 중국 무역흑자는 209억6700만 달러로 2005년 232억7000만 달러보다 9.9% 줄었다. 대 중국 무역흑자가 감소한 것은 지난 2001년 이후 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과의 무역에서 흑자 폭이 줄어든 이유는 중국이 철강과 석유화학 등 기초 소재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로부터의 수입을 줄였기 때문이다. 즉 대 중국 무역 흑자가 줄어든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기보다 구조적인 변화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지난해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는 253억3100만 달러로 2005년 보다 3.9% 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03년 대 일본 무역적자는 190억 달러, 2004년과 2005년은 모두 244억 달러였다.
이처럼 대 일본 무역적자가 증가세에 있는 것은 원-엔 환율이 점차적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원화가 높게 평가되면 상대적으로 일본 상품의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 일본 수출보다 수입이 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수입하던 품목도 다변화 됐다. 그 동안은 주로 자본재 중심으로 일본 상품이 국내에 수입됐지만, 원-엔 환율 하락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일본의 소비재나 원자재의 수입도 빠르게 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밖에도 지난 3년 동안 대 일본 적자 규모는 같은 기간 동안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벌어들인 전체 무역흑자액의 절반을 훨씬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전체 무역흑자액의 상당 부분이 대일 무역적자액 보전에 그대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의 배만근 연구원은 28일 '원-엔 환율 하락, 일류(日流) 확산시킨다'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지난 3년간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의 절반 이상이 일본에 흘러들어간 결과를 가져왔다"면서 "만일 일본과의 무역이 균형을 이뤘다면 우리나라 무역흑자액은 2.5배 늘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을 근거로 제시하며 중국을 따돌리고 일본을 앞지르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산업정책을 고려할 때가 됐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체계적인 산업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이에 맞춰 기업들의 경영활동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1997년 말 IMF 외환위기 이후 사실상 산업정책 기능을 포기하고 그 대부분을 시장 자율에 맡겨 온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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