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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간강사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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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간강사의 오늘

[기고] 비정규 교수들의 천막에도 봄은 올까?

G20이 열리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국회의사당, 그 앞 초라한 천막 하나. 이곳에 둥지를 튼 지도 어언 천 일하고도 백여 일이 지나간다. 그 사이 한 분의 시간강사가 목숨을 끊었고, 또 한 분의 비정규 교수가 목숨을 끊었고, 또 한 분의 그 보따리 장수가 목숨을 끊었다. 죽지 말고 살아서 쟁취하자고 그렇게 눈물로 호소하였건만......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을 하면서도 교원이 아닌 이들이 있다, 시간강사. 이들은 왜 교원이 되지 못하고 일용잡급직으로 분류돼야 하는 걸까? 전국의 비정규 교수는 어림잡아 7만 명. 그렇지만 하나 같이 이 싸움에 나설 수 없다. 이유는 한 가지, 교수가 되는 꿈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강사에서 전임 교수로 올라가는 것 그것은 지위 상승이 아니고 신분 상승이기 때문이다.

4인 가족 기준 최저 생계비도 받지 못하는, 한 달에 88만원도 받지 못하는 시간강사에게 방학이 시작되면서 전화 한 통이 날아온다.

"선생님, 한 학기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
조교 입에서 터져 나온 한 마디에 그나마 연명하게 해 주던 밥줄마저 끊어진다. 막막한 순간이다. 학과장이나 전임교수에게라도 전화를 받았으면 이렇게 서럽진 않을 텐데......

그 학과장에게 밉보이면 인생은 끝장이다. 잘 났거나, 잘 난 체 하거나, 잘 나서는 시간강사를 싫어하는 전임 교수님들께 찍히면, 어느새 인격이 부족하고 성격이 원만치 못한 인간, 독불장군이 되어 버린다.

"교수라는 게 공부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 무엇보다 성격이 원만해야지......"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 년, 장님 삼 년...... 그렇게 말 귀를 못 알아먹으시나, 원 참 쯔쯔쯔 ......"

비정규 교수가 나설 수 없는, 그렇다고 정규 교수가 나서는 것도 아닌, 그래서 교수 세계에서 누구도 나서지 않는 것이 비정규 교수 운동이다. 이것이 이 땅의 비정규 교수 운동의 현실이다. 그 벼랑 끝에 천막 하나 을씨년스럽게 쳐져 있을 뿐이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운동 방식도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점잖은 방법을 충고하던 많은 교수들도 보이지 않는 침묵의 카르텔 안에 있다. 4대강과 신자유주의 반대에 목청을 높이며 '진보'를 표방하던 분들이 왜 그들의 동료, 그들의 제자, 후배, 후학들의 처참한 처지는 외면하는 걸까? 누구든 그런 험한 세월을 겪으면서 담금질을 해야 참다운 인격자가 되고 훌륭한 스승이 되는 것이라고, 나도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대들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믿어서일까? 아니면 같은 교원이 되어 동등한 법적 지위를 가지면 스스로 갖고 있는 그 알량한 기득권을 잃게 될까 두려워서일까?

애초에는 시간 강사에게도 교원의 신분이 있었다. 유신 정권이 그들로부터 교원의 법적 지위를 앗아가 버린 것이 1977년. 33년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사회 곳곳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민주화도 이뤘고, 경제도 성장하고, 인권도 신장되고, 언론의 자유도 누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비정규 교수, 시간강사들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잊혀진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세계 100대 대학에 들어간다고 제 아무리 떠벌이더라도 강의의 절반은 교원이 아닌 일용잡급직 노동자들이 맡아야 하는 그 세계적인 대학의 위선적 권위만 시끄러울 뿐이다.

차도 끊기고 어둠과 적막이 깔린 천막. 춥다. 눈이 내리고 열대야가 찾아오길 반복하며 벌써 몇 해짼가. 얼굴이 돌아가고 풍도 올만큼 건강은 악화됐다. 그렇지만 천막은 접을 수가 없다. 이 땅의 시간강사들에게 교원 지위를 돌려달라는 것, 1977년 이전으로 회복시켜달라는 것, 그 간단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천막은 접을 수가 없다.

이 천막이 걷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우리의 목소리가 너무 작다.

이 글은 필자가 천막농성 중인 한 시간강사의 시점에서 쓴 글입니다. -편집자

☞ 관련기사: '보따리 장수' 없어진다고? 비정규 교수들 '공장'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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