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가 난 후 1년은 길었다. 그 사이 불 탄 망루에도 푸른 녹이 슬었다.
용산참사는 사람이 터 잡고 사는 문제까지도 누군가의 돈에 의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재개발은 돈의 논리였고, 이주와 철거 역시 그랬다.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억울해하던 것도 돈 때문이었다. 오로지 공권력만이 돈의 논리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그것은 양심적이지 않은 권력의 논리였고, 그 권력은 돈과 맞닿아 있었다.
이 사건은 합법화 된 폭력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재개발에 의한 희생의 억울함을 외치던 사람들은 기중기에 매달린 컨테이너 속 경찰 특공대의 폭력에 진압 당했다. 진압 과정에서 불이 났고, 6명이 사망했지만 경찰은 책임 지지 않았다. 공권력의 편은 정해져 있었다.
2010년 1월 9일의 뒤늦은 장례식. 유가족들은 긴 여정을 마치고 찬 땅에 고인들을 묻었다. 참사가 나고 1년을 열흘 앞둔 눈 오는 날이었다.
1년을 꼬박 울고, 기댈 곳 없는 심정으로 장례식장에서 8개월 넘게 시신을 지킨 유가족들은 이날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용산을 잊지 말아달라"며 울었다.
이제 기억하는 일이 남았다. 그 동안의 시간을 사진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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