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무너진 원칙은 도미노처럼 그 이후에도 계속 무너진다고 한다. 최근 정부가 '해외 투자 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이후 펀드 시장과 재정경제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이 말이 그릇된 말은 아님을 여실히 알 수 있다.
해외투자펀드의 비과세 혜택에 대한 '이유있는' 역외펀드의 반발
정부가 내놓은 '해외투자 활성화 대책'은 해외펀드에 대한 양도소득세 3년 비과세와 해외 부동산 취득 한도를 300만 달러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대책의 목적으로는 500조 원이 넘는 시중 유동자금의 축소와 해외투자의 활성화를 꼽을 수 있다.
펀드 시장에서는 이 대책이 발표되자마자 양도소득세가 과세되지 않는 상품에 대한 고객들의 문의가 급증하는 등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났다. 비과세 혜택이 주어지면 투자자들이 최종적으로 얻게 되는 투자 수익률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같은 혜택이 역내 펀드에만 한정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형평성' 논란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즉 국내에서 만들어진 해외투자펀드에만 양도소득세 3년 비과세 혜택을 주는 것은 해외에서 만들어진 해외투자펀드, 즉 역외펀드에 대한 상대적 차별이라는 주장이었다.
특히 역내펀드에만 혜택이 주어질 경우 투자자들이 역내펀드에 쏠림 현상이 빨라지면서 경쟁이 치열한 해외투자펀드 시장에서 역외펀드가 소외되거나 심하면 문을 닫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외 펀드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역외펀드의 반발은 공개적으로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다국적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의 에번 헤일 한국·홍콩·중국·싱가포르 총괄대표는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역외 펀드도 비과세 혜택을 받아야 한다"면서 "필요하다면 과세 자료를 적극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반발의 대열에는 해외 자산운용사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해외투자펀드를 만들지 않고 역외펀드를 수입해 팔아 온 일부 국내 증권사나 은행 등도 함께 하고 있다. 당장 비과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단기간 내에 국내산 해외투자펀드를 만들기도 어려운 속사정 때문이다.
역외펀드의 이같은 반발에 대해 역내펀드를 내고 있는 자산운용사들은 "역외펀드에도 비과세 혜택을 주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국내에 펀드를 설정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맞서고 있지만, 역외펀드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재경부
이처럼 시장에서 혼란이 거세지자 '해외투자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역내 펀드에만 비과세 혜택을 준다"고 단언했던 재정경제부도 지난 23일 "역외펀드 비과세 혜택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며 정책 변화의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했다.
실제 재경부는 최근 피델리티, 블랙록, 얼라이언스 번스타인 등 해외 자산운용사들을 접촉하면서 역외펀드에도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면서 재경부가 태도를 바꿀 것이라는 관측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참여연대 "재경부, 원칙으로 돌아가라"
이처럼 해외투자펀드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두고 펀드 시장은 물론 정부 내에서도 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소장 최영태)는 24일 논평을 통해 "상황이 복잡할수록 현명한 해결책을 찾는 방법은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즉 조세 제1의 원칙으로 흔히 거론되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말처럼 역내·외를 가리지 않고 투자한 자금에서 이익이 발생하면 그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라는 것이 참여연대의 주장인 셈이다.
이와 함께 참여연대는 역외펀드 운용사들이 비과세 혜택을 달라고 요구하는 데 대해 "재경부의 해외주식펀드 양도차익 비과세 방안 속에 내재돼 있는 모순을 이용한 것으로 그 책임은 재경부가 져야 한다"며 이번 혼란의 최종 책임을 재경부에 돌렸다.
국내 주식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주식투자에 따른 양도차익에 비과세 혜택을 주는 데 이어 국내에서 설립된 해외투자펀드에 비과세 혜택을 주기로 결정하고, 이에 따른 '형평성' 논란이 거세게 일자 해외에서 설립된 해외투자펀드까지 비과세 혜택 부여를 검토하게 된 일련의 과정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조세의 원칙이 순차적으로 무너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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